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의 30대 젊은 감독 쉬청제(许承杰)의 첫 번째 장편영화이다. 쉬청제는 대만의 칭화대학 공학 시스템 과학과를 졸업한 후 뉴욕대학 영화제작 대학원 재학 중에 주목을 받았던 단편영화를 《고독의 맛》이라는 영화로 다시 선보였다.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 영화의 창’ 부문에서 처음 선을 보인 이 영화는 코로나19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2020년 대만 박스 오피스 1위를 기록하며 2억 대만 달러라는 흥행 기록을 세웠다. 이 영화는 대만이나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정의 이야기를 잔잔하게 풀어가지만 짙은 여운을 남기는 절제된 연출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감독은 여주인공에게 눈물 흘리는 것을 자제해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2020년 제57회 대만진마장(金马奖)영화제에서 여주인공인 천수팡(陈淑芳, 1939∼)은 이 영화로 여우주연상을, 《친애하는 세입자(亲爱的房客)》로 여우조연상을 동시에 거머쥐었다. 그녀는 2개 부문을 수상한 동시에 최고령 수상자가 되는 진기록을 남겼다.
이 영화는 텔레비전의 연속극처럼 평범한 일상을 다루었다는 평가와 함께 일본의 영화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是枝裕和)의 《바닷마을 다이어리》(2015)가 연상된다는 평론도 있다.
쉬청제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구성된 이 영화는 그가 3살 때 부모의 이혼으로 겪어야 했던 아픔과 외할머니의 고독한 삶을 작품 속에 고스란히 녹여냈다.
대만 남부지역 타이난(台南)에서 규모가 비교적 큰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린슈잉(林秀英, 陈淑芳 분)은 자식들이 마련한 70세 생일잔치를 들뜬 마음으로 참여하려다가 10여 년 이상 연락이 두절되었던 남편 천보창(陈伯昌, 龙劭华 분)의 부음을 듣고 장례식을 준비하게 된다.
부잣집 딸인 린슈잉이 가난한 경찰인 천보창과 결혼하자 그녀의 친척들은 천보창을 업신여겼다. 그녀는 남편의 사업을 도와주려고 친정아버지의 인감을 훔쳐서 은행 대출까지 받았지만, 남편은 도박으로 가산을 탕진하고 만다. 이에 충격을 받은 그녀의 친정아버지가 화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자 남편은 집에 돌아오지 못하는 유랑자의 신세가 되었다.
린슈잉은 노점에서 새우롤(튀김)을 팔면서 생계를 이어갔고 후에 레스토랑까지 운영하게 된다. 그녀는 세 딸을 남부럽지 않게 잘 키우고 사업에도 성공했다는 자부심이 컸다. 큰딸 천완칭(陈宛青, 谢盈萱 분)은 국제적인 유명 댄서이고, 둘째 딸 천완위(陈宛瑜, 徐若瑄 분)는 타이베이에서 성형외과 의사로 일하고, 막내딸 천완자(陈宛佳, 孙可芳 분)는 어머니의 식당을 이어 받았다.
내겐 얄미운 남편, 딸들에겐 그리운 아버지 남편 천보창은 돈이 궁할 때면 노점을 하는 린슈잉을 찾아왔고, 그녀는 화가 나서 남편이 외도하는 현장을 급습하기도 하였다. 린슈잉은 친정아버지의 인감을 훔치면서까지 남편을 도와주었지만, 남편은 결국 사업에 실패하고 연락마저 두절 되었다.
남편 천보창은 죽어서 집으로 돌아가길 원했기에 린슈잉은 타이난에 빈소를 마련했다. 린슈잉은 신분을 숨기고 남편의 영전에 분향하던 여성이 남편의 연인이었던 차이메이린(蔡美林, 丁宁 분)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린슈잉에게 천보창이 집을 떠나 사업을 하려고 했던 이유는 바로 아내와 딸들을 위해서이고, 처가 친척들에게 비웃음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였다고 알려주었다. 천보창이 그동안 타이난에 돌아오지 못했던 이유가 친척들을 볼 면목이 없고, 자신으로 인해 장인이 세상을 떠났다는 자책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한 천보창이 그녀를 타이베이에서 타이난으로 데리고 와서 예전에 살던 작은 집을 보여준 적도 있다고 말했다. 린슈잉은 그녀를 통해 남편이 자신에게 미안해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막내딸 천완자는 린슈잉 몰래, 천보창과 연인 차이메이린과 연락하며 지냈다. 린슈잉은 천완자가 아버지의 연인 차이메이린을 두둔하는 것이 속상했다. 딸들은 아버지를 욕하는 외삼촌에게 대들기까지 하였다. 천완위는 시험에서 1등을 하면 외지에 있는 아버지가 돌아와서 자신을 축하해 줄 것이라고 믿고 열심히 공부했다고 회상했다.
외손녀 양이청(杨奕澄, 陈姸霏 분)이 할아버지 영정 사진 근처에서 바퀴벌레를 보고 놀라자 린슈잉은 바퀴벌레를 발로 밟으면서 손녀와 딸들을 보고 남편이 아무리 나빠도 바퀴벌레로 환생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농담하였다.
부모와 자식의 갈등과 회한 린슈잉은 자신이 가족들을 위해 소처럼 일하고 희생해도 고맙다는 말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고 딸들에게 아쉬움을 드러냈다.
린슈잉은 친정에서도 버림을 받고 홀로 노점에서 새우롤을 팔며 생계를 이어갔다. 린슈잉은 친정 식구들과 관계를 회복하려고 둘째 딸 천완위에게 의대에 가라고 부추겨서 결국 의사인 남동생과 연락하며 지내게 되었다. 천완위는 자신의 외동딸 양이청이 미국으로 유학 가기를 원하지만, 양이청은 외할머니에게 엄마를 말려달라고 부탁한다. 외손녀의 입장을 전한 린슈잉에게 천완위는 어머니도 내게 의대에 가라고 보채지 않았느냐고, 자신이 의사가 되어서 친척들에게 자랑거리가 되지 않았느냐고, 자신도 딸에게 더 많은 선택의 기회를 주고 싶다고 말한다. 천완위는 양이청이 엄마나 외할머니처럼 자신의 인생을 희생하며 살지 않고, 대만에서의 공부, 시험, 결혼, 양육이라는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길 바랐다.
큰딸 천완칭은 남편과 3년간 별거하고 재결합을 원하는 남편의 요구를 거절하였다. 자신은 하늘을 나는 연처럼 자유롭게 살며 구속받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천완칭은 5년의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서 재발한 암 수술을 거부하고, 가족에게 알리는 것조차도 부담스러워했다.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천완칭에게 아버지의 모습이 역력하여, 천완칭은 어머니 린슈잉과 자주 충돌하였다.
허칭메이(何晴眉, 张钧甯 분)는 린슈잉의 셋째 딸이지만, 일찍이 허씨 집안으로 입양을 보냈다. 허칭메이는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서 싱가포르에서 찾아왔다. 린슈잉은 붉은 실로 임신한 허칭메이의 허리를 감싸주어 액운을 물리치길 기원했다. 이 장면에서 린슈잉이 생활이 어려워 어린 딸을 양녀로 보내야 했던 과거에 대한 회한과 미안함이 잘 묻어났다.
사별한 뒤에 내려놓음 린슈잉은 일흔 평생의 노고를 생일잔치로 삭혀보려고 하였지만 20여 년간 소식이 없던 남편의 부고를 접하고 원망과 애착, 처량 등 복잡한 감정이 일어 마음이 착잡했다. 린슈잉은 남편에 대한 미움과 사랑이 교차하여, 남편이 생전에 요구했던 이혼합의서에 서명하지 않고 있었다. 남편의 발인 전날에야 드디어 서명했다. 린슈잉은 발인하는 날에 남편의 연인 차이메이린을 아내 자격으로 참석하게 하고 자신은 택시를 타고 홀로 텅 빈 장례식장을 찾아왔다.
린슈잉은 남편의 죽음을 앞에 두고 부부의 인연을 내려놓았다. 린슈잉은 평생 간직한 연애편지와 남편과의 사진을 손녀에게 보여주었다. 린슈잉은 남편의 연인 차이메이린 역시 어리석은 여성이라며 연민의 정을 느꼈다.
감독 쉬청제는 외할머니가 외할아버지의 연인과 함께 장례식을 치렀고 할아버지의 연인은 매년 성묘를 하러 내려왔다고 떠올렸다. 감독 쉬청제의 외할아버지의 연인으로 비춰지는 차이메이린은 린슈잉이 사랑, 집착, 원망, 질투 등 복잡한 감정들을 내려놓게 한 중요한 인물이다.
린슈잉은 평생 한 사람만을 사랑하고 결혼하고 뒤돌아보지 않고 딸들을 위해 성공에 매진했다. 하지만 딸들은 아버지의 부재를 아쉬워하고 그리워했다. 린슈잉은 평생을 노력해서 자식들을 잘 키웠다고 여겼지만, 자식과 20여 년 동안 연락도 하지 않은 남편에게 결국 지고 말았다고 탄식하였다. 성공과 고독 그리고 행복의 선택 영화의 영어 제목은 ‘Little Big Women’이다. 연약하면서도 강인한 여성을 말한다. 린슈잉의 평생을 대변해주는 제목이다. 하지만 감독의 외할머니를 포함한 대만의 여성들에게 헌정하는 영화라고 볼 수 있다.
영화의 중국어 제목은 ‘고미(孤味)’이다. 고미는 대만어로 식당에서 가장 잘하는 한 가지 요리만을 만드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다 이후에 인생이나 생활에 대한 태도를 지칭하는 말로 파생되었다. 사람이 한 가지 일을 꾸준히 하여 잘하기 때문에 고독해도 개의치 않는 것을 말한다. 주인공 린슈잉은 고미의 정신을 잘 발현한 인물이다.
린슈잉은 모아 두었던 금을 입양 간 딸을 포함해서 네 명에게 건네줬다. 어머니 린슈잉은 딸들에게 황금을 나눠 주었고, 아버지 천보창은 맛있는 과자를 남겨 주었다. 딸들은 아버지 천보창이 생전에 전해주려 했던 특산품 과자를 함께 나눠 먹으면서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딸들은 역경과 성공뿐 아니라 소소한 추억을 소중히 간직하였다.
사진 | 바이두 김영철 | 한양대학교 중국학과 교육전담교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