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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3.2 통권 187호     필자 : 유관지 프린트   이메일 
[발행인통신]
상하이(上海)의 한국기독교 유적에 관심을!

<중주> 가족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추위가 유난히 심했던 겨울이 물러나고 새봄의 기운이 감돌고 있습니다.
 

‘기독교 순례길 문화’
지금 한국교회 안에서는 기독교 유적 답사가 많이 행해지고 있습니다. 기독교 유적들을 소개하는 책자도 여러 권 나왔고, <국민일보>에는 “‘한국의 산티아고 길’ 680km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성지순례기가 연재되고 있습니다. 이 주간 연재물은 전남 여수 애양원에서 출발해서 서울 양화진 외국인선교사 묘지까지 1700리 순례길의 주요 구간을 찾으며 구한말 선교사의 발자취를 더듬고 ‘기독교 순례길 문화’를 꽃피울 가능성을 찾기 위해 마련되었다고 하는데 ‘기독교 순례길 문화’라는 말이 무척 의미 있게 느껴집니다.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에서는 지금 기독교문화해설사 양성 강좌를 운영하고 있는데 반응이 퍽 좋은 것을 강의를 하면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에서는 국내의 기독교 유적들을 소개하는 책자에 이어, 일본 간토(关东)과 간사이(关西)의 기독교 유적을 소개하는 책자를 냈고 이어 중국 동북지역에 있는 유적들에 대한 책자를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중국에도 많은 기독교 유적들이 전국에 산재해 있는 데요, 이번 호의 ‘중국 사역 이야기’에 옥고를 주신 김병태(金秉泰) 목사님이 <중국을주께로>에 그 유적들을 열심히 소개하던 일이 기억납니다.
 

중국의 기독교에 대해서도 ‘순례길 문화’가 자라기를 바라면서 먼저 상하이의 한국기독교 유적에 대해 관심을 갖자고 제안하고 싶습니다. 상하이는 인구가 많기로 유명한 도시입니다. 19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시험에 “세계에서 인구가 제일 많은 도시는?”라는 문제가 나오면 ‘상하이’라고 답을 쓰곤 했었지요. 확인을 해 보니까 지금은 도쿄(3,720만), 델리(2,500만)에 이어 세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2,300만)라고 나오네요.
 

방송을 통한 중국 사역과 상하이
상하이는 방송을 통한 중국 사역과 관계가 깊은 곳입니다. 2차대전 때 극동지역에서 통신장교로 근무하던 브로거(Broger)라는 크리스천이 종전과 함께 전역을 한 뒤 극동지역의 영적인 어둠을 물리치는 일에 뜻을 두고 선교방송 기구를 설립했습니다. 이 기구가 FEBC(Far East Broadcasting Company)인데 FEBC는 중국을 중요한 타깃으로 삼았습니다. FEBC는 제일 먼저 상하이에 방송사를 세우기로 하고 1949년에 설립신청서를 제출했는데, 당시 상하이는 국공내전으로 심한 혼란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신청서가 제대로 처리되지 않았습니다. FEBC는 허가를 기다리면서 먼저 필리핀에 방송사를 세워 중국어 방송을 송출하기 시작했고, 이어 1957년에 당시 미국의 관할 밑에 있던 오키나와에도 방송사를 세워 중국을 향한 복음전파를 송출했는데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의 일본 귀속을 앞두고 FEBC의 철수를 요청했습니다. 중국과 관계 개선을 추진하고 있는데 일본 땅에서 중국이 원하지 않는 방송이 송출되는 것이 유익하지 않다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FEBC는 숙고 끝에 이전 후보지로 제주도를 택했습니다. “자유진영의 여러 곳 가운데에서, 세계 최대의 인구밀집 도시인 상하이에서 직선거리로 제일 가까운 곳이 제주도이기 때문”, 이것이 당시의 자료들이 전해주는 제주도 이전 결정의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렇게 해서 1973년에 아세아방송(FEBC-KOREA)이 세워졌는데, FEBC는 얼마 뒤에 당시 여러 가지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극동방송 운영권도, 극동방송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던 국제복음주의동맹선교회(TEAM)로부터 인수를 받았습니다. 상하이는 원래 중국의 기독교 역사와도 관계가 깊은 곳입니다. 상하이에는 중국내지선교회(CIM) 창설자인 허드손 테일러와 관계 있는 유적들이 있습니다. 상하이에는 기독교의 중요기관들이 여럿 있습니다. 상하이에는 중국의 개방 후 처음으로 문을 연 무언탕(沐恩堂)교회가 있습니다. 무언탕교회에 대해서는 <중국을주께로> 2016년 8월호(통권 168호)의 ‘발행인 통신’에 방문기를 소개해 드린 일이 있습니다.


상하이한인교회의 역사

자, 이제부터 제가 이번 호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일본에게 국권을 강탈 당한 이후, 민족운동가들은 상하이로 많이 망명을 왔습니다. 이들 가운데 30여 명이 1914년 11월에 영조계(英租界) 시화더로(西华德路)에 있는 미해군 YMCA에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장소를 찾아낼 수 있다면 참 좋을 것입니다. 상하이한인교회는 이렇게 시작이 되었는데 첫 이름은 ‘우후(寓沪)한인예배회’였습니다. ‘후(沪)’는 상하이의 약칭 가운데 하나로 상하이의 자동차 번호판에도 이 글자가 쓰이고 있습니다. 당시 예배는 황성 YMCA 간사 출신인 김종상(金锺商)이 예배를 인도했습니다.
 

상하이한인교회는 1915년 8월에 쓰촨로(四川路)에 있는 중국인 YMCA의 식당으로 예배장소를 옮겼습니다. 미국인 피치(Fitch, 비오생, 费吾生) 선교사가 이 일을 도와주었는데, 피치 선교사는 한국 독립운동가들을 여러 모로 도와준 분으로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에 그 이름이 여러 번 나옵니다. 당시 상하이에는 한국인이 200여 명 살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 40여 명이 교회에 나왔다고 합니다. 이때는 선우혁(鲜于爀), 여운형(吕运亨) 등이 중심이 되어 교회를 이끌었습니다. 1919년 3⋅1만세운동 뒤의 상하이는 그야말로 기독교 민족운동가들이 들끓는 곳이 되었는데 그 가운데는 목사도 여러 명이 있었습니다. 상하이한인교회는 투표를 통해 그 가운데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 분인 김병조(金秉祚) 목사를 초대 담임목사로 선출했습니다.
 

상하이한인교회는 예배장소를 여러 번 옮기다가 1921년 2월에 불조계(佛租界) 시신교(西新桥)에 있는 중국인 예배당을 인수하여 ‘삼일당(三一堂)’이라고 이름을 짓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 삼일당이 있던 곳은 우리가 꼭 찾아내야 할 것입니다. 당시 세례교인만 130명이었다고 합니다. 상하이한인교회는 본국 장로교회와 연계를 가지려고 애썼으나 이상하게 장로교는 냉담한 태도를 보였고 하는 수 없이 독자적인 치리규칙을 마련해서 교회를 이끌어 나갔습니다. 우리가 꼭 찾아야 할 곳이 한 군데 더 있습니다. 상하이한인교회에서 설립한 인성(仁成)학교 자리입니다. 인성학교는 1917년 가을에 셋방에서 학생 4명으로 시작되었는데 얼마 뒤에 샤페이로(霞飞路) 캉닝리(康宁里)에 독자적인 건물을 마련했습니다. 기독교 민족운동가들인 교장과 교사들에 의해 민족의식이 투철한 교육이 실시된 이 학교는 독립군 양성학교로 인식이 되었습니다.
 

상하이한인교회는 장로교와 감리교 연합 형태로 운영이 되었는데 상하이에는 성결교회도 하나 있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상하이의 교회는 1930년 이후 침체의 늪 속으로 빠져 들어갔습니다. 본국 교회의 무관심, 한인사회의 노선 갈등, 일본의 방해공작, ‘비기운동(非基运动)’이라고 불리는 반종교의 물결, 종교에 대한 관심 감소 등 여러 가지가 그 이유로 지적이 됩니다. 지금 상하이에 있는 한인교회들 가운데는 상하이의 중국기독교 유적에 대해 관심을 갖고 안내 팸플릿을 만들어 나눠주고 있는 교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인교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 ‘워 부 즈다오(我不知道)’입니다. 앞에서 말씀 드린 것과 같이 상하이한인교회가 일찍 하강세에 접어들어서 자취가 사라지다시피 되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다만 어느 교회로부터 “상하이한인교회에서 사용하던 풍금을 누가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일이 있는 것 같습니다.”라는 이야기를 들은 일은 있습니다.
 

3월과 상하이
3월은 3⋅1만세운동 기념일이 들어 있는 날입니다. 내년이 3⋅1만세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이어서 100주년 기념행사들이 준비되고 일부는 시행되고 있습니다. 내년은 상하이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이번 호 ‘발행인 통신’에서 상하이의 한국교회 유적에 관심을 갖자고 제안하는 이유가 사실은 여기에 있습니다. 상하이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현지를 방문하는 발길들도 많아지고 있는데, 상하이한인교회의 유적을 찾는 일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으면 합니다.
 

이번 호에는 지난 호에 이어 ‘나의 중국 사역 이야기’를 다시 한 번 특집으로 마련했습니다. 2월호의 특집이 그만큼 관심을 많이 끌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관심은 아무래도 지난 달부터 시행되고 있는 중국의 종교사무조례 개정안에 집중되어 있는데, 다음 호에는 개정안에 대한 보도와 반응들을 집중하여 엮어 보려고 합니다.
 

아직 쌀쌀하지만 3월이 되면서 한라산의 분위기가 달라져서 생명력, 생동감, 이런 것들이 느껴지고 있습니다. 중국 사역도 그렇게 되기를 바라면서 베풀어 주시는 한결 같은 관심과 사랑에 대해 다시 한 번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유관지|중국어문선교회 고문, 본지 발행인. 성화감리교회(분당) 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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