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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 통권 206호     필자 : 김종건 프린트   이메일 
[중국기독교회사]
마테오 리치의 중국 진입 준비

마테오 리치의 소명과 수련
마테오 리치(Matteo Ricci)는 1552년 10월 6일 이탈리아 중부의 마체라타(Macerate)에서 카스틸리오네(Castiglione) 후작 가문의 약제사 지오반니 바티스타 리치(Giovanni Battista Ricci)의 아들로 태어났다. 마테오 리치는 9살 때 예수회 선교사가 세운 학교에 입학하여 초·중등 교육을 마쳤고, 1568년 가을 로마대학 법학부로 진학하였다. 이후 3년 동안 고향 출신 교사의 소개로 예수회에 속해 있던 성모회(聖母會) 활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부친은 그가 법률가가 되기를 희망했으나 1571년 8월 15일 그는 로마 성안드레아신학원에 들어가 예수회 수도사가 되었고, 원장 파비오(P. Fabio de Fabi) 신부의 지도 아래 1년 동안 이냐시오의 영성수련 전 과정을 거쳤다. 1572년 9월 15일 평생 청빈, 정결, 순종을 지키기로 정식 선서하였고, 이후 로마신학원에 진학한 뒤 저명한 클라우디오 아쿠아비바(Claudio Acquaviva) 신부의 지도 아래 영성수련을 계속하였다. 로마에서의 수련 과정은 마테오 리치의 중국선교에 기본 소양이 되었다.

마테오 리치는 1572년 말부터 1577년까지 로마신학원 교양학부(즉 논리학, 물리, 형이상학, 도덕, 철학, 수학 등 과목)에서 폭넓은 지식을 연마하였다. 특히 독자적인 ‘기억 비법’을 연구 개발하여 서방 고전 인문주의 사상과 저작물을 최대한 기억하고 저장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을 통해 중국에서 서방 인문 지식과 중국 전통사상을 자유롭게 연계할 수 있는 기본 역량을 키우게 되었다. 마테오 리치가 중국에서 큰 명성을 얻게 된 수학과 과학 분야에 관한 지식도 로마에서의 학업의 결과였다. 로마신학원에서 1574년부터 4년 동안 마테오 리치는 수학, 물리학, 천문학의 대가이며 ‘근대의 아르키메데스(Archimedes)’라고 불리던 독일 국적의 초청 학자 크리스토퍼 클라비우스(Clavius, 1538-1612) 신부 밑에서 수학 지도를 받은 행운을 얻었다. 마테오 리치는 클라비우스로부터 배운 4년 동안 유클리드(Oujilide)의 기하, 행성 이론학, 그리스도교 교력(敎曆) 등 계산 이론을 포함하여 기구를 활용한 천문 관측과 지리 측량의 실용기술, 성반(星盤), 시계 제작법 등에 정통할 수 있었다.

로마에서 얻은 후원자들
로마 유학 시절 마테오 리치가 로마교회 고위층 인사들과 좋은 개인적 관계를 맺었다는 사실도 후일 중국에서 선교의 새 지평을 열어나가는 과정에서 큰 도움이 되었다. 발리냐노와 아쿠아비바를 포함한 로마교회 지도층 인사들은 로마신학원 시절 마테오 리치와는 좋은 사제(師弟) 관계를 맺고 있었다. 1571년 8월 15일 마테오 리치가 로마 성안드레아신학원에 진학했을 당시 발리냐노는 이 학교에서 잠시 신학원장 직무대리를 맡고 있었고, 이후 마테오 리치의 고향인 마체라타 수도원에서 일하였다. 발리냐노의 외국선교 활동과 풍부한 경험은 마테오 리치가 선교현장으로 나가는 과정과 이후 선교 수행 과정에서 큰 영향을 끼쳤다. 발리냐노 역시 가능한 한 마테오 리치에게 관심과 배려로 대해 주었다. 예컨대 마테오 리치의 중국 교구로의 배정, 조경(肇慶)에서의 철수, 사대부 복장으로의 환복, 중국 예의의 수용, 선교사 감독으로의 임명 그리고 만년의 중국 내지 시찰 등과 같은 일련의 중대 문제에서 리치의 말을 가장 먼저 경청하고 중임을 그에게 맡겨 실력을 발휘하도록 도와주고 칭찬하였다. 

마테오 리치가 로마신학원에 다닐 때 영성 지도교수였다가 뒤에 예수회 총회장이 된 클라우디오 아쿠아비바 신부도 마테오 리치의 든든한 후원자였다. 빈번한 서신 왕래와 함께 아쿠아비바는 마테오 리치에게 수시로 서적, 지도, 시계 등 물품을 보냈다. 그와의 인적 유대관계가 바탕이 되어 마테오 리치는 다른 사람들이 언급하기를 꺼려하는 선교 정세와 관련된 민감한 문제를 서슴없이 총회장에게 건의할 수 있었고, 심지어 아쿠아비바가 이미 발표한 지시의 개정까지도 감히 요청하여 승인을 얻어 낼 수 있었다. 예컨대 예수회에 가입한 중국 청년들이 반드시 마카오에서 교육을 받게 한 입장을 고수하지 않고 남창(南昌)에 대지를 매입하여 중국 수도사를 배양할 학교 겸 수도원을 건립하게 하였고, 중국선교단에게 서적 출판의 심사권을 승인하였으며, 특히 승려 복장을 폐기하고 유림 복장으로 환복하는 마테오 리치의 새로운 시안을 승인하였다. 발리냐노와 아쿠아비바 외에도 로마의 마셀리(馬塞利, P. Maselli), 파비오(法比奥·德·法比), 클라디우스 등이 그에 대한 든든한 지원자였다. 

마셀리는 1575년 로마신학원장으로 재직하였고 당시 이 학교 제자였던 마테오 리치에게 그는 자주 편지를 써서 정신적으로 위로와 격려를 했을 뿐 아니라 실제적인 도움을 주었다. 로마 귀족 출신인 파비오 신부는 마테오 리치가 신학원에 진학했을 당시 원장 겸 영성 지도교수였다. 그는 이후 로마 성회장 재임 중 그를 동방(遠東)선교사로의 파견을 승인해 준 인물이며, 마테오 리치에게 적극 편지를 썼으며 아낌없이 각종 물품을 후원하였다. 옛 사제지간의 교분을 바탕으로 좋은 업무관계가 맺어짐으로써, 원래 멀리 떨어져 있어서 방치되기 쉬웠을 선교구가 이처럼 많은 고위층 교회 인사로부터 관심을 끌게 되었다. 로마로부터 전해지는 관심과 위로, 격려, 지지는 마테오 리치가 중국에서 적응성 선교 노선과 전략을 수행하는 데 매우 좋은 환경과 여건을 만들어 줌과 동시에 중국선교단에 대한 다른 교구 인사들의 비협조와 공격을 막는 무형의 방패가 되었다. 이러한 관계의 확립은 바로 로마 유학 시절에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숨은 깊은 이치를 문장으로 다 드러낼 수 없지만 이들의 예사롭지 않은 사제관계의 원인이 여기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인도로의 파송
때마침 포르투갈, 인도선교 담당 마틴 다 실바(Martin da Silva)가 로마에 도착하여 예수회 총회장에게 선교사의 인도 파견을 요청하였고, 예수회 총회장은 우수한 선교사를 선발하고 파견하여 사비에르가 못 다 이룬 선교 사업을 잇게 하겠다고 화답하였다. 이 소식이 전해진 뒤 마테오 리치는 다른 젊은 수도사와 마찬가지로 그곳에 가고 싶어 하여 동창인 로드르프 아쿠아비바(후에 예수회 총회장으로 피선된 클라우디오 아쿠아비바의 동생)와 함께 로마에 가서 먼 거리를 달려온 실바 신부를 맞이하였다. 마침내 마테오 리치는 성안드레아신학원 시절 스승 겸 원장이었던 파비오 신부의 추천을 받아 동방 파견 승인을 받게 되었다. 1577년 5월 18일 마테오 리치는 인도선교단의 예수회 선교사를 따라 로마에서 리스본으로 떠나게 되었다. 리스본 코임브라(Coimbra)대학에서 포르투갈어와 신학을 공부하면서 고아(Goa)로 떠날 선편을 기다렸다. 

1578년 3월 24일 마테오 리치, 루지에리 그리고 같은 수도회 선교사 등 14명은 ‘성루이(聖路易)’호, ‘성그레고리(聖額我略)’호, ‘선한 예수(良善 耶稣)’호 등 3척의 범선에 나누어 타고 리스본을 떠나 고아로 향하였다. 6개월 동안의 항해 중에도 확고한 믿음과 열정을 지키기 위해 경건한 기도 훈련에 정진하였으며, 동시에 일정을 할애하여 천문과 지리 관측 활동도 겸하면서 학구열도 이어갔다. 7월 21일 배가 희망봉을 지나갈 무렵 마테오 리치는 희망봉의 위도가 적도 남쪽 36도임을 측량해 냈다. 9월 13일 마테오 리치, 루지에리, 상데(孟三德, Edouard de Sande) 등은 반년 동안의 긴 항해 끝에 마침내 인도의 고아항에 도착하였다.

 





사진 | 바이두
김종건 | 대구한의대학교 기초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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