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새벽에 기도를 하는데 ‘3일 금식’을 하라는 감동을 받고 금식을 시작했다. 이틀 동안은 금식이 전혀 힘들지 않았다. 사흘째 되던 날 출국을 앞두고 아무래도 섭식을 해야겠다고 남편 K 선교사에게 말했더니 남편 K 선교사는 자신이 대타로 3일을 채워주겠다고 했다.
수일 전 Y대에서 신학박사 과정을 공부하고 있는 중국인유학생 M형제한테서 한 통의 문자가 왔다. 다음 학기 논문등록비 80여 만 원을 9월 11일까지 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문자를 보며 나는 참으로 난감해졌다. 왜냐하면 M형제는 이번 학기에 논문을 끝내기로 나와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학기에 논문을 완성하지 못해 다음 학기에 또 논문신청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논문지도비를 내야만 계속해서 논문을 쓸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재정이었다. 한 학기를 연장하면 논문지도비뿐 아니라 하숙비와 생활비도 필요한데. 아. 이걸 어쩌나. M형제를 그동안 도와주던 분은 이번 학기까지만 돕겠다고 했는데. M형제가 Y대에서 전액 장학금을 받고 신학박사 과정을 시작하였을 때부터 나는 M형제를 돕게 되었다. 처음에는 매달 생활비를 20만 원씩 도왔다. 물론 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에 후원하는 분들을 통해서였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형제한테서 연락이 끊겼다. 이제 논문학기일 텐데 어디로 간 것일까. 걱정이 돼 학교에 전화를 해보니 학적은 살아 있었다. 휴학계를 낸 모양이었다. 좀 더 알아보니 그 형제는 중국의 자기 집으로 돌아간 것이었다. 마침 그 당시에 나는 중국에 있었기에 위챗으로 M형제와 연결되어 통화를 하고서는 그간의 사정을 알게 되었다. 형제는 경제적으로 심리적으로 압박을 받다가 논문쓰기를 포기한 채 중국으로 돌아간 것이었다. 나는 형제를 격려하며 권고했다. 어떻게 하든 다시 한국에 나와서 박사논문을 써서 학위를 받고 공부를 완성하라고 말이다. 그러자 M형제는 이제 자신을 지원하던 손길들도 다 끊어져서 한국에 나와도 생활을 할 수 없다고 하였다. 나 역시 대책도 없으면서 믿음의 말을 했다. 아무튼 형제가 한국에 나오면 내가 어떻게 하든 도와볼 테니 나오라고 하였다. 그러자 형제는 내 말을 믿고 한국으로 나왔다. 나는 당장 형제의 학교 기숙사비를 해주어야 했다. 또 논문지도비를 내고 논문을 쓸 수 있게 해야 했다. 나도 후원으로 선교회를 운영하는 형편이어서 여력이 없었다. 나는 기도하면서 M형제에 대한 이야기를 써서 우리 선교문학 선교회 사람들과 나누었다. 그러자 대전에서 조산원을 운영하는 원장님이 그 글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 자신이 그 형제를 돕겠다고 하였다. 그분은 거의 2년 동안 형제의 필요를 채워주었다. 기숙사비와 생활비를 내 준 것이다. 하지만 그 형제는 논문을 마치기로 한 기한까지 논문을 다 쓰지 못하였다. 조산원 원장님은 좀 난감해 하면서도 또 한 학기를 더 지원해 주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형제는 논문을 마무리하지 못한 것이다. M형제가 몹시 미안해하면서 이달 11일까지 논문지도비를 내야 한다고 나에게 연락을 해왔고 나는 원장님에게 알렸다. 원장님은 이젠 자신도 버거워서 지원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거절하였다. 나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분은 벌써 두 학기나 연장한 형제를 도와주었으니 그만해도 감사한 일이었다. 그런데 M형제가 난색을 표했다. 형제는 “여기까지 힘들게 왔는데, 한 학기만 더 도와주면 논문을 완성할 수 있는데"하며 몹시 아쉬워했다. 이튿날 나는 중국으로 출국해야 하고 어떻게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신뢰하는 몇몇 지인들한테 이런 사정을 문자로 보내고는 홍콩행 비행기에 올랐다. 중국에 도착해서도 M형제의 논문지도비 문제로 마음이 편하지가 않았다. 와이파이가 터지는 지역에 가서 카톡을 확인했다. 부탁을 했던 지인들한테서 도울 수 없어 미안하다는 연락이 와 있었다. M형제는 몸이 다는지 줄줄이 카톡을 보내왔다. 나도 별 방법이 없으니 그저 형제한테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자고 할 뿐이었다. 그랬더니 형제는 믿음의 말을 했다. "주님의 사랑과 기적을 체험하는 순간입니다!"라는 문자를 보내온 것이다. 11일 밤 자정까지 납부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제적처리 된다는데 이걸 어쩌나. 나는 몸은 중국에 와 있으면서도 마음은 M형제의 문제로 한국에 있는 것 같았다. 밤 9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나는 M형제한테 은행에 가서 통장을 확인해 보라고 하였다. 사실 나는 논문지도비가 채워졌을 거라고는 별로 기대되지 않았지만 그냥 그렇게 하라고 하고 싶었다. 은행을 다녀온 M형제가 "등록처리하고 너무나 기쁜 마음으로 왔습니다! 이번 학기 잘 마무리해서 내년 2월에는 꼭 졸업하겠습니다."라고 문자를 보내 왔다. 휴-- 절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어쨌든 이제는 나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진실로 한 사람의 중국인유학생의 믿음을 보시는 하나님을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지난 7일 새벽 내게 3일을 금식하라고 하신 성령님의 뜻도 깨달았다. 바로 이 문제를 응답해 주시려고 그런 감동을 주셨던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누가복음 18:8)
나은혜 | 장로회 신학대학교 선교문학 석사, 미국 그레이스신학교 선교학 박사, 지구촌 선교문학 선교회 대표, 지구촌 은혜 나눔의 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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