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공(農民工)의 역사 작은 식당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는 스무 살 구야난은 허베이(河北)성에서 일자리를 찾아 베이징(北京)으로 온 농민공이다. 그녀는 하루 평균 13시간을 일하고 1,800위안(약 32만 원)의 월급을 받아 월세 400위안(약 7만 원)을 내고 나머지로 생활하고 있다. 지상 아파트에 살려면 한 달에 천 위안(약 18만 원) 이상 드는데 월급의 반을 방값으로 지불할 수 없어서 지하방 외에는 달리 선택할 곳이 없다. 이러한 농민공들을 중국에서는 생쥐족이라 부른다.(KBS 글로벌정보쇼 세계인, 2015. 05. 09.)
농민공은 생계를 위해 농촌 고향을 떠나 대도시에서 일하는 하층민 이주노동자를 말한다. 해마다 춘제(春節)가 되면 고향을 가기 위해 대도시 역과 버스 터미널마다 양손과 머리에 선물과 짐보따리를 가득 든 귀성객 행렬을 볼 수 있는데 그들 중 상당수는 농민공들이다. 한국의 설 명절과 같이 민족대이동을 벌인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며칠씩 걸리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갈 만큼 넓은 대륙을 배경으로 한 점은 확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한 해 고생해서 번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선물을 꾸려 고향에서 기다리고 있을 부모 형제를 위해 먼 길을 떠나는 농민공들을 지켜보는 마음은 애잔하기만 하다.
농민공의 역사는 마오쩌둥(毛澤東)의 대약진운동(大躍進運動)의 실패가 낳은 결과로부터 시작되었다. 마오쩌둥은 근대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소련의 스탈린식 농공업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1958년 중국공산당은 ‘15년 이내에 미국을 추월하자’라는 구호를 내세운 소련을 의식해서, 미국보다는 비교하기가 수월한 당시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었던 ‘영국을 15년 이내에 추월하자’는 구호를 내세웠다.
마오쩌둥은 인민공사를 만들어 많은 농민의 노동력을 조직화하는 한편으로 사적 소유를 금지함으로써 공산주의 이념을 확고히 실천하고 자본주의를 배격하는 사회주의국가 발전의 대약진을 추구하고자 했었다. 그러나 몸으로 뛰는 고된 노동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구조와 현실 속에서 적게 일하는 사람과 많이 일하는 사람 사이에 차별을 두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적인 소유를 금한 방침은 노동생산성 저하를 낳을 수밖에 없었다. 마침 불어닥친 자연재해에 따른 대기근이 일어나는 바람에 농민들은 배급 사정이 상대적으로 나은 도시를 향해 농촌을 떠나게 되었다. 거기다 공업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농촌인구를 도시로 유입시켰던 까닭에 자의 반 타의 반 적지 않은 농민들이 고향 농촌을 등지는 일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도시로 모여든 농촌인구 때문에 범죄와 주택 부족 등의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자 당시 공산당은 농촌인구의 도시 유입을 막기 위해 호적을 농촌과 도시로 분리해서 작성하여 농촌인구의 유입을 막기 시작했다. 즉 도시에 호적이 없는 농민들은 농촌으로 돌려보냈고 나아가서는 농민들의 도시 진출을 아예 차단시키는 정책을 시행하기도 했다. 농민 입장에서는 먹고 살기 어려운 농촌 사정을 피해 도시로 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마음대로 갈 수 없게 된 것이다.
중국에서 영화 《기생충》 상영이 금지된 이유 1978년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 노선의 시행은 그동안 닫혀 있었던 농민들의 도시행을 열어준 결정적인 계기였다. 문화혁명으로 인해 가뜩이나 어려웠던 농민들이 도시로 나가는 기회를 얻게 된 일은 일생일대의 희망으로 다가왔고, 농민들은 춘절의 귀성객들처럼 열차를 가득 채운 채 대도시로 몰려드는 민공의 대흐름(民工潮)을 형성한데서 오늘날의 농민공은 탄생했다.
대도시에 사는 가난한 농민공들 가운데는 생쥐족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달팽이족도 있다. 생쥐족이 허름한 아파트 지하 단칸방에 산다면 달팽이족은 아파트 한 칸을 여러 쪽으로 나눠 쓰는 농민공들을 말한다. 될 수 있는 한 집세를 줄이고 한 푼이라도 아껴서 가게라도 하나 차릴 생각에 악착같이 일하는 중국인들이다.
문제는 생쥐족과 달팽이족들이 서로의 얼굴만 보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란 사실에서부터 발생한다. 이들이 대도시에서 마주하는 사람 중에는 백만 위안(1억 8천만 원)짜리 외제 자동차들을 몰고 다니며 고급음식점 ‘순펑(顺风)’에서 백만 원이 넘는 코스요리를 먹고 저녁이 되면 서양식 주방과 중국식 주방이 별도로 있는 수십억 원짜리 별장에서 사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살아가는 모습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잘 사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사회에서 농민공들이 겪는 박탈감이란 과연 중국이 공산주의 이념이 지배하는 사회인지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현재 대략적인 농민공의 숫자는 적게는 전체 인구의 10%에서 많게는 20%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농민공이라고 해서 모두 빈민층을 형성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14억 인구로 계산하자면 최소 약 1억 4천만 명에서 최고 약 2억 8천만 명 정도가 한 달에 우리나라 돈으로 40만 이하의 월급을 받고 살아간다는 점에서 세계 2위의 경제 대국 중국의 위상을 의심하게 만든다.
그러나 최상위층의 경우에는 경제 대국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하면서 선진국 가운데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영국의 부동산 정보업체 나이트프랭크가 발표한 ‘2017년 재산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초고액 순자산 보유자는 1만 4310명으로, 전체 인구 기준 10만 명당 1명이 최고 부자인 것으로 밝혀졌다. 베이징에만 자산 규모가 10억 달러(약 1조 1290억 원)를 넘는 부호가 100명에 이르고 중국 전체의 억만장자 수는 약 568명으로 지금껏 부동의 1위였던 미국의 535명을 앞지르기도 했다.
그러나 부의 편중 역시 그 어느 나라보다 심하다. 중국의 최상위층 1%가 중국 전체의 자산 30%를 소유하고 있는 반면에, 중국의 최하위층의 30%는 중국 전체의 자산 중 겨우 1%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이것은 재산에 따른 계층의 양극화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통계로서 중국 사회를 쑥밭으로 만들 수 있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뇌관과 같이 작동하고 있는 현실이다.
농민공이 갖고 있는 빈부격차에 따른 사회불만은 아카데미 4관왕에 빛나는 영화 《기생충》의 상영도 막아버리고 말았다. 《기생충》은 중국 서북부 칭하이(青海)성의 성도 시닝(西寧)에서 열린 ‘2019 시닝 퍼스트 청년영화제’ 폐막식에서 상영될 예정이었으나 ‘기술적 이유’로 상영 하루 전 전격 취소됐다. 기술적 이유란 엄밀히 말하자면 정치적이며 사회적인 이유라 할 수 있다.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는 농민공 인구가 2억이 넘는 현실에서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농민공의 불만과 이에 동조하는 중국인들이 혹시라도 《기생충》을 보고 그동안 억눌린 불만을 표출하기라도 한다면 지금의 시진핑 정부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누가 농민공을 위로해 줄까? 중국선교에서 가장 관심을 가져야 할 대상은 바로 농민공들이다. 권력계층이나 돈 많은 자산가들 또한 복음이 필요한 사람들이지만,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위로받고 영혼 구원을 통해 삶의 전환이 가장 절실한 대상은 농민공들이다.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의 친구(눅 7:34)이셨고 그들과 먹고 마셨다. 오늘날 자본주의 경제체제와 공산주의 이념 사이에서 갈피를 찾지 못한 채 가장 고단한 삶을 사는 농민공들에게 예수님은 가장 훌륭한 친구로 다가갈 수 있다.
특히 유물론적 관점을 지향하는 중국 정부가 해결하지 못하는 농민공의 문제를 기독교는 영적인 측면으로 접근함으로써 새로운 국면을 보여줄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우리가 앞으로 논의하고 기도하며 실천해야 할 일이지만, 로마 시대의 기독교인이 황제숭배를 거부한 까닭에 위협과 박해를 받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범을 보이며 칭찬을 들으며 살았던 그 신앙과 지혜를 적용해 보는 연구를 해 볼 만하다. 313년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결국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선포했던 역사를 기억하면서 말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롬 14:17-18)
사진 | 바이두 강진구 | 고신대 국제문화선교학과 교수, 영화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