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페이지설정   사이트맵    사역에 동참하시려면  
    HOME  |  선교회소개  |  교육.훈련  |  중국을주께로  |  중국기도  |  중국어교실  |  자료나눔  |  커뮤니티  |  도서·음반
   
중국을 주께로는
전체보기
이번호보기
지난호보기
주제별보기
  특집/기획
  선교전략
  중국교회
  중국사회와 문화
  지역 및 종족연구
  중국뉴스
  중국어관련
  선교일반
  선교나침반
  중국 기독교
  기획
정기구독안내
해외정기구독안내
HOME > 중국을주께로 > 이번호보기
2020.12.3 통권 220호     필자 : 사무엘 프린트   이메일 
[선교일언]
이제는 정말 미전도종족선교를 해야 할 중요하고 시급한 때입니다
창세기 12:3, 땅의 ‘모든 민족’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는 약속은, 너희는 ‘모든 민족’에게 가라고 하신 예수님의 명령과 함께 성취되어져 왔고, 그 명령의 완성을 미리 기록한 계시록 7:9은, 우리의 선교 대상이 모든 나라(nation, 민족)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임을 다시 한 번 명확하게 열거하고 있습니다.

19세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써 확립된 근대 ‘국가(country)’의 개념이 결코 4,000년간 성경이 일관되게 말해온 ‘민족(nation)’의 개념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중국의 영토(티베트, 위구르, 몽고 포함)와 국경은 중국이 공산화한 1949년 이후에 확정된 것이며, 14개 국가들과 맞대고 있는 중국의 국경을 따라 지금도 수많은 동일한 민족들이 그 안과 밖에 넓게 분포하여 자유롭게 왕래하며 살고 있습니다.

실례로 ‘티베트’ 민족은 중국 국경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오랜 세월 전부터 ‘네팔’과 ‘인도 북부’ 그리고 ‘라다크’지역에 넓게 분포되어 살아왔고 티베트가 공산화한 이후 중국에서 넘어온 많은 난민들이 인도 남쪽으로까지 내려와 여러 망명촌을 이루며 살고 있습니다.
 
중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분류한 55개 소수민족은 중국 내 실제 소수민족 숫자의 10분의 1도 되지 않으며, 1억에 가까운 기독교 인구를 가진 한족(漢族)에 비하면 중국 내 대다수 민족들이 지금도 여전히 복음을 들어보지 못하고 주님이 지금도 찾고 계신 잃어버린 한 양으로 남아 있습니다.

한때 ‘중공’이라 불렸던 국가가 지금은 ‘중국’이라 자연스럽게 불리고, 태양이 지구를 한 바퀴 돌아 동쪽에서 다시 뜬다는 오랜 착각 속에 우리가 자연스럽게 살아가듯이, 한족이 곧 중국이고, 한족선교가 곧 중국선교라는 자연스러운 선교 구호는, 영적으로 죽어가는 중국 내의 수많은 ‘미전도종족’을 향한 주님의 엄중한 선교적 지상명령을 자연스럽게 망각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선교중국’ 혹은 ‘중국선교’는 한국처럼 단일 민족이라면 적용 가능한 용어 이지만, 실상 200여 개 이상의 다민족으로 이뤄진 근대 국가 개념인 중국을, 선교의 대상을 민족과 족속과 백성과 방언으로 일관되게 규정한 성경의 빛에 비추어 볼 때, 그 용어들은 국적(nationality)과 관련되어 사용할 수는 있어도, 성경(The Bible)이 4,000년간 일관되게 주장하는 선교 대상의 범주에서는 너무나 크게 벗어난 용어입니다. 

어쩌면 마태복음 24:14절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증거 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는 주님의 약속을 지연시키려는 사단의 교묘한 전략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해서 ‘선교 한족’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는 있지만, 현재 1억이나 되는 기독교 인구를 가진 그래서 삼자(三自)가 가능한 한족은 더 이상 선교 대상이 아니기에 ‘중국선교’라는 용어뿐만 아니라 ‘한족선교’라는 용어 또한 앞으로 한국교회가 지향해야 할 과업에는 적합한 용어가 아닙니다. 

땅의 ‘모든 민족’을 품으시는 ‘하나님의 선교’를 교란시키고 방해하는 중국선교 혹은 한족선교라는 용어는 하나님이 결코 기뻐하는 용어가 아니며, 동일한 민족 내에서 ‘전도’라는 의미로 사용될 수는 있어도, 이제 미전도종족(무슬림 난민 사역포함)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 ‘한국교회’가 선교의 대상을 규정하기 위한 용어로서 무분별하게 사용해서는 안 되는 단어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눈을 떠서 무르익어 추수를 기다리는 밭을 보라”(NIV, John 4:35)고 말하셨습니다. 이제는 한국교회가 눈을 더 크게 떠서 한족이라는 거대한 나무에 가려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전 세계의 수많은 민족들을 보아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래야 주님의 말씀대로 이 비참하고 억울하며 슬픈 인류의 역사가 끝나게 됩니다.
 
1990년 미국에서 한 신학생이 목사안수를 받고 선교사로 나가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 신학생에게 앞으로 갈 선교지와 사역이 무엇이냐고 물었는데, 한국에 가서 전도하여 삼자가 가능한 교회를 한국에 많이 개척하는 것이라고 대답한다면, 여러분은 그 미국인 신학생에게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한국교회의 지도자로서 어떤 답을 하시겠습니까? 

왜 한국인 스스로 할 수 있는 ‘전도(傳道)’를 당신이 와서 대신하려고 하느냐? 왜 과거에 선교사 의존적이었던 그래서 삼자가 불가능했던 100년 전의 교회와 목사로 다시 만들려고 하느냐? 차라리 아직 선교사가 없는 민족, 정말 복음이 필요한 곳에서 ‘선교(宣敎)’하라고 권면하지 않겠습니까? 

2020년 한국에서 이와 동일한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미 1억이나 되는 성도가 있고, 자신들의 글로 신구약 성경을 가지고 있고, 자치(自治)·자양(自養)·자전(自傳)의 삼자가 가능하며, 지금도 해외 유수한 신학교(미국과 유럽의 신학교안에 중국인유학생들의 비율이 가장 높다)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고 돌아오는 수많은 목사들이 있는 한족을 대상으로 많은 한국선교사들이 여전히 중국에서 ‘선교’가 아닌 ‘전도’를 하고 있습니다. 

신학교와 같이 어느 특정한 분야에서는 아직도 한국선교사가 중국교회에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첨단 기술과 교통의 발달로 온라인 강의와 해외 유학이 보편화가 된 지금은, 한족교회가 원하면 장소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강의를 들을 수 있고, 또 일꾼들을 미국과 유럽으로 유학을 보내 배우고 돌아오게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한국선교사들의 신학교 사역을 통해 한족교회가 성장과 성숙을 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반면 그 부작용도 적지 않습니다. 

초창기 한국에 오셨던 서양선교사님들의 신학교 운영의 역사를 통해 우리는 큰 교훈을 배워야 합니다. 그들은 각 교파에 따라 선교지를 분할하여 사역하였고, 각각 교단을 대표하는 신학교를 세워 한국교회의 미래 지도자들을 통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양성하였고, 때가 되어 모든 지도력과 운영권을 한국교회에 넘겨주고 떠났습니다. 그런데 한국선교사님들은 지역 분배도 없이 우후죽순처럼 각자 신학교를 운영하고 있고, 심지어 한국교회의 최대 교파의 G선교부가 운영했던 신학교 안에서 조차도 선교사들의 협력이 이뤄지지 않았고, 각자 자신들이 운영하는 신학교 때문에 G신학교로 학생들을 보내려 하지 않았고, 이를 이용해 여러 군소 신학교를 떠도는 신학생들이 있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더 큰 문제는 군소 신학교를 운영하다 보니, 학생들의 질도 떨어지고, 1∼2주 한국교회 담임목사님들을 초청하여 강의하게 하는 사례가 많아 체계적이고 깊이 있는 신학교육이 되기 힘든 상황이 되어 한족교회의 분열과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이미 20년 전에 필리핀교회협의회에서는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으로 인해, “한국인선교사들 제발 한국으로 돌아가 달라”는 성명을 발표했는데, 아직도 1,000여 명이 넘는 한국인선교사님들이 필리핀교회가 아직도 연약해서 떠날 수 없다고 남아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강제로 나오게 하지 않으셨다면, 중국교회협의회가 “한국선교사 이제는 제발 한국으로 돌아가라”고 성명을 발표했을지 누가 알겠습니까?
 
이제 군소 신학교도 통합과 연합으로 정리를 해야 하는 시점이 되었고 이를 다시 한족 지도자들에게 순차적으로 이양하고 나올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누군가가 그래도 아직은 한족교회가 연약한 상태라고 한다면, 이는 한족교회의 잘못이 아니라 한국선교사들의 잘못이 아니겠습니까? 중국이 공산화한 후 개혁개방이 되기까지 30년의 기간 동안 중국교회는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온갖 핍박과 고난을 이겨낸 가정교회 중심의 작은 중국교회에 현대식 대형교회와 같이 외형적 성장만을 꿈을 꾸게 한 스승들이 잘못된 교회론을 가르친 이유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한국선교사들은 여전히 한족교회의 성장과 성숙이 못 미더운지 이미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의 고난과 핍박을 이겨내고 어떤 외부의 도움도 없이 스스로 전도하여 100배로 성장한 지금의 한족교회를 마치 아이 다루듯 바라보며 선교사(宣敎師)가 아닌 전도사(傳道師)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한족교회의 성장과 성숙을 위해 큰 역할을 감당하였던 한국선교사들이 이제는 아름답게 한족선교를 마무리하고 나올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애써 외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선교사들이 믿음으로 한족교회를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 바울처럼 땅 끝으로 떠난다면, 그들 안에서 알곡과 쭉정이가 나눠지고, 거품이 꺼지고, 그들의 영적 순수성과 야성을 회복하여, 제2의 한족교회 부흥을 경험하게 될 것을 확신합니다.

나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는 중요하지 않은 일에 성공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I'm not afraid of failure; I'm afraid of succeeding at things that don't matter.) - 윌리엄 캐리(William Carey) -

이제 한족선교의 시대는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반면 중국 안에는 한족이라는 거대한 나무에 가려서 지금도 복음의 사각지대에 있는 200여 개 이상의 미전도민족들이 있고, 이를 다시 방언으로 분류하면 서로 언어가 통하지 않는 1,000여 개 이상의 미전도방언 그룹이 있습니다. 

‘여호수아 프로젝트(Joshua project)’ 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미전도종족선교의 시급성과 중요성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2020년 12월 현재 세계 인구는 7,825,500,000명이다. 세계 언어는 7,117개가 있고, 이 중에서 3,982개는 문자가 있다(Ethnologue 23rd edition). 종족은 구분 기준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17,413개 종족으로 구분했다. 구분된 종족의 42.5%인 7,413개 종족, 인구수로는 41.6%인 3,226,866,000명이 미전도종족이다. Joshua Project는 이들을 복음화하기 위해서는 68,294명의 선교사가 더 필요하다.” 

그러나 만일 세계 선교사의 95%가 편중되고 지나치게 집중되어 있는 지역과 복음화한 민족들로부터 아직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지역과 미전도종족으로 선교사들의 재배치만 잘 이뤄진다면, 위의 보고서에 언급된 선교사의 부족 현상은 대부분 해결될 수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과연 그동안 한족선교에만 집중하고 있던 한국선교사들을 비자발적 출국이라는 강제 수단을 동원하여 중국에서 나오게 하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선교’의 그림은 무엇일까요?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중국선교의 위기(위험한 기회)의 때는 하나님이 한국선교사들에게 중국선교를 뛰어넘어 한 번 더 도약하기를 바라시는 전 세계적인 ‘하나님의 선교’의 때가 아닐까요? 

물론 지금도 중국 안에서는 남은 동료 전우들이 고군분투하며 영적 전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마저도 시간의 문제일 뿐 한족복음화의 남은 사역(전도)은 한족교회에 맡기고, 이제 속히 여전히 미완성 과업으로 남아 있는 온 세계의 미전도종족으로 사역의 대상을 전환하든지, 아니면 한족교회와 함께 중국 내 미전도종족을 대상으로 얼마 남지 않은 한국교회의 선교적인 역량을 집중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한때 5,000여 명이 넘었던 중국 내 한국선교사 99% 이상은 한족선교만을 하였고, 1% 미만의 선교사들이 소수민족선교를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 비율은 줄면 줄었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중국이라는 정치적 틀과 한족선교가 곧 중국선교라는 고정 관념에 묶여서, 99%의 한국선교사가 오직 한족선교에만 집중하던 한국교회의 선교전략은 ‘중국 내(內)의 한족(漢族)과 함께하는 미전도종족선교’와 ‘중국 외(外) 화교(華僑)와 함께하는 미전도종족선교’라는 ‘큰 두 축’으로 재편되어야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적 소명을 분별하지 못하고 아직도 중국(한족)선교의 재건을 꿈꾸는 전략과 정책을 가진 선교라면 이는 하나님의 선교가 아닌, 선교사가 꿈꾸는 선교 혹은 교회가 꿈꾸는 선교를 고집하여 중복과 편중된 선교만하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디아스포라 중국인사역”의 중요성과 이해가 필요한 시점이 되었습니다. ‘디아스포라’의 기원은 BC 586년부터 시작된 유대인 포로들의 바벨론 유수(幽囚)에서 처음 찾을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에서는 ‘팔레스타인’지역 밖, ‘로마제국’지역 내에서 회당을 중심으로 형성된 유대인 공동체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었으며 종교적, 종말론적 의미를 강하게 함축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자주 화교(華僑, [화런, 華人]), 중국인 이민자, 노동자, 유학생 등을 통칭하여 ‘디아스포라 중국인’이라고 말하는데, 사실 이는 성경이 말하는 이스라엘 디아스포라의 역사적 정의에는 일치하지 않는 용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굳이 디아스포라를 현대의 상황에 적용하여 재정의한다면,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위기로 인해 혹은 물리적 전쟁으로 인해 비자발적으로 고국을 탈출한 난민(예: 팔레스타인. 시리아, 티베트 등등)들에게는 적용할 수 있지만, 중국에서 자발적으로 나온 신이민자, 일정 기간이 끝나면 귀국하는 중국인 노동자와 유학생들에게는 적합하지 않은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화교(화런)들에게 ‘디아스포라’ 용어를 붙이는 것이 어느 정도 역사적 타당성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유대인들과는 달리, 화교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정체성과 문화를 ‘중국’이라는 지리적 장소 혹은 유대인처럼 전통 종교에서 찾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 또한 적용 가능한 대상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다양한 이유와 목적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중국에서 나와 세계 전역에 흩어져 있는 중국인에게는 중국인이민자사역, 중국인노동자사역, 중국인유학생사역이라 이름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이미 그 나라의 국적을 가지고 자신들의 정체성을 그 나라에서 찾고 있고 문화적으로 현지인들과 거의 동화되어 살아가는 화교(화런)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역은 말 그대로 ‘화교(화런)사역’이라고 이름하는 것이 옳지, 억지로 화교와 중국을 연결시켜서 ‘중국인 디아스포라’사역이라고 소개하는 것 또한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름에는 총체적이며, 통합적이고 유기적인 의미와 그에 따른 전략과 정책 그리고 사역의 방향성과 목표가 정의되고 뒤따르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잘못된 용어의 사용은 선교에 적지 않은 혼란과 오류를 야기할 수도 있는 데, 한국교회로 하여금 정말로 시급하고 긴급한 필요와 위기에 직면해 있는 난민(디아스포라)선교의 필요성은 물론이거니와 난공불락과 같은 이슬람권의 문을 열 수 있는 교두보와 같은 이슬람 난민(디아스포라)선교의 중요성을 간과하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선교사가 개인적인 사역의 필요성과 타당성을 정당화하고 후원교회 혹은 후원 기관에게 기존의 사역과의 연관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면, 굳이 디아스포라 중국인 사역이라 말하지 않고도 위에서 언급한 용어들을 사용하여 충분히 설명할 수 있으며, 중국과 거의 연관성이 없는 화교(화런)사역은 매우 새로운 차원의 사역의 대상이기에 이름 그대로 화교(화런)사역이라 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필자는 과거 본웹진에 아직 중국교회는 해외로 선교사를 파송할 상황과 여건이 아니라고 글을 기고한 적이 있습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중국 안에는 1,000여 개의 미전도종족이 있고,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가 14개 국가이고, 그 국경에는 검문소도 없어서 국경에 걸쳐있는 수많은 동일한 소수민족들이 비교적 쉽게 국경을 넘어 서로 왕래하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선교사들이 성급하게 한족교회로 하여금 해외선교로 눈을 돌리게 할 때가 아니라, 중국 내 미전도종족과 중국과 인접한 무슬림권, 불교권, 공산권 선교에 눈을 뜨게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 역할만 잘해도 한족교회는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일을 미처 시작도 하기 전에 많은 선교사들이 추방되었고, 한족교회와 함께 중국 내 소수민족 사역을 할 수 있는 시간마저도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사역의 대상을 한족 전도가 아니라 소수민족선교로 서둘러 전환하여야 할 때입니다. 

특별히 화교는 전 세계 어디나 흩어져 있기에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한족을 대상으로 사역하시던 선교사님들이 사역의 대상을 굳이 바꾸실 필요가 없고, 다만 화교교회를 일깨워 주변의 미전도종족(무슬림권, 소승불교권)선교에 집중하시면 됩니다. 설령 바꾼다 해도 그것이 새로운 일은 아닙니다. 선교역사에는 선교 대상을 바꾼 수많은 사례들이 있고, WEC(Worldwide Evangelization for Christ)국제선교회 창립자 스터드(C. T. Studd)는 세 번이나 선교 대상을 바꾸었고, 그중에 한 번은 60살이 다 되어서 바꾸었습니다. 우리는 모든 민족에게 가라는 주님의 ‘소명’을 이미 다 받았는데, 다만 ‘순종’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한족과 함께 동거동락(同居同樂)하며 함께 ‘울고 웃던’ 옛 향수는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하고, 예수님이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라고 명령하시는 남은 과업(미전도종족)의 완성을 위해 신발 끈을 다시 매고 출발할 때가 되었습니다. 

▶ 왜 미전도종족선교입니까?
1. 아브라함으로부터 예수님을 거쳐 미래 종말을 기록한 요한계시록 7장은 우리의 선교 대상이 국가가 아닌 민족과 족속과 백성과 방언이라고 규정하기 때문입니다(창 12:3).
2. 세상 종말의 징조와 주님의 재림을 묻는 제자들에게 처처에 지진과 전쟁과 난리의 소문을 듣겠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고 “이 천국 복음이 세상 모든 민족에게 증거 되어야 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마 24:14).
3. 부활 후 첫날 제자들에게 나타나사 말씀하시기를 당신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그 이름으로 말미암은 죄 용서가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리라”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눅 24:46).
4. 승천하시기 직전 “너희는 모든 민족에게 가라!”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마 28:19).

▶ 선교의 주인이 우리에게 명령하시는 이 시대의 마지막 선교 과업을 어떻게 완수할 수 있겠습니까? 
1. 이는 이미 전 세계 선교현장에 존재하는 한국선교단체뿐만 아니라 외국선교단체와의 협력과 연합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는 과업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선교사들과 선교단체들은 자신의 작은 밥그릇에 집착하지 말고, 모든 선교단체를 담고 아우를 수 있는 양푼과 같이 넉넉하고 유연한 자세를 취해야 합니다. 자신들의 영역과 지부를 확장하는 구시대적 선교정책과 전략이 아니라, 내 틀과 조직을 버리고 선교현장에 현존하는 모든 선교단체와의 협력과 연합을 이룰 수 있는 네트워크 중심의 사역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살아있는 나무는 가을이 오면 스스로 잎사귀를 떨어트리고, 겨울을 지나 봄이 오면 새 잎을 틔워 내어 나이테 한 겹만큼 더 성장하듯이, 이제 오직 한족선교라는 이름을 떨어내고 새로운 이름, 새로운 선교 패러다임 그리고 새로운 선교전략을 틔워 내어, 우리 세대에 주어진 마지막 남은 과업인 미전도종족과 백성과 방언을 찾아 예루살렘교회처럼 그러나 자발적으로 흩어지는 선교사들이 되어야 합니다. 

2. 한국교회의 역량과 한계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반영된 사역을 하여야 합니다. 현재 어는 선교단체나 신입선교사 허입과 훈련생 모집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한국선교사 평균 연령이 55세입니다. 한국교회는 급속히 쇠퇴하고 있고 마치 유럽 기독교처럼 되어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서양 기독교 사회는 사후(死后)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기부 문화가 발달해 있어서 교인 수는 적어도 여전히 많은 선교 기관과 신학교들이 건강하게 유지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 기독교 사회는 자녀들에게 유산을 물려줄 뿐 교회에 헌납하는 기부 문화가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파송교회의 쇠퇴는 곧 선교단체와 신학교의 쇠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므로 문어발식 선교가 아니라, 과감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합니다. 특별히 전 세계에 넓게 분포되어 있는 화교권사역을 위해서는, 우리의 부족한 인력과 재력을 감안하여 효과적이고 신속한 사역이 이루어지도록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며, 마치 신속한 기동을 위해 몽골의 기마부대가 항상 유지했던 군대 조직의 단순성과 무겁게 무장한 ‘골리앗’을 상대하기 위해 모든 거추장스러운 무장을 벗어버린 ‘다윗’의 실용성처럼, 명목상의 기관과 분과를 제거한 단순하고 실용적인 선교 조직을 유지해야 합니다. 

3. ‘출구전략’을 세워야 합니다. 지금 ‘대만’은 기독교 인구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화교권 기독교는 중국어보다 영어와 현지어에 능통하고 재정적 뒷받침이 든든하며 이미 영어와 만다린어로 운영되는 신학교들이 있기 때문에, 급속히 고령화가 되어가는 ‘한국’선교사들을 언제까지 필요로 할지 알 수 없습니다. 

사실 미전도종족사역을 위한 전략적 재배치가 목적이 아니라면 대만도 선교지라고 할 수 없고, 인구의 절대 다수이지만 여전히 복음의 사각지대인 ‘무슬림’과 ‘소승불교’사역을 포함하지 않는다면 동남아시아의 화교권 역시 선교지가 될 수 없으며, 이는 또한 인도(India)와 같은 비중화권 선교지도 역시 같은 상황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선교사 재배치와 출구전략은 우리가 하는 선교의 목적과 대상이 하나님의 선교와 일치할 때만 효과적으로 진행될 수 있습니다. 60년대 전후하여 대부분의 서양선교사가 한국을 떠나갔듯이, 한국선교사들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것을 직시해야 합니다.

WEC국제선교회를 창립한 스터드는 10년간 허드슨 테일러와 함께 중국에서 사역을 하였고 이후 선교지를 옮겨 6년간 인도에서 사역을 하였습니다. 쇄약해진 몸을 치료하기 위해 영국에 잠시 머물던 그에게 “아프리카 식인종에게도 복음이 필요하다”는 문구는 큰 도전을 주었고 담석증이라는 지병이 있었음에도 18년간 ‘콩고’의 미전도종족들을 위해 사역하다가 1931년 71세의 나이에 담석증으로 콩고에서 사망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시며 나를 위해 죽으셨다면, 그분을 위한 나의 어떤 희생도 결코 과하다고 할 수 없다” 

그가 남긴 유언과 같은 말은 우리 모두의 신념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제 한국교회는 제한된 우리의 재정과 인력 그리고 시간을 교회가 원하는 선교, 선교사가 원하는 선교에 허비하지 말고, 전 세계 흩어져 있는 화교교회를 일깨우는 밑거름이 되어, 우리의 대장되신 주님의 지상대명령을 따라 다시 중국으로 혹은 한족으로가 아니라 아직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지역과 미전도종족을 향해 앞으로 전진해야 할 때입니다. 

남미와 아프리카 그리고 아직도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아시아의 수많은 지역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진 | 픽사베이
사무엘 | 선교사
       인쇄하기   이메일보내기   
   
110-812 서울시 종로구 창경궁로29길 25, (명륜3가 명륜빌딩 202호)   Tel : 02)745-0780~2, 070-8236-1270   Fax : 02)745-0786    E-mail : sinim@chol.com
Copyright 중국어문선교회 All Rights Reserved.     Product by gmgl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