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제5세대 감독인 장이머우(张艺谋)가 연출한 이 영화는 2018년 9월 30일 중국에서 상영되었는데 제75회 베니스국제영화제와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등 국제영화제에서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제55회 대만영화제 진마장(金马奖)에서 감독상, 시각효과상, 미술디자인상, 조형디자인상을 수상하였다. 장이머우는 기존의 무협영화에서 선보였던 화려한 영상 대신에 흑백의 담백함을 추구하여 그의 유미주의 영상 미학에 대한 오롯한 사랑을 보여주었다.
장이머우가 12년 만에 내놓은 무협영화 《무영자》는 《영웅 (英雄)》, 《연인 (十面埋伏)》, 《황후화 (满城尽带黄金甲)》에서 화려한 색상과 웅장미에 치중했던 것에 비해 수묵화의 기법으로 담백한 아름다움을 관객에게 선사하였다.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그의 이전 무협영화에서 다루었던 진나라, 당나라, 오대십국과도 시대적인 차이를 드러냈다. 70세에 가까운 장이머우 감독은 예술에 대한 열정을 여전히 불사르고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을 향해 달리고 있다. 그는 구로사와 아키라(黑泽明)의 영화 《카게무샤 (Shadow Warrior, 1980) 》에서 영감을 받아 중국 고대사에서 대역에 관한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었다.
삼국시대 패(沛)나라 도독(都督) 쯔위(子虞, 邓超 분)는 적국 장군인 양창(杨苍, 胡军 분)에게 패전하여 국토의 일부를 빼앗겼다. 양창과의 결투에서 중상을 입은 쯔위는 그와 용모가 흡사한 대역인 징저우(境州, 邓超 분)를 내세워, 양창에게 복수하고 빼앗긴 국토를 수복하였다. 하지만 쯔위는 자신의 부인 샤오아이(小艾, 孙俪 분)와 징저우의 불륜을 의심하여 징저우를 처단하고 국왕을 시해하고자 하였다. 분신(分身) - 잊혀진 자아 ‘티선(替身)’은 대리인, 대역이란 의미인데 남을 대신하여 책임을 지거나 벌을 받는 사람을 지칭하는데 희생양을 뜻하기도 한다. 중국의 저명한 청대 소설 《홍루몽 (红楼梦)》에는 부잣집에서 돈을 주고 대역을 사서 병을 치유한다는 풍속을 소개하고 있다. 쯔위의 아버지가 암살을 당하자 숙부는 어린 조카를 보호하기 위해 쯔위와 비슷한 나이의 가난한 아이를 데려다 쯔위의 티선 즉 대역으로 삼았다. 징저우는 과거와 현실, 그리고 신분의 현격한 차이로 인한 정체성 문제에 시달렸고, 그는 도독인 쯔위의 역할 뿐만 아니라 쯔위의 아내에게 남편으로 행세하면서 언제나 신분이 노출될까 전전긍긍하였다.
징저우는 어려서 배고플 때 음식을 주고 양육해 준 쯔위 가문에게 보답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어떠한 굴욕이나 고통도 감내하겠다고 다짐하였다. 쯔위는 은밀히 도독의 역할을 하는 대역에게 잃어버린 국토의 지명을 딴 징저우란 이름을 지어주었다. 징저우는 자신에게 필요하고 적합한 이름도 없이 들풀처럼 지냈고 주인의 야심을 채우기 위해 희생을 기다리는 하찮은 존재였다. 하지만 징저우의 유일한 꿈은 장님이 되어서도 사람들이 오가는 길가에서 돌아오는 아들의 발걸음 소리를 기다리는 어머니를 찾는 것이었다. 그는 주인 쯔위가 자신의 어머니를 정성껏 돌봐주고 있다고 믿었다. 그림자의 이중성 영화에서는 티선을 빛과 어둠의 양면성을 지닌 그림자로 불렀다. 사람들은 지위나 빈부에 상관없이 현실과 이상의 부조화로 인하여 갈등을 겪는다. 쯔위는 양창과의 결투에서 입은 상처로 몸이 점점 쇠약해졌는데도 도독이라는 신분의 멍에를 지고 야망과 복수심으로 인해 파멸의 길을 향해 달려갔다. 징저우는 쯔위를 대신해 도독으로 가장하며 국왕과 부하들 앞에서 강인한 장수의 모습으로 행세하다가, 홀로 있을 때는 어머니를 만날 날을 기다리며 외로워하는 연약한 존재였다. 징저우는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대역 신분이 노출되지 않기 위해 적장인 양창의 청룡언월도(靑龍偃月刀)에 부상을 입은 주군 쯔위처럼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서 밤마다 고통스러워 신음하였다. 쯔위의 부인 샤오아이는 양창과의 결전을 앞둔 징저우에게 도망치라고 당부하였다. 징저우는 그녀의 애틋한 감정을 이해하고, 죽음을 예견하였지만 스스로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없었다. 어느 날 국왕이 궁에서 샤오아이에게 거문고 연주를 강요하자, 그녀는 빼앗긴 국토를 수복하기 전까지는 연주하지 않겠다고 남편과 맹세를 했다고 거절하였다. 하지만 국왕의 강압에 못 이겨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연주를 마치고 칼로 자신의 손을 단지하려고 하자, 징저우는 그녀에게서 칼을 빼앗아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버렸다. 징저우와 샤오아이는 주인과 하인이라는 주종관계였지만 상대의 고통과 아픔에 공감하고 위험을 무릅쓰고 상대를 구해내려고 하였다. 두 사람은 부부 행색을 하는 거짓 부부이지만 서로를 존경한 반면 쯔위와 샤오아이는 공식적인 부부였지만 쯔위는 늘 아내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사람들은 세상에서 화려하고 강한 모습 혹
은 성공한 모습을 과시하지만, 혼자 있을 때는 과거와 현실에 대한 불만과 회한으로 내적인 갈등을 겪는다. 영화 속 인물 형상에서 나타나는 빛과 그림자의 이중성은 고스란히 장이머우의 일생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장이머우의 아버지는 장제스(蔣介石)이 교장으로 있던 황포군관학교 출신이고 어머니는 대지주의 딸이었기에, 장이머우는 문화대혁명 기간에 정치적인 핍박을 받았지만 인생의 어두운 터널에서 좌절하지 않고 촬영이란 예술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는 현재 세계적인 감독의 반열에 올랐지만, 출신성분과 산아제한정책의 위반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낙인이 찍힌 아픈 과거를 안고 살면서도 묵묵히 영화 예술에 혼신의 노력을 다하였다. 탐욕의 일상 인간은 삶의 빛과 어두움의 양면성에 갈등하고 고통스러워하며, 내면의 욕망을 제어하지 못해 이미 마비가 되어버린 습관이나 일상에 젖어 심각한 비극을 초래하기도 한다. 이 영화는 욕망에 깊이 빠진 자들과 욕망을 엿보는 자들의 군상을 신랄하게 적시하였다. 쯔위는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징저우와 부하 장수들에게도 천명했지만 내심 왕위를 호시탐탐 노리고, 자신을 척살하라고 명한 왕을 칼로 베었다. 그는 아내 샤오아이와 징저우 두 명이 멀리 떠나 행복하게 살라고 마음에 없는 말을 하면서 징저우가 등을 보인 틈을 노려 칼로 찌르려고 하였다. 쯔위는 개인의 복수심을 충심이라 말하고, 병약하면서도 야심을 키우고, 소중한 것을 미끼로 상대를 조종하였다. 국왕 페이량(沛良, 郑恺 분)은 적국과 내통하는 신하를 묵인하면서 그를 우롱하였고, 자신의 허물을 신하에게 뒤집어씌웠다. 국왕은 병약해진 도독 쯔위가 대역 징저우를 내세운 사실을 모른척하면서 징저우의 약점을 이용하여 정치적인 우환을 제거하려고 하였다. 국왕은 서로 반목하는 자들 속에서 사익을 추구하였고 적국의 장수 양창에게 자신의 여동생을 첩으로 시집보내려는 흑심도 품었다. 국왕은 국가의 안위를 위한다고 전쟁을 결사반대하고 거역하는 자는 참수하거나 직위 해직시켰고 궁중에서 술과 여자, 예술을 탐닉하면서 무능하고 유약한 왕으로 행세하면서 가족과 신하를 자신의 권좌를 지키기 위한 희생물로 삼았다. 공주 칭핑(青萍, 关晓彤 분)은 오빠인 국왕의 화친정책에 불만을 품고 돌격대에 합류하여 양창의 아들 양핑(杨平, 吴磊 분)과 결전을 벌이다 중상을 입고서도 칼로 양핑을 찔렀다. 칭핑은 약혼의 정표인 칼로 자신에게 첩이라는 굴욕을 안겨 준 양씨 가문에게 앙갚음하였다. 사실 칭핑과 양핑 두 사람은 서로 모르는 사이인데, 애꿎게 복수의 희생양이 되었다. 징저우는 자신의 어머니를 죽이기 위해 자객을 보낸 쯔위를 처단하고, 또한 쯔위에게 칼을 맞은 국왕을 고통스럽게 죽인 후 궁전의 문을 나서 쯔위가 국왕을 시해했다고 신하들에게 선포하였다. 샤오아이는 쯔위의 살육장면을 목격하고 몸서리를 쳤지만 문으로 달려가다 발길을 멈추었다. 영화의 결말에서 피해자는 다시 가해자가 되고 혹은 방관자로 변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징저우와 샤오아이는 어쩌면 또 다른 욕망의 문을 열게 될지 모른다. 징저우는 도독의 자리를 차지하고 심지어 국왕의 권좌를 넘보려하고 샤오아이는 내심 왕비의 자리를 꿈꿀 수도 있다. 치유와 회복의 갈구 영화 속 군상은 추악함, 배신, 음모, 위선, 잔인성 등으로 물들여졌다. 장이머우 감독은 선혈이 낭자하는 장면을 흑백으로 엷고 깊게 처리하였고 그 사이로 비 내리는 날의 산수화, 태극문양의 조화로움, 부드러운 격투 신이 펼쳐져 자연의 풍경과 흑백의 아름다움으로 인간의 연약함을 감쌌다. 매순간 온갖 욕망이 난무하는 현대 사회에 우리 내면의 허물을 벗겨내고 위로해 줄 신실한 말과 영원한 존재가 필요하다.
김영철 | 한양대학교 중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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