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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3.3 통권 211호     필자 : 나은혜 프린트   이메일 
[나은혜 선교문학]
옷장 안의 추억

며칠 전 어머니의 옷장을 정리했다. 작년에 이사할 때도 많은 옷가지들을 정리를 해서 정리할 것이 그리 많은 것은 아니었지만 오전 시간을 거의 할애했다. 알츠하이머병(치매)을 앓는 어머니는 이제 자신의 옷을 골라 입을 줄도 모르고 다른 것으로 바꾸어 입을 줄도 모르신다. 그래서 내가 어머니의 의상 코디를 날마다 해 드려야 한다. 어머니는 젊었을 때 워낙 멋쟁이셨다. 게다가 양재를 배우셨기 때문에 손수 옷을 지어 입기도 하셨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머니는 어떤 의상을 입든지 잘 어울렸다. 어머니 연령대의 사람으로서는 키가 상당히 크신 편이다. 거기다가 날씬하고 피부까지 하얀 미인이신 어머니가 어떤 옷이든지 잘 소화해 내는 것은 어찌보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요즘 날씨가 많이 더워졌는데도 어머니는 추우시다며 춘추용 내의를 입으셨다. 하지만 이제 여름옷을 꺼내 입혀 드려야 하기에 어머니의 여름옷들을 다 꺼내서 옷걸이에 걸어서 행거에 걸었다. 아침에 외출하시기 전에 옷을 코디해 드려야 하는데 그때마다 옷을 찾아 입기 쉽게 정리를 한 것이다. 어머니의 옷장 안에는 티셔츠며 블라우스며 꽤나 예쁜 옷들이 많았다. 다양한 디자인의 옷들이 여러 벌 있었다. 그런데 어머니의 옷장을 정리하다가 옷장 속에서 오랜 추억이 깃든 반가운 옷 한 벌을 찾아내었다. 그 옷은 회색 주름치마에 흰색과 회색이 어우러진 장미 무늬가 있는 블라우스였다. 어머니는 이 옷을 오랫동안 참 좋아하셔서 외출복으로 즐겨 입고 다니셨는데 주로 교회 가실 때 많이 입으셨다. 나는 다시 그 옷을 옷걸이에 걸면서 추억에 잠겼다.

물론 이제 어머니는 치마 종류나 한복을 전혀 입지 못하신다. 그 대신에 실용적인 바지나 스웨터를 주로 입으신다. 그리고 외출을 하실 때면 상의에 재킷 정도를 걸치신다. 자녀들이 해 드린 무스탕이나 모피코트 같은 무게가 나가는 옷은 이제 어머니에게는 불필요한 옷이 되었다. 대신 가볍고 따뜻한 오리털코트나 점퍼 등을 더 즐겨 입으신다. 니트코트나 버버리 같은 멋스러운 옷들도 이제 어머니에게는 그리 필요하지 않은 옷이 되었다. 가볍고 따뜻하고 활동하기 편리한 실용적인 옷이 오히려 어머니에게는 더 유용하게 된 것이다.

오늘 옷장 안에서 발견한 추억의 옷인, 어머니가 오랫동안 즐겨 입으셨던 회색의 주름정장치마와 회색과 흰색의 장미무늬의 블라우스도 이제는 거의 안 입으신다. 그러면서도 어머니는 이 옷을 참 오랫동안 보관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가 안 입는 이 옷을 이렇게 수십 년간 보관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 궁금해하는 독자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그 옷은 사연이 깃들어 있는 옷이기 때문이다. 그 옷은 어머니의 큰며느리가 결혼한 첫해에 맞은 어머니의 생신날 생신 선물로 사드린 옷이다. 어머니는 그 옷을 선물로 받고 무척이나 기뻐하셨었다.

그런데 생신이 한참 지난 뒤에도 어머니는 종종 나에게 전화를 걸어서는 그 옷 칭찬을 하셨다. 옷이 색상도 바느질도 디자인도 참 마음에 든다고 두고두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있다. 내가 결혼했을 때 어머니의 나이는 51세였다. 아직은 여성으로서도 젊고 아름다웠을 나이였다. 젊은 나이에 맏며느리로부터 첫 생신 선물을 받고 어머니는 매우 기뻐하셨던 것 같다. 사실 당시 어른들의 생신 선물로 가장 무난했던 것은 내복이었다. 상자에 든 내의 한 벌이 어른들 선물용으로 보편적으로 많았다. 내의도 춘추용 겨울용이 다르니까 몇 벌을 사 드려도 문제될 것은 없었다. 그런데 새댁이었던 나는 어머니의 생신 선물로 겉옷인 그것도 집에서 입는 옷이 아닌 외출복을 사 드린 것이다. 마침 같은 교회에 다니는 집사님이 양품점을 오픈했는데 방문했다가 내 눈에 띤 옷이었다. 

고가의 백화점 옷도 아니고 평범한 시장 물건이었지만 바느질이며 옷감이며 꽤 괜찮았었다. 의상을 직접 다루시는 어머니가 두고두고 칭찬을 하신 것을 보면 내가 옷을 잘 골랐었나 보다. 하긴 나도 젊었을 때는 ‘한멋쟁이’ 소리를 들었던 사람이니 좋은 옷을 보는 안목이 있었을 것이다. 아무튼 그 오래전에 어머니께 사 드린 생신 선물을 아주 오랜만에 옷장 안에서 다시 만난 것이다. 이제 내가 며느리를 볼 나이가 되고 보니 어머니의 심정이 더 헤아려진다. 나의 며느리가 시어머니 생신 선물이라면서 옷 한 벌을 고르고 골라서 사다 준다면 나라고 안 기쁠 턱이 없을 것이다. 나 역시 기뻐하며 자주 입을 것만 같다.

우리 어머니의 옷장 속에는 이처럼 사연이 있고 추억이 있는 옷들이 모여서 살고 있다. 모든 옷들이 구입하거나 선물을 받았거나 나름대로의 사연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의 옷장을 열자 어머니가 살아오신 수십 년의 세월이 그 안에 함께 있었다. 30여 년 전 내가 어머니에게 선물해 드린 주름치마와 회색과 흰색 장미무늬 블라우스는 많은 이야기를 갖고 있다. 수십 년 된 그 옷에는 어머니의 며느리에 대한 사랑스러움과 고마움과 자랑스러움이 수 놓아져 있다. 이제사 그때 어머니의 마음을 알 것만 같다. 어머니가 가끔 통화를 할 때마다 왜 그 옷 이야기를 꺼내셨는지!

당시 나는 내가 사 드린 그 옷이 그리 비싼 백화점 옷도 아닌데 어머니가 계속 기회만 되면 고마워하시는 것이 이해가 안 되었었다. 그런데 이제는 어머니의 마음을 좀 알 것만 같다. 그것은 바로 어머니의 며느리를 칭찬하는 우회적인 방법이었다는 것을! 그런데 그때는 왜 몰랐을까? 어머니의 마음을…. 몇 번씩 옷 칭찬을 하셔도 그게 나를 칭찬하는 것이라는 것을 모르고 그저 덤덤하기만 했었는데…. 어머니에게는 그 옷이 주는 의미가 참 소중했던 것 같다. 소중하게 키운 첫 아들이 아내를 얻어 그 며느리가 시집온 첫해에 시어머니에게 장만해 드린 옷 한 벌은 값의 고하를 떠나서 어머니에게는 보람과 기쁨을 주었던 것이다.

어머니에게는 그리도 소중한 추억이 된 회색 주름치마와 회색과 흰색의 장미무늬 블라우스…. 어머니와 나와의 관계의 증인처럼 오늘도 어머니의 옷장 안에서 그들은 수다스럽게 속삭인다.

회색 주름치마가 먼저 말했다.

“우리를 입고 저 할머니가 얼마나 자랑스러워하셨는지 너도 기억하지?”

회색과 흰색의 장미무늬 블라우스가 대답했다.

“그럼 기억하고 말고 할머니가 교회 가실 때마다 무척 즐겨 입으셨잖아. 그때는 우리도 잘 나갔었는데…, 호호호호”

그들이 신나서 떠드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어머니의 옷장문을 조용히 닫았다. 앞으로 내가 이 옷장을 얼마나 더 열고 닫을지는 모르지만 어머니의 옷장 안에는 지나간 세월의 추억이 그림자처럼 그대로 따라와서는 시침을 떼고 앉아 있었다. 나는 90평생 어머니의 인생이 고스란히 어머니의 옷장 안에 있는 것을 발견한다. 옷장이 있다는 것은 옷장 주인이 살아 있다는 것이다. 옷장은 우리의 생존을 생생하게 증명한다. 내가 20대에 결혼해서 어머니 생신 선물을 드린 때로부터 꼭 38년이 흘렀다. 그리고 나에게 어렵게만 느껴지던 시어머니는 이제 나의 어머니가 되어 나의 보호 속에 살고 계신다. 주말인 오늘 조금 전에도 어머니를 씻겨 드렸다. 머리를 감겨 드리며 두피 마사지를 해 드리니 너무 좋아 하신다. ”어이구 좋다. 참 시원하다”라고 하시면서 행복해하신다.

이처럼 사람은 누구라도 심신이 약해져서 스스로를 책임질 수 없을 때가 온다. 이것이 인생의 모습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옷장 안의 아무리 예쁜 옷들도 하나도 필요 없어질 때가 곧 온다는 것도 삶의 진실이다. 


하나님이여 내가 늙어 백발이 될 때에도 나를 버리지 마시며 내가 주의 힘을 후대에 전하고 주의 능력을 장래의 모든 사람에게 전하기까지 나를 버리지 마소서(시 71:18)






 

사진 | pixabay
나은혜 | 장로회신학대학교 선교문학 석사, 미국 그레이스신학교 선교학 박사, 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대표, 지구촌 은혜 나눔의 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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