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통2.JPG) <중주> 가족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금 우리는 남북정상회담, 그리고 앞으로 열릴 예정인 북미정상회담 등 역사의 격동을 겪고 있습니다. 북한의 대남 업무 담당자는 이것을 ‘역사적 사변’이라고 했더군요. 김정은은 지금 여러 면에서 과거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를 두고 국내의 매체들은 “경제총력 선언 김정은, 제2의 덩샤오핑 꿈꾼다”, “정치는 독재·경제는 개방 (…) 김정은 롤모델은 ‘덩샤오핑’”, 이런 제목을 달아 김정은과 덩샤오핑을 비교하는 기사를 싣기도 했습니다. 그런 제목들을 보면서 ‘중국의 교회는 덩샤오핑(鄧小平) 시대에 이르러 조금 숨통이 트였는데, 김정은이 경제에 총력을 기울이는 점뿐만 아니라 이런 점에서도 덩샤오핑과 같은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북한’과 ‘북녘’의 차이는? 저는 최근에 “북한의 종교정책과 북녘의 교회”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한 일이 있습니다. “북한의 종교정책과 교회”라고 하면 간단할 텐데 제목을 왜 이렇게 복잡하게 달았을까요? ‘북한’은 정권의 이름입니다. 북한 정권의 종교정책은 종교에 대해서 우호적이지 않습니다. 적대적이라고 해야 맞습니다. 헌법을 비롯해서 공간문서(公刊文書)들에서는 신앙의 자유를 말하고 있지만 실제적으로는 그 반대입니다. 국제오픈도어선교회에서 매년 발표하는 종교박해 순위(WWL, World Watch List)에서 십수 년을 변함없이 북한이 1위에 올라 있는 것이 이를 증명합니다. 이것을 요약해서 ‘명자실탄’(明自實彈, 명목상으로는 자유이지만 실제적으로는 탄압한다)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북녘’은 지역 이름입니다. 한국교회의 역사에서 북녘은 교회의 발상지이고, 교회가 대단히 왕성했던 곳입니다. 북녘의 교회는 70여 년 동안 북한의 종교정책 밑에서 수난과 외형적인 소멸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최근에 와서는 지하교회가 활성화하고 있다는 소식이 계속해서 들리고 있습니다. 앞으로 북한이 개방되면 우리는 어떤 놀라운 일들을 만나게 될지 모릅니다. 우리는 중국이 개방정책을 쓰기 이전에 중국의 교회는 크게 위축되었을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뚜껑을 열고 보니 오히려 신자수가 몇 배 더 늘어나고 순수해진 모습을 대하고 크게 놀랐습니다. 북한이 개방되면 그 이상의 모습을 대하며 놀라게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될 줄로 확실히 믿고 있습니다. “북한의 종교정책과 북녘의 교회”라는 제목에는 ‘북녘의 교회는 북한 종교정책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근본은 흔들리지 않고 계속 뻗어나갈 것이다.’는 의미가 숨어 있습니다. 그렇지요. 용비어천가 제2장에 있는 것과 같이 뿌리가 깊은 나무는 바람에 움직이지 아니하므로, 꽃이 좋고 열매가 많고,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 그치지 아니하므로, 내를 이루어 바다에 가는 법입니다. 이런 패러디 이런 뜻으로 만든 “북한의 종교정책과 북녘의 교회”, 이 제목을 패러디하여 “중국의 기독교 정책과 ‘신주’의 교회”라는 말을 만들고 싶습니다. ‘신주(神洲)’는 중화(中華), 화하(華夏)와 더불어 중국의 이름 가운데 하나입니다. 글자 그대로 신의 땅, 하늘의 땅이라는 뜻이 담긴 이름인데, 중국인들의 우월의식, 선민의식이 깃들어 있는 이름입니다. 중국 사역 단체들은 신주라는 이름에 기독교적인 의미를 부여해서 사용하기도 합니다. “중국의 기독교정책과 ‘신주’의 교회”, 이 말에는 ‘중국의 기독교정책이 어떻게 변하더라도 그곳의 교회는 계속해서 힘차게 뻗어나갈 것이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종교사무조례 개정안 시행 이후 마음을 무겁게 하는 소식들이 계속해서 들리고 있습니다. 중국사역자들의 ‘비자발적 귀국’이 이어지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더 무거워집니다. 중국의 기독교정책이 어떻게 변하더라도 중국의 교회는 힘차게 뻗어나갈 것이라는 믿음이 <중주> 독자들에게, 중국의 영혼들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에게 격려가 되기를 바랍니다. 참, 북한의 종교정책과 중국의 종교정책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는 사실을 말씀 드려야하겠네요. 그것은 당(북한은 조선로동당, 중국은 공산당)의 통일전선부가 종교 문제를 관할한다는 사실입니다. 중국이 최근 종교에 대한 제약을 강화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차요모순(次要矛盾)을 포용하여 주요모순을 타격한다. 주요모순이 격파되면 포용했던 차요모순이 타격대상이 된다.’는 통일전선정책의 원리가 적용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그동안 경제발전, 현대화 등이 주요모순이었고, 종교는 차요모순이었는데 경제발전과 국력신장 등의 목표는 이뤄졌다고 할 수 있으니까 종교를 조인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정책은 유한하고, 교회는 무한합니다. 이번 호 특별기획의 주제는 “다시, 계속해서 티베트선교를 이야기하자”입니다. 지난해 선교중국포럼에서 '히말라야벨트 선교전략'이라는 주제로 다루었던 글들 중에서 한 편을 골랐고, 현장보고 한 편, 그리고 주간으로 보내드리고 있는 ‘중국을 위한 기도'에서 티베트와 관련된 기도제목들을 모아서 정리했습니다. 이 특별기획 기사들을 미리 읽으면서 티베트에 대해 모르던 것들을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티베트지역과 우리 민족이 여러 가지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좀 놀랐습니다. 심지어는 1950년에 중국 군대가 파병된 점도 같더군요. 5월은 ‘계절의 여왕’이라는 말을 듣는 달인데 제주에서는 이 말이 더 실감이 납니다. 티베트선교 기획특집에는 ‘티베트는 참 아름다운 곳인데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찬양을 들을 수 없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내용이 여러 군데 나옵니다. 이 특집이 티베트선교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가정의 달입니다. 중국을 사랑하고, <중주>를 아껴주시는 <중주> 가족들의 가정에 아름답고 좋은 일들이 넘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사진 | 연합신문 캡처 유관지 | 중국어문선교회 고문, 본지 발행인. 성화감리교회(분당) 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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