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창(南昌)에서의 성취 마테오 리치는 관찰력과 종합력이 뛰어난 선교사였고 그러한 감성이 선교 성과를 올리면서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1595년 11월 4일 마테오 리치는 예수회 총회장 아쿠아비바에게 보낸 편지1)에서 많은 남창 시민이 자신을 방문한 원인에 관하여 종합 분석한 결과를 다음과 같은 여섯 가지로 정리하였다.
첫째는 호기심이었다. 선교사가 유럽에서 온 외국인임이 분명한데도 중국의 의관을 입고 중국말을 하고 있다는 자체가 그들의 호기심을 크게 불러 일으켰다. 둘째는 기억술 전수 요구였다. 한번 보면 잊지 않는 마테오 리치의 능력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를 찾아와서 기억술을 가르쳐 달라고 요청했다. 셋째는 수학과 자연과학에 관한 재능에 대한 감탄이었다. 중국인은 윤리도덕을 중시하는 한편 자연과학 방면에서 취약했기 때문에 마테오 리치의 정밀한 추리와 수학, 철학 지식을 보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이에 대한 기대와 요구가 넘쳐났다. 넷째는 유럽산의 각종 기구들을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수도원에 전시된 프리즘, 유화들, 정장본 서적, 세계지도, 각종 과학 기기 등은 중국인들이 이전에 보지 못했던 것들로서 그들에게는 신기한 것들이었다. 다섯째는 사람들이 그가 연금술에 정통하다고 오인하고 있어서였다. 중국인들은 선교사들이 연금술에 정통하여 끊임없이 금을 만든다고 오인했는데, 그들의 생활비가 모두 그들이 만들어내는 금을 통해서 조달한다고 오해했다. 그래서 그들은 선교사들을 찾아와서 이 기술을 가르쳐 달라고 요구했다. 여섯째는 교회의 신앙적 가르침을 듣고 의견을 나누기 위해서 온 경우인데 이런 사람들은 실제 그렇게 많지 않았다.
이상 여섯 가지 원인 중에서 가장 사람들의 환영을 받은 것은 두 번째부터 다섯 번째까지의 새로운 유럽 과학기술과 문명에 관한 것들이었다. 그 다음으로 사람들의 호기심과 관심을 일으킨 것은 첫 번째 항목 즉 유가와 중국의 풍속과 습관에 대해 적응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가장 관심을 적게 받은 것은 여섯 번째 항목의 교리에 대한 접근이었다. 남창 시민들이 선교사 처소가 비좁도록 많이 몰려든 진정한 원인에 대한 마테오 리치의 이상과 같은 분석은 자기가 새로 채택한 적응성 의 효과이기도 했으며 향후 선교 역정에 큰 길잡이가 되는 것이었다.
기억술 열풍 유럽 과학 지식을 소개하는 일은 마테오 리치의 가운데서 줄곧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였다. 특히 남창과 남경에서 마테오 리치의 명성을 높여준 것은 한번 보면 잊지 않고 중국 문자를 암송한 그의 기억술이었다. 마테오 리치는 남창에서 한 장의 종이에 임의로 여러 개의 한자를 쓰고 일정한 순서에 따르지 않고 한 번만 읽어주면 쓴 순서에 따라 그대로 외어 보일 수 있었다. 이후 중국인들은 어떻게 그렇게 좋은 기억력을 가질 수 있는가 하며 마테오 리치에게 이러한 신기한 기억법을 배우고 싶다는 요청이 폭증하였다. 이로 인해 지방 유지들과 학자들까지 마테오 리치에게 스승의 예를 행하고 또 사례금을 부치기도 하면서 기억술 학습을 위해 몰려들었다. 이러한 놀라운 기억술은 과거시험을 준비하던 지식인들에게는 절실히 필요한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강서순무 육만해(陸萬陔)는 마테오 리치에게 이러한 기억 훈련의 방법을 중문으로 번역해 줄 것을 요청해 왔다. 마테오 리치는 이탈리아에서 편찬된 《기법(記法)》이라는 작은 책자를 중문으로 번역하여 전달하였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선물하거나 가르쳐 주기도 했다.
마테오 리치가 가진 기억술은 아주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마테오 리치가 남창에 도착한 바로 그 해(1595년)에 남창에서 어떤 사람이 이 기억법을 《서국기법(西國記法)》이란 이름으로 출판할 정도였다.2) 이 출판물 자체가 중국인들에게 기억술을 증진시키는 데 바로 영향을 줄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강서순무 육만해는 이 책을 읽어 본 뒤 여기에 기록된 기억의 법칙은 확실히 훌륭하지만 이 기억법들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먼저 좋은 기억력을 갖추고 있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후에 중국 천주교인 주정한(朱鼎澣)도 이 책의 내용은 쉽지 않다고 했다. 종교사학가 베르나(Bernard R. P. Henri)는 “힘 하나도 들이지 않는 비법을 찾는 사람은 누구나 크게 실망할 수밖에 없다”3)고 지적하였다.
마테오 리치의 기억술 번역문 초고는 중국의 예수회 수도사 알폰스 바뇨니(高一志; 원래 王豊肅, Alphonse Vagnoni)에 의해 보관되면서, 다시 정리된 후 중국인교인들과 사대부들 사이에 전해졌다. 바뇨니가 정리한 《서국기법》은 명말 산서성 강주(絳州)에서 인쇄 간행되었다.
주정한은 일찍이 바뇨니에게 사사했던 그의 장인이 이 책에 관하여 소개한 내용을 다음과 같은 요지로 전한 바 있다. “직접 기억하지 않고 기억하게 되는 것은 성령(性靈, 정신)의 능력이다. 상(象)이 있는 것을 기억하여야 상이 없는 것을 기억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을(乙)이 갑(甲)을 형이라고 기억하고 병(丙)을 아우라 기억하면 갑과 병을 합하여 형제라고 기억할 수 있다. 그리고 형제인 갑과 병을 기억하면 합하여 사람이 된다. 형과 아우가 전(專)이면, 형제는 총(總)이 되고, 사람은 대총(大總)이 된다. (···) 자나 깨나 생각하여 사람의 영성(靈性)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이것이야말로 두 선생이 구만리 멀리 서양에서 이곳까지 온 까닭이다.”4)라고 했다.
이는 곧 기억은 결코 단순히 죽자 살자 외우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성령’의 능력 즉 사람의 주관적 능동성을 이용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렇듯 사람의 정신을 충분히 발휘하는 것을 대총(大總)으로 하여, 친숙한 것에서 소원한 것으로 익숙한 것에서 생소한 것으로 발전하는 기억 방법이야말로 마테오 리치와 바뇨니가 전한 서양 기억법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서양 기억법의 법칙과 중국 문자를 구성하는 상형(象形)과 회의(會意) 특징을 서로 결합하여 정리한 마테오 리치의 효율적 기억의 방법과 규칙은 매우 특별한 의의를 지닌다. 왜냐하면 이 기억법이 매개가 되어 일단 마테오 리치에 대한 중국인들의 관심이 크게 늘어나게 되면서 서양의 지식과 중국의 실제가 하나로 결합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러한 것을 통한 선교사들에 대한 관심의 증대가 선교사들의 입지 강화뿐만 아니라 장차 기독교 교리의 전파 확산에도 일정한 기여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미주 1) 羅漁 譯, 《利瑪竇書信集》 上冊, pp. 208~211 참조. 2) 費賴之 著, 馮承鈞 譯, 〈利瑪竇〉 (《在華耶蘇會士列傳及書目》 上冊), p. 42. 3) [法] 裴化行 著, 管震湖 譯, 《利瑪竇評傳》 上冊, p. 218. 4) 朱鼎澣, 〈記法序〉 (利瑪竇 诠著, 《西國記法》; 《天主敎東傳文獻》에 실려 있음).
김종건 | 대구한의대학교 기초교양대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