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교비해설-당현종최종.JPG) '경(景)’은 ‘크다’는 뜻 네스토리우스주의자들은 그 수가 많지는 않지만 오늘날까지 이라크, 러시아, 중국, 인도, 이란, 시리아, 남북아메리카 등지에 존재하고 있다. 네스토리우스파 교회는 이와 같이 로마제국 영역 내에서 발달한 그리스도교회가 아닌, 로마제국의 영역 밖에서 발달한 교회가 되었다.
중국 당(唐)에서 이룬 네스토리우스파 교회를 당 조정에서는 처음에는 ‘파사교(波斯敎)’라고 하였고, 그 교회당은 ‘파사사(波斯寺)’라고 불렀다. 당조(唐朝)의 6대 왕 현종(玄宗, 685-762)이 파사사를 ‘대진사(大秦寺)’라고 개칭하였기 때문에 파사교, 또는 ‘파사경교’로 되었다가 후에 ‘대진경교(大秦景敎)’라고 부르게 되었다. 중국인들이 말하는 ‘대진(大秦)’은 로마를 말한다.
대진경교유행중국비에서는 네스토리우스파 교회를 대진경교라고 하였고, 그 본존(本尊)인 메시야(彌師訶)를 경존(景尊)이라고 하였으며, 경교의 신자를 경중(景衆) 혹은 경사(景士)라고 했다. 그리고 경교의 사원을 경사(景寺)라고 하였으며, 감화가 큰 영향력을 말할 때는 경풍(景風), 경력(景力), 경복(景福)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경교에서는 왜 ‘경(景)’자를 사용하였을까? 경(景)자는 날일(日) 자와 서울경(京) 자의 합성자이다. 경(京)자는 ‘크다(大)’는 의미이므로 중국에 온 인도 승(僧) 선무외(善無畏, 637∼735, 원명은 슈바카라심하, Subhakarasimha)가 주창한 불교의 일파인 대일교(大日敎)와 흡사한 명칭을 사용했다는 설이 있다.
왜 중국으로 향했을까? 네스토리우스파 교회가 왜 중국 대륙을 향하여 선교를 펼쳤는지를 궁금하게 여길지 모르겠으나 로마제국의 영내에서는 도저히 복음을 전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 넓은 대륙 아시아로 눈을 돌리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여기에 더해 콘스탄티노플에서 바그다드를 경유하여 대륙의 광주, 남경, 장안, 섬서성(陕西省)으로 이어진 당대(唐代)의 실크로드로 여행하는 이들의 정보에 의한 개척이었다고 이해할 수도 있다.
또 로마 교황청 산하의 각 지역 주교들은 자기 영역의 성벽을 높이려고 세력 키우기에 눈이 어두워져서, 자기보다 능력 있는 존재를 용인하지 못하고 교리전쟁(敎理戰爭)을 일삼았는데, 이미 비본질적인 교리전쟁을 겪어본 네스토리우스는 “너희들은 로마와 알렉산드리아 등지에서 진저리나도록 교리전쟁이나 해라. 우리는 주님의 복음을 대륙으로 가져가리라”, 이같이 복음전파를 본질로 알고 중국과 아프리카를 향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도 있다.
네스토리우스파 교회의 지도자들은 자기들이 주장하는 교리를 마음 놓고 가르칠 수 있는 영토를 확보해야 할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점을 생각하면 네스토리우스파 교회의 선교사 알로펜이 당나라를 향해 걸음을 재촉한 배경을 이해하게 된다.
네스토리우스파 교회의 지도자들은 그 일을 해내기 위해 수학과 천문학, 자연과학에 통달하고, 페르시아 의술을 익힌 의사들을 키워서 삶의 현실적 문제를 해결해주는 방식을 가지고 가는 곳마다 문맹퇴치에 힘썼다. 또한 노예 해방운동을 했으며, 인간평등주의의 선교 방식을 택하였던 흔적을 발견하게 된다. 네스토리우스파 교회는 그들이 간 곳에서 그 지방 언어를 담을 수 있는 글자를 만들어 반포하기도 하였다.
조선의 세종(世宗)이 반포한 한글도 이미 네스토리우스파 교회의 지도자들이 만들었던 원본을 집대성한 것이라고 말하는 학자도 있는데, 비약된 논리라고 일축하기 어렵다고 하기도 한다.
필자는 친구인 석담 장종철(石潭 張鍾哲) 박사와 조선의 양명학(陽明學)에 대해 대화를 나누면서, 우리 가문의 조상들이 양명학에 조예가 깊다는 얘기를 한 일이 있었다. 앞에서 필자의 가문이 경교와 관계 있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필자는 우리 가문에 흐르는 경교도(景敎徒)의 전통이 그런 일에 영향을 미쳤고 필자 역시 그 때문에 한학에 관심을 갖고 수련을 쌓아올리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네스토리우스파 교회가 경교라는 이름으로 당나라에 뿌리를 내리고 왕성한 모습을 보이게 된 그 기념으로 우리가 지금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대진경교유행중국비를 세운 것이다. 이 경교비의 첫 부분은 주로 경교의 교리와 교회 의식의 대요를 기록하고 있다.
다음 호에서는 대진경교유행중국비의 내용을 살피기에 앞서서, 네스토리우스파 교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에데사(Edessa)에 세워진 신학교에 대해 살필 예정이다.
려용덕 | 도봉중앙장로교회 담임목사, <한국교회신문> 발행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