추석에 생각나는 일들
<중주> 가족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추석이 들어 있는 달, 9월이 되었습니다. 추석은 고향 찾는 날,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날이기도 한데요,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그런 일에 제동이 많이 걸릴 것 같습니다. 방역 당국은 추석이 코로나19 방역에서 중요한 고비가 될 것으로 판단하고 여러 가지 조치를 취하고 있는데요, 문득 33년 전의 추석이 생각납니다.
33년 전인 1988년에 제24회 서울올림픽이 열렸는데 올림픽 기간(9월 17일-10월 2일) 중에 추석(9월 25일)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 시절에는 추석에 고향 찾는 열기가 지금보다 더해 추석이 다가오면 ‘귀성전쟁’이라는 말이 매스컴을 장식하곤 했습니다. 그때 정부에서 올림픽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 올해는 귀성을 자제하자고 호소했고, 국민들은 자발적으로 이에 호응해서 그해의 추석은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넘어갔지요. 지난 호 ‘발행인 통신’에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저는 그 때 선수촌 종교관 운영 요원(채플린)으로 올림픽 현장에 있었기 때문에 그런 모습을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가운데에서 맞이하는 올해의 추석도 자발적으로 협력하여 코로나19를 잘 극복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이 생기네요.
저는 1970년에서 1990년대까지 북방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선교방송 기관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설이나 추석이 다가오면 중국에 살고 있는 조선족 동포들을 향해 “여러분, 고향이 얼마나 그리우십니까?” 위로하는 방송을 하곤 했습니다. 이제는 한국에 와서 일하고 있는 조선족 동포들이 중국에 두고 온 가족들을 그리워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요, 형편이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실감하곤 합니다.
그때 성경을 보내 달라는 크리스천 동포들이 많았는데요, 그런 요청을 모아 두었다가 설과 추석이 가까워지면 집중적으로 발송하곤 했습니다. 중국에서 성경은 마약, 무기, 음란서적과 함께 우편 반입금지 품목 가운데 하나이지요. 그래서 성경을 발송했는데 요청한 쪽에서는 받지 못했다는 편지가 오는 일이 많았고, 일부는 봉투에 ‘refuse’라는 도장이 찍혀 되돌아오곤 했었습니다.
그런데 설이나 추석을 앞두고 보내면 안착률(安着率)이 훨씬 높았습니다. 해외 중국인들이 명절 선물을 많이 보내기 때문에 우편물들을 자세하게 검색하기 힘들 것이고, 명절을 앞두고 검색 요원들의 마음도 너그러워지고 근무 태도도 느슨해질 것으로 기대하면서 그렇게 한 것인데요, 이것이 적중해서 한두 해 해보니까 실제로 그런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추석은 ‘성경 보내기 대목’이 되었지요. 이제는 이것도 옛이야기 가운데 하나가 되었네요.
위드 코로나, 위드 크로스, 위드 차이나 지금 ‘위드 코로나(With Corona/COVID-19)’라는 말이 매스컴에 나돌고 있습니다. 위드 코로나는 코로나19와 공존하는 것을 말하는데 지난 7월 19일에 영국이 세계 최초로 위드 코로나를 택해서 영국에서는 마스크가 사라졌고, 잃어버렸던 일상이 회복되고 있다고 합니다. 영국에 이어 싱가포르와 이스라엘도 코로나19 팬데믹 상황 속에서 위드 코로나정책을 시행하고 있다고 하네요. 코로나19를 봉쇄하려는 정책을 ‘코로나 제로(0)’라고 하는데 호주는 코로나 제로정책을 선두에 서서 시행하다가 지금은 위드 코로나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합니다. 아무리 강력한 봉쇄정책을 써도 확진자 수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어서 방역 전환을 검토하는 요인 가운데 하나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위드 코로나로 방역을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돌고 있는데요, 저는 아마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계속 강화되는 방역 조치 때문에 자영업자들의 고통이 커지고, 국가 경제가 타격을 받고, 일상생활이 너무 심하게 위축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위드 코로나’라는 말을 들으면서 엉뚱하게 ‘위드 크로스(With Cross)’라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위드 크로스’는 ‘십자가와 함께’라는 뜻입니다. 크로스, 십자가는 구원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고난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 막 8:34 눅 9:23)고 하셨는데요. 여기에서 ‘십자가’는 바로 그런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십자가를 내가 지고 주를 따라갑니다”(찬송가 341장)라는 찬송도 마찬가지입니다. 순교자 주기철 목사님은 “아픈 다리 싸매주고 저는 다리 고쳐주고 보지 못한 눈을 열어 영생 길을 보여주니 온갖 고통 다 하여도 제 십자가 바로 지고 골고다의 높은 고개 나도 가게 하옵소서”(찬송가 158장)라고 노래하셨지요.
느닷없이 이 말이 생각난 것은 중국교회가 위드 크로스의 길을 걸어왔고 지금도 걷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중국 기독교 역사는 정말 위드 크로스의 역사였습니다. 7세기에 전래된 경교 때부터 수난이 없었던 때가 없었습니다. 20세기 후반의 문화대혁명 때는 그 십자가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웠습니다. 위드 크로스는 현재 진행형입니다. 중국어문선교회에서 매주 금요일에 보내 드리는 ‘중국을 위한 기도’를 보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국교회의 최근 소식이 빠지는 주간이 거의 없습니다.
8월의 경우만 보더라도, 3일(화)에는 지난 7월 11일에 발생한 중국의 보안요원과 경찰 및 공무원들이 선전(深圳)시의 선전삼위일체복음추수교회를 포위하고 줌(ZOOM)으로 온라인 예배를 드리던 마오즈빈(毛志斌) 목사와 추옌칭(楚延庆) 장로에게 설교를 중단하라고 강요했다는 소식, 10일(화)에는 7월 20일에 발생한 원수이(文水)현 공안국 관리들이 홈스쿨링을 하는 한 기독교인 가정의 아버지를 ‘테러와 극단주의를 조장하는 자료 불법 소지’ 혐의로 체포했다는 소식이 담겨 있었습니다.
중국 저장(浙江)성에 취산도(衢山岛)라는 섬이 있는데 1863년에 이 섬의 어부들이 좌초한 영국 선박을 구조해 준 것이 계기가 되어 선교사가 이 섬에 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결과 섬 주민의 대다수가 기독교인 되었고 배에 십자가를 세우고 배와 집에 임마누엘이라는 문구를 새기는 것이 이 섬의 전통이 되었다고 합니다. 중국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은 참 흐뭇한 일이지요. 그런데 23일(월)의 중국을 위한 기도는 지난 7월에 당국이 안전 문제를 이유로 어선에 세워져 있던 십자가를 강제로 철거하고 배에 새겨진 임마누엘이라는 문구에 페인트로 덧칠하는 사건이 일어났다고 알려주었습니다. 8월의 마지막 날인 31일(화)에는 중국 당국이 동북부 주민들에게 기독교인을 감시하고 불법 종교활동을 보고하라고 명령하면서, 정보 제공자들에게는 한 번의 보고에 1,000위안(약 18만 원)의 포상금을 지급할 것이라는 소식이 담겨 있었습니다.
한 걸음 더 나가서 ‘위드 차이나(With China)’라는 말도 생각났습니다. 우리는 중국 사역이라는 현장에 부름을 받은 정말 피할 수 없는 ‘운명적인 사명’을 가지고 있는 일꾼들이기 때문입니다. 위드 코로나와 위드 크로스의 형편 가운데에서 위드 차이나의 길을 걷는 것은 당연히 쉽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잘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중국 성도들이 지고 있는 십자가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나누어지기 위해 열심히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본분입니다.
위드 코로나(With Corona), 위드 크로스(With Cross), 위드 차이나(With China), 우리의 ‘3W’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번 9월호에는 김영산 선교사님의 ‘코로나19 이후 한국교회 & 선교적 관점에서 공공신학 생각하기’라는 기획 글을 실었습니다. 집필해 주신 김 선교사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늘 감사한, 진심으로 사랑하는 <중주> 가족 여러분, 즐거운 추석 맞이하십시오!
사진 출처 | 바이두(浙江衢山岛石子门渔村_正道-直行_新浪博客)
유관지 | 중국어문선교회 고문 겸 웹진 〈중국을주께로〉 발행인, 용산감리교회 원로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