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범죄인 인도 조례 개정안” 반대시위는 홍콩 반환 이후 가장 참담하고 그 규모가 52년 전의 ‘67시위’와도 비길 만하다. 1967년 홍콩 정부는 “긴급법(紧急法)”을 발동하여 시위를 진압하였을 뿐 아니라 시민의 가장 긴급한 부분을 개혁하려고 하였다. 홍콩 정부는 1967년의 경험을 참고로 할 수 있지만 관대함과 엄격함 이 모두를 놓치지 않게 시기를 잘 판단하고 ‘성을 공격하기보다 마음을 얻는 지혜가 필요하고(攻城为下,攻心为上)’, 홍콩의 민심을 회복하고 부동산 경제 문제를 해결해야만 과거의 명성을 되찾을 수 있다.
1967년 즉 52년 전은 홍콩의 ‘붉은 연대(火红年代)’였다. 67시위 기간, 피 뿌려진 거리의 폭풍은 오늘보다 더 맹렬하였다. 하지만 그해의 홍콩 정부는 “긴급법(紧急情况规例条例, Emergency Regulations Ordinance)”으로 시위를 평정한 것 외에도 당시 홍콩 총독 트렌치(David Trench)와 인계받은 총독 맥클레호스(Murray MacLehose)는 광범하고도 깊이 있는 정치와 경제개혁으로 민심을 끌었다. 홍콩 정부가 1967년 이후 얻은 경험을 오늘의 정치, 경제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모델로 삼아야 하고, “긴급법”을 단지 반대시위를 끝낼 수 있는 만병통치약으로 보지 말고 이것을 홍콩의 사회분배 문제를 철저히 개선하고 정부의 고질병을 개혁할 수 있는 좋은 계기로 보아야 한다. 1967년의 교훈은 홍콩이 오늘날의 국제도시가 될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2019년 홍콩은 과연 ‘동방의 진주(东方之珠)’라는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까?
“긴급법” 실시에 관한 한 기자의 질문에 홍콩 행정장관 캐리 람은 “정부는 법률 조항과 적절한 조문(條文)이 현재의 상황을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지 검토할 책임이 있다”고 하였고, 8월 27일에는 “가능한 한 빨리 시위를 진압하기 위하여 우리는 홍콩의 법치수단을 사용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하면서 “긴급법” 실시의 가능성을 암시했다. 중국 관영 언론은 “긴급법”의 실시를 적극 옹호하였고, 8월 28일 신화사(新华社)는 “홍콩 정부가 더 많은 법적 수단으로 시위를 진압할 것을 지지한다.”고 보도했고, 이것은 한동안 세상을 들썩하게 하였다.
"긴급법”을 언제, 어떻게 실시할지 아직도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홍콩의 시위가 지속적으로 과격해지고, 8월 31일의 사제폭탄과 지하철 파괴와 같은 사태가 계속해서 나타난다면 “긴급법”은 여전히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 1967년 시위에서 실시한 “긴급법”은 당시에 “긴급(추방 및 구류)조례”라고 불렸으며, 이후의 정치•경제개혁은 불안한 사회를 진정시켰고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왔다.
홍콩의 “긴급법”은 1922년 선원 대파업에서 시작되었다. 당시에는 “긴급규례조례”를 제정하였으나 1956년 시위 기간에 “긴급(추방 및 구류)조례”로 제정되었고 그때에 시위에 참여한 우파인사들을 구류하고 이 법률에 의하여 추방하기도 하면서 정부에 법원 절차가 없이도 시민을 장기구류 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였는데 67년 시위 기간까지 이어졌다.
67시위 당시 홍콩 전역에 천 개 이상의 흙으로 만든 폭탄을 설치하였으며 51명이 사망하고 8백여 명이 부상을 입었는가 하면 2천여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당국에 체포되었기에 민심은 싸늘하게 식었다. 당시 홍콩 정부의 “긴급법” 발동은 ‘긴급상태’에 진입하게 되었고, ‘야간통행금지’, ‘계엄령’을 발포하여 시위활동을 제한하였고 나아가 정부의 행정권이 입법권과 사법권을 능가하게 되었다. 또 수시로 입법하여 군중운동 발전의 새로운 형식을 대처할 수 있었다. 당시에 발표한 “긴급법”은 ‘선동적인 언론 방지’긴급조례, ‘선동적인 표어 방지’긴급조례, ‘공갈방지’긴급조례, ‘9가지 긴급법령’과 ‘1967년 긴급(주요)규칙 제40조 조문 수정’ 등이다.
67 이후의 사회개혁 당시의 홍콩 총독 트렌치는 정책에 민의 참여가 부족한 상황을 변화시키기 위하여 시위 이후 몇 달 사이에 민정주임계획(民政主任计划)을 추진하여 홍콩 전체를 10개 구(区)로 나누고 구마다 민정처(民政处)를 설립하고, 민의 수집, 고소 접수를 하였다. 그리고 1968년에는 “고용조례”를 제정함으로 노동자들의 월급과 노동시간이 기본적인 보장을 받게 되었다. 뒤이어 매일 8시간 근무, 매주 48시간의 노동제로 전환하였고, 여성 직원들에게 출산휴가를 허용하고 산업재해 보상액을 높여 노동자들의 권익을 대폭 개선하였다. 홍콩 정부는 67의 경험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부동산 문제’, ‘과잉 토지 임차료’의 기형적 문제를 해결하고 세금제도를 개혁하여 홍콩의 산업 다원화와 세금수입의 다원화를 이룩함으로 부동산업자와 정부의 공동범죄 구조를 뒤바꿔야 했다.
홍콩의 성공적인 대규모 정치•경제개혁은 60년대 말에서 80년대 초기의 십수 년간 진행되었으며, 홍콩이 이번에도 성공하려면 반드시 67시위 이후의 경험을 받아들여야 한다. 홍콩 정부의 개혁의 부재로 제도가 경직되거나 관성에 의하여 진행할 수도 있다. 반조례개정운동이 오랜 시간 지속되면서 홍콩의 정치•경제 문제의 심각성을 폭로하였다. 예를 들어 홍콩대학교의 진학률은 아시아의 같은 개발도상국가와 지역에 비해 뒤떨어진 편이다. 홍콩대학교의 진학률은 30%에 불과하고 대만은 거의 100%에 가깝다. 또 중국 대륙을 보더라도 진학률이 60%에 이른다. 이와 같이 해결해야 할 문제는 한두 개가 아니다. 홍콩 정부는 “긴급법”을 발동하려는 투지 외에 ‘성을 얻기보다 마음을 얻는’ 지혜가 더 필요하다.
8월 31일 사제폭탄이 날아다니는 그 모습은 52년 전 홍콩 전역에 폭탄이 깔려 있던 것과 비교된다. 이제 폭력은 극에 도달했다. 홍콩 정부는 강한 압력을 가하든 회유를 하든 시기와 형세를 잘 판단하고 행동해야 하며, 조례개정(修例) 시위 초기에 국제 형세와 홍콩 형세에 대한 오판을 다시 범하지 말고 맥클레호스의 개혁의지로 ‘십 년 집 짓기 계획’과 같은 대규모 개혁을 추진하여 사회 부의 분배권리를 정부가 주도하여 사회의 정의와 평등을 실시하며 동방의 진주라는 명성을 되찾아야 한다.
출처 | <亚洲周刊> 第33卷 36期(2019年 9月 15日) | 사진 | [뉴스1] 번역 | 노은혜•본지 중국어자료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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