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4일 오전 8시 56분(현지시간) 세계적인 화교(화인)교회 지도자인 토마스 왕(중국명 왕융신·王永信) 목사님이 주님의 품에 안긴 데 이어, 2월 14일 오후 5시 33분(현지시간) ‘무명의 전도자’로 널리 알려진 볜윈보(边云波) 중국 가정교회 지도자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두 분은 공교롭게도 1925년에 중국 대륙(왕융신: 베이징, 볜윈보: 허베이성)에서 태어난 동갑내기입니다. 또 ‘중국교회의 거인’ 왕밍다오(王明道) 목사님과도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쏭상제(宋尚节) 목사님의 전도 집회에 참석했다가 결신하게 된 왕융신은 왕밍따오 목사님이 담임하던 교회(北京基督徒会堂)에 출석하면서 반듯한 신앙인으로 성장했습니다. 베이징(北京) 푸런(辅仁)대학과 상하이(上海) 세인트요한(圣约翰)대학에서 외국문학을 전공한 그는 대만을 거쳐 미국으로 이주해 화교권 기독교지도자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1974년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제1차 로잔대회에 화교 대표로 참석한 이래 ‘세계화인복음사역연락중심(世界华人福音事工联络中心)’, ‘대사명중심(大使命中心)’ 등 화교교회의 대표기관 설립과 관련해 그의 손길이 미치지 않았던 것이 없을 정도였죠.
한편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가 설립한 중국내지선교회(CIM) 소속 우용추(吴咏秋, Miss Onion) 선교사로부터 복음을 전해들은 볜윈보는 1945년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사건을 접하고 세상의 허무함을 깨달아 주님의 사역자로 평생 살 것을 결심했습니다. 중국 난징(南京)중앙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하던 그는 1947년 난징에서 열린 전국대학생대표 집회에서 변방지역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확인한 뒤 영국유학까지 포기하고 윈난(云南)성, 구이저우(贵州)성 등지에서 5년 동안 사역했습니다.
1948년 10월 31일에는 ‘무명의 전도자에게 바친다(献给无名的传道者)’는 장편시를 발표해 국내외 중국인교회에 큰 감동을 주고 세계선교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 시는 600행이 넘을 정도로 매우 길었죠. 왕밍다오 목사를 도와 문서사역을 한 그는 31년 동안 반혁명분자로 몰려 온갖 박해를 받았습니다. 1987년에야 석방될 수 있었던 그는 1989년에 ‘바이윈샤오’라는 필명으로 ‘성경구약 인물사전’, ‘성경신약 인물사전’, ‘성경구약 지역사전’, ‘성경신약 지명사전’, ‘성경 어휘사전’을 펴내 중국교회 사역자들에게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병고로 사선을 넘나들었지만 기적적으로 생명을 이어갔고 2000년대 들어 또 다른 장편시 ‘최후의 여정(最后的旅程)’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두 분 모두 세계교회의 중국선교 200주년을 기념해 지난 2007년 8월에 경기도 분당 할렐루야교회에서 열린 ‘미션 차이나 2007’대회 주강사로 내한한 적이 있습니다. 필자는 두 분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지만 당시 매우 가까이에서 뵈면서 ‘겸손의 내공’에 압도됐습니다. 그때 두 분의 육성이 귓가에 아직도 생생합니다.
토마스 왕 “과거 서양선교사들은 무의식적으로 또는 조심성 부족으로 동양인에 대해 우월의식을 갖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선교사들이 현지 문화와 전통을 존중하지 않으면 선교지 사람들은 이질감, 거부감 내지 저항감을 갖게 됩니다. 특히 지식인들은 이 같은 문제에 대해 더욱 민감하게 반응해 결국 ‘반기독교 운동’의 단초를 제공했음을 중국기독교 역사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세계 화교교회와 협력하기에 가장 적합합니다. 문화적 이질감이 적은 한국과 중국 기독인들이 서로의 장점을 극대화하고 협력하면 반드시 좋은 열매를 맺을 겁니다. 이를 위해 한국인선교사들이 미국을 비롯해 캐나다, 홍콩, 대만,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에 있는 화교교회에서 협동목사나 전도자, 협력자 등으로 동역할 수 있습니다. 중국교회의 흐름과 중국문화를 충분히 이해한 뒤 중국 선교를 새롭게 시작하면 효율성을 더 높이게 될 것입니다. 해외 화교에게 선교 비전을 심어주는 계기도 될 것입니다.”
볜윈보 “그동안 가정교회가 받은 고난은 예수님이 당한 핍박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입니다. 세계선교에 앞장서고 있는 한국교회를 본받아 중국교회들도 선교적 열정을 갖게 됐습니다. 중국 기독인들이 자국민 전도뿐 아니라 전 세계 화교권과 타문화권 선교를 위해 한국교회와 더불어 사역해야 할 때입니다.”
“중국 기독인들은 예수님을 믿지만 예수님의 무엇을 믿는지를 구체적으로 설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단지 평안과 기쁨이 있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것인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가 대속되고 구원받았기 때문에 믿는 것인지 보다 근본적인 자문이 필요합니다. 한국교회의 새벽기도는 중국교회에도 큰 도전의 메시지가 되고 있습니다.”
두 분은 공히 한국교회의 장점으로 열정과 희생, 용기와 높은 신학교육 수준 등을 꼽았습니다. 많은 한국인선교사들이 수많은 난관을 돌파하며 과감히 사역해나가는 ‘희생적 영성’의 모습은 화교 사역자들이 좀처럼 따라 하기 어렵다고 부러워했습니다.
볜윈보를 추모하기 위해 중국교회 형제자매들이 3월 3일 오전 8시 30분 중국 닝보(宁波)의 한 장례식장에 모일 예정입니다. 함께하지 못하지만 그가 남긴 시 ‘무명의 전도자에게 바친다’의 몇 구절을 소개하며 멀리서나마 추모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동이 틀 무렵, 인간 세상은 더욱 캄캄하고 험난해진다. 가을바람과 비가, 그대의 꿈을 부셨고, 망연자실의 그물이 그대의 가슴을 얽었다. 돌이켜보면 온통 울퉁불퉁한 길뿐, 수많은 실패와 승리, 수많은 낙심과 기쁨의 노래 속에서 세월은 쏜살같이 흘렀다. 지금은 고요히 사색으로 잠잠할 때이다. 왜냐하면, 앞길이 아직도 얼마나 많은 가시밭과 진흙탕이 있을지 모르니까. 그렇다, 동이 틀 무렵, 인간 세상은 더욱 캄캄하고 험난해진다. 그러나, 그대는 이렇게 되뇌다: “내 손으로 달갑게 세상의 쾌락을 놓았고, 내 발로 달갑게 고난의 길을 걸었어!” 자유스럽지 못한 이 길은 막무가내의 선택이 아니요 오히려 당당한 자유의 선택이었다. 그러므로, 눈물이 골을 지어 마음속으로 흘러도, 골고다의 언덕을 바라보며 다짐하는 말은 “죽어도 물러서지 않으리!”
이 글을 쓰기 전, 필자는 몇몇 사역자들과 만남을 가졌습니다. 현재의 중국과 화교권 교회지도자들이 볜윈보 등 믿음의 선진들의 유지를 얼마나 받들 수 있을지 걱정하면서 중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해 나누었습니다. 모든 이의 결론은 동일했습니다. 중국교회 상황이 예전에 비해 녹록하지 않은 것은 분명합니다.
특히 새로운 종교사무조례 시행과 더불어 등록하지 않는 가정교회는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죽는 한이 있어도 결코 물러서지 않을 크리스천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就是至死也绝不退后! 중국 크리스천들이 고난 속에서도 중국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잊지 않을 수 있도록 어느 때보다 중보기도가 필요합니다.
선교동역자들이여, 하나님의 품에 안기기 전까지 복음전파의 열정을 놓지 않았던 볜윈보, 왕융신 등 원로들을 잊지 말고 중국교회와 화교(화인)교회의 동역자로 변함없이 남아주기를 바랍니다.
사진 | 바이두
왕빈 | 중국전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