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페이지설정   사이트맵    사역에 동참하시려면  
    HOME  |  선교회소개  |  교육.훈련  |  중국을주께로  |  중국기도  |  중국어교실  |  자료나눔  |  커뮤니티  |  도서·음반
   
중국을 주께로는
전체보기
이번호보기
지난호보기
주제별보기
  특집/기획
  선교전략
  중국교회
  중국사회와 문화
  지역 및 종족연구
  중국뉴스
  중국어관련
  선교일반
  선교나침반
  중국 기독교
  기획
정기구독안내
해외정기구독안내
HOME > 중국을주께로 > 이번호보기
2021.5.3 통권 225호     필자 : 김종건 프린트   이메일 
[중국기독교회사]
명말청초 중국인 수사들
명말청초 중국에서 기독교 선교의 서막이 열리고 확산되는 과정에는 서양에서 온 선교사들을 도운 중국인 수사들의 기여가 아주 컸다. 이들의 도움으로 중국선교의 기반이 마련되었고, 평신도 사역이 확장될 수 있었다. 중국인 수사들은 중국어와 중국 사정에 익숙하지 않은 서양선교사들을 통역과 번역으로 협력하였고, 중국 전통사상과 풍속들을 소개하여 주었으며, 중국 전통 세계관과 기독교 교리를 연계 융화하는 과정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마테오 리치는 중국선교 과정에서 중국 청년들의 입회를 위해 신학원 설립을 청원하여 예수회 총장의 승인을 받았고, 1591년 1월 소주(韶州)선교회에 중국인 청년 종명인과 황명사가 입회함으로써 중국인 첫 수사가 탄생하게 되었다.1) 이후 남창(南昌), 북경에도 신학원을 세워 많은 중국인 수사들을 양성 배출하면서 함께 선교사역을 진행하였다. 중국 천주교회에서 사역한 대표적인 중국인 수사들을 아래와 같이 소개하고자 한다.

종명인
종명인(鍾鳴仁, 1562-1621) 수사는 광동성 신회(新會)현 출신으로, 자는 염강(念江)이다. 1591년 황명사와 함께 예수회에 입회하였고, 교명은 세바스티안이다. 그는 중국 문학에도 조예가 깊어 마카오에서 서양선교사들을 위해 통역과 번역으로 협력하였다. 그는 마테오 리치 신부와 카타네오 신부가 《중서자전》을 편찬하는 과정에 기여하였고, 마테오 리치 신부를 도와 〈양의현람도(兩儀玄覽圖)〉 제작도 도왔다. 

그는 1598년 6월 25일 마테오 리치 신부, 카타네오 신부의 북경행 일정에도 동행하여 다녀왔고, 이후 마테오 리치 신부와 판토하 신부가 북경으로 가서 신종(神宗) 황제에게 진공품을 올리는 일정에도 진공품을 조달하는 일을 도맡아 감당함과 동시에 동행하였다. 그는 1596년 소주 유림들의 고발로 형을 받고 항주(杭州) 감옥에 투옥되었다가 무고가 확인되어 석방되었다. 그는 마테오 리치 신부가 병이 들거나 어려움을 당할 때 힘껏 도왔고, 1610년 마테오 리치 신부가 세상을 떠났을 때는 장례 진행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만년에는 항주에서 사역하다가 1621년 세상을 떠났다. 

그는 고향인 광동성뿐만 아니라 서양선교사들이 진입하여 선교사역을 시작한 강서성, 절강성, 산동성, 하북성, 산서성, 섬서성을 비롯해 감숙성까지 오가며 선교사역을 감당하였다. 온화한 성품을 가진 인물로 명말 중국에서 교회개척에 가장 큰 공적을 세운 인물로 꼽힌다. 

황명사
황명사(黃明沙, 1569-1606) 수사는 마카오 출신으로, 1591년 종명인과 함께 예수회에 입회하였고, 교명은 프란치스코이다. 그는 1595년에는 남창에서 마테오 리치 신부의 선교사역에 협력하였고, 1603년에는 북경으로 이동하여 마테오 리치 신부의 선교활동을 도왔다.

그는 마테오 리치 신부가 〈양의현람도〉를 제작하는 과정을 도왔고, 교난 때 투옥되어 고난을 받기도 하였다. 1606년 3월 3일 세상을 떠났고 유해는 마카오로 옮겨 안장되었다.

유문휘
유문휘(游文輝, 1575-1630) 수사는 마카오 출신으로, 자는 함박(含樸)이며, 1605년 구량품, 서필등 등과 함께 북경 예수회에 입회하였으며, 교명은 엠마누엘이다. 마테오 리치 신부의 〈양의현람도〉 제작을 도왔고, 마테오 리치 신부의 말년 병상 간호를 맡았다. 서양화와 라틴어를 학습하였으며, 마테오 리치 신부가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초상을 여러 장 그렸고, 그 중 한 장은 로마 예수회 본부로도 전달되었다. 그는 1630년 항주에서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그곳에 안장되었다.
 
예일성
예일성(倪一誠, 1579-1638) 수사는 광동성 출신의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의 아들로, 청년기인 1601년 일본에서 마카오로 옮겨와 지내던 인물이다. 1608년 종명례, 구량후, 석굉기 등과 함께 남창 예수회에 입회하였고, 교명은 야고보이다. 그는 서양화를 배워 성상(聖像)을 많이 그렸으며, 판토하 신부가 〈사대주지도(四大洲地圖)〉를 제작하는 일을 도왔다. 그는 1638년 10월 26일 마카오에서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서필등
서필등(徐必登, 1580-1611) 수사는 마카오 출신이다. 그는 1603년 북경에서 마테오 리치 신부를 돕다가 1605년 유문휘, 구량후 등과 함께 북경 예수회에 입회하였고, 교명은 안토니오이다. 그는 사역 도중 1611년 6월 10일 마카오행 배에서 세상을 떠나 광주에 안장되었다.

종명례
종명례(鍾明禮, 1581-미상) 수사는 광동성 신회(新會) 출신이다. 그는 형인 종명인과 함께 마카오에서 서양선교사들에게 교리를 배우고, 1608년 3월 서필등 등과 함께 남창 예수회에 입회하였으며, 교명은 요한이다. 그는 1612년 이후에는 남웅(南雄)에서, 1616년 이후에는 항주에서 선교사역을 진행하였다. 1617년 남경 교난 때 체포되어 3년간 형을 당하고 석방된 후 건강을 잃어 사역 현장에서 일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 사망 일자는 미상이다.

구량품
구량품(丘良稟, 1582-1652) 수사는 마카오 출신으로 자는 완초(完初)이다. 소주 예수회에 입회하였고, 교명은 도미니크이다. 선교사들의 사역을 돕다가 무고로 광주(廣州) 감옥에 투옥되어 고난을 당하기도 하였다. 1603년 마테오 리치 신부의 북경 선교사역을 도왔고, 〈양의현람도〉 제작 과정에도 협력하였다. 1633년 이후 중국의 가장 남쪽 지역인 해남도(海南島) 등지에서 선교사역을 하였고, 1652년 4월 15일 마카오에서 세상을 떠났다. 

구량후
구량후(丘良厚, 1584-1640) 수사는 마카오 출신으로 자는 영수(永修)이다. 1608년 예일성과 함께 남창 예수회에 입회하였고, 교명은 파스칼이다. 그는 남창, 북경 등지에서 선교사역을 진행하였고, 뛰어난 교리 교사로 이름이 높았다. 그는 1640년 북경에서 세상을 떠났고, 마테오 리치 신부의 유택이 있는 곳에 안장되었다.

석굉기
석굉기(石宏基, 1585-1647) 수사는 마카오 출신으로 자는 후제(厚齊)이다. 1608년 남창 예수회에 입회하였고, 교명은 프란치스코이다. 1612년 항주에서 카타네오 신부의 사역을 도왔고, 1613년 처주(處州), 1614년 남경, 1630년 강주(絳州), 1634년 건창(建昌), 1645년 해남(海南)에서 선교사역을 감당하였다. 1647년 2월 2일 마카오에서 세상을 떠났다.

 
미주         
1) 이하 내용은 徐良子, 《16세기 동양 선교와 마테오 리치 신부》 (성요셉출판사), pp.139-145 등 참조하여 정리함.







사진설명 | 1610년에 유문휘 수사가 그린 마테오 리치의 초상
사진출처 | 바이두
김종건 | 대구한의대학교 기초교양대학 교수
       인쇄하기   이메일보내기   
   
110-812 서울시 종로구 창경궁로29길 25, (명륜3가 명륜빌딩 202호)   Tel : 02)745-0780~2, 070-8236-1270   Fax : 02)745-0786    E-mail : sinim@chol.com
Copyright 중국어문선교회 All Rights Reserved.     Product by gmgl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