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는 새 꽃나무 가지가 베란다 울타리를 넘어 들어왔다. 처음에는 그런가 보다 했는데 점점 높게 자라서 결국 잘라버렸다. 그리고 끝난 줄 알았다. 그런데 잘린 부분 밑으로 새로운 가지가 돋아났다. 그것도 두 개나. 꽃집을 해보았으니 사실 그렇게 신기한 일은 아니였다. 보통 식물이 멀대처럼 자라지 않고 옆으로 풍성하게 자라도록 순을 지른다. 그러면 순을 지른 부분에서 두 개의 새로운 싹이 나서 분지한다. 새롭게 올라온 꽃나무 가지가 금새 자라서 최근에 다시 가지를 잘라주어야 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두 개가 아닌 여러 개의 가지가 돋아났다. 새롭게 돋아난 가지를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잘려진 가지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점이다.”
중국에서 추방되고 나서 교회에서 말씀을 전할 때 당시의 내 심경을 크로스컨트리 스키에 빗대어 이야기한 적이 있다(당시 동계올림픽이 있었다). 몇 년간 경기를 준비하고 이제 장비를 갖추어 경기를 뛰게 되었는데 1분도 안되어서 낯선 사람들이 경기장에 들어와서 내 장비를 모두 벗게 하고 내려오라고 했을 때, 그 선수의 심정이 어떠하겠는가? 그 심정이 지금의 내 마음과 같다고 말씀을 드렸다. 새로운 지역에 정착해서 이제 출발점을 벗어나 어느 정도 사역의 발판을 마련했는데 모든 것을 내려놓고 캐리어 하나만 들고 한국으로 와야 했다. 내 신세는 마치 잘려나간 가지처럼 모든 게 내동댕이 쳐진 것 같았다.
방글라데시에서 어느덧 1년 3개월째 생활하고 있다. 어느 식사 자리에서 다른 교단 선교사님이 내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자기 교단에도 중국에서 추방된 선교사들이 많은데 아무도 방글라데시에는 오려고 하지 않는다고 이제는 대부분이 좀 더 편한 곳에서 사역을 하고 싶다고들 말하더란다. 그러시면서 왜 여기에 오게 되었냐고 물으셨다. 사실 선교지에 편한 곳이란 없다. 어디를 가든 각자 나름대로의 어려움이 있다. 그분들이 말한 편함은 삶의 편함이라기보다는 통제와 감시가 없는 곳에서 원없이 자유롭게 사역할 수 있는 곳을 말하는 것이리라 생각된다. 이런 면에서 방글라데시는 상대적으로 중국보다는 자유롭다. 하지만 이 사회도 깊이 들어갈수록 제약이 많음을 보게 된다.
나는 왜 방글라데시에 오게 되었는가? 처음에는 방글라데시는 생각조차도 해보지 않았다. 추방되고 나서 몇 개월이 지난 뒤 새로운 사역지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스스로 다음 사역지를 정하기 위한 기준을 정했다. 첫 번째 기준은 언어였다. 중국어는 사역현장에 바로 투입되어도 어느 정도 무난하게 해낼 수 있는 상태였다. 따라서 중국어를 사용하는 현장에 가면 새로운 언어를 배우지 않아도 바로 사역을 할 수 있다. 다시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하나의 언어를 어느 정도 사역을 할 수 있는 정도로 익히는 것은 많은 인내와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먼저 생각해본 사역지는 대만이나 중국어 사용이 가능한 화교권과 국내 중국인유학생 사역 등이었다. 두 번째 기준은 이슬람권이었다. 사실 나는 중국에서 무슬림들이 많은 이슬람권에서 사역을 했다. 그래서 이슬람권에서 사역을 계속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이렇게 두 가지 조건을 정하고 보니 이를 만족시키는 나라들은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였다. 이들 국가에는 중국어가 가능한 화교들이 제법 많고, 크고 작은 화교교회들도 많이 있다. 또한 동남아에서 대표적인 이슬람 국가이다. 
하지만 나의 선택은 이 두 국가가 아닌 방글라데시였다. 방글라데시는 이 두 나라를 가기 전에 그냥 잠시 들려본 나라였는데 잠시 들려본 나라가 새로운 사역지가 되었다. 방글라데시를 선택하게 된 이유는 현장을 보면서 주신 주님의 마음 때문이었다. 방글라데시 땅을 리서치하는 동안 주님께서는 나에게 이 땅을 위해 일하면 좋겠다 하는 도전의 마음을 주셨다. 결국 나의 조건보다 주님의 마음이 우선이 되었다. 전략적 배치에 발맞추어 합리적인 선택으로 사역지를 정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사실 가고자 하는 땅에 대한 뜨거운 마음이 없으면 일을 위한 사역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이렇게 마음을 정하고 나니 새로운 언어를 배워야 한다는 것이 부담이 아닌 도전이 되었다. 중국에서 사역을 할 때도 지금의 나보다 더 나이가 많으신 분들이 열심히 언어를 배우면서 사역을 했던 것을 보아왔다. 언어의 장벽은 분명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극복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방글라데시도 인구의 90% 이상이 무슬림인 나라이다. 그래서 두 가지 조건 중 중국어는 포기해야 했지만 이슬람권 선교는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
만일 전략적 재배치를 통해 새로운 사역지를 가고자 한다면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중국으로 선교를 하러 떠날 때 중국에 뼈를 묻겠다는 마음으로 갔는데, 추방당하고 나서 깨달은 것은 그것도 나의 욕심이었다는 것이다. 주님이 저기로 가라고 하면 저기로 가고, 여기로 오라고 하면 여기로 오듯 주님이 원하시는 곳으로 언제든 떠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조건이나 주어진 환경을 기준으로 삼기보다는 주님의 뜻을 구하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곳으로 갈 수 있는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꼭 중화권만이 아닌 다른 나라를 선택할 수 있는 열린 마음 말이다.

내가 방글라데시를 선택하게 된 또 다른 이유는 선교지의 필요 때문이었다. 방글라데시에는 그동안 교단 선교사들 여러 가정이 함께 연합으로 사역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뜻하지 않게 다섯 가정이 추방을 당하면서 팀으로 사역해오던 일을 한 가정이 거의 떠맡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사역을 도울 선교사가 필요했다. 우리 가정 역시 추방되어 나온 터라 추방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곳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동안 아주 외진 지역에서 단독으로 사역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팀으로 함께 사역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은 세 가정이 복귀해서 함께하고 있다. 중국은 한 번 추방당하면 아예 발도 못 내미는데 이곳은 아직은 재입국할 수 있는 또 다른 열린 길이 있었다. 그래서 지금은 새로 온 또 한 가정을 포함해 여섯 가정이 함께 사역을 한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연합으로 사역하는 일은 사실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다. 안식년으로 쉬는 동안 어느 신문 기사에서 본 글귀 중에 이런 글귀가 있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연합사역은 이런저런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는데 나는 빨리 가는 것보다 멀리 가는 것을 선택했다. 그리고 이전과 전혀 다른 인종, 언어, 문화를 가진 나라에서 새로운 출발을 하려면 혼자보다는 팀으로 시작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방글라데시 선교부에서는 교회사역과 교육사역 그리고 구제와 긍휼사역을 하고 있다. 현재는 필요한 부분을 도우면서 언어 연수에 집중하고 있다. 주로 학원에서 언어를 배우고 있는데 기회가 주어지면 현장에 나가서 못하는 언어지만 서툴지만 조금이라도 더듬더듬하면서 사역에 동참했다. 이런 현장의 경험들은 언어를 배우는 데 자극제도 되고 또한 실습의 기회도 된다. 벵골어를 배우면서 느끼는 것은 중국어 배우는 것에 반만 투자해도 아주 벵골어를 유창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어가 어렵긴 어려운 것 같다. 그래서 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새로운 언어에 도전하는 일에 너무 부담을 갖지 마시라는 것이다. 우리는 그 어려운 중국어도 말하고 있지 않은가!

중국에서 추방된 여러 동료 선교사님들이 지금은 열방에서 새로운 사역들을 시작하고 계시다. 특히 내가 사역했던 지역에서 나오시게 된 선교사님들은 대부분 비중화권에서 사역을 하고 계신다. 중국에서 잘려나간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특히 그 땅에서 보낸 시간이 길수록 새로운 선교의 현장에서 싹을 틔우고 있는 선교사님들을 보면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에 그저 고개를 숙일 따름이다. 새로운 출발점에서 오늘도 고군분투하시는 선교사님들께 “찌아여우!”를 외친다.
전진 | 중국선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