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페이지설정   사이트맵    사역에 동참하시려면  
    HOME  |  선교회소개  |  교육.훈련  |  중국을주께로  |  중국기도  |  중국어교실  |  자료나눔  |  커뮤니티  |  도서·음반
   
중국을 주께로는
전체보기
이번호보기
지난호보기
주제별보기
  특집/기획
  선교전략
  중국교회
  중국사회와 문화
  지역 및 종족연구
  중국뉴스
  중국어관련
  선교일반
  선교나침반
  중국 기독교
  기획
정기구독안내
해외정기구독안내
HOME > 중국을주께로 > 이번호보기
2019.11.5 통권 207호     필자 : 나은혜 프린트   이메일 
[나은혜 선교문학]
긍휼의 온도

8월 말에 갔다가 9월 중순에 돌아오는 일정으로 중국에 갔을 때의 일이다. 9월이 되고 입추가 지나자 한국은 아침저녁으로 기온이 서늘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간 중국의 광동성(廣東省)은 북아열대 지역으로 여전히 덥고 습했다. 열대의 태양이 내리쬐는 한낮에는 강한 자외선을 피하여 외출을 자제해야 하는 형편이었다. 그런데 어쩌자고 한참 뜨거운 그 한낮에 강변으로 난 그 길을 걸어갈 생각을 했던 것일까. 그 강변에는 그늘을 만들어 줄 나무 한 그루도 변변히 보이지 않았는데 말이다. 따라서 정오의 태양이 내려쬐는 그 길을 걷는다는 것은 한마디로 고문에 속하는 일이었다. 이곳의 강렬한 자외선은 모자와 선글라스, 양산 그 어떤 용비치품으로도 제대로 막을 수 없었다.

그런데도 내 마음은 그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강변길로 먼저 달려가고 있었다. 내 걸음으로는 족히 20∼30분은 걸어야 하는 거리인데도 내 마음은 이미 농촌마을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결국 내 마음이 가는 대로 부지런히 점심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내리쬐는 더위 속에서 음식을 준비하는 그 자체가 고역이었다. 부엌은 대부분 에어컨이 없기 때문에 가스불을 사용해서 음식을 만드는 일은 아무튼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에 계시는 깡마른 농촌 할머니에게 따끈한 점심 한 끼를 꼭 대접하고 싶었다.

한마디 말도 통하지 않는 그 할머니가 왜 이리 내 마음을 사로잡는 것일까. 정말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지난번 산책을 나섰다가 우연히 들린 농가에서 나는 그 할머니를 만났었다. 이곳은 해가 지고서야 좀 서늘해지기 때문에 나는 땅거미가 지고서야 산책길에 나서고는 했었다. 이틀 전쯤이다. 저녁 산책을 하러 나섰는데 그날은 평소보다 좀 많이 걸었다. 강변을 따라서 내가 평소 가는 곳을 지나쳐 더 걷다 보니 농촌마을이 나왔다. 나는 농촌마을로 들어섰다. 마을 입구에는 수천 년은 되었을 것 같은 커다란 나무가 보였다. 그리고 그곳에는 종교의식을 한 흔적들이 보였다. 마치 우리나라의 서낭당처럼 말이다. 향을 피운 흔적들이 있었고 사기로 만든 우상인형들이 죽 둘러서 있었다.

그곳을 지나 조금 걷다 보니 제법 잘 지어진 이층집도 보이고 반듯한 집들이 눈에 띄었다. 그런데 길 오른편에 아주 인상적인 작은 집이 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나도 모르게 대문도 없는 길가의 그 집으로 들어섰다. 벽돌로 쌓기는 했지만 매우 허름한 그 집의 창문은 작은 십자창문으로 초록색 페인트가 어설프게 칠해져 있었다. 방 옆에 잇대어 만든 작은 부엌이 있고 방 앞에는 앉아서 쉴 수 있는 기다란 나무의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 나는 예의 그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방문을 두드렸다.

깡마른 작은 몸집의 할머니 한 분이 나오신다. 쪼글쪼글한 얼굴 주름을 보면서 80세는 족히 넘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您好!(안녕하세요!)” 하고 나는 할머니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러나 할머니는 전형적인 광동 할머니로 표준어인 만다린을 하지 못하는 분이었다. 할머니는 광동어로 뭐라고 하셨지만 이번에는 내가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의사소통은 되지 않았지만 손짓발짓 해가며 이야기를 걸었다. 할머니는 혼자 산다고 하셨다. 방에 들어가 봐도 좋으냐고 여쭙고 나서 할머니의 방으로 들어섰다. 흙바닥인 방에는 모기장이 쳐진 침대가 하나, 작은 탁자가 하나, 조그만 궤짝 같은 의류함에, 여행용 가방만이 덩그마니 놓여 있었다.

그래도 에어컨이 한 대 방에 달려 있어서 할머니가 한여름 폭염을 견딜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는 부엌에를 가 보았다. 반 평도 안 될 조그만 공간에 검은솥 하나가 걸려 있었다. 수돗가에는 플라스틱 큰 물통이 있는데 가득 찬 물통에 바가지 하나가 띄워 있었다. 새카만 행주 하나와 때가 낀 밥공기가 두어 개 있고 그릇도 별로 없었다. 이 몇 가지의 살림살이들이 할머니의 삶의 형편을 말해주고 있었다. 나는 간식으로 가지고 간 감자칩을 한 봉지 꺼내서 할머니에게 드렸다. 하지만 할머니는 한사코 받지 않으신다.

인사를 하고 길을 따라 농촌 안으로 더 들어가 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번에도 할머니 집 버금가는 단칸짜리 집이 보였다. 나는 그 집으로 들어섰다. 이번에 만난 집주인은 할아버지였다. 다행히 할아버지는 만다린을 조금 하는 분이셨다. 나는 방금 지나온 할머니 집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자 그 할아버지가 반색을 하면서 그 할머니가 바로 자기의 큰형수님 이라고 했다. 형님이 돌아가시고 형수님이 혼자 살고 있다는 것이다. 아들이 네형제가 있지만 다 나가서 살고 할머니를 돌보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다시 그 깡마른 할머니가 생각이 났다.

나는 내가 머무는 집으로 돌아왔지만 그 할머니가 잊혀지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따뜻한 밥 한 끼라도 드시도록 만들어서 가져다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해서 나는 점심밥을 짓고 몇 가지 반찬을 만들고, 달걀도 삶고, 옥수수도 삶았다. 점심시간이 되어 할머니가 식사를 하시기 전에 어서 가져다 드리려고 길을 나섰다. 그런데 정말 정오의 그 태양이 내리쬐는 강변길은 뜨거워도 너무 뜨거웠다. 저녁에 갈 걸 하는 후회가 자꾸 밀려왔다. 하지만 이왕 나선 걸음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만든 점심을 맛있게 먹을 할머니를 생각하니 힘이 솟았다.

하늘 위에서 내려쬐는 태양과 밑에서 올라오는 지열에 숨이 턱턱 막히는데 나는 그냥 걸을 수밖에 없었다. 30분…. 짧은 시간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저녁에 서늘한 강바람을 맞으며 걷는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고문을 받듯이 숨이 턱턱 막히는 길을 걸어서 할머니네 집 앞에 당도했다. 방문이 안으로 잠겨 있어서 노크를 했더니 할머니가 방문을 열다가 도로 탁하고 닫더니 문을 잠가 버린다. 할머니는 다시는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나는 한껏 할머니에게 만난 점심을 드시게 하려고 아침부터 부산스레 음식을 만들고 그 뜨거운 길을 걸어서 찾아왔는데 참 실망스러웠다.

나는 하는 수 없이 할머니 집의 조그만 부엌으로 들어섰다. 가지고 온 음식들을 꺼내서 놓고 소쿠리로 덮어놓았다 파리들이 금방 몰려들 것이기 때문에 말이다. 나는 내가 생각했던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별 수 없이 되돌아서서 그 뜨거운 길을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 깡마른 할머니에 대해서 내가 느낀 동정심은 내가 걸어간 뜨거운 강변길보다 더 뜨거웠다. 하지만 그날 할머니가 나를 푸대접한 것이 섭섭하기만 했다. 그렇다고 그 할머니에 대한 나의 긍휼의 온도가 식은 것은 아니였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에 한 번 더 가 보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으니 말이다.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공경하는 자니라(잠 14:31)






 

사진 | 바이두
나은혜 | 장로회신학대학교 선교문학 석사, 미국 그레이스신학교 선교학 박사, 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대표, 지구촌 은혜 나눔의 교회 담임목사 

       인쇄하기   이메일보내기   
   
110-812 서울시 종로구 창경궁로29길 25, (명륜3가 명륜빌딩 202호)   Tel : 02)745-0780~2, 070-8236-1270   Fax : 02)745-0786    E-mail : sinim@chol.com
Copyright 중국어문선교회 All Rights Reserved.     Product by gmgl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