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을통해.JPG) 이야기 하나: 한 신혼부부가 있었다. 어느 날 남편이 읽는 책이 “최단 기간에 싱글이 되는 법”인 것을 발견한 새댁은 무척 실망하게 된다. 갓 결혼한 상황에서 남편의 마음을 멀어지게 한 문제점이 무엇인지 혼자 고민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당시 남편은 골프에 빠져 하루 빨리 ‘싱글’이 되고자 노력하는 중이었다. 이야기 둘: 한 회사의 차장이 갓 입사한 신입사원과 친해지려고 여러 번 밥을 샀는데 그 사원은 한 번도 밥을 사는 법이 없었다. 그래서 직접 물어보았다. “내가 여러 번 밥을 샀는데 자네는 왜 한 번도 안 사나?” “그런가요? 저도 꼭 밥을 사야 했나요?” “아니, 서로 오가는 정이 있어야지 않나?” “차장님이 처음 밥을 사주셨을 때에는 윗사람이니까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두 번째 사셨을 때에는 차장님이 저를 좋아해서 그런가 보다 라고 생각했고요. 또 세 번째 사주실 때에는 차장님이 돈이 많으신가 보다 라고 생각했어요.” “그럼 네 번째 샀을 때는?” “그때는 차장님이 진짜 진짜 돈이 많으신가 보다 라고 생각한 걸요!” 타인의 감정에 무관심한 결과에서 나온 대답이 아닐까? 사회생활을 오래 한 필자의 지인이 말한 본인 이야기이다. 두 이야기에서 연관되는 내용을 찾자면 타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에서 비롯된 웃픈(웃기면서도 슬픈) 상황이라는 점이다. 현실에서 생각이 안 통하는 상황은 얼마든지 많이 발생한다. 자신은 이해받고 싶은데 정작 타인을 이해해주는 능력이 부족할 때도 비슷한 상황을 체험하고는 한다. 이른바 ‘공감능력’이 부족한 것이 원인이라 할 수 있는데 당대(唐代) 한유(韩愈)가 쓴 글 중에 이와 연관된 구절을 찾을 수 있다. 세상에 백락(伯乐)이 있어야 천리마가 있는 법이다. 천리마는 흔해도 백락은 드물다. (…) 천리를 달리는 말에게는 한 차례에 적어도 한 섬 가량의 곡식을 먹여야 한다. 그런데 말을 먹이는 사람이 그 말에게 천 리를 달리는 능력이 있음을 모르면, (…) 채찍을 휘두를 뿐 말의 천성을 살리지 못하고 먹이를 줘도 말의 양을 채워주지 못하고, 목청을 울려도 말의 생각을 알지 못한 채 채찍을 들고서 “세상에 천리마가 없노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아! 세상에 정말 말이 없을까? 그것은 정말로 말을 모르기 때문이다. (世有伯乐, 然后有千里马. 千里马常有, 而伯乐不常有. (…) 马之千里者, 一食或尽粟一石. (…) 策之不以其道, 食之不能尽其材, 鸣之而不能通其意, 执策而林之, 曰: “天下无马!” ”鸣呼! 其真无马邪? 其真不知马也!) (「잡설(杂说)」 제4편) 이 글은 원래 주(周)나라 때 손양[孙阳, 자(字) 백락]이 말을 잘 알아본 것처럼 인재를 알아보고 재능을 잘 계도할 것을 논한 문장인데, 행간에 타인에 대한 공감의식을 강조한 부분도 담겨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타인을 공감하고 알아주면 더 큰 힘을 발휘하고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시대를 뛰어넘는 시사점인 것 같다. 본래 품성이 따듯하고 친화력이 강한 분들은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도 뛰어나다. 공감능력이 뛰어난 분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쉽게 드러나지 않는 공통점도 존재한다. 바로 세상에서 많은 시련과 어려움을 겪은 경험, 고뇌하고 좌절하는 내면의 고통을 극복한 체험을 그분들은 상대적으로 많이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타인과 공감을 외치면서도 쉽게 느낌을 공유하지 못하는 우리 자신을 생각하면 공감의식은 남다른 재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고, 내 슬픔의 깊이가 깊었음에도 타인을 향한 이해를 높일 수 있었다는 것은 차라리 축복받은 의식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흔히 ‘비관적(悲观的)’이라고 하면 부정적인 인상을 얻게 된다. 그러나 ‘비관(悲观)’이라는 말 속에는 타인에 대해 신음하면서 슬픔과 연민을 갖고 지켜본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기쁨과 행복을 향해 눈을 돌리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고난의 골짜기를 지나는 이의 고통과 슬픔에 대해 따듯한 마음으로 처다 보고자 하는 것이 바로 ‘공감의식’이 아닐까? 이 생각에는 대부분 동의하지만 문제는 자신의 그릇이 얼마나 공감의 폭을 넓힐 수 있는가도 관건일 것 같다. 혹자에 의하면 우리는 집과 일터 이외의 ‘제3의 공간’을 가지고 있으면 행복해질 가능성이 더 크다고 했다. 격식이나 서열이 없는 곳, 소박한 곳, 출입의 자유, 자유로운 언행, 더불어 음식이 있는 곳을 소유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행복하다고 보았다. 이와 함께 주변에 공감하는 이가 많으면 나는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해본다.
그러기 위해 나는 얼마나 공감능력을 키우려고 노력하고 있는지도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때로 세상에서의 역할과 쓰임에 대한 망설임과 자괴감이 있고, 내 생을 파고드는 가슴 아픈 고난이 있더라도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자신을 내어놓고 주변 사람들과 정겨운 협조를 하며, 좀 더 좋은 결과를 이끌어내기 위한 아이디어를 창출하고, 고뇌와 시련을 이겨내려는 눈물 어린 투혼을 보여준다면 나의 공감능력이 조금이라도 더 향상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는 것이다.
편집자주 이번 2월호로 ‘고전을 통해 생각해보는 현대인의 삶’ 코너를 마칩니다. 이 코너를 통하여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독자님들도 그러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며, 지금까지 함께 읽어주신 모두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배다니엘 | 남서울대 중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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