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5-6년 사이에 중국선교사들이 비자를 발급받지 못해 사역을 내려놓고 비자발적으로 출국을 하거나 추방을 당하는 경우가 급증하고 있다. 선교활동 중에 갑자기 들이닥친 중국 정부 관계자와 공권력에 의해 취조를 당하고 급거 귀국한다. 며칠간의 말미라도 있을 때는 지금까지의 사역을 대충이라도 정리하여 철수할 수 있다. 이것도 여의치 않을 때가 있다. 하루, 또는 그 즉시 떠나야 하는 긴박한 철수도 비일비재하다. 어떻게 할 방법도 시간도 없이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들은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도 어려움을 겪는다. 비자발적 출국은 선교 사역의 어려움뿐만 아니라 선교사 자신과 가족들의 심리적 압박과 현실적 어려움도 크다. 그렇기 때문에 이에 대한 총체적인 상황파악과 대책을 세우는 모임들이 있었고 많은 연구결과들이 발표되고 있다.
필자는 비자발적 출국선교사가 추방 과정에서 겪은 내적 어려움을 어떻게 치유받고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게 되었는지에 대해 필자의 경험을 중심으로 간단히 나누고자 한다.
사역의 한계를 넘기 위해 때로는 위험을 무릅쓰고 돌파를 시도해야 할 때도
중국! 나의 3-40대를 전부 드린 곳, 돌아보면 우여곡절이 참 많았던 땅이다. 하나님의 위로와 함께 현지교회의 형제자매들과 함께하는 기쁨도 있었지만 때로는 거대한 절벽 앞에 서 있는 것 같은 절망감을 느낀 적도 있다. 때로는 마음의 상처로 인해 혼자 가슴앓이를 하며 보낸 적도 많다. 그러나 사역을 하면서 늘 마음을 놓지 못하게 만든 것은 신분노출의 위험이었다. 그래서 그 긴장이 풀리지 않을 때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하고는 했다. 잠수함이 바다 밑 깊숙이 항해하는 모습을 생각으로 그린다. 이 잠수함이 바다 밑 깊숙이 항해를 할 때는 레이더에 포착되거나 들킬 위험이 낮다고 한다. 그러나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수면 가까이 올라올수록 위험에 노출될 확률은 점점 높다고 한다. 그러나 잠수함은 안전만을 위해 항해하는 것이 아니라 조심은 하되 결정적인 순간에는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노출의 위험을 무릅쓰고 수면으로 부상해야 한다. 이것이 잠수함이 항해하는 이유이고 목적이기 때문이다.
보안지역에서 선교하는 선교사들도 이와 상황이 흡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선교지에서 처음에 타문화에 익숙해지고 언어를 배우며 생활습관에 적응하는 기간에는 대체적으로 신분과 사역이 표면에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현지어가 어느 정도 유창하게 되고 사역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 스스로가 조심도 하지만 자연스럽게 어쩔 수 없이 신분과 사역의 노출이 많아지게 된다. 그렇다면 가장 안전한 방법은 무엇이겠는가. 아무런 사역도 하지 않고 누구도 만나지 않고 그냥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하기 위해 조국을 떠나 선교지로 간 것은 아니다. 따라서 사역의 한계를 넘기 위해 때로는 위험을 무릅쓰고 돌파를 시도해야 할 때도 있다.
이런 시도를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사역자에 대한 노출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사역과 신분이 노출된 결과, 추방으로 연결될 수 있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힘든 선교현장에서 오랫동안 계시는 분들이 사역을 열심히 하지 않았다는 그런 말은 결코 아니다.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도 지혜롭게 힘든 상황을 잘 이겨나가며 사역하는 분들이 아직도 많이 있다. 한 번은 어떤 지역으로 사역하러 갔다가 그만 현장에서 공안들에게 잡히고 말았다. 공안들은 여권을 빼앗고 그 여권으로 신분조회를 했다. 비자를 발급받은 곳은 어디며, 하는 일은 무엇인지 꼬치꼬치 취조를 받았다. 자신들이 원하는 만큼 정보를 얻은 뒤에야 나를 가게 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비자의 적을 두고 있는 회사 사장한테서 연락이 왔다. 다행히 중국 사장이 잘 설명하여 돌려보냈다는 소식을 듣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 적도 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 후에 다시 몇 차례의 어려운 상황을 겪는 가운데 결국 견디지 못하고 비자발적 출국을 당하게 되었다. 홍콩 세관에서 여권에 찍은 비자거절 스탬프를 보니 한참동안 마음이 답답했다. 어떤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추방은 복음을 위한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별을 달았다고……. 그런데 막상 그 당사자는 이 말이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도리어 자신이 실패자같이 느껴진다. 지금 나에게 일어난 일이 내일 같지가 않다. 마음으로 받아들여지지가 않는다. 그저 마음이 답답하고 가슴이 먹먹해서 일이 제대로 손에 잡히지 않는다. 상황을 어떻게 정리하고 수습하며 나아가야 할지 판단도 제대로 서지 않는다. 서운한 마음도 들고 오갈 데 없이 갇혀있다는 생각까지 든다. 가만히 있다가도 곰곰이 상황을 생각하면 불안함이 엄습해오기도 한다. ‘겉으로 보면 중국 정부가 우리를 쫒아낸 것이지만 공중에 나는 새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현지에 두고 온 사역과 영혼들 때문에 마음이 무겁고 쓰리다. 마치 엄마가 젖 뗀 아이를 두고 온 것같이 마음이 아리기까지 한다. 때로는 가고 싶어도 못가는 그 땅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린다. 몸은 여기, 마음은 저기... 그래서 애써 씩씩한 척, 별 일 아닌 것처럼 생각해도 소용이 없고, 여전히 아픈 마음은 그대로였다. 이런 일을 만나면 머리로는 바울처럼 그렇게 씩씩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때로는 “추방! 그거 꽤나 긴장감 넘치는 거 아니냐며” 너스레를 떨 때도 있었다. 그러나 너스레는 너스레일 뿐... 그 어떤 것도 그때는 효험이 없었다. 학자들은 이것을 일시적인 패닉 현상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우리 부부는 서로의 마음을 나누고 위로하며 함께 기도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것이 우리 부부에게 큰 힘이 되었다. 또 주위의 지인들이 관심을 가져주고 먼 곳에서 찾아와 격려해주는 분들을 통해 많은 위로가 되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뭔가 부족했다. 그렇게 무거운 마음으로 힘들어 하며 기도하던 어느 날 문득 이런 마음이 들었다.
‘겉으로 보면 중국 정부가 우리를 쫒아낸 것이다. 하지만 공중에 나는 새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전체적인 큰 틀에서 보면 하나님이 허락하셔서 나오게 된 것이다. 청년의 때 나에게 중국선교의 비전을 주신 주님께서 나를 중국에 보내주셨다. 비록 부족했지만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고 중국의 한 모퉁이를 섬기게 인도해주셨다. 그 주님께서 여기로 나를 다시 나오도록 허락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 주님께서 지금도 나와 함께하신다. 그 주님께서 앞으로도 가장 선한 길로 나를 인도하실 것이 아닌가! 그러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고 충분한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내가 이렇게 힘들어 하고만 있어서는 안 되겠구나! 이렇게 생각이 정리되고 확신이 들자 답답한 마음이 탁 트이면서 회복되기 시작했다. 힘이 생기고 그때부터 내가 어떻게 상황을 처리하며 무엇을 해야 할지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상황은 변한 것이 하나도 없었는데 나의 생각이, 나의 마음이, 나의 관점이 바뀌자 너무나 많은 것들이 바뀌기 시작했다. 물론 당연한 것이겠지만, 이 과정에서 깨달은 것은 하나님의 위로 가운데 주님의 시각으로 상황을 바라보는 눈이 빨리 열리는 것이 매우 중요함을 깨달았다. 비자발적 출국선교사, 그는 실패자인가? 아니면 새로운 선교의 장으로 인도받고 있는 자인가? 사도행전을 보며 추방을 통해 도리어 선교 사역의 장을 넓혀가게 인도함을 받은 바울을 보며 비자발적 출국선교사는 실패자가 아니라 새로운 선교의 장으로 인도함을 받고 있는 자임을 확신한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통해 비자발적 출국을 당한 자들을 대할 때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몇 가지 적어본다. 첫째, 초기단계에서는 그들을 만나 그들 자신의 마음속 이야기를 충분히 할 수 있게 들어준다. 둘째, 최대한의 행정적인 배려와 휴식과 훈련의 기회를 주고, 재정적인 지원을 한다. 셋째, 혼자 오랫동안 격리되지 않게 하고 정기적으로 교제를 한다. 넷째, 현지 사역에 대한 관리와 평가에 대해서는 안정을 취한 뒤에 적절한 시간을 내어 하게 한다. 다섯째, 선교본부와 재배치에 대한 전체적이며 구체적인 정보교환을 초기단계부터 논의한다. 비록 어렵겠지만 그 가운데서도 여전히 주님을 바라보며 나아가는 비자발적 출국선교사들은 좀 시간이 흐른 뒤 어느 날 자신을 돌아보며 이렇게 고백하게 될 날이 오리라 확신한다.
“주님께서 추방이라는 사건을 통해 저를 더 성숙하게 해주시고 저보다 저를 더 잘 아시는 주님께서 가장 선한 길로 여기까지 인도해주셨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에 게재된 글을 저자의 허락을 받아 수정, 보완하여 싣습니다.
김평화 | 중국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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