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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목차 서론
Ⅰ. 종교 문제 1. 종교에 대한 물음: 중국에 종교가 필요한가? 1) 감정을 종교의 기원으로 보는 입장 2) 초월의식을 종교의 기원으로 보는 입장 3) 구원의 길로서의 과학 2. 기독교의 대안: 중국은 어떤 종교를 필요로 하는가 1) 신문화운동과 기독교 2) 중국 기독교인들은 신문화운동의 도전에 대해 어떻게 반응했는가 3) 새로운 종교(新宗敎)의 건설 <‘종교 문제’에 대한 당시 몇몇 교회 지도자들의 논점> <신종교 건립의 배경> <신종교와 과학 사조의 관계> <신종교와 민주 정신의 관계>
Ⅱ. 그리스도 중심의 메시지 1. 근대 기독교 복음 메시지에서의 변화 2. 그리스도 중심의 변증론(호교신학)의 등장 1) 예수의 인성(人性)과 그의 인격 2) 예수의 신성(神性)과 그 행한 초자연적인 기적들 3) 예수의 사역 4) 예수의 가르침의 현실적 합성 3. 신학적 평가
III. 기독교 신앙의 본색화 문제 1. 본색화를 위한 노력을 촉진했던 힘들 2. 오사운동 시기 지식인들의 전통문화에 대한 태도들 3. 본색신학의 건설을 향해 1) 중국 문화 속에 기독교 신앙이 선재하여 있다는 입장: 진리의 동일성 2) 문화들의 조화와 융합을 모색하는 입장
3) 기독교가 중국 문화를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하게 해 준다는 입장 1920년대 중국교회에 소속된 기독교 지식인들 중 다수는 중국 문화와 기독교 신앙 사이의 관계를 바라봄에 있어 이 세 번째 입장을 취했다.1) 그들은 역사상 예수의 모범이 자신들을 적지 않게 계발시켜 준다고 생각했다. 예수께서는 스스로 자신은 율법과 선지(先知)를 폐기하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하기 위해 왔다고 말씀하셨다(마 5:17). 마찬가지로 그들은 기독교 신앙이 전통문화를 개선하고 온전(충실)하게 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들은 기독교와 중국의 유교(儒敎)사상 사이의 유사성을 기꺼이 인정하였으나 오뢰천(吳雷川)이 했던 것처럼 동일시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곧 민족 고유의 문화에 대한 그들의 사랑이 더 적었다거나 혹은 그들이 전적인 서구화(全盤西化)의 길을 취하기를 원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2) 그들은 기독교와 중국 문화 사이의 가능한 문화적 접촉점들을 찾는 것 외에, 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당시 비판과 공격을 받고 있던 전통사상을 구원할 방법을 찾았다. 그들이 전통 문화에서 부족한 부분을 보았던 것은 당시 유행하던 반(反)공자(孔子) 우상파괴주의(‘打倒孔家店’) 때문이라기보다는 더 높은 신학적 신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며, 그들은 그 신념에 근거하여 문화 발전에서의 득실(得失) 문제를 판단하였다. 본색신학에 대한 그들의 확신은 위탁민(韋卓民)의 다음과 같은 말에 잘 표현되어 있다.
기독교가 동양 문화와 접촉할 때 조금도 염려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여러 면에서 상대로부터 유익을 얻을 수 있으며, 진리가 반드시 승리할 것이기 때문이다. 기독교가 자신의 메시지를 선포할 때 중국 문화 속에는 그것을 도와줄 수 있는 많은 것들이 있다. (……) 기독교는 중국 문화 전통과의 접촉을 통해 그 내용이 더욱 충실하여 질 것이며, 동시에 중국 문화 자체 또한 하나의 단련과 정화의 과정을 거침으로써 자신 안에 기독교와 부합하지 않은 성분들을 깨끗이 제거하여 그리스도화 된 문화로 변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중국신학(中國神學)이 그를 통하여 탄생할 것이다.3) 이러한 방식의 본색신학 모식(模式) 속에는 몇 가지 개념적 전제들이 내재해 있다. 첫째, 그들은 신(神)이 중국 사회 역사상에 또한 자신의 활동에 대한 증인을 남겨 두었다고 믿었다. 중국 문화의 전통은 사람과 신의 합작의 결과이며, 초기의 여러 성현(聖賢)들의 가르침 중에는 반드시 일정한 신의 계시가 담겨져 있다. 그런 관점에서 이전에 서방선교사들이 스스로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우월감은 이제는 더 이상 통할 수 없다. 전(前) 세대 선교사들의 거만한 태도는 이제 겸손한 태도로 바뀌었다. 성정이(誠靜怡)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기독교도 상제(上帝)가 인간의 마음속에서 일하는 방식이 결코 한 가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리하여 그가 우리들을 인도하여 주시는 것은 어떤 나라를 막론하고 모두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관점은 확실히 기독교인들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교훈을 얻기를 원하도록 만들 수 있으며, 동시에 또한 중국의 각 종교단체들로 하여금 상호 관용하는 정신으로 서로를 대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다. 중국은 상제의 특별한 은총을 입어서 수천 년간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리고 중국 정신 문화의 우수한 점도 또한 그것이 생명을 연장할 수 있었던 중요한 원인이었다. 우리가 이러한 천부(天賦)의 특이한 문화를 만약에 잘 이용할 수 있다면 기독교 사상의 내면에 적지 않은 새로운 원소들을 증익(增益)시킬 수 있을 것이며, 동시에 기독교가 본래 가지고 있는 특성에 대해서는 조금의 손실도 끼치지 않을 것이다.4) 그렇지만 위탁민은 다른 나라의 문화와 가치관을 학습하고 흡수하기 위해 과도하게 열성을 내는 것은 쉽게 종교 혼합주의(절충주의)를 가져올 수 있다고 하여 경계하였다.5) 두 번째 전제는, 문화적 교류(동화, 상호작용)는 피할 수 없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당시 고조된 민족주의의 물결 속에서 많은 중국 지식인들이 서방 국가들이 중국을 향해 문화적 침략을 진행하고 있으며 중국 문화의 정체성에 위해를 가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그러나 이 그룹에 속한 기독교인들은 민족 고유문화의 미래에 대해 낙관적이었다. 그들은 문화를, 외부적 힘의 압력을 피할 수 없을 때 오히려 성장과 개혁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그 본성상 유기체적인 것으로 보았다. 신중국(新中國)은 동서 문화 교류의 형세 하에서 마침 형성되어 가는 중이며 서구의 학술과 과학기술은 결코 본토의 문화를 위협할 수 없다. 오히려 반대로 중서(中西) 문화의 장점이 결합되어 이상적인 문화 융합을 통해 중국의 앞날에 새로운 희망을 제공하여 줄 수 있을 것이다.6) 그들은 둘 각각의 훌륭한 요소들이 선택적으로 보존된 동양과 서양 사이의 문화적 융합을 기대했다.7) ‘중도(中道)’가 발견되어야 한다.8)
세 번째로, 그들은 이런 방식이든 저런 방식이든 어쨌든 기독교의 최종성을 인정하였다. 기독교는 인생의 최종적 답안이며, 예수 그리스도는 복음 진리의 중심이다. 기독교와 유교사상을 비교하면서 조자신(趙紫宸)은 “유교 문화에 줄 수 있는 기독교의 가장 큰 공헌은 성육화한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 속에 계시된 대로의 신에 대한 경험이다.”라고 말했다.9) 그리고 사송고(謝頌羔)10)도 유교 문명에 대한 자신의 긴 논의에서 “최고의 종교는 기독교이다.”라고 주장했다.11) 그들은 그리스도를 중국 문명을 넘어선 자리에 위치 지운다는 점에서 오뢰천이 기독교의 유일성을 부정한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이러한 신학적 관점은 이런 방식의 신학 본색화 방법을 지지하였던 교회 지도자들에게 하나의 강렬한 신념을 제공하였다. 그들이 중국인의 마음에 기독교 신앙을 제시하기 위한 길들을 찾도록 동기를 가지고 지시했던 것은 이러한 신학적 신념들이었다. 위탁민은 기독교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두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았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거룩한 삶과 그것의 인간적 표현이 그것이다.12) 거룩한 삶으로서의 기독교는 결코 중국에 고유했던 적이 없다. 하지만 기독교가 어떤 의미를 지니기 위해서는 반드시 문화적 맥락 속에 담겨져야 하기 때문에 순수한 탈문화적인 기독교는 있을 수 없다. 위탁민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진리의 궁극성을 믿었다. 그러나 그것이 제시된 표현 자체는 최종적이지 않다. 그러므로 중국 기독교도들이 나름대로 그 절대적 실재의 충만한 표현에 기여할 수 있는 명확한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위탁민의 논증에는 상호 필요성에 대한 생각이 있다. 문화는 계몽을 위해 기독교가 필요하며, 기독교는 더 나은 해석을 위해 문화들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왜 위탁민이 중국의 비기독교적인 종교와 철학들에 있는 장점(덕성)들을 파악하고 그것들을 ‘에큐메니칼 교회의 유산’ 속으로 통합하는 데 관심을 가졌던 것인가에 대해 설명해준다.13)
기독교의 본성과 표현의 관계에 대한 유사한 구분이 성정이에 의해 행해졌다. 그에 의하면 기독교의 본질은 변하지 않은 채로 남아있지만 “조직된 기독교가 각각의 나라들에서 취할 수밖에 없는 특정한 형식과 발전은 그 각각에서 지배하고 있는 문명과 조건들에 따라 변화할 것이다. 그것들은 심지어 변화하는 조건에 따라 같은 나라 내에서도 변화할 (다를)- 수 있다.”14) 그리고 조자신도 또한 “기독교의 종교적 생명력은 중국 문화 속으로 들어가 그것의 새로운 피와 생명이 될 수 있다. 또한 중국 문화의 정신적 유산은 자신을 종교적 형식으로 표현함으로써 기독교에 공헌할 수 있다. 기독교가 무거운 서양의 속박을 벗고 지역적 표현으로 옷 입을 때 중국 인민들에 의해 제대로 이해되고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다.”15)라고 했다. 그들은 기독교가 중국 문화를 온전하게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어떻게 온전하게 할 것인가? 중국 문화는 온전하게 될 필요가 있는가?
4) 어떤 방식으로 기독교는 중국 문화를 온전하게 할 것인가? 어째서 중국 문화는 온전하게 될 필요가 있는가?16) 이러한 문제에 대답하면서 그들은 중국 문화 이면에 있는 인본(人本)사상의 약점이 하나의 온전한 생명의 철학(인생관)을 건립할 수 없게 만들었다고 지적하였다. 인간은 인간의 존엄성을 설명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인간은 시간과 공간상의 한계 아래에 있으며, 이러한 인간의 유한성은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내면의 빛을 덮어 가리거나 무시하는 인간 자신의 죄성(罪性)과 짝을 이루어 그가 진리를 추구하는 데 방해를 한다. 인간의 본성상의 한계들은 그 본성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하게 하여 줄 거룩한 은혜의 역사(役事)를 요청한다. 중국인들은 “옛날 히브리 사람들과는 달리 침중한 죄의식을 가져본 적이 없다.”17) 이러한 자신의 천부적 제한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은혜의 사역 없이는 (중국인들은) 흑암 속에서 참된 빛의 인도를 얻을 수 없다. 그러한 신학적 믿음을 가지고 이들 중국 지식인들은 자신들의 문화적 유산에 대해 동감(同感)을 가진 동시에 비판적으로 검토하였다. 매우 자주 그들의 동감은 그들의 비판을 넘어서고는 하였다. 그들은 중국의 성현들의 학문과 기독교가 만날 수 있는 공간들을 찾았으며 그것이 그들에게 더 위대한 진리에 이르는 길을 지시하여 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예를 들어 위탁민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러한 방법은 그들 속에서 신의 은총에 대한 기독교적 경험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는 모든 지혜와 지식의 보물이 숨겨져 있다’는 의식을 일깨우게 될 것이다. 이들 보물들은 그들 자신의 전통적인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가르침 속의 최상의 것들과 모순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온전하게 함으로써 그것들의 부족함을 보충하며, 또한 동시에 그것들을 초월한다.18)
조자신은 〈기독교와 중국문화〉라고 하는 자신의 분석적 에세이에서 중국 문화 속의 여러 가지 경향성들을 열거하였다. 그는 중국 철학자들이 인간과 자연 사이의 화해(조화)를 중시한다고 말했다. 자연이 그 내적이고 외적인 평형을 유지하고 있을 때 만물이 증장(增長)하고 민생(民生)이 흥왕(興旺)하여, 우리 삶이 풍요로워 질 것이다.19) 전체 우주는 “자연과 인간 본성 양자 모두에서 자신의 목적의 실현을 향해 작동하는 창조적이고 윤리적인 충동으로서의” 도(道)의 활동에 의해 관통되어 있다.20) 유교의 일관된 도리(道理)는 자연의 정복을 가르치지 않으며 오히려 자연의 길들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 자연을 초월한 상상을 하지 않으며 다만 세상의 사무(事務)를 마음에 둔다. 이렇게 실제를 중시하는 생활 형식은 중국 철학자들이 형이상학적 보편에 대해 보류하는 태도를 취하거나 종교 사정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취하는 원인을 어느 정도 설명해 줄 수 있다. 조자신은 중국인들의 이러한 심리상의 추향(趨向)은 바로 기독교인들이 복음을 전할 때 추상적이고 현묘한 내용들은 피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위탁민도 비슷하게, 신의 추상적인 속성들보다는 역사상에서의 신의 활동과 신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 대한 서술에 좀 더 주의가 기울여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이러한 이유로 중국에서의 신학적 발전은 순(純) 이론적인 노선보다는 역사적이고 도덕적인 노선에 따라 이루어질 것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21) 거룩한 생명의 최고의 표현으로서의 나사렛 예수야말로 본색 기독교 사상의 탁월한 출발점을 제시할 것이다.
중국 전통 속의 신 관념에 관해서도 적지 않은 토론이 있었다. 중국인 신 관념은 상제로 표현되었든 혹은 천(天)으로 표현되었든 《서경(書經)》과 《시경(詩經)》에 나타나 있다.22) 사송고는 중국 민족의 종교 경험 속에는 일찍이 이미 신의 존재에 관한 관념이 있었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비록 뚜렷하게 인격적인 신을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유교사상에서의 신 관념에는 인격적인 요소가 있다고 생각했다. ‘상제(上帝)’라고 하는 말은 최상위의 지배자로서 어떤 인격을 지칭하며, ‘하늘’로 번역되는 ‘천(天)’이라고 하는 말 역시 비록 비인격적인 것처럼 들리지만 인격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주(周)시대의 《춘추(春秋)》이래로 “성현과 선철(先哲)의 이름은 감히 직접 언급하지 않고 그 대신 별칭을 사용 한다”고 하는 전통적인 원칙에 따라, 상제 대신에 천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고 한다.23)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유교 사상의 약점은 신 관념과 관련된 한, 명칭의 사용에 있었기 보다는 중국에 신학자와 종교적 예언자가 없었다는 데 연유한다. 나의 판단에 따르면 유교 이론 중에서 말하는 신은 인격적이다. 다만 명료하게 오류 없이 신을 계시해 줄 예수가 중국에는 없었다.24)
그렇지만 주우어(朱友漁)25)의 연구에 의하면 (중국에서) 신은 결코 인간들과 인격적인 관계를 가지거나 혹은 인간이 보고들을 수 있는 존재로 자신을 계시한 적이 없다. 그것은 하나의 모호한 개념으로서 유교 사상에서는 그다지 많이 논의되지 않았다. 역사적 관점으로부터 그는 “경전에서의 신 관념은 유교의 분위기 속에서는 명료하게 되어 가기보다는 점점 희미하고 모호해졌다. 그리고 마침내는 애매모호한 용어인 천을 사용하면서, 그것은 우주의 비인격적인 도덕 원리 혹은 법칙에 지나지 않는 것이 되었다.”라고 말했다.26)
조자신은 같은 정조(情調)로, 사송고의 주장과는 반대로 유교 전통에는 신의 본체와 성격(인격성)에 대한 어떠한 명료한 지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한(漢)왕조 이후에는 유교의 학자들이 이미 다시는 인격을 지닌 신성에 대해 중시하지 않게 되었다.27) 송(宋)왕조의 이학(理學, 新儒學) 중에서 천은 자신의 인격적인 성질을 완전히 잃었으며 자연의 원리와 동일시되었다. 조자신은 “중국 사상가들은 한편으로는 윤리의 기원이 하늘과 땅에 있다고 느꼈으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하늘과 땅이 어떠한 인격성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28) 천에 인격성이 결여되어 있었든지 혹은 단지 그에 대한 계시를 전달하여 줄 예언자가 부재했던지 간에, 중국 전통의 신 관념은 기독교 신학의 도움을 얻어 더욱 온전한 이론을 건설할 필요가 있다.
중국의 윤리관은 인간관계를 강조한다. 그중 가장 중심적인 가르침은 곧 충(忠, 충실)과 서(恕, 상호성)의 도리로 표현되는 인(仁)이다. 조자신에 따르면 “힘을 다해 자기의 책임과 이상을 달성하는 것이 충이며, 동정심(동감)을 가지고서 자기를 미루어 남에게 미치고(推己及人) 다른 사람들을 위해 배려하는 것이 서이다.”29) 사송고도 또한 “공자에게서 인은 철학자의 기초석(基礎石)으로서 널리 모든 것을 포함한다. 그러나 어떠한 용어도 인의 전체를 표현하지는 못한다.”라고 했다.30) 유교 교육 프로그램의 전체가 인의 미덕을 생명 속에 배양하도록 하는 것이다.
인이 중국 문화의 정수(精粹)라고 한다면 효는 인의 근본이다. 조자신은 “효는 일종의 덕성으로서 과거의 선행(善行)을 자신의 현재의 삶 속에서 배양하는 것이다.”31) 그렇지만 효의 가르침은 인간을 위한 것이지 신을 위한 것은 아니며, 이 세상 속에 있는 것(入世)이지 이 세상 밖에 있는 것(出世)이 아니다. 인의 실현과 효의 실천은 순수하게 인간적인 활동이다. 인간의 본성은 그것의 내재적인 선함에 힘입어 초자연적인 능력의 개입에 의한 도움을 요청함이 없이 자아를 개선함으로써 진선미(眞善美)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 유교 이론에서 인간은 진(眞)과 선(善)과 미(美)를 실현하기 위해 자신 이외에 다른 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32)
그렇지만 그것이야말로 중국 전통 도덕의 부족한 점이다. 즉 인간의 능력에 대해 과도하게 확신하며 그 윤리적 구조를 지지해줄 건전한 형이상학이 결핍되어 있는 것이다. 기독교 신앙은 바로 그 점에 있어 중국에 도움을 줄 수 있다. 기독교는 중국의 도덕 이론이 인간과 자연 사이의 조화를 유지하는 것을 넘어서서 신과 인간 사이의 인격적인 관계(화해)의 종교적 체험 위에 자신의 토대를 건설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 사송고는 유교의 윤리는 가장 높은 수준이라고 해도 인본 중심의 도덕주의를 넘어서지 못한 것으로서,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사랑의 원리를 완성하는 데까지 나아가지는 못했다고 비판하였다. 그는 “그러한 흠결로 말미암아 사람들은 공자를 단순한 도덕가로 생각하게 되었으며, 공자가 말한 사랑은 인간에 대한 사랑에 제한되어 신에 대한 사랑에 이르지는 못하였다. 공자가 도달한 최고의 경지는 기독교에서는 단지 출발점에 지나지 않는다. 공자는 바른 길에 들어섰지만 그것의 최종적인 완성을 볼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생명을 지니지 못했다.”33)
위탁민은 중국인들은 가족 관계를 중시하기 때문에 신의 아버지 됨과 인간들의 형제 됨을 쉽게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인간 사이의 수평적 관계에 대한 중국인들의 관심은 기독교를 통해 신과 인간의 사이라고 하는 질적으로 다른 수직적 차원을 얻게 될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적 관점은 효를 통해 함께 묶여 있는 산 자와 죽은 자의 전통적인 중국의 가족 개념을 우주적 가족34)이라는 확장된 개념을 통해 풍성하게 할 것이다.35) 부모에 대한 전통적인 순종과 존경은 그들로 하여금 신의 뜻에 대한 복종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기독교를 통해 중국의 개인은 전통적인 가족의 속박으로부터 하늘의 아버지에게로 그리고 유교적 열망인 세계 형제애에로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유교의 효도에 내재한 소망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조자신이 말한 대로 “만약 세계적 성격의 신 의식이라고 하는 종교적 동질성이 없다면 인간 사이의 형제 사랑은 그러한 깊이와 높이에 도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한 신 의식은 오직 기독교만이 줄 수 있는 것이다.”36)
기독교의 죄와 속죄에 관한 교리도 또한 군자(君子, 탁월한 인간)의 표준에 이르고자 하는 중국인들의 인격 수양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전통적인 군자의 인격을 배양하기 위해서는 단지 도덕 원칙을 전통적으로 고수하고 자기 수양을 지속적으로 실천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조자신의 분석에 따르면 인간은 반드시 자신의 실패 가능성과 연약함과 한계에 대해 자각할 때만 비로소 신의 용서와 수용을 간구할 수 있다. 용서하시는 은혜 속에서 율법의 구속은 제거되며 기독교적 인격이 길러지면서 인간은 도덕 규칙의 억압에서 해방될 것이다. 예수의 삶은 우리가 신과 화해할 수 있는 종교적 동력(動力, 가능성)과 본받을 수 있는 도덕적 모범을 제공해 주며 우리가 기독교도(基督敎徒) 군자로 성장할 수 있게 할 것이다.37)
이러한 신학 본색화의 방법을 취한 이들은 모두 조심스럽고 신중한 태도를 취하여, 유교 전통 중 긍정적인 측면을 무시하지 않기 위해 자신들의 발언에 주의를 기울였다. 그들 모두의 일관된 원칙은 기독교를 유교의 이상(理想)을 실현하기 위한 추동력으로 삼으며 동시에 유교의 이론을 기독교 신앙을 전파하는 매개로 삼아 그리스도의 성도(聖道)를 지향한다는 것이었다. “유교는 기독교에서 자신의 생명의 근원을 발견할 수 있으며, 기독교는 유교에서 자신의 진리의 수행자를 볼 수 있다.”38) 미주 1) 이 입장을 취한 그룹에는 趙紫宸, 劉廷芳, 韋卓民, 謝頌羔 그리고 誠靜怡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 장에서는 주로 그들을 다룰 것이다. 2) 예를 들어, 趙紫宸은 전적인 서구화(전반서화론)의 주창자들이 文化(culture)와 文明(civilization) 사이의 차이와 문화적 교류(상호영향)의 불가피성을 무시하였다고 비판하였다. 그의 《基督敎進解》,(上海靑年協會, 1947) p.38.을 보라. 3) Francis C. M. Wei(韋卓民), The Spirit of Chinese Culture (New York: Charles Scribner's Sons, 1947), pp.28-29. 4) Ch'eng Ching-yi(誠靜怡), "Problems of the Chinese Church", p.104. 誠靜怡, 〈中國基督敎的性質和狀態〉, 59쪽. 또한 T. C. Chao, "The Indigenous Church", p.497. 5) 韋卓民은 William Hocking의 문화적 절충론에 동의하지 않았다. William Hocking, Living Religion and a World Faith (New York, 1940), pp.190, 198; 그리고 Francis C. M. Wei, The Spirit of Chinese Culture, pp.24-27.을 보라. 6) Francis C. M. Wei(韋卓民), "Synthesis of Cultures East and West", in China Today Through Chinese Eyes ed. Chao Tzu-ch'en et al. (2nd Series: New York, 1927), pp.74-85. 7) 梁啓超와 蔡元培의 문화적 견해를 참조하라. 채원배에 대한 Levenson의 묘사에 의하면, 채원배는 중국의 문화적 패배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동기는 설혹 Levenson의 견해가 정확하다고 해도 이들 중국인 지도자들에게는 발견되지 않았다. 8) T. C. Chao(趙紫宸), "Our Culture Heritage", p.17. 9) T. C. Chao(趙紫宸), "Christianity and Confucianism", International Review of Missions 17 (1928), p.595. 10) 謝頌羔(Zia Zong-kao)는 浙江 寧波人으로 1895년 杭州에서 태어났다. 그의 祖父 謝行棟1825∼1895)는 일찍이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 丁韙良(W. A. P. Martin)의 전도를 받아 기독교인이 되었으며,부친 謝志禧(1863~1937)는 오랫동안 杭州에서 傳教하였고 후에 寧波府前堂을 執掌하였다. 謝頌羔는 東吳大學을 졸업하였고 그 후 미국으로 건너가 Boston University에서 M.A.를 받았으며, 1921년 Auburn Theological Seminary에서 대학원 과정을 밟았다. 중국으로 돌아온 후 그는 남경 金陵神學院과 Comparative Law School in China에서 가르쳤고 또한 Fitch Memorial Church에서 목회를 하였다. 그는 기독교의 사회적 이상을 현실 중국에서 실현하기 위해 출판, 대중 교육 등에 힘썼다. 그는 오랫동안 廣學會의 편집주간을 맡아 《明燈》을 主編하였고 많은 저술을 남겼으며 30책이 넘는 책들을 번역하였다. 그중에는 E. Stanley Jones의 The Christ at the Round Table도 들어 있다. 1974년 별세. 11) Z. K. Zia(謝頌羔), "The Confucian Theory of Moral and Religious Education and its Bearing on the Future Civilization of China", The Chinese Recorder 55 (1924년 4월), p.231. 12) Francis C. M. Wei(韋卓民), "Making Christianity live in China", The Chinese Recorder (1926년 2월), p.118. Wei는 The Spirit of Chinese Culture, p.23.에서 동일한 견해를 좀 더 풍성하게 제시하였다. 거룩한 삶(Divine Life)에 대한 그의 생각은 Ernst Troeltsch로부터 가져온 것이다; Wei의 책, p.6을 보라. 13) Francis C. M. Wei(韋卓民), The Spirit of Chinese Culture, p.24. 14) Ch'eng Ching-yi(誠靜怡), "Problems of the Chinese Church", p.97. 15) 趙紫宸, 〈基督敎與中國文化〉, p.248. 16) (역주) 이 절은 제3절 곧 세 번째 입장의 연속이다. 중국어판에서는 장 구분을 하지 않았다. 17) T. C. Chao(趙紫宸), "Our Culture Heritage", p.15. 18) Francis C. M. Wei(韋卓民), The Spirit of Chinese Culture, p.180. 19) T. C. Chao, "Our Culture Heritage", p.5. 20) T. C. Chao, "Christianity and Confucianism", pp.589-590. 21) Francis C. M. Wei(韋卓民), The Spirit of Chinese Culture, p.176-177. 22) 朱友漁(Tsu Yu-yue, Chu Yu-yu), "The Confucian God-Idea", in Christian China 7.4 (1921년 2월), pp.138-148.을 보라. 23) Z. K. Zia(謝頌羔), "The Confucian Theory of Moral and Religious Education and its Bearing on the Future Civilization of China", p.653. 24) Ibid., p.654. 25) 朱友漁(Andrew Yu-yue Tsu)는 1885년 上海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朱玉堂은 上海의 教會學校를 졸업하고 중국 최초의 聖公會 신부가 되었다. 그는 상해의 聖約翰大學에서 B.A.를 받았으며 같은 대학 신학원에서 신학훈련을 받았다. 1909년 뉴욕의 General Theological Seminary의 장학금을 받아 미국으로 건너가 신학공부를 하였고 동시에 컬럼비아대학에서 사회학을 배웠다. 1912년 동 신학원에서 M.A.와 컬럼비아대학에서 Ph.D.를 동시에 취득하였다. 귀국 후 성요한대학에서 가르쳤으며, 孫文과 협력하였다. 孫文이 죽었을 때 劉廷芳목사와 함께 안식예배를 집전하였다. 1950년 7월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렸던 世界基督敎協進會 중앙위원회회의에 중국 대표로 참석해서, 6·25전쟁을 북한의 남한에 대한 침략 전쟁으로 규정하고 연합국이 파병할 것을 요구하는 결의에 찬성하였다. 이것은 1951년 4월의 基督教控訴運動에서 그가 다른 4명의 중국인목사와 함께 피소되는 원인을 제공했다. 그의 저작으로는 The Spirit of Chinese Philanthropy(학위논문)가 있다. 1986년 별세. 26) Tsu Yu-yue(朱友漁), "The Confucian God-Idea", p.143. 朱友漁도 謝頌羔와 마찬가지로 Soothill이 Three Religions of China(1913)에서 했던 주장, 곧 上帝와 天 모두에 원래는 인격적 성질이 부여되어 있었다는 주장을 채택하였다. (역주) 중국어판에는 朱友漁에 대한 서술 부분이 없다. 27) 趙紫宸, 《基督敎進解》, p.43. 28) 趙紫宸, 〈基督敎與中國文化〉, p.254. 그는 墨子로부터 前漢(B.C.1세기 무렵) 시기의 董仲舒(그의 《春秋繁露》에서)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입장이 취해졌음을 지적하였다. 심지어는 신유학에서 張載(그의 《西銘》에서)와 같은 학자는 궁극적 실재의 자연주의적 표현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29) T. C. Chao, "Our Culture Heritage", p.9. 30) Z. K. Zia(謝頌羔), "The Confucian Theory of Moral and Religious Education and its Bearing on the Future Civilization of China", The Chinese Recorder 54 (1923년), p.726. 31) T. C. Chao, "Our Culture Heritage", p.13과 그의 《基督敎進解》 p.56. 韋卓民의 견해에 의하면 유교 윤리학의 구조는 우주적 원리인 誠 곧 우주와의 조화에 기초하고 있다. 이 원리가 인간에 내재한 것, 그것이 곧 仁이다. 仁이 구체적인 삶에서 드러나면 그것이 곧 義이다. 인간의 최고의 덕성은 자연과 일치를 이루는 것이다. Wei, "Making Christianity Live in China"를 보라. 謝頌羔는 이와 관련하여 조상숭배가 공자에 의해 시작된 것이 아님을 조심스럽게 지적하였다. 공자는 아들이 되는 것보다 인간이 되는 것에 더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효도에 대한 강조가 공자가 아니라 신유학자들에게 돌려져야 한다는 胡適의 주장에 동의하였다. Z. K. Zia(謝頌羔), "The Confucian Theory of Moral and Religious Education and its Bearing on the Future Civilization of China",을 보라. 32) Z. K. Zia(謝頌羔), "The Confucian Theory of Moral and Religious Education and its Bearing on the Future Civilization of China", p.726. 33) Ibid. 34) (역주) 중국어본에서는 ‘국제적(세계적) 가족’이라고 썼다. 곧 ‘인류 가족’을 의미한다. 35) Francis C. M. Wei, The Spirit of Chinese Culture, p.172. 36) T. C. Chao, "Christianity and Confucianism", p.598. 37) Cf. 趙紫宸, 《基督敎進解》, pp.62-66. 38) T. C. Chao, "Christianity and Confucianism", p.595.
사진 | 바이두(sina http://blog.sina.cn/dpool/blog/s/blog_64bdd10601011t81.html?md=gd) 문석윤 | 경희대학교 철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