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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3.3 통권 223호     필자 : 석은혜 프린트   이메일 
[한국어 사자성어를 중국어로 번역하기]
형태는 다르지만 의미는 같은 사자성어(2)

한국어 사자성어를 중국어로 번역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국립국어원이 간행한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우리말에 한자어가 차지하는 비율은 약 57% 정도라고 한다. 그중에 간결하고 독특한 언어형식인 사자성어도 한자어의 일부분으로서 한국으로 전파되었다. 따라서 양국의 사자성어가 형태와 의미가 동일한 경우가 많이 있다. 그러나 양국의 사자성어는 각각 자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영향을 받으면서 개념과 형식, 용법, 의미가 각각 변화 발전되었다. 이번 호에서는 지난호에 이어 ‘형태는 다르지만 의미는 같은 사자성어’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특별히 한국어 사자성어와 중국어 사자성어의 글자 위치가 서로 다른 경우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1. 금의환향(錦衣還鄕): 금의환향은‘비단옷을 입고 고향에 돌아온다’는 뜻으로, 출세를 하여 고향에 돌아오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이 성어는 당(唐)나라 시인 이백(李白)이 지은 시〈월중회고시(越中懷古詩)〉에서 나온 말이다. 이 시에는 ‘월왕구천파오귀(越王句踐破吳歸), 의사환가진금의(義士還家盡錦衣)’라는 구절이 있다. 이 말은 월나라왕 구천이 원수인 오나라를 격파하고 돌아올 때 병사들이 모두 비단옷을 입었다는 뜻이다. 이 한국어 성어와 대응하는 중국어 성어는 ‘衣锦还乡’ [yī jǐn huán xiāng]이며, 그 의미는 한국어와 동일하다. 한국어 성어의 ‘금의(錦衣)’가 중국어 성어에서는 ‘의금(衣锦)’으로 자리가 바뀌었다. 비록 형태는 다르지만 그 의미는 한국어 성어와 동일하다.

2. 권선징악(勸善懲惡): 권선징악은 ‘착한 일을 권장하고 악한 일을 징계한다’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이 성어는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서 나온 말이다. 노(魯)나라 성공(成公) 14년 9월에 제(齊)나라로 공녀를 맞이하러 가 있던 교여(僑如: 宣伯)가 부인 강씨를 데리고 돌아왔다. ‘교여’라고 높여서 부른 것은 부인을 안심시켜 데리고 오기 위해서였다. 이보다 앞서 성공 11년 가을에 선백(宣伯)이 제나라 공녀를 맞이하러 갔었을 때는 선백을 ‘숙손(叔孫)’이라고 불러 군주의 사자로서 높여 부르는 방법을 사용했다. 그러므로 군자는 이렇게 말한다. “춘추시대의 호칭은 어려운 것 같으면서도 알기 쉽고, 쉬운 것 같으면서도 뜻이 깊고, (……) 악행을 징계하고 선행을 권한다(懲惡而勸善). 공자(孔子) 같은 성인이 아니고서야 누가 이렇게 지을 수 있겠는가?” 권선징악은 이 글의 ‘징악이권선(懲惡而勸善)’이라는 말에서 유래하였다. 이 한국어 성어와 대응하는 중국어 성어는 ‘惩恶劝善’ [chéng è quàn shàn]이며, 그 의미는 한국어와 동일하다. 한국어 성어는 ‘권선징악(勸善懲惡)’인데, 중국어 성어에서는 ‘징악권선(惩恶劝善)’으로 글자의 위치가 바뀌었다. 비록 형태는 다르지만 그 의미는 한국어 성어와 동일하다.

3. 소탐대실(小貪大失): 소탐대실은 ‘작은 것을 탐하다가 큰 것을 잃는다’는 뜻으로, 작은 이익에 정신이 팔려 그것을 쫓다가 오히려 큰 손해를 보게 되었다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이 성어는 중국 북제(北齊, 550-577)의 학자 유주(劉晝)의 글을 모은 《신론(新論)》에서 나온 말이다. 춘추전국 시대에 진(秦)나라의 혜왕(惠王)은 이웃 나라인 촉(蜀)나라를 손에 넣기 위해서 촉나라 군주가 욕심이 많다는 것을 이용하기로 했다. 혜왕은 옥으로 황소를 조각하게 하였고 그 안에 비단과 보석을 채워 넣게 한 후, 그것을 촉나라 군주에게 선물할 것이라고 소문을 내게 했다. 선물에 정신이 팔린 촉나라 왕은 선물을 잘 가져올 수 있도록 가파르고 위험한 길을 평평하게 만들어 주었다. 진나라 왕은 선물을 보내는 것처럼 속여 군대를 촉나라에 투입하여 촉나라를 정복하였다. 촉나라 왕은 보물 몇 개를 얻으려고 하다가 나라를 잃어버리게 되었다고 하여 소탐대실(小貪大失)이라고 하였다. 이 한국어 성어와 대응하는 중국어 성어는 ‘贪小失大’ [tān xiǎo shī dà]이며, 그 의미는 한국어와 동일하다. 한국어 성어는 ‘소탐대실(小貪大失)’인데, 중국어 성어에서는 ‘탐소실대(贪小失大)’로 글자의 위치가 바뀌었다. 비록 형태는 다르지만 그 의미는 한국어 성어와 동일하다.

4. 일벌백계(一罰百戒): 일벌백계는 ‘한 사람을 벌주어서 백 사람을 경계한다’는 뜻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하여 본보기로 한 사람에게 엄한 처벌을 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이 성어는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 나온 것으로, 《손자병법》을 쓴 전략가 손무(孫武)의 일화에 실려 있다. 춘추시대에 오왕(吳王) 합려(闔閭)는 손무에게 실제로 군을 훈련하는 방법을 보여 달라고 부탁했다. 이에 손무는 좋다고 대답했고, 궁녀 180명으로 병법을 선보였다. 그는 궁녀들을 두 편으로 나눈 뒤 왕이 총애하는 후궁 둘을 대장으로 삼았다. 손무가 궁녀들을 훈련시킨 후에 그들에게 군령을 선포하고 명령을 했는데도 궁녀들이 크게 웃기만 할 뿐 명령에 따르지 않았다. 그러자 손무는 궁녀들이 군령을 따르지 않는 것은 대장의 죄라고 하면서 대장으로 임명한 2명의 목을 베었다. 그후 다음 애첩을 대장으로 삼아 훈련하니 궁녀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는 데서 ‘일벌백계’가 유래하였다. 이 한국어 성어와 대응하는 중국어 성어는 ‘惩一戒百’ [chéng yī jiè bǎi]이며, 그 의미는 한국어와 동일하다. 한국어 성어는 ‘일벌백계(一罰百戒)’인데, 중국어 성어에서는 ‘벌일계백(惩一戒百)’으로 글자의 위치가 바뀌었다. 비록 형태는 다르지만 그 의미는 한국어 성어와 동일하다.

5. 산해진미(山海珍味): 산해진미는 ‘산과 바다에서 나는 온갖 진귀한 물건으로 차린 맛이 좋은 음식’을 이르는 말이다. 이 성어는 당나라 자연파 시인 위응물(韋應物: 737-804)이 저술한《장안도시(長安道詩)》에 나오는 말이다. 중국인들은 “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처럼 여긴다(民以食爲天)”라고 할 정도로 먹는 것을 즐기고 중시하였다. 따라서 요리 수가 많으며, 별의별 음식이 다 등장하게 되었다. 이런 음식을 산해진미라고 부른다. 산해진미는 연와(燕窩: 바다 제비집 요리)와 같은 ‘진식(珍食: 진귀한 음식)’, 타봉(駝峰: 낙타 혹으로 만든 음식)과 같은 ‘기식(奇食: 기이한 음식)’, 성순(猩脣: 고릴라 입술로 만든 음식)과 같은 ‘잔식(殘食: 잔인한 음식)’으로 나눌 수 있다. 이 한국어 성어와 대응하는 중국어 성어는 ‘山珍海味’ [shān zhēn hǎi wèi]이며, 그 의미는 한국어와 동일하다. 한국어 성어는 ‘산해진미(山海珍味)’인데, 중국어 성어에서는 ‘산진해미(山珍海味)’로 글자의 위치가 바뀌었다. 비록 형태는 다르지만 그 의미는 한국어 성어와 동일하다.

6. 마이동풍(馬耳東風): 마이동풍이란 ‘동풍이 말(馬)의 귀를 스쳐 간다’는 뜻으로, 다른 사람의 비평이나 의견을 귀담아듣지 아니하고 지나쳐 흘려 버림을 이르는 말이다. 이 성어는 《이태백집(李太白集)》18권에 나오는 말이다. 당나라 시인 이백이 벗 왕십이(王十二)로부터 〈한야독작유회(寒夜獨酌有懷: 추운 밤에 홀로 술잔을 기울이며 느낀 바 있어서)〉라는 시 한 수를 받자 이에 답하여 〈답왕십이한야독작유회(答王十二寒夜獨酌有懷)〉라는 시를 보냈는데 ‘마이동풍’은 이 시의 마지막 구절에 나온다. ‘세인들은 이 말을 듣고 모두 머리를 흔드네, 마치 동풍에 스친 말의 귀처럼(世人聞此皆掉頭, 有如東風射馬耳)’. 이백은 동풍이 말의 귀를 스쳐도 아프지 않듯이, 시인들이 아무리 좋은 시를 짓더라도 세인들이 그것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울분을 터뜨렸던 것이다. 이 한국어 성어와 대응하는 중국어 성어는 ‘东风马耳’ [dōng fēng mǎ ěr]이며, 그 의미는 한국어와 동일하다. 한국어 성어는 ‘마이동풍(馬耳東風)’인데, 중국어 성어에서는 ‘동풍마이(东风马耳)’로 글자의 위치가 바뀌었다. 비록 형태는 다르지만 그 의미는 한국어 성어와 동일하다.

7. 숙맥불변(菽麥不辨): 숙맥불변은 ‘콩인지 보리인지를 구별하지 못한다’는 뜻으로, 사리 분별을 못 하고 세상 물정을 잘 모름을 이르는 말이다. 한마디로 어리석고 못난 사람을 비유하는 말이다. 이 성어는 《좌전(左傳)〈성공(成公) 18년〉》에 나오는 말이다. 춘추전국 시대 진(晉)의 도공(悼公)에게 형이 있었다. 그런데 그 형은 아주 미련하여 아무 일도 그에게 맡길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관직 없이 그냥 지냈다. 사람들이 그 형을 보고 콩과 보리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하여 ‘숙맥불변’이라고 놀렸다고 한다. 흔히 사리 분별을 못 하고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사람을 ‘숙맥’이라고 부르는데, 이 말은 ‘숙맥불변’에서 나온 말이다. 이 한국어 성어와 대응하는 중국어 성어는 ‘不辨菽麦’ [bú biàn shū mài]이며, 그 의미는 한국어와 동일하다. 한국어 성어는 ‘숙맥불변(菽麥不辨)’인데, 중국어 성어에서는 ‘불변숙백(不辨菽麦)’으로 글자의 위치가 바뀌었다. 비록 형태는 다르지만 그 의미는 한국어 성어와 동일하다.

8. 수적석천(水滴石穿): 수적석천은 ‘낙숫물이 계속 떨어지면 돌을 뚫는다’는 뜻으로, 꾸준히 노력하면 큰일을 이룰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이다. 이 성어는 송(宋)나라의 나대경(羅大經)이 지은 《학림옥로(鶴林玉露)》에 나오는 말이다. 장괴애(張乖崖)란 사람이 송양현의 현령을 지낼 때 관아의 창고지기가 돈 한 푼을 훔친 사실이 발각되자 장괴애는 창고지기를 장형(杖刑)에 처했다. 이에 창고지기가 불복하자 장괴애는 “비록 하루에 돈 한 푼이라 할지라도 천 날이면 천 푼이 된다. 이는 마치 노끈으로 톱질을 오래하면 나무를 벨 수 있는 것과 같고, 물방울이 계속 떨어지면 마침내 돌을 뚫을 수 있는 것과 같다(繩鉅木斷,水滴石穿)”라고 말한 데서 유래했다. 이 성어는 본래 ‘작은 잘못이라도 계속 누적이 되면 커다란 위험이 될 수 있음’을 비유했으나, 현재는 ‘보잘것없는 아주 작은 힘이라도 꾸준히 노력하면 큰일을 이룰 수 있음’을 비유하는 것으로 쓰인다. 이 한국어 성어와 대응하는 중국어 성어는 ‘滴水穿石’ [dī shuǐ chuān shí]이며, 그 의미는 한국어와 동일하다. 한국어 성어는 ‘수적석천(水滴石穿)’인데, 중국어 성어에서는 ‘적수천석(滴水穿石)’으로 글자의 위치가 바뀌었다. 비록 형태는 다르지만 그 의미는 한국어 성어와 동일하다.

9. 인과응보(因果應報): 인과응보는 ‘과거에 행한 선악에 따라 현재의 행과 불행이 있고, 또한 현세에서 행한 선악의 결과에 따라 내세에서 행과 불행이 있다’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이 성어는 불교에서 유래한 것으로, 어떠한 행동을 했을 때 그에 따른 결과가 뒤따라온다는 것이다. 즉 무엇을 심든지 간에 심은 대로 거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한국어 성어와 대응하는 중국어 성어는 ‘因果报应’ [yīn guǒ bào yìng]이며, 그 의미는 한국어와 동일하다. 한국어 성어는 ‘인과응보(因果應報)’인데, 중국어 성어에서는 ‘인과보응(因果报应)’로 글자의 위치가 바뀌었다. 비록 형태는 다르지만 그 의미는 한국어 성어와 동일하다.

10. 사생유명(死生有命): 사생유명은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이 운명에 달려 있다’는 뜻으로,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이다. 이 성어는 《논어(論語)》제12장 안연(顔淵)편에 나오는 말이다. 사마우(司馬牛)가 근심하여 말하였다. “남들은 모두 형제가 있는데 나만 홀로 형제가 없구나!” 그러자 자하(子夏)가 공자의 말을 인용하여 대답했다. “내가 선생님께 들었는데(商聞之矣), 죽고 사는 것은 명(命)이 있고, 부귀는 하늘에 달렸다고 했습니다(死生有命, 富貴在天).”  ‘사생유명’은 이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자하는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으니 하늘의 일은 하늘에 맡기고,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근심만 하면 된다고 충고한 것이다. 이 한국어 성어와 대응하는 중국어 성어는 ‘生死有命’ [shēng sǐ yǒu mìng]이며, 그 의미는 한국어와 동일하다. 한국어 성어는 ‘사생유명(死生有命)’인데, 중국어 성어에서는 ‘생사유명(生死有命)’으로 글자의 위치가 바뀌었다. 비록 형태는 다르지만 그 의미는 한국어 성어와 동일하다.







사진출처 | 바이두
석은혜 | 본지 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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