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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4 통권 196호     필자 : 김영철 프린트   이메일 
[중국 영화]
《불사조의 노래 (百鸟朝凤, Song of the Phoenix)》
-예술혼과 단절-


중국의 제4세대 감독 우톈밍(吴天明)의 유작인 《불사조의 노래》는 2016년 5월 6일 중국에서 상영되었고, 제3회 마카오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 수상을, 제29회 중국영화제 진지장(金鸡奖)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하였다. 우톈밍은 1994년 영화 《변검(变脸)》으로 제9회 동경국제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하며 유명세를 탔다. 이 영화의 원작은 샤오장홍(肖江虹)이 2009년 《당대(当代)》잡지에 발표한 동명소설이다. 

영화는 전통악기 쒀나(唢呐)의 계승자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었다. 산시(陕西)성 우솽진(无双镇)에 자오싼(焦三, 陶泽如 분)은 민속악기인 쒀나 연주자로 자오씨 악단을 이끌고 혼사나 장례 등 마을의 행사에 참석하였다. 자오싼은 노년에 접어들자 유톈밍(游天鸣)과 란위(蓝玉) 두 어린 제자를 거두었지만 후계자는 한 명만 세운다는 전통 때문에 란위는 떠나고 톈밍이 악단을 이끌게 되었다. 서양 악기가 지방에 침투하고 사회와 시대가 변모하며 단원은 한 두 사람씩 이탈하고 스승마저 폐암에 걸리자 젊은 지도자 톈밍이 이끄는 전통악단은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된다.


고독과 궁핍

북송시대 구양수는 “시인이 곤궁하고 뜻을 펼치지 못할 때 그의 시(詩)가 후세에 전할 만한 명문이 된다”라는 시론을 펼쳤다. 예술가는 일상적인 틀과 관습을 거부하며 고독으로부터 창작의 자양분을 흡수하였다. 그는 자신과 동시대인과 경쟁하고 더 나가 선대의 성과를 뛰어넘어야 한다고 하였다.
 

열 살 정도밖에 되지 않는 어린 제자는 장인(匠人)의 집에서 기거하며 엄격함과 긴장감 속에서 기술을 전수받았다. 전통악기 쒀나는 13살 이전의 어린 아이에게만 전수시킬 수 있었다. 이 영화의 주인공 톈밍은 아버지의 손에 억지로 이끌려 가족과 헤어져서 외로움과 싸우며 고된 훈련을 견뎌야 했다. 톈밍은 쒀나를 불 때 긴 호흡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물가에서 긴 빨대로 물을 빨아들이는 연습을 했는데 이러한 혹독한 훈련은 온종일 그리고 몇 달간 지속되었다.

 

 


자오싼 부부는 두 명의 자식을 잃은 뒤 제자를 친 자식으로 삼아 엄하면서도 자애롭게 대하였다. 톈밍은 비가 오는 데도 여느 날 같이 물가에서 물을 빨아들이는 연습을 하는데 스승과 사모는 우산을 들고 가서 톈밍을 집으로 데려왔다. 후계자는 한 명만 세운다는 원칙하에 톈밍과 란위는 선의의 경쟁을 펼치지만 란위는 결국 선택을 받지 못하자 울면서 떠났다. 스승은 아내에게 밭에 일 나간다고 핑계를 대며 란위가 떠나는 뒷모습을 차마 쳐다보지 못했다. 스승은 공연이 없는 평일에는 농사를 짓고 소를 키우며 고구마와 한두 가지 반찬으로 식사를 때웠다. 그는 대를 이어 결혼, 장례 등 마을의 중요한 행사에서 공연을 하고 사람들에게 위로와 기쁨을 선사하여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지만 생활은 넉넉지 못했다. 국가가 공인하지 않고 정부의 지원도 없는 민속 예술 분야에 종사하는 예술가들은 생활의 궁핍을 스스로 감내해야 했다.


천인합일의 예술


예술은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작업이다. 동서양의 문인은 예술의 기원을 자연의 모방으로 보았다. 노자(老子)가 “도는 자연을 모방한다(道法自然)”라는 화두를 던진 이후, 중국 전통 예술인은 조탁하는 인공미를 벗겨내고, 자연(自然)과 평담(平淡)을 추구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았다. 영화의 자오싼은 자연을 최상의 소리로 여겼다. 그는 악기와 풀잎으로 온갖 새소리를 모방하고 새들이 그의 소리에 지저귀며 화답하였다. 이는 사람과 자연이 하나가 되는 천인합일의 경지를 선보였다. 제자들에게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수풀 속에서 지저귀는 새들을 구분해보라고 하였다. 아이들은 꾀꼬리, 뻐꾸기 등 새 이름을 하나하나 열거할 때마다 그들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스승은 어린 두 제자를 위해 마을 주민들 앞에서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뽐내는 시간을 마련했다. 란위는 기교 높은 연주를 선보여 청중의 박수를 받았다. 하지만 톈밍은 쒀나로 온갖 새의 울음소리를 연주하였고 암탉이 알을 낳을 때 내는 소리마저 리얼하게 흉내를 내어 마을 주민들의 웃음과 갈채를 동시에 받았다. 란위가 연주 기교에서 톈밍보다 한 수 위였지만 스승은 톈밍을 수제자로 점찍었다. 스승은 뛰어난 기교보다 자연스러움을 중시하였다. 그의 태도는 기교를 부리지 않고 자연미를 추구하는 중국 전통 미학사상을 구현한 것이다.
 


 

예술가의 존엄

공자는 문질빈빈(文質彬彬)이라 말하며 문채와 바탕의 조화를 중시하였다. 이는 문장과 인품을 의미하며 예술의 실천을 중시하고, 문장에 도를 싣자는 문이재도(文以載道)의 관념으로 발전하였다. 중국 문인은 인품을 그림, 서예, 문장 등 다방면의 예술에 접목하였다. 중국 문예론에서 예술을 인품과 결부시키는 주장은 오랫동안 문단의 주류로 자리를 잡았다. 이 영화도 이런 시선과 궤를 같이하여 예술인에게 세류에 휩쓸리지 않는 기개와 전통문화 계승에 대한 자긍심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영화의 중국어 제목인 백조조봉(百鸟朝凤)은 수많은 새가 새 중의 왕인 봉황새를 알현하는 모습을 상상한다는 것으로 덕망 높은 이를 추앙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또한 백조조봉은 곡조 이름으로, 평생 덕을 쌓아 주위 사람들의 인심을 얻은 이의 삶과 영혼을 칭송하는 장송곡이다. 이 곡의 연주법은 오직 한 명의 수제자에게만 전수하는 전통이 있다. 자오싼은 스승의 스승 그리고 몇 백 년 동안 전수받은 악기와 연주법을 톈밍에게 건네주기로 결심하였다.
 

상주와 수많은 하객, 친척이 자오싼 스승에게 무릎을 꿇고 백조조붕의 연주를 간청하였다. 사부는 망자가 40년간 이장을 했어도 평소의 인품을 문제 삼아 거금의 유혹을 뿌리치며 거절하였다. 자오싼은 연주는 다른 이에게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연주한다고 말했는데, 이는 예술인은 영혼이 청정해야 청중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의미이다.
 

란위가 톈밍을 꼬드겨서 함께 담배를 피우다가 잠들었는데 담배꽁초 불씨 때문에 화재가 발생하여 톈밍은 란위의 쒀나를 챙겨주다가 자신의 악기는 오히려 재로 변했다. 이 일로 인해 화가 난 스승은 처음으로 톈밍에게 체벌을 가하였다. 왜냐하면 톈밍이 사제간에 대대로 전달해온 소중한 악기를 입에서 떼어놓거나 손에서 떼어서는 안 된다는 엄격한 규율을 어겼기 때문이었다.
 

언젠가 톈밍은 스승에게 자신의 아버지가 스승 앞에서 표주박으로 아들 엉덩이를 때리는 것을 불쌍히 여겨서 자신을 제자로 받아주셨냐고 물었다. 스승은 톈밍의 아버지가 급히 달려가 스승에게 인사하려다 넘어지자 톈밍이 아버지를 일으켜 세우면서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고 그를 제자로 받아주기로 마음먹었다고 대답하였다. 스승은 우애와 효성 등 전통적인 윤리관으로 톈밍에게 장인이 될 자격을 부여하였다. 이 영화는 연주자의 삶과 세태를 고달프고 안타깝고 애절하지만,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유머스럽고 그리고 풍자적으로 절제 있게 표현하였다.
 

예술의 단절

과거에 추앙받던 전통예술은 개인과 시대의 변화에 따라 설자리를 잃어가자, 스승 자오싼은 전통문화예술이 단절되는 위기를 지적하고 ‘절종’(絶種), ‘단종’(斷種)이란 말을 반복해서 언급하였다. 젊은 예술인들은 현실 생활의 궁핍을 이기지 못하고 시류에 휩쓸려 전통예술과 멀어져갔다.
 

자오싼은 스승이 전해준 쒀나 악기들을 자신의 최고 보물로 여겼다. 이 소중한 악기를 훼손하는 것은 전통과의 단절을 상징한다. 란위가 담배를 피다가 남은 불씨로 스승이 톈밍에게 전수한 악기가 소실되었다. 젊은 주인집 사람들이 서양 관현악단의 공연에 비하여 톈밍과 그의 악단 연주를 하찮게 여겨서 시비가 붙어서 몸싸움 도중에 쒀나 악기가 사람들의 발에 짓밟혔다. 영화는 사람들이 돈 같은 물질적인 것으로 예술을 폄하하는 것을 풍자하였다. 축제날에 주인은 연주에 몰입하고 있는 톈밍과 단원들에게 돈 봉투를 찔러주면서 연주를 방해하였다. 톈밍은 자신이 받은 돈을 단원들에게 나눠 주고 일어섰다. 세태가 예술에 대한 최소한의 예절도 모른다고 풍자하였다.
 

 


톈밍과 단원들이 초청받은 저택에서 연주를 하고 있는데 축제를 주관한 주인의 집에서 따로 관현악단을 부르고 섹시한 복장의 여자 가수가 노래를 부르자, 관객들은 관현악단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는 중국의 전통음악이 유행음악과 서양음악에 밀려서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음을 풍자하였다. 또 톈밍의 아버지는 어린 자식을 억지로 스승에게 끌고 가서 제자로 받아달라고 간청을 했었지만, 아들이 정작 계승자가 되어서 생활이 궁핍해지자 자식에게 다른 일을 알아보라고 권하였다. 단원들은 연주 생활로 생계가 힘들어져 하나둘씩 고향을 등지고 도시로 나가서 공사장의 인부로 생활하였다. 
 

스승은 어느 장례식에서 제자 톈밍이 병이 나서 연주를 할 수 없자 대신 백조조붕을 연주하다가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사부는 폐암 말기를 선고받고 약값은 아끼면서도 집에서 키우던 소를 판 돈을 제자 톈밍에게 건네며 악단을 이끄는 데 보태라고 하였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소설보다는 비애의 정도가 덜하다. 쒀나 왕 자오싼이라 쓰여진 묘비 앞에서 톈밍이 홀로 백조조붕을 연주하며, 스승이 연주를 듣고 있는 환상을 보았다. 스승은 미소를 지으며 가벼운 걸음으로 떠났다. 톈밍은 도시로 가서 예전 단원을 모아서 다시 시작하려고 했지만 결국 홀로 돌아왔다. 톈밍은 스승과 한 맹세를 지키기 위해 아버지와 동료들의 권유를 뿌리치고 외로운 쒀나 장인으로 남기로 하였다. 톈밍은 전통문화를 지키는 훌륭한 제자이지만 과거 스승이 받았던 사람들의 존경심을 받지 못했다.
 

소설에서 마지막 장면은 기차역 밖 커다란 광고판아래서 옷이 남루한 늙은 걸인이 쒀나로 백조조붕 곡을 연주하는데 그 소리가 한밤에 처량하기 그지없다고 묘사되었다. 백조조붕을 연주하는 걸인은 스승 자오싼과 제자 톈밍의 무기력한 현재의 모습을 여과 없이 투영하였다. 전통문화예술은 개인의 노력만으로 보존이 어려워 사회와 국가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민속문화뿐만 아니라 예술영화도 상업영화에 밀려 대중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이 영화는 중국영화기금회와 하이얼(Haier)그룹의 지원을 받았지만 정작 영화를 상영하려고 할 때는 여러 난관에 봉착하자 영화 제작자는 무릎을 꿇고 상영관과 상영 횟수를 늘려달라고 호소하였다.
 

이 영화에서 현(縣) 정부 문화국 부국장이 쒀나 공연을 무형문화유산인 민속문화로 보존하기 위해 녹음을 제안하자, 스승은 병든 몸에도 감격스러워 했다. 톈밍은 시안(西安) 도시로 단원들을 찾으러 갔지만 란위는 공사장에서 손가락이 잘렸고, 또 다른 단원은 기와공장에서 진폐증에 걸려서 더 이상 연주할 수가 없었다. 이 영화는 제13회 정신문명건설(精神文明建设) “오개일공정(五个一工程)” 영화부문에서 우수작품상을 차지하였다. 중공중앙선전부(中共中央宣传部)에서 수여한 상은 갈수록 쇠퇴해가는 전통문화유산 보호에 힘을 실어주었다.
 

동서양 철인(哲人)은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라고 말했고, 장자는 “우리의 삶은 끝이 있지만 앎은 끝이 없다”라고 했는데 유한한 인생으로 끝없는 예술의 경지를 추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고로 생명의 한계를 지닌 예술가는 제자나 후대가 전통문화예술을 계승해 주길 기대하는 것이다. 《장자(庄子), 양생주(养生主)》에서 유래한 ‘신화상전(薪火相传)’이란 말은 타고 남은 장작의 불씨를 전해준다는 의미이다. 이는 비록 형체는 사라져도 정신은 살아남듯 예술의 정신과 기교를 후대에 전승하는 것을 의미한다. 무대에서 전통예술의 불꽃을 피우는 젊은 예술인을 만나보자.

 






 

사진 | 바이두
김영철 | 한양대학교 중국학과 교육전담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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