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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3.2 통권 187호     필자 : 김주한 프린트   이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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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도, 하늘마음이 한마음이 되다 (성학십도로 보는 성리학 세계관3)
-모든 것을 하나로 잇는 리일분수의 세계관-


“
사람을 비롯한 만물이 기본적으로 동일한 본성을 가진다고 인정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 인(仁)이라는 덕목에 담긴 의미라면 개체들의 독립성과 차별성을 강조하는 것이 의(义)라는 덕목에 담긴 의미이다. 결국 자아와 세계가 통일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과 그러한 통일성 속에서도 각 개체의 생활세계는 서로 독립적이라는 사실을 함께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 <서명도>의 내용이라고 하겠다. 유교적 이상인격의 특징은 바로 이 통일성과 독립성의 조화 속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설명하는 이<서명도>가 《성학십도》에서 담당하는 몫이다.” -주광호-


서명, 리일분수의 체계를 설명하다

<서명>은 북송오자 중 한 사람인 장재(1020-1077)가 지은 글로써 <태극도>가 우주와 자연만물의 조화 속에 인간의 위치를 규정한 것에 반해 그러한 조화의 세계에서 구체적인 인간의 사회적 관계의 맥락을 설명하고자 한 것이다. 인간은 자연의 조화 속에 머무를 뿐만 아니라 인간 사회 역시 자연처럼 각자의 고유한 모습으로 자리하고 동시에 서로 하나가 되는 관계 가운데 있다.
 

당시의 유학자들은 왕을 하늘과 같이 받드는 왕정체제에서 무분별한 왕권을 견제하고 도덕성을 갖춘 사대부 중심의 관료체제를 확립하고자 하였다. 성리학은 빈부의 귀천이나 권력의 등급으로 사람의 인격을 판단하지 않고, 같은 하늘 아래 인간의 동등한 존엄성을 강조하고 그럼에도 계급이 나뉘어 있을 수밖에 없는 사회적 현실 속에서 서로 진실로 사랑하는 한 가족의 개념을 사회적 관계에 그대로 접목시키는 국가 공동체를 주장하였다. 이것이 장재가 <서명>에서 밝힌 내용이고, 이에 대한 비판들을 해명하면서 성리학자인 정이천이 더욱 상세히 풀어 설명한 것이 리일분수(理一分殊) 개념이다.
 

리일은 ‘이치는 하나다.’라는 것으로 서명의 첫 구절인 ‘하늘을 아버지라 부르고, 땅을 어머니라 부른다.’의 의미를 설명한 것이다. 곧 사람들이 각각의 모습은 다르더라도 태어난 바 사람됨의 선한 본성은 같다. 분수는 ‘나뉘어진 바는 다르다.’라는 것으로 사람됨의 이치가 같지만 현실사회에서 그것을 실천해야 할 각각의 위치는 분명히 다르다. 같은 것만을 강조하면 획일성에 빠지기 쉽고 다른 것만을 강조하면 일치를 이루기 어렵다. 장재와 정이천은 윤리의 보편적인 이치와 개별적인 상황을 하나로 잇는 체계를 드러내고자 하였다.
 

수양,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시작하다
선한 사람의 본성은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있다는 것이 유학의 믿음이다. 인간다움은 외부적인 무엇을 통해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선한 본성을 길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성리학자들은 수양을 내 안으로 침잠하여 본성을 바라보는 것(见性)이 아니라고 보았다. 왜냐하면 선한 본성이란 선함의 개인적 차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안에서 발휘되는 인륜질서의 실천에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곧 우리가 관계 안에서 실천할 때 비로소 우리의 선한 본성이 실현되는 것이다.
 

이제 도덕은 ‘나’의 인격 문제에서 ‘우리’의 관계 문제로 확장된다. 장재가 <서명>에서 하늘과 땅을 부모로 표현한 것은 그 이후에 나오는 ‘모든 백성이 곧 나의 동포(同胞)’라는 설명과 연결된다. 사랑은 내 안에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을 품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모든 관계 가운데 사랑을 실천하는 것으로 완성된다. 같은 하늘 아래 모든 사람이 한 가족이라면 우리는 이익을 위한 이합집산이 아닌 사랑의 공동체정신을 새롭게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하늘을 공경하는 믿음은 부모를 섬기는 효도로, 그리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실천으로 이어진다.
 

부모가 없이 홀로 태어난 사람은 없고, 하늘이 없이 홀로 태어난 존재는 없다. 부모와 하늘을 강조하는 이유는 우리가 남이 아니라 정말로 한 가족임을 알게 하기 위해서이다. <서명도>의 뒷부분은 ‘나이 많은 이를 높이는 것은 내 집안의 어른을 어른으로 대접하는 일이고, 외롭고 약한 이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내 집안 어린이를 어린이로 돌보는 일이다.’, ‘천하의 여위고 병든 사람, 고아와 자식 없는 노인, 홀아비와 과부는 모두 다 내 형제 가운데 어려움을 당했으면서도 호소할 데 없는 자이다.’는 구절은 가족윤리와 사회윤리가 다른 것이 아님을 말한다.
 

자아, ‘지금, 여기’에서 나의 역할은 무엇인가
우리는 때때로 사랑과 정의의 관계를 헷갈려 한다. 사랑을 이야기하면서 불의한 것도 덮어줄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정의를 외치면서 비판을 넘어 비난에 이르기까지 사람을 공격하기도 한다. 사랑 없는 정의와 정의 없는 사랑의 폐단을 지적하고 사랑이라는 이름의 이기심과 정의라는 이름의 비난과 공격에서 벗어나 어떻게 하면 사랑과 정의를 하나로 이어 사람을 사람답게 세우는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을까.
 

퇴계는 <서명도>를 설명하면서 ‘성학(圣学)은 인(仁)을 구하는 데 달려 있으니, 모름지기 이 뜻을 깊이 체득하여야 비로소 자신이 천지만물과 더불어 한 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됩니다. 그래야 인을 실천하는 공부가 비로소 자신의 일처럼 절실하고 맛이 있게 되어서, 아득하게 자신과 상관없게 될 염려가 없을 것이며, 또 외물을 자기로 여기는 병통도 없게 되어 마음의 덕이 온전해지는 것입니다.’고 하였다. 이 말로 비추어 볼 때 오늘날 우리의 사랑은 절실한 것인지, 우리의 정의는 희망을 향한 맛이 나는 것인지 곱씹어 보게 된다. 사랑할 때는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비판할 때는 나도 그와 같음을 인정할 때 우리는 하나의 동포로 ‘공동체’를 살아가게 된다. 그러나 ‘남’을 비난하는 것은 쉽지만 ‘우리’를 끌어안는 일은 어렵고, ‘나’를 사랑하는 것은 쉽지만 ‘우리’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일이 어렵기 때문에 ‘공동체’라는 말이 무색하게 우리는 너무 쉽게 눈에 보이는 개인의 이익을 좇아 갈 때가 많다.
 

유학은 우리의 실천을 효(孝)에서 출발하자고 제안한다. 이 세상 모든 존재는 스스로 태어나 자라지 않고 ‘길러줌’ 가운데 있다. 자기 능력대로 노력대로 된 것이 아니라 하늘이 길러주고 부모가 길러주는 ‘사랑’ 가운데 살고 있다. 자아가 ‘개인’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우리’라는 공동체 안으로 들어와 길러줌을 고마워하고 길러주고자 결단할 때, 사회는 비로소 자연의 조화 같이 서로 기대어 사는 화목의 장이 될 것이다.
 

자아와 본성이 너무나도 쉽게 욕망과 자유로 이해되는 시대에 사랑과 희생이 구태의연할지도 모르겠다. 장재는 서명의 마지막을 하나의 진중한 선언으로 끝마친다. ‘살아있는 동안 나는 이치를 어기지 않고, 죽을 때는 편안히 돌아갈 것이다.’

 

 




김주한 | 길가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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