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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주> 가족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렇게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신록을 우리에게 주신 창조주를 찬양하며 5월의 인사를 드립니다.
이모저모로 관계가 깊은 나라 지난달에 상하이(上海)에 다녀왔습니다. 상하이의 한 한인교회에서 ‘대한민국과 임시정부’라는 주제로 열린 학술대회의 순서를 맡아서였습니다. 올해는 삼일운동 100년, 임시정부 수립 100년의 해인데, 삼일운동과 임시정부 수립은 기독교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공통점을 안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둘은 또 중국과도 깊은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삼일운동 전후의 여러 일들을 살펴보면 상하이라는 이름이 의외로 자주 나오는 것을 보시게 될 것입니다.
임시정부는 더욱 그러합니다. 당시 임시정부는 상하이를 비롯해서 여러 곳에서 조직되었는데 많은 노력 끝에 ‘통합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출범하게 되었습니다. 그 청사가 상하이에 있었기 때문에 흔히 ‘상해 임시정부’라고들 부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올해 4월에는 상하이를 찾는 분들이 유난히 많았습니다.
중국도 올해 100년을 맞이하는 일이 바로 이 5월에 있습니다. 중국의 근현대사에 큰 영향을 끼친 오사운동이 그것입니다. 중국의 오사운동에 대해서는 <중주>가 2년 전인 2017년 5월호에서 특집기획으로 다룬 일이 있습니다. 그 특집의 제목이 ‘5․4 운동과 기독교-그 백 년을 바라보며’였는데 ‘드디어’ 100년이 된 것입니다. 중국 당국은 매년 오사운동 기념일이 다가오면 긴장하면서 여러 가지 조치를 취하고는 합니다. 30년 전인 1989년에 일어난 톈안먼(天安門)사태가 오사운동 기념일을 전후해서 정점으로 치달은 것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올해는 100주년이 되는 해이어서인지 긴장의 강도가 더 높은 것 같습니다. 중국 국무원은 작년 연말에 2019년의 공휴일을 발표할 때 노동절 휴가가 4월 29일부터 5월 1일까지 3일간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올봄에 이를, 5월 1일부터 4일까지 4일간이라고 정정해서 발표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를 휴가 기간을 늘려 여행 등을 유도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삼일운동은 오사운동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는 당시의 오사운동 지도자들이 이구동성으로 강조했던 사실입니다. 마침 미도(美道)중국선교연구소 소장인 문영걸 박사가 〈기독교사상〉 2월호에 발표한 ‘중국 잡지 속의 3․1운동’이라는 글에 이 점이 자세하게 밝혀져 있으니 참고하셔도 좋을 것입니다. 문 박사는 이 글에서 천두슈(陳獨秀), 리다자오(李大釗), 쉬더헝(許德珩), 푸쓰녠(傅斯年) 등을 비롯한 오사운동의 지도자들은 한결같이 삼일운동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으면서 적극 성원을 보내고, 또 중국은 대한민국을 마땅히 지원해야 할 의무가 있음을 강조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런 일들을 생각하면서 상하이의 거리를 걷노라니, 한국과 중국은 역사적으로 이모저모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피부에 와 닿는 것 같았습니다.
무언탕교회, 웃는 얼굴로 들어갔다가 찡그리고 나오다 상하이의 거리를 걸으며 또 하나 보고 느낀 것은 거리가 깨끗해지고 질서가 잘 지켜지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전에는 요란한 구호들이 거리 여기저기에 큼직하게 나붙어 있었는데 이제는 우의(友誼), 평화(和平) 이런 부드러운 단어들이 작고 예쁘게 디자인되어 붙어 있는 것도 변화라고 여겨졌습니다.
중국은 오토바이가 많은 나라입니다. 그런데 오토바이들이 소음을 전혀 내지 않아 이상하게 여기다가, ‘아, 전기 오토바이들이로구나!’ 알았습니다. 현지 교민 한 분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그 덕분에 미세 먼지가 많이 줄었어요.”라고 하더군요. 그 말을 들으면서 올봄, 미세먼지 문제가 시끄러울 때 미세먼지 저감 문제에 대해 중국이 적극 대처하고 있다는 보도를 여러 번 대한 일이 기억났습니다. 이제 중국이 여러 분야에서 한국을 앞지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상하이에서 교회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상하이에는 한인교회가 30여 개가 있었는데 선교사들의 ‘비자발적 귀국’으로 이제는 일곱 교회만 남아 있다고 합니다. 새삼스럽게 가슴을 아프게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상하이이 밤거리를 걸어 호텔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볍지가 않았습니다. 4월 19일 자 <인민일보>에는 중국 당국이 기독교 탄압의 빌미를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을 강하게 암시하는 기사가 실렸다는 기사가 실렸다는 이야기를 뒤에 전해 들었습니다.
상하이에 갈 때는 될 수 있는 대로 황푸구(黃浦區)에 있는 무언탕(沐恩堂)교회를 찾아가 보고 있습니다. 무언탕교회는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에 따라 1979년에 최초로 문을 연 교회인데 그때의 뜨거웠던 분위기를 전해 듣고 받은 감동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평소에는 무언탕교회에 가도 문이 잠겨 있어서 그 안에 들어갈 수가 없어 아쉬움을 안고 돌아서곤 했는데 이번에는 예배당 안에 들어가서 교인들과 어울릴 수 있었습니다. 제가 찾아간 날은 토요일이었는데 안식교인들의 예배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중국에서는 안식교가 개신교의 한 부분으로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여러 해 전에 선양(沈陽)의 동관(東關)교회에서도 같은 체험을 한 일이 있었습니다. 주일에도 그렇게 하는지 모르겠는데, 웬일인지 정문은 닫혀 있고 옆문, 그것도 작은 문을 통해 교인들이 출입하고 있었습니다. 건강한 젊은이 하나가 문 옆에 서서 돌아가는 신자들을 하나하나 살피며 인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웃음 띤 얼굴이었지만 눈매가 매우 날카로워 보이는 것으로 보아 교역자는 아닌 것 같았습니다.
보고 싶었던 곳에 들어와 볼 수 있었던 것은 참 좋은 일이지요. 그러나 우리의 기준으로는 분명히 정통이라고 할 수 없는 안식교가 이렇게 좋은 대접을 받으며 왕성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들어갈 때는 웃는 얼굴이었고, 나올 때는 저절로 찡그린 얼굴이 되었습니다. 상하이에서의 일을 잘 마치고 돌아올 때도 얼굴을 찡그렸습니다.
저는 가슴에 인공심장박동기가 들어 있어서 공항에서 보안검색을 받을 때는 검색대를 통과하지 않고 박동기 제조회사에서 받은 카드를 제시하고, 촉수(觸手) 검사를 요청해야 합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그리고 우리나라의 국내선 공항에서도, 보안검색요원이 여자일 경우에는 연락을 받은 남자직원이 와서 전신을 샅샅이 훑습니다. 그런데 상하이에서는 여자 안전요원이 아무렇지도 않게 그렇게 하더군요. 이번만 그런 것이 아니고 전에도 같은 일을 몇 번 겪었습니다. 상하이에는 푸동(浦東)과 홍차오(虹橋) 두 국제공항이 있는데 둘 다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무래도 민망하고 어색하지요. 그때마다 ‘사랑하는 중국이 이런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을 써야 진정한 대국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속으로 중얼거리게 됩니다. 중국이 하루속히 웃으며 들어갔다가, 웃으며 나올 수 있는 나라가 되어야 하겠지요.
이번 호는 ‘세계 화인 디아스포라선교-동남아시아 화인 디아스포라선교를 중심으로-’를 기획으로 다뤘습니다. 세계 화인선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문제이고, 이에 대한 관심 또한 꾸준히 커지고 있습니다. 이 기획이 <중주> 가족들에게 큰 유익이 되리라고 믿으며, 귀한 원고를 주신 필자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중국어문선교회는 제주시 제주대학교 근처에서 제주시 구좌읍 김녕로로 센터를 옮겨, 식목일인 지난 4월 5일에 이전 감사예배를 드렸는데요, 새 땅에 뿌리를 잘 내리고 김녕시대를 힘차게 열어가고 있다는 소식도 함께 전해 드립니다. 모두 <중주> 가족 여러분의 기도와 성원 때문인 줄로 압니다.
감사합니다, <중주> 가족 여러분!
사진 | 바이두, 중국 정베이팡왕(正北方網) 유관지 | 중국어문선교회 고문, 본지 발행인. 성화감리교회(분당) 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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