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페이지1.jpg) “현대신유가 제1세대로부터 제3세대까지 발전주기의 완성은 결코 신유가 사명의 완성을 의미하지 않고 또한 현대신유학 발전의 종결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근본적으로 말해서 신유가의 취지와 사명은 결코 모종의 철학체계 기틀을 이루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중국문화 발전의 출구를 찾고, 문화와 철학 측면에서 중국이 어디로 가야 하는가라는 문제에 대해 대답하려는 데에 있다. 말하자면 그들이 설명하고 해답하려는 것은 중국의 현대화 경로문제이다.” -정가동- 3세대 현대신유학의 특성 3세대 현대신유학자들은 중국 대륙이 아닌 대만과 홍콩, 해외 등에서 많은 활약을 하였다. 이들은 중국 문화에 대해 비판하기를 주저하지 않으며 유학의 전통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고 이지적인 태도로 현대의 철학과 소통하고자 노력했다. 정가동(郑家栋)은, 3세대 신유가는 ‘사고(思考)의 세대이며 반성하는 세대이며 동시에 노기충천한 세대였다.’고 평가하며 이들의 기본 특징을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 모순으로 가득찬 세대. 3세대에 접어들며 현대신유가는 독자적인 학군을 형성하는 것을 넘어 보다 학문적인 연구에 돌입하게 되는데, 3세대 연구자들에게 있어 이지적인 태도와 감정적인 태도가 혼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서양철학에 대한 깊은 이해를 통해 유학을 객관적으로 비교해보려는 연구를 진행하면서도 5·4신문화운동의 여파로 전통문화에 대한 전면부정이 있었던 역사를 떨쳐버리지 못하고, 보다 감정적으로 유학의 주체성을 중시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둘째로, 유교사상의 종교적 의의 강조와 맞물린다. 이전 세대의 유학자들이 종교와 철학을 극명하게 구분하며 유학의 종교성보다는 현실적인 사회성과 정치성을 드러내 도덕의 실천을 중시했다면, 3세대는 ‘중국 문화란 종교의식을 결여하고 있지도 않으며 또한 유교는 세계에서 가장 완성된 형태의 종교’라는 주장을 통해 유학의 종교성의 긍정하고 유학이 제시하는 도덕의 초월성과 보편성을 더욱 강조하였다. 여기에서 유학의 종교성은 우리가 가진 기독교적 관점에서 어떤 구체적인 신을 긍정하거나 공자를 신격화했다기보다는 인간이 가진 종교성을 강조하고 유학이 가지고 있는 ‘종교정신’을 드러낸 것으로 파악해야 한다. 셋째. 중국에서 현대 민주주의가 발생하지 못한 원인에 대해 주의 깊게 탐구한다. 현대신유가는 서양문화를 크게 민주주의와 과학으로 파악하는데, 이전까지는 서양의 과학에 관심을 많이 두었던 것에 반해 3세대는 서양의 민주주의를 어떻게 이해하고 응용해야 할 것인가에 초점을 두었다. 이들은 이미 민주주의가 중국에 꼭 필요한 과제임을 직시하고 중국역사에서 민주주의와 같은 사상의 단초가 전혀 없다는 논조를 통해 중국에 민주주의가 없는 이유에 대해 세밀하게 분석한다. 모종삼의 삼통설(三统说) 현대신유학의 신심학(新心学)은 모종삼에 이르러 완성되었다고 평가 된다. 모종삼은 ‘삼통설’을 통해 역사상 중국 문화는 도통(道统)은 있었지만 학통(学统)과 정통(政统)은 없었다고 지적하였다. ‘백성은 윤리적인 면의 도덕적 주체는 될 수 있지만 정치적 존재는 될 수 없는’ 상황을 바꿔야 하는데, 중국사상의 ‘인(仁)을 방법으로 삼는 사유방식 때문에 도덕정치를 강조하면서도 지식과 지식을 이루는 지성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이 때문에 공맹 도통의 계승으로는 충분하지 못하고, 덕성주체를 지성주체, 정치주체로 확장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곧 내성외왕(内圣外王)을 ‘도통의 긍정’, ‘학통의 새롭게 시작함’, ‘정통의 계속’으로 파악하였는데 그의 대작 <심체와 성체>는 내성인 도통의 긍정에 관해 깊이 서술한 것이다. 모종삼이 말하는 도통이란 육왕학(陆王学)으로 이어지는 심학을 의미하는데, 이는 그의 철학이 ‘정명도(程明道, 1032-1085), 육상산(陆象山, 1139-1192) 등으로 대표되는 한 큰 계열을 근거로 칸트를 융합하여 흡수하고, 칸트의 논리방식으로 자율 도덕의 실질적 의미를 빌려서 나아가 그것이 함유한 전 이해, 즉 도덕적 형이상학의 궁극적 완성을 이루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이에 덧붙여 정가동은 외왕 방면에서는 여전히 뚜렷한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모종삼의 심체(心体)와 성체(性体) 왕도(王道)와 패도(霸道) 논쟁을 통해 유학은 행위의 결과보다 동기의 과정을 중시하였고 이는 외왕보다 내성을 강조하는 풍토로 자리매김되었다. 내성은 곧 선험적이고 보편적이고 초월적인 인간의 본성과 그것을 담아두고 인지하고 실행하는 마음에 대한 형이상학적인 논의를 이어가게 했다. 모종삼은 선험적, 보편적이란 의미에서 ‘내재적이자 초월적인 성체’와 인지하고 실행한다는 의미에서 ‘존재하며 활동하는 심체’를 말하였다. 모종삼은 칸트의 선험적인 도덕법칙을 긍정하면서도 그것이 그저 절대적인 의무나 이론적 가설로써 짐 지워진 것이 아니라 ‘분명한 진실’로 우리 안에 내재해 있다고 강조했다. 그것이 곧 본성이기 때문에 사회적 합의도 아니고, 인간성에 위배되는 규율도 아니며 인간의 인간다움을 이루는 덕이라고 보았다. 칸트는 천인합일의 경지까지는 보지 못했기 때문에 유학이 제시하는 천명의 초월성과 내재성의 복합적인 모습으로 인성을 규정하는데 까지는 나가지 못했다. 객관적 도덕법칙을 말하는 것을 넘어서 그것이 모든 사람에게 내재해 있는 성체라는 설명을 통해 인간에 대한 도덕 형이상학을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그러나 인간 안에 무엇이 있는가라는 질문과 별개로 실천의 문제가 남아있다. 이 때문에 칸트는 실천이성을 강조했고 모종삼은 심을 강조했다. 그러나 모종삼의 심체는 단순히 선험과 반대되는 경험, 선천성과 반대되는 후천성이 아니라 성과 연결된 상태의 심이다. 모종삼은 ‘도덕정감은 실제적인 층으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위로 올라가 초월적 층에 이르고 구체적으로 변하며 또 보편적인 도덕의 정과 도덕심이 된다. 이것이 송•명의 유가들이 선진유가를 계승하여 성체와 심체를 대체적으로 말하고 최후에는 또 반드시 성체와 심체를 합하게 되는 까닭이다.’라고 설명한다. 이 때문에 여기서 심은 주관적인 주체성이나 심리학적인 의미의 심이 아니라, 도덕 형이상학 안에서의 객관성을 담고 있는 보편적 선을 행할 수 있는 ‘도덕 창조의 근원으로써 본심’이다. 여기서 신심학의 심즉리(心即理)의 개념이 강화된다. 현실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결과지향의 심이 아니라, 모든 문제 위에 마음의 근원으로 들어가 선한 본성을 자연스럽게 마주하고 그것을 가지고 관계 맺는 새로운 사회를 꿈꾸는 것이다.
사진 | 바이두 김주한 | 길가에교회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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