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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7.4 통권 191호     필자 : 이요한 프린트   이메일 
[특집] - 특집/ 중국선교의 어제와 오늘
중국선교의 위축 요인과 대응 방향

[편집자주] “2018 세계선교대회 & 7차 선교전략회의의[NCOWE VII]” 지난달 6월 18일에서 21일까지 부산 수영로교회에서 “함께, 그날까지(TOGETHER TILL THE DAY)”라는 주제를 가지고 열렸습니다. 그 가운데 중국 권역에서 다룬 내용을 이번호 웹진 <중국을주께로>에 ‘특집’으로 소개합니다. 이를 허락해주신 필진들께 감사드립니다. 독자 여러분께는 ‘중국선교의 어제와 오늘’에 대해서 더 깊이 있게 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한국교회가 본격적으로 중국선교를 시작한 것은 1992년 한·중수교를 맺게 되면서부터였다. 채 30년이 안 되는 기간 동안 중국선교의 사역 전반에 걸쳐 한국인 특유의 저돌적 선교를 수행해 왔다. 기존의 방송선교를 필두로 교회건축사역, 지도자훈련사역, 신학교사역, 교회개척사역, 유년주일학교사역, 의료사역, 학원사역, 공단사역, 문서사역, 국제학교사역, 농아사역, 탈북자사역, 중국인유학생사역, 중국소수민족사역 등 다양한 사역들이 때로는 독립적으로, 때로는 연대를 통해서 전개되었다. 그 과정에서 과오도 적지 않았으나 중국교회가 1억 성도로 성장하는 데 큰 기여를 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비공식 통계에 따르면 한때 중국 주재 한국선교사가 5천 명이 넘었다고 하니 그 열기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한국교회의 중국선교 열기가 최근에 빠르게 식어가고 있는 것 같아서 걱정이다. 선교사 숫자의 급감은 물론 사역의 내용면에 있어서도 역동성이 크게 떨어지고 있음을 본다. 그런가 하면 한국교회의 일각에서는 중국선교의 시대는 끝났다고 보고 지원을 중단함에 따라 중국선교가 크게 위축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본 발제에서는 한국교회 중국선교의 위축 요인을 분석하고, 현 상황에서 한국교회가 감당해야 할 전략적 사역이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한국교회 중국선교의 위축 요인
한국교회 중국선교의 위축 요인으로는 외부적 요인과 내부적 요인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외부적 요인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무엇보다 시진핑 정부의 강경종교정책의 영향이 컸다. 중국의 종교 정책은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정책을 취하면서 비교적 온건한 기조를 띄었다. 특히 후진타오 정부의 10년간은 가정교회에 대한 정부 대응이 소극적이어서 중국교회가 크게 발전할 수 있었다. 그러던 것이 시진핑 정부가 들어서면서 저장성(浙江省) 원저우(温州)를 중심으로 교회탄압이 노골화가 되더니 시진핑 정부 2기 시작과 함께 교회탄압 기조가 전국으로 확산되는 동시에 선교사가 대량 추방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시진핑 정부의 강경종교정책은 최근 노골화한 시진핑의 장기집권 계획을 고려할 때 적어도 시진핑 정부 3기까지는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향후 10년간은 가정교회와 선교사 탄압이 계속될 것이다. 혹시 그동안 가정교회에 대한 탄압강도가 약화될 가능성도 있겠으나 외국선교사들에 대한 감시와 탄압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둘째, 역설적이게도 중국교회의 성장과 중국 사회의 발전이 한국교회의 중국선교를 위축시킨 측면이 있다. 중국교회는 지난 30-40년간 폭발적인 성장을 하였다. 비공식 추산이지만 교세 면에서 1억 성도로 성장하였을 뿐 아니라 최근 10년간 신흥도시가정교회가 폭발적으로 성장함에 따라 교회개척, 지도자 훈련이나 신학교육 등 그동안 선교사들의 도움에 의지하던 영역에서 상당한 자체적 역량을 갖추게 되었다.

따라서 이 사역들을 주력 사역으로 하고 있던 한국선교사들의 입지는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중국 사회가 발전하고 그만큼 경제 수준이 높아지면서 생활비가 급등한 점도 중국선교 위축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 되고 있다. 한국교회의 선교비 지원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거주비나 교육비가 급등하는 것을 견뎌낼 수 있는 선교사는 많지 않을 것이다. 특히 후원체제가 확실히 갖추어지지 않은 독립선교사의 경우에는 경제적 압박이 자발적 선교지 철수의 주요 요인이 되고 있다.


한국교회 중국선교의 위축을 가져온 내부적 요인
첫째, 선교사 노령화와 독립선교사의 높은 비중이 중국선교의 위축을 가져왔다. 중국선교사들의 대부분은 70년대에서 90년대 사이에 선교에 헌신한 분들이다. 이 시기는 한국교회의 부흥 시기로서 30세 전후의 젊은 중국선교 헌신자들뿐 아니라 중년층 헌신자들도 많았다. 특히 중국의 경우에는 초기에 조선족 선교가 활발했기 때문에 중년층 선교사들이 많았다. 그들 중 상당수는 교단이나 선교기관의 파송을 받지 않고 몇몇 교회나 친지의 지원으로 사역하는 이른바 독립군, 즉 독립선교사였다.

우선 이들이 조선족 사역의 퇴조와 함께 대거 철수하게 되었다. 또한 교단이나 선교기관의 정식 파송을 받은 선교사의 경우에도 2000년 이후 신규 중국선교사의 지원이 크게 줄어들면서 중국선교사의 노령화가 가속화하였다. 이것은 그만큼 사역의 역동성과 혁신성을 떨어뜨려 결국 중국선교의 위축을 초래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앞으로 가면 갈수록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둘째, 한국교회의 중국선교에 대한 의지와 역량의 약화가 중국선교의 위축을 가져왔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한국교회는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성장이 멈추었다가 지금은 교세가 한 해가 다르게 약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거기에 따라 한국교회의 주축이었던 부흥세대가 본격적으로 직장에서 은퇴하면서 교회 재정이 크게 약화되고 있다. 선교는 사명이나 의지만으로 되지 않고, 물질만으로도 되지 않는다. 선교는 이 둘이 합쳐져야 가능한 것인데, 지금 한국교회에는 이 두 가지가 다 부족한 실정이다. 특히 중국선교의 경우 중국교회가 크게 부흥하면서 ‘중국선교 무용론’까지 대두되고 있어서 우려된다. 후원교회로부터 이런 분위기를 전해들을 때마다 현지 선교사들의 마음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지금까지 우리는 한국교회 중국선교의 위축 현상과 그 요인들에 관해서 살펴보았다. 위에서 살펴본 내용 들을 종합해 볼 때 한국교회의 중국선교 퇴조 현상은 시기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빨리 왔을 뿐 불가피한 측면이 있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과거 호 시절의 기억에 사로잡혀 무리하게 기존 사역을 고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오히려 현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새로운 전략적 모색을 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능력에 맞으면서도 중국 복음화에 효과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사역이 무엇인지 찾아 거기에 우리의 남은 역량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발제자는 그것을 캠퍼스 복음화와 제3세계 신생 화교 사회 복음화라고 생각한다. 이 두 가지는 중국 교회의 재도약과 중국 교회의 사명인 ‘선교중국’을 위해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영역들이다.
 

캠퍼스복음화
중국교회가 앞으로 계속해서 성장하여 세계선교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젊은 목회헌신자와 선교헌신자들이 나와야 한다. 그것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캠퍼스에 성령의 바람이 불어야 한다.
 

먼저 선교영역에 대해서 살펴보자. 근대 선교 역사가 말해 주듯이 세계선교는 캠퍼스의 부흥에서 시작되었다. 19세기 선교를 주도했던 영국의 케임브리지 7인의 헌신과 20세기 초 미국의 학생자원자운동이 그 좋은 예이다. 만약 그 당시 영국과 미국의 캠퍼스에 부흥이 없었다면 오늘날 한국교회와 중국교회의 부흥은 없었을 것이다. 한국교회가 지금 이 정도로 세계선교를 감당하는 것도 캠퍼스의 부흥에 힘입은 바 컸다. 한국교회의 선교는 88서울올림픽 이후 선교한국이 태동되면서 괄목할만한 발전을 했는데, 그것 역시 1970년대부터 시작된 캠퍼스 부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처럼 젊은이들의 영적 각성과 헌신이 없는 세계선교는 생각할 수가 없다. 중국교회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중국교회도 이 점을 인식하여 지난해 태국의 치앙마이에서 열렸던 3차 선교중국2030대회는 청년·대학생 중심의 대회가 되도록 4월 마지막 주에 열렸던 1차 홍콩대회와 2차 제주도대회와 달리 방학 기간인 8월로 대회 기간을 조정하였다. 이처럼 캠퍼스의 복음화가 중국교회의 당면과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중국에는 현재 약 3000개 대학교에 약 3000만 명의 대학생이 있다. 만약 중국 캠퍼스에 70, 80년대 한국 캠퍼스처럼 성령의 바람이 불어 그중 0.1%가 믿고 선교에 헌신한다면 3만 명의 선교사가 캠퍼스에서 나올 수 있다. 새벽이슬 같은 중국의 청년들이 오대양, 육대륙을 누비며 복음을 전하는 날, 중국교회의 ‘선교중국’의 사명은 이루어질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러한 젊은이들의 헌신은 목회현장에도 절실하다.

앞서 살펴본 대로 교회는 1억 성도로 성장했으나 목회자는 태부족인 상황이다. 특히 도시 중산층 교회의 성장과 함께 대학을 졸업하고 신학대학원 과정을 마친 양질의 목회자가 매우 필요하다. 이것 역시 캠퍼스의 부흥과 젊은이들의 헌신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한국교회가 2000년대까지 부흥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도 캠퍼스의 부흥과 교회 청년·대학부의 부흥에 힘입은 바 크다.
 

한국교회의 세계선교에 80년대 말에 시작된 선교한국이 크게 기여했다면 한국교회의 부흥과 질적 성장에 힘을 보탠 것은 70년대 말에 옥한흠 목사님이 섬겼던 성도교회 대학부 부흥이었다. 이 부흥의 불길이 내수동교회를 위시한 서울의 지역교회와 지방교회의 청년·대학부의 부흥으로 옮겨 붙으면서 교회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많은 인재들을 배출하였던 것이다.
 

지금 중국교회가 70년대 한국교회가 직면한 질적 성장의 문제에 봉착해있다. 지금까지 중국교회의 이미지는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이 찾는 기층교회의 성격이 강했다. 이것이 대도시를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는 신흥도시가정교회를 통하여 기존의 부정적 이미지에서 벗어나 중산층 교회로의 질적 성장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이러한 현상이 지방 중소 도시에까지 확산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회 발전에 발맞추어 교회의 질적 향상을 도모할 젊은 목회 헌신자들이 필요하다. 이런 헌신자들은 캠퍼스의 부흥과 함께 지역교회의 청년·대학부가 부흥과 함께 일어날 것이다.
 

그러데 감사한 것은 한국교회의 50, 60년대 중국선교사들이 바로 1980년대와 1990년대 캠퍼스 부흥과 지역교회 청년·대학부의 부흥을 모두 경험하였다는 사실이다. 즉, 그들은 캠퍼스 부흥과 지역교회 청년·대학부 사역의 중요성을 알 뿐 아니라 어떻게 해야 되는지 노하우를 알고 있기 때문에, 이 영역에서 한국선교사들이 소임을 다 한다면 중국교회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해외 신생 화교 사회 복음화
중국에 이민 열기가 본격적으로 불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반부터였다. 그동안 폐쇄적인 출입국정책을 견지하던 중국 정부가 1995년 ‘신이민프로젝트’를 발표하면서 해외 인력 송출, 국경무역, 유학 등을 통하여 시작된 중국인들의 해외 이민은 거대한 물결을 이루며 지금까지 3000만 명이 넘는 중국인들이 해외로 나갔다고 한다.

중국인들의 이민은 편의상 이민 가는 나라에 따라 분류하면 크게 선진국행 이민과 후진국행 이민으로 나뉜다. 미국, 캐나다, 호주, 영국 등지로 가는 중국인들은 교육이나 투자 형태의 이민이 주를 이룬다. 특히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도피성 투자 이민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반면에 중앙아시아, 인도차이나지역, 남태평양제도, 아프리카, 남미 등지로 흩어진 후진국행 이민은 생계형 이민이 주를 이루었다.
 

이들 중에서 후진국행 이민은 몇 가지 점에서 선교의 전략적인 면에서 몇 가지 가치를 지니고 있다. 첫째, 타이밍상 차이나타운이 형성되기 시작하는 시점이라서 노력 여하에 따라 한인타운처럼 기독교적 전통을 세울 수 있다. 둘째, 해당 국가들이 선교 우선 지역이어서 그곳에 안디옥교회를 모델로 한 선교 지향적 교회를 세울 경우 선교의 교두보 역할을 할 수 있다. 셋째, 한국인 시니어 중국선교사들이 중국 현지에서의 사역 경험을 살려 교회개척에 임하면 많은 열매가 맺힐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이유에서 후진국행 이민지역에 전략적 관심을 가져야 하는 데 그중에서도 향후 파급효과를 고려할 때 아프리카지역의 중국 이민사회복음화가 여타 지역의 신흥화교사회복음화의 선도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인들이 아프리카로 대거 진출하기 시작한 것은 후진타오 정부가 들어선 2004년부터이다. 그때부터 중국 정부는 농촌 유휴 노동력 문제 해소와 자원 확보와 미래 시장 선점 등을 목적으로 아프리카에 전략적 투자를 해왔다. 그 결과 북부 에티오피아에서 남부 남아프리카공화국까지 현재 1만 여 개가 넘는 중국 기업이 활동하면서 아프리카 총 산업생산의 12%를 차지할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중국은 53개 아프리카 국가 중 39개국에 54곳에 공자학원을 설립하여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전파하는 한편 6만여 명(전체 유학생의 13%)의 아프리카 국비 유학생을 받아들여 차세대 친중 지도자들을 육성하고 있다.
 

중국이 이러한 추세로 아프리카에 영향력을 키워나간다면 2, 30년 사이에 1000만이 넘는 중국인들이 아프리카 각지에 새로운 차이나타운을 세워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그중에서 에티오피아, 케냐, 앙골라,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지의 주요 차이나타운을 먼저 복음화 하여 기독교가 이민사회의 중심 역할을 감당하게 한다면 다른 아프리카지역의 화교 사회도 여기에 영향을 받아 기독교적 전통의 이민사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중국에는 과거 명나라가 패망한 17세기 중엽 대대적인 동남아이민이 있었다. 그때에 형성된 화교 사회의 종교적 전통은 불교와 도교였다.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져서 동남아화교 사회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처럼 이민 사회가 형성되는 초기에 어떤 종교적 전통이 세워지느냐가 중요하다. 만약 새롭게 형성되는 아프리카화교 사회에 기독교적 전통이 세워진다면 마치 도미노 현상처럼 세계 도처에 기독교적 전통의 화교 사회가 형성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일에 한국교회의 시니어 중국선교사들이 쓰임받을 수 있다면 더 없는 영광이 될 것이다.




 
 

 

이요한 | 동아시아신학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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