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교비해설1-곽자의최종.JPG) 중국, 중앙아시아, 몽골까지 퍼지다 637년, 아랍인이 페르시아를 정복한 뒤 아랍의 통치자는 동방의 교회를 밀레트(Milet), 즉 독립된 종교단체로 인정하고 법적으로 보호하였다. 네스토리우스파 학자들은 아랍 문화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맡았고, 총대주교는 때로는 통치자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약 3세기 동안 페르시아교회는 칼리프(caliph)의 보호를 받으며 번영을 누렸지만 차츰 세속에 물들어 문화적인 면에서도 지도력을 잃게 되었다. 10세기 말에는 칼리프가 지배하는 지역에 15개의 수도대주교 관구(管區)가 있었고, 인도와 중국을 비롯한 해외에도 5개의 대주교 관구가 있었다.
네스토리우스파는 이집트까지 퍼졌다. 그곳의 그리스도교 교파는 단성론자(單性論者)들로서 그리스도의 한 가지 본성만을 인정했다. 페르시아교회가 세계적으로 힘있게 뻗어 나가는 상황에서 이들이 페르시아를 비롯한 주변국을 그리스도화한 뒤에 좁은 땅에서만 아옹다옹하지 않고, 넓은 아시아 대륙(Continental of Asia)을 향하여 눈을 돌린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이러한 흐름에서 알로펜(阿羅本, Alopen) 선교사가 당(唐) 시대에 중국에 들어서게 되었다. 다시 말해 경교가 아시아 대륙의 한복판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이다. 그 후 7-8세기 중국의 네스토리우스파 그리스도교회는 번영을 누렸다.
중앙아시아에서는 타타르(Tatar) 부족이 거의 완전히 개종하여 그리스도교는 시베리아 동부의 바이칼호(湖) 근처까지 퍼졌다. 몽골 영토를 여행한 서양인들은 네스토리우스 교도들이 상당히 많고 심지어 황제의 궁전에도 있는 것을 발견했다. 여행자들은 이곳에 있는 네스토리우스교회의 성직자들에 대하여 무식하고 미신적이라고 비판하였다.
쇠잔해지다 그러나 그 이후 네스토리안교회는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다. 14세기에 이슬람 교도인 터키의 지도자 티무르(Timur)의 기습으로 동방의 교회가 사실상 전멸하자 네스토리우스 교단은 메소포타미아지역, 특히 티그리스강과 반호(Van湖), 우르미아호(Urmia湖) 사이의 쿠르디스탄(Kurdistān)지역 몇몇 마을에 남아서 겨우 명맥을 유지했고 일부는 터키와 페르시아로 들어가기도 했다. 일부 네스토리우스 교도들은 1551년 로마 가톨릭교회와 재결합하여 칼데아(Chaldea) 교도라고 하게 되었고, 원래의 네스토리우스 교도는 아시리아 교도라고 했다.
도마의 그리스도 교도로 알려진 일부 인도의 네스토리우스 교파는 1599년에 로마 가톨릭과 합쳤다가 다시 분열했으며, 이들의 절반은 단성론자인 시리아 야코부스파(Jacobites) 안티오크(Antioch) 총대주교에게 충성을 바쳤다. 1898년, 이란의 우르미아에서는 한 주교가 이끄는 일단의 네스토리우스 교도가 러시아 정교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졌다.
경교비문 번역에 들어가기에 앞서 이제 경교비의 비문 해석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그 전에 알아야 할 일이 있다. 당의 현종(玄宗) 시절인 755년에 일어난 안록산(安祿山)의 반란을 평정하고, 그 후 763년에는 티베트(吐蕃)의 침략을 막아낸 명장 곽자의(郭子儀)는 숙종·대종·덕종(肅宗·代宗·德宗)의 삼대를 섬긴 인물로 국민의 존경을 받은 인물인데 그는 그리스도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를 크게 도운 광록대부(光祿大夫)·삭방절도부사(朔方節度副使)·시전중감(試殿中監) 이사(伊斯)도 경교승(景敎僧)으로 서역에서 돌아온 경정(景淨)의 노력으로 경교 경전을 중국어로 번역했는데, 그 책이 〈지현안락경(志玄安樂經)〉, 〈대진경교선원본경(大秦景敎宣元本經)〉, 〈경교삼위몽도찬존경(景敎三位蒙度讚尊經)〉 등이다.
이사의 지원으로 781년(덕종 건중 2년) 중국 장안 의령방(長安 義寧坊) 대진사(大秦寺) 뜰 안에 <대진경교유행중국비>를 건립했는데, 제1부는 상제신(上帝神) 존재와 인간의 죄악,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및 그의 일생과 선교, 제2부는 기원 635년부터 781년까지의 경교의 중국선교 약사, 제3부는 경교는 광명(光明)이 충만한 종교라는 점과 당나라 황제들에 대한 칭송으로 구성되어 있다. 경교비문에는 경교사(景敎史), 역대 황제들의 경교에 대한 정책, 당시 신앙인들의 신앙생활 모습과 예배 관습, 7일 중 첫날을 예배일로 정한 것, 예배 시에 목탁(木鐸)을 쳤다는 내용 등이 담겨 있다.
경교비문의 내용을 대략 살펴보다 첫 부분은 주로 경교의 교리와 교회 의식의 개요를 기록한 것이다. 즉, 여호와(阿羅訶)께서 천지만물을 만드신 것에서 시작되어 사탄의 유혹으로 인간이 타락하여 오랫동안 길을 잃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메시야(彌施訶)로 오셔서 성인이 예언한 대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復活)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음부(陰府)를 파(破)하고 죽음을 멸하여 생을 여신(開生滅死縣景日以破暗府) 후 승천 하셨지만, 남기신 언행을 제자들이 기록한 27부의 책이 세상을 교화하는 경전(經典)이 되었다.
계속하여 쓰여진 내용은 세례와 성령의 능력으로 죄를 씻게 된다는 설명과 구원 얻은 사람은 누구나 십자가를 지고(印持十字) 중생(衆生)을 구원해야 할 사명이 있으며, 경도(景徒)들은 아침 7시에 드리는 예배(七時禮拜)에서 성경을 읽어야 하고 영생을 기원하고, 재물을 나눠 가난한 자에게 주고 봉사를 일삼고, 포획한 재물이나 모든 재물이라도 축적하지 말아야 하고 투명한 그릇들처럼 보이는 삶의 투명성을 가진 교도가 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 다음 부분의 기록은 대진국(大秦國, 로마를 말함)의 대덕(大德, Episcopal)이 당 태종(太宗) 때에 장안에 도착한 이래로 덕종 때에 이르기까지 중국 경교의 흥망성쇠와 변천의 과정, 상황을 기록하고 있다.
경교비문에는 이미 사어가 되어버린 언어들이 많고 문법적으로도 난해한 부분들이 많아 원문을 제대로 옮길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음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다음 호에서는 경교비문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부활’이라는 말이 없는 점에 대해 살피고, 비문 해석에 들어가려고 한다.
려용덕 | 도봉중앙장로교회 담임목사, <한국교회신문> 발행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