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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3.3 통권 223호     필자 : 유관지 프린트   이메일 
[발행인통신]
중국선교사 손정도(孫貞道) 목사
손정도 목사님, 어떤 분인가? 
<중주> 가족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요즘 손정도(孫貞道: 1882. 7. 26. - 1931. 2. 19. 아호 海石) 목사님에 대한 관심이 날로 높아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019년에 KBS가 성탄절 특집으로 ‘걸레성자 손정도 목사’라는 다큐멘터리를 방영했고, 작년에는 한국교회사 연구가들에 의해 손정도 목사님 연구서가 두 권 나왔습니다. 목원대 김흥수 명예교수가 집필한 《손정도, 애국적 생애》가 손정도 목사님이 다녔던 숭실대학교에서 나왔고, 감신대학교 교수를 지낸 이덕주 교수의 《손정도: 자유와 평화의 꿈》이 신앙과 지성사에서 나왔습니다. 이덕주 교수의 책은 624쪽 분량의 대작입니다.

손정도 목사님에 대한 관심이 이렇게 높아지고 있는 것은 손 목사님이 뛰어난 애국자요, 민족운동가이고, 목회자이기 때문입니다. 손 목사님은 상하이(上海) 임시 정부 의정원 의장으로 임시 정부 수립의 기초를 놓은 분입니다. 손정도 목사님이라고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북한의 통치자 김일성 주석의 은인이라는 사실입니다. 손 목사님이 지린(吉林)에서 목회하고 있을 때 소년 김일성(당시 이름은 김성주)가 손 목사님을 찾아 왔습니다. 김일성의 아버지 김형직이 그 무렵에 세상을 떠나 김일성은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르고 손 목사님을 찾아왔는데 김일성은 그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손 목사님이 “우리 아버지와 친한 사이였고 연계가 깊었던” 사이였다고 적었습니다. 손 목사님은 김일성을 따뜻하게 보살펴 주었습니다. 김일성이 비밀독서회 사건으로 체포되었을 때 손 목사님은 백방으로 노력해서 그가 석방되도록 했습니다. 《세기와 더불어》 제2권은 ‘1. 손정도 목사’로 시작되는데, 여기에서 김일성은 손 목사와 자신의 관계를 자세하게 적고 “내가 손목사를 생명의 은인이라고 하는 것은 이런 리유에서이다.”(16쪽)라고 덧붙였습니다. 

산해관, 베이징, 하얼빈 그리고 고문과 진도 유배
이런 손정도 목사님에 대해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가 중국선교사였다는 사실입니다. 1909년 6월 23일부터 29일까지 평양에서 열린 기독교조선감리회 연회에 감리교회의 중국 연회 감독 베쉬포드(James W. Bashford) 박사가 참석해서 설교와 강연을 했는데 베쉬포드 박사는 중국선교가 당면한 두 가지 어려움을 호소하였습니다. 하나는 의화단사건으로 인한 어려움이요, 또 하나는 서양인이 동양인에게 선교하는 일의 한계에서 오는 어려움이었습니다. 

이 연회에서 감리교회는 중국 현지인선교를 목표로 선교사를 파송하기로 결의하고 손정도 목사님을 선교사로 선발했습니다. ‘선발’이라고 했지만 손 목사님이 중국선교를 자원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왜냐하면 손정도 목사님은 중국을 민족운동의 근거지로 눈여겨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손정도 목사님과 독립운동의 가까운 동지였던 도산 안창호 선생은 이미 국내에서 독립운동이 어렵다는 것을 파악하고 중국으로 가서 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손정도는 전도사로서 진남포교회를 담임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진남포교회는 삼숭(三崇)학교라는 부속학교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손정도 전도사는 이 학교의 교장직도 맡고 있었습니다. 

중국선교사로 선발된 손정도는 진남포로 돌아가서 교회와 학교 일을 정리했습니다. 교인들과 교직원들은 작별을 아쉬워하면서 송별회를 열었는데 1910년 6월 8일자 <대한매일신보>는 이 송별회에 대해 “삼화항에 있던 예수교 감리회 목사 손정도씨는 외방선교사로 피선되어 청국과 만주 방면으로 향하여 가는데 전별하기 위하여 그 교회 안에서 본월[6월] 1일 하오 5시에 만찬회를 하였고 그 이튿날 발정할 때에 교우 제씨와 남녀 학도들이 니와서 전송하였다더라”라고 보도하였습니다. 이 기사에 나오는 삼화(三和)는 진남포의 옛 이름입니다. 그리고 이 기사에는 손정도가 목사로 나오는데 그는 1914년 6월에 목사안수를 받았으므로 이는 오류입니다. 

손정도는 가족들이 있는 평양에 들렸다가 펑톈(奉天, 선양(沈阳)의 옛 이름)으로 갔습니다. 선교사들은 손정도가 만리장성 동쪽 끝인 산해관(山海關)에서 어학훈련을 받으며 선교활동을 시작하도록 했습니다. 손정도 선교사는 산해관과 그 주변의 교인들과 선교사들로부터 많은 신뢰를 받았습니다. 그의 순수한 열정 때문에 산해관 부근의 창리(昌黎)라는 곳에서는 부흥운동이 일어나기도 하였습니다. 손정도 선교사는 1911년에 베이징(北京)으로 선교지를 옮겨 계속해서 어학훈련을 받으며 미국 감리회 선교사들과 협력하여 선교활동을 했습니다. 이때 미국 감리회는 베이징 숭문문교회(崇文門敎會)를 중심으로 선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베이징은 정세가 매우 불안하고 치안이 혼란하여 선교활동을 활발하게 할 수 없었습니다. 감리교회에서는 이런 형편을 살피고 1912년에 손정도 선교사의 선교지를 하얼빈(哈尔滨)으로 변경했습니다. 손정도 선교사는 하얼빈에서 장로교가 파송한 최관홀(崔寬屹) 선교사와 손을 잡고 교회와 동흥(東興)학교를 세웠습니다. 이때 일본 당국은 ‘가츠라 총리 암살사건’이라는 것을 조작해서 하얼빈의 한국인들을 대대적으로 체포했습니다. 손정도 선교사도 체포돼 서울로 압송되어 심한 고문을 받았는데 이 고문 후휴증은 평생토록 그를 괴롭혔습니다. 손정도 목사님은 결국 진도로 유배되어 1년간 고초를 겪었습니다. 

유배에서 풀려난 손정도 목사님은 동대문교회 담임목사로 파송을 받아 교회를 크게 부흥시켰습니다. 손정도 목사님은 1915년 연회에서 다시 중국선교사로 파송을 받기 위해 힘썼으나 감리교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손 목사님을 감리교회의 모교회인 정동교회 담임목사로 파송했습니다. 손 목사님은 정동교회도 크게 부흥시키고 1918년 건강을 이유로 휴직하였습니다. 그리고 평양을 거쳐 상주(喪主)로 위장하고 중국으로 망명의 길을 떠났습니다. 그 뒤 눈부신 민족운동을 하고 후에는 지린으로 가서 동포들을 다방면으로 도왔습니다. 손정도 목사님은 그 뒤에도 과로 등 여러 이유로 건강이 크게 악화되어 1931년 2월 19일 늦은밤, 지린 동양병원의, 보살피는 사람 없는 병실에서 쓸쓸하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광대한 전답”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손정도 목사님에 대해 듣게 될 것입니다. 올해 초에는 평양과학기술대학 설립 부총장을 역임한 정진호 교수가 이동휘·구례선(로버트 그리어슨) 선교사·손정도, 세 분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 《여명과 혁명, 그리고 운명》 상권을 출간했는데 손정도 목사님에 대해서는 앞으로 나올 하권에서 집중 다뤄질 것으로 보입니다. 또 손 목사님의 생애를 다룬 영화 《호조(互助)》 제작이 추진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리고 있습니다. 이 영화의 감독은 다큐멘터리 걸레성자 손정도 목사를 제작한 권혁만 PD가 맡았다고 합니다. 《호조》는 손정도 목사님이 중국 지린성 어무현(額穆縣)에 세운 이상촌 마을의 이름인데 ‘서로 돕는다’는 뜻을 가진 말이지요. 앞으로 손정도 목사라는 이름을 들을 때는 ‘아, 그분은 중국선교사였다. 우리들의 대선배였다’라는 사실을 새겨 주시기 바랍니다. 

이번 호 ‘발행인 통신’에 손정도 목사님의 이야기를 자세하게 적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손정도 목사님은 베이징에서 일할 때 이런 찬송시를 발표했습니다.

<1절> 
삼천리 강산 주의 동반도는 구원 얻은 동포들이 많아졌으니
그리스도 왕의 명령을 좇아서 어서 추수하러 나아갑세다

<후렴> 
나아갑세다 나아갑세다 어서 추수하러 나아갑세다
나아갑세다 나아갑세다 어서 추수하러 나아갑세다

<2절> 
이 세상에 제일 광대한 전답에 곡식 익어 황금 빛과 같으니
농부들은 속히 농기를 메이고 어서 추수하러 나아갑세다

<3절>
형제들아 다모여 들어서 십자가를 달고 달음질 마당에
반도 안에 있는 주의 일군들은 어서 추수하러 나아갑세다.

이 찬송시는 1911년 11월 15일자 <그리스도 회보>에 실려 있는데 2절에 나오는 “이 세상에 제일 광대한 전답”은 두 말할 것 없이 중국입니다. 그리고 이 점은 이 찬송시가 탄생한 때로부터 110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의 대선배 손정도 목사님의 호소를 마음에 담고 그 광대한 전답을 바라보며 기도하고, 나아가는 <중주> 가족들이 되시기를 이 귀한 일을 우리에게 맡기신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사진 | 바이두(아래)/사진 설명 | 손정도 목사(위), 베이징 숭문문교회(아래)
유관지 | 중국어문선교회 고문 겸 웹진 <중국을주께로> 발행인, 용산감리교회 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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