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호.jpg) “기율을 엄수하고 비밀을 지키며 당에 충성하고 … 언제라도 당과 인민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준비를 갖추고 영원히 당을 배반하지 않겠습니다.”
중국공산당 입당선서의 일부분이다. 앞으로 5년간 시진핑(习近平) 총서기의 제2기 체제를 이끌어갈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7명 전원이 지난 10월 31일 중국공산당의 첫 창당대회 개최지인 상하이(上海)와 저장(浙江)성 자싱(嘉兴)의 난후(南湖)를 찾았다. 그 자리에서 시 총서기의 선창에 따라 나머지 상무위원들이 위의 선서문을 복창했다. 이 장면은 중국TV를 통해 전국에 방영됐다. 이 모습을 보면서 필자는 두 가지 장면이 떠올랐다.
첫 번째 장면은 10수 만에 공산당에 입당할 수 있었던 시 총서기의 젊은 시절이다. 문화대혁명 시절 ‘반당분자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인해 16살 나이인 1969년, 황토 협곡에 파묻힌 산골인 산시(陝西)성 량자허(梁家河)촌으로 12명과 함께 하방(下放)된 뒤 7년간 야오동(窯洞·토굴)에서 살면서 량자허 주민들에게 진실함과 성실함으로 다가가서 인정을 받았다. 하지만 그도 하방 초기엔 견디기 힘들었다고 한다. 토굴 생활을 견디지 못해 베이징으로 도망갔다가 “대중을 의지하는 사람만 앞날이 밝다”는 당 간부 출신 이모부의 꾸지람을 듣고 량자허로 되돌아온 적이 있다. 그는 1974년 2월에야 신청 11번 만에 공산당에 입당했다.
당시를 회상하면서 시 총서기는 중국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량자허에서 벼룩과 음식, 고된 작업과 사상(思想)이라는 4대 관문을 통과했다”고 술회한 바 있다. 젊은 시진핑은 무엇보다 벼룩과 사투를 벌어야 했다. 특히 여름철 량자허의 벼룩은 지독했다. 벼룩에게 물린 가려움 때문에 잠을 잘 수 없었다. 온몸은 물집으로 부풀어 오르기 일쑤였다. 오랜만에 돼지고기를 배급받아 급한 나머지 비계를 날로 입에 넣기도 했다. 날마다 쏟아지는 고된 작업량은 또 다른 난제였다. 노동을 해본 적이 없었기에 큰 덩치에 비해 초기엔 동네 아주머니보다 무거운 짐을 나르지 못했다. 2년 뒤에는 밀 50㎏을 지고 4㎞를 가뿐하게 걸어 다녔다고 한다. 시 총서기는 “량자허에서 사상의 관문을 통과한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고백했다. 그가 말하는 사상은 실사구시(实事求是), 인내(忍耐), 자신감을 기반으로 군중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일하는 것을 뜻한다. 량자허 경험을 통해 직접 공산 혁명에 앞장섰던 마오쩌동(毛泽东), 덩샤오핑(鄧小平)만큼 민중의 상황과 처지를 철저하게 이해하게 된 것이다.
두 번째 장면은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의 길’을 선포하면서 ‘초심’과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강조한 시 총서기의 연설문이다. 지난 10월 18일 베이징(北京)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제19차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이하 19차 당대회) 개막식에서 시 총서기는 전임자인 후진타오(胡锦涛)와 장쩌민(江泽民)을 비롯해 2300여명의 당 대표들 앞에서 3시간 24분간의 연설을 통해 초심을 통해 과거를 계승하되 과거와는 차별화된 강렬한 ‘신시대’의 지도자상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중국공산당의 초심과 사명은 중국 인민을 행복하게 만들고, 중화민족을 부흥시키는 것이다. 19차 당대회는 샤오캉(小康·모든 국민이 편안하고 풍족한 생활을 누리는 상태) 사회 건설의 마지막 단계로, 중국식 사회주의가 새로운 시대로 접어드는 중요한 시기에 열렸다. 현재 국내외 상황이 복잡하게 변하고 있다. 중국은 발전을 위한 중요한 전략적 기회를 얻었으며 앞날은 밝지만 마주한 도전도 만만치 않다. 인민의 생활수준 향상 수요를 충분히 만족하게 하지 못하는 점과 불평등은 중국 사회의 중요한 모순이다. 지속적인 발전이라는 기초 아래 불평등과 불충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새로운 시대의 중국 특색 사회주의의 위대한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자. 중화민족의 부흥이라는 ‘중국의 꿈(中国梦)’은 새로운 시대 중국공산당의 역사적 사명이다.”
68쪽 3만2000자 분량의 연설에는 시 총서기의 지난 5년 임기 동안 이뤄낸 성과와 집권 2기 정책 구상이 담겼다. 과거 덩샤오핑이 언급한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를 넘어서는 ‘신시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사상’ 개념과 ‘공산당의 지도 없는 중국의 부흥은 그 자체가 망상’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중산층을 대거 성장시켜 빈부격차를 줄여 2035년까지 중국은 세계적으로 혁신적인 국가가 되고, 2050년까지 중국은 세계의 지도국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반부패 운동을 계속해 나가고, 홍콩과 마카오에 대한 중국의 확고한 지배와 대만 독립 반대, 외국기업에게 평등한 기회 부여, 공공 이익의 보호 등 6가지 가치에 대한 신념도 드러냈다. 이날 연설 중 가장 강조된 표현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로 69차례나 등장했다. 이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 32차례, ‘샤오캉 사회 실현’ 17차례, 반부패 투쟁 20차례, 종엄치당(从严治党, 엄격한 당 관리) 7차례 순이었다.
시 총서기는 또 초심과 사명을 잃지 않으면 ‘두 개의 100년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여기서 두 개의 100년이란 공산당 창당 100주년인 2021년에 안정되고 조화로운 사회란 뜻의 샤오캉 사회를 실현하고, 건국 100주년이 되는 2049년에 미국을 능가해 중국의 굴기를 완성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모든 분야에서 당의 영도(지도) 강화가 필수불가결하다. 따라서 시 총서기는 19차 당대회 연설에서 “아편전쟁 이후의 치욕스러운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반드시 사회주의의 위대한 승리 시대를 열어야 한다”며 “당 강화만이 중국의 꿈을 실현할 수 있다”고 강조한 것이다. 인민해방군 또한 당에 절대 복종하면 당의 지도하에 ‘강군몽(强军梦)’, 즉 2049년 세계 일류 군대로 완성될 것이라고 했다.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 보완을 통해 경제개혁에 매진하는 한편 “중국이 손해를 감수할 것이라는 헛꿈을 그 어떤 국가도 꿔서는 안 된다”, “어떤 사람이나 어떤 조직, 어떤 정당이든지 대만 독립을 책동하고 중국 영토를 분열시키면 절대로 용납하지 않겠다” 등 ‘통일된 외교 강국’도 선포했다.
시 총서기는 앞서 여러 차례 ‘초심’을 언급했다. 대표적인 예를 들어보자. “초심을 잊지 말고, 지속적으로 전진하자(不忘初心, 继续前进)”. 이는 시 총서기가 2016년 7월 1일 중국공산당 창당 95주년을 맞아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한 연설의 일부분이다. 또 다른 예는 추궈훙(邱国洪) 주한 중국대사가 지난 8월 18일 현대중국학회와 한국고등교육재단이 공동주최한 ‘한·중수교 25주년 국제학술회의’ 축사에서 드러났다. 추 대사는 “한국의 새 정부가 들어선 이후 시진핑 국가주석이 문재인 대통령과의 통화·회담에서 ‘초심(初心)을 잊지 말자’는 말을 두 차례 언급한 적 있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있고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관건은 어떤 태도와 방법을 취하는가에 달려있다”면서 시 총서기의 초심 언급을 소개했다. 추 대사는 “여기에서 초심은 양국 국민의 이익과 소망에 부합하고, 상호 핵심이익과 주요 관심사를 존중하는 것 등을 말한다”며 “양국이 멀리 내다보며 초심을 잊지 않고 손잡고 함께 나아갈 수 있다면 빨리 장애물을 제거하고 아름다운 미래를 맞이할 수 있다는 걸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10월 24일에 끝난 19대에서 뽑힌 중앙위원들의 면면을 봐도 초심의 유지를 잘 읽을 수 있다. “초심을 잊지 말고, 사명을 견지하자(不忘初心, 牢记使命)”는 주제로 한 앞선 시 총서기의 연설을 그대로 실천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공산당은 끊임없이 새로운 시대에 적합한 인물들을 검증해 발탁하고, 초심에서 벗어나 부패 고리로 전락할 경우 가차 없이 중도하차 시키고 특정 인물들의 연수가 다하면 또 다른 인물로 그 역할을 대신 이어가도록 수혈한다. ‘의심스러운 사람을 쓰지 않는다(疑人不用)’, ‘67세는 잔류하고 68세는 은퇴한다(七上八下)’, ‘능력에 따라 발탁할 수 있고 능력에 따라 강등할 수 있다(能上能下)’는 인사원칙이 지켜진다. 그렇기에 운에 기대는 인물이 아니라 시대가 요구하는 이들이 등장하게 된다.
19차 당대회의 중앙위원 204명 가운데 18기에서 연임된 인원은 78명에 불과했다. 신임 위원 비율은 62%, 전기의 56%보다 높아졌다. 기존에 중앙위 후보위원이나 중앙기율감독위원회에 포함되지 않았던 완전히 새로운 인물은 80명이나 됐다. 172명의 중앙위 후보위원까지 포함하면 전체의 75%가 ‘새로운 피’다. 문화대혁명 때 마오쩌동 전 주석이 권력투쟁을 위해 기존 중앙위원을 완전히 몰아낸 뒤 최대 규모의 교체다. 중앙위원 가운데 1950년대 후반생은 전체의 78%로 다수를 차지했다. 1953년생인 시 총서기보다 나이가 많은 40년대 후반에 태어난 위원들은 전부 퇴진했다. 10월 25일 선출된 정치국원 인사를 보면 25명 가운데 15명이 새 인물로 물갈이 됐다. 장춘셴(张春贤·64) 건설공작영도소조 부조장, 류치바오(刘奇葆·64) 선전부장, 리위안차오(李源潮·67) 부주석이 낙마했다. ‘칠상팔하’ 원칙에 따르면 이들은 아직 은퇴 연령이 아니었다. ‘능상능하’ 원칙이 적용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시 총서기의 현재 입지를 잘 보여주는 것으로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이 당장(党章·당헌)에 들어갔다. 장쩌민, 후진타오 등을 포함한 당 대표 2300여 명 전원이 10월 24일 19차 당대회 폐막식에서 손을 들어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이 삽입된 당장 개정안에 대해 찬성을 표했다. 기존 당장에는 마르크스·레닌주의, 마오쩌동 사상, 덩샤오핑 이론, (장쩌민의) 3개 대표론, (후진타오의) 과학적 발전관이 지도이념으로 명시돼있었다. 전임자인 장쩌민과 후진타오가 각각 주창한 지도이념에는 개인 이름이 들어가 있지 않다.
덩샤오핑 이론, 3개 대표론은 최고 지도자의 사후 또는 은퇴와 동시에 지도이념으로 확정됐다는 점에서 이번에 시진핑이라는 이름 석자가 들어간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이 당장에 명기됐다는 사실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당장에 명기된 시기를 보면 마오쩌동 사상은 1945년(1935년 준이(遵义)회의 등을 거쳐 명실상부 최고 지도자가 된지 10년 뒤), 덩샤오핑 이론은 1997년(덩샤오핑 사후), 3개 대표론은 2002년(장쩌민 은퇴와 동시), 과학적 발전관은 2007년(후진타오 집권 2기 시작)이다. 따라서 혹자는 마오쩌동에 버금가는 권력을 누린 덩샤오핑도 사후에, 그것도 사상이 아닌 이론으로 당장에 들어갔는데 이번에 ‘시진핑 사상’이라고 한 것 자체가 마오의 반열까지 오른 것이라며 ‘절대권력 시황제의 등극’이라고 평가한다. 허나 중국 인민의 마음에는 마오쩌동과 시진핑은 단순한 상대평가의 대상으로 남아있지 않다.
외국 언론들의 분석 틀은 권력을 너무나도 상대화, 단순화하는 경향이 농후한 것 같다. 계파 투쟁과 관련해서도 태자당, 퇀파(团派·중국공산주의청년단 출신), 상하이방 등으로 단순 도식화해서는 중국 정치과정을 완벽하게 설명하는 것이 어렵다. 물론 시 총서기와 이런 저런 인연을 갖고 있는 이들의 파격적인 발탁, 즉 ‘시자쥔(习家军)’의 대약진이 도드라지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세계 여러 나라에서도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그런 점에서 필자는 시진핑 2기 체제를 지탱하는 그룹은 모두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를 건설하기 위해 연합한 중국제일파’라고 불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19차 당대회를 보면서 권력기반이 마오쩌동의 수준에 이른 것은 중요한 팩트가 아니라 시 총서기가 시대적 요청에 따른 최고 지도자로 확실히 증명됐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동안 당내 여러 계파의 저항이 있었지만 타협과 설득 과정, 심지어 “호랑이(고위관료)든 파리(하급관리)든 모두 때려 잡겠다”는 반부패 투쟁을 통해 집권 5년 차인 시 총서기에 대한 권력 집중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시대적 소명과 현실을 공산당 지도부가 온몸과 마음으로 인정한 것이다. 시 총서기 제1기 체제에서 정치국원급 이상 5명, 차관급 280명, 국장급 8600명이 부패혐의로 처벌을 받았다. 군 간부도 1만3000명이 비리로 처벌을 받았다. 중국 국가통계국의 조사에 따르면 시 총서기 제1기 체제의 반부패정책에 대해 중국 국민의 지지도는 2012년 75%에서 2016년 92.9%까지 치솟았다.
10월 28일 공개된 당장을 찬찬히 살펴보면 시진핑이라는 이름이 모두 11차례 언급된 것을 알 수 있다. 장쩌민과 후진타오가 각각 한차례 언급된 것과 크게 대조된다. 마오쩌동은 13차례, 덩샤오핑은 12차례 등장했다. 마르크스와 레닌은 각각 25차례 언급됐다. ‘민주집중제’를 견지한다는 대목에서 “시진핑 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당 중앙의 권위와 집중되고 통일된 지도를 확고하게 옹호한다”는 내용, 2013년 중국식 세계화로 제창한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 2015년 경제개혁 키워드로 제시한 공급측 구조개혁 등이 당장에 추가됐다. 중국의 꿈도 당장에서 2차례 등장했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은 4차례 언급됐다. ‘강국’ 언급 횟수도 종전의 3회에서 6회로 늘어났다.
둘째, 정치국 상무위원과 31개 성·시·자치구 당서기의 면면이다. 시(64) 총서기, 리커창(李克强·62) 국무원 총리의 유임과 함께 리잔수(栗战书·67) 중앙판공청 주임, 왕양(汪洋·62) 부총리, 왕후닝(王沪宁·62) 중앙정책연구실 주임, 자오러지(赵乐际·60) 중앙조직부장, 한정(韩正·63) 상하이 서기가 정치국 상무위원 자리를 새롭게 꿰찼다. 자오러지는 ‘반부패 사령관’과 같았던 왕치산(王岐山) 당 중앙기율위원회 서기의 ‘칠상팔하’의 인사원칙에 따른 퇴임으로 자리를 이어받았다. 그밖에 상무위원들에 대한 구체적 직책은 내년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를 통해 공표될 예정이다. 국가의사 결정기관인 전인대는 행정기관인 국무원과 사법기관인 법원에 대한 인사와 입법, 정책 결정권을 갖고 있다. 시 총서기도 전인대를 통해 국가주석에 선출됐다.
이번 정치국 상무위원 인선을 통해 ‘칠상팔하’원칙은 여전히 유효하되 덩샤오핑에 의해 시작된 ‘격대지정(隔代指定·현 지도자가 한 세대를 건너뛰어 그 다음 세대의 지도자를 지명하는 방식)’의 후계 구도가 막을 내렸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사실 격대지정은 역사적 경험의 산물이었다. 즉, 시대적 당위성이 소멸되면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운명이었다. 과거 마우쩌동은 린뱌오(林彪), 화궈펑(华国锋) 등을 후계자로 내세웠으나 실패했다. 덩샤오핑 역시 후야오방(胡耀邦), 자오쯔양(赵紫阳) 등을 염두에 뒀으나 이 또한 실패했다. 이에 따라 등장한 게 1992년 당대회에서 장쩌민과 함께 후진타오를 후계자로 지명해 장쩌민 이후를 대비케 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덩샤오핑의 후계 사전지명 논리보다는 새로운 강국, 중국을 만들어가야 할 시대적 과제 앞에서 보다 효과적이고 안정된 단일 지도체제를 구축하는 게 최우선이 된 것이다. 정치국 상무위원 전원을 60대로 구성하고 정치국원에 50대를 다수 배치해 더 나은 미래 지도자를 연마해 ‘두 가지 100년 목표’를 달성케 한다는 점에서 ‘최상의 행마’라고 아니할 수 없다.
19차 당대회 이후 상하이, 광동(广东)성 등 주요 지방정부 인사가 이어져 31개 성·시·자치구 중 16곳의 1인자 자리(당서기)는 시 총서기의 세력인 소위 ‘시자쥔’이 차지하고 있다. 5년 전에 비해 8배가 늘어난 것. 한정 상하이 서기가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선출됨에 따라 새 상하이 서기에 리창(李强) 장쑤(江苏)성 서기를 임명됐다. 리창은 시 총서기가 저장(浙江)성장과 서기로 근무할 때 비서실장으로 보좌했다. 리창은 18차 당대회에서는 후보 중앙위원이었다가 최근 중앙위원을 거쳐 정치국원으로 고속승진 했다. 리창은 이번 당대회를 통해 정치국원으로 포진한 천민얼(陈敏尔·57) 총칭(重庆)시 서기와 후춘화(胡春华·54) 전 광동성 서기, 딩쉐상(丁薛祥·55) 중앙판공청 주임과 함께 정치국원 50대 기수다.
지난 1월 상하이 2인자에 오른 잉융(应勇) 시장 역시 시 총서기의 저장성 인맥이다. 시자쥔이 장쩌민의 권력기반인 상하이방의 근거지인 상하이를 접수하게 된 것이다. 후춘화 후임 광둥성 서기에는 리시(李希) 랴오닝(辽宁)성 서기가 발탁됐다. 리시는 시 총서기의 부친인 시중쉰(习仲勋) 전 부총리의 동료인 리쯔치(李子奇) 간쑤(甘肃)성 서기의 비서 출신으로 산시(陝西)성 옌안(延安)시 서기 재직 시절, 시 총서기가 하방생활을 했던 량자허 마을을 관광지로 개발했다. 중국 4대 직할시와 중국 부자 성인 광둥성 책임자가 모두 시 총서기의 측근이라고 할 수 있다. 베이징 차이치(蔡奇) 서기, 충칭 천민얼 서기, 톈진(天津) 리훙중(李鸿忠) 서기, 상하이 리창 서기, 광둥성 리시 서기. 이밖에 장쑤성 서기엔 2015년 시진핑 국가주석의 방미 때 수행한 러우친젠(娄勤俭) 산시(陝西)성 서기가, 산시성 서기엔 시 총서기의 모교인 칭화대(清华大)를 기반으로 한 후허핑(胡和平) 산시성장이 각각 임명됐다. 시 총서기가 푸젠(福建)성장으로 있을 때 샤먼(厦门)시 조직부장 등으로 재직한 위웨이궈(于伟国) 푸젠성 성장이 푸젠성 서기로 승진했다. 리시 서기 후임으로 천추파(陈求发) 랴오닝성 성장이 서기로, 공안부장으로 임명된 ‘리잔수의 복심’ 자오커즈(赵克志) 허베이(河北)성 서기 후임으로 왕동펑(王东峰) 톈진 시장이 각각 승진했다.
한편 중국공산당 권력의 주요 요직이라 할 수 있는 3P(인사·Personnel matters, 선전·Propaganda, 인민해방군·People’s Army)를 시자쥔이 모두 독차지했다. 주요 공산당 간부는 물론 국유기업 최고경영자 인사까지 좌우하는 당 조직부장에 시 총서기의 칭화대 동창이자 기숙사 룸메이트인 천시(陈希) 조직부 부부장이 자오러지 후임으로 임명됐다. 천시는 칭화대 학생당 지부 서기였던 시진핑의 추천으로 공산당에 입당했다. 그는 시진핑의 칭화대 대학원 박사과정 입학을 주선하기도 했다. 당 선전부장은 시 총서기를 푸젠성과 저장성에서 모두 보좌한 황쿤밍(黃坤明) 부부장이 류치바오 후임으로 발탁됐다. 당 중앙군사위원회의 경우 전체 인원을 11명에서 7명으로 줄여 군사위 주석을 겸하는 시 총서기의 군수 통제권을 강화했다. 특히 군사위 부주석 2자리에 시진핑이 푸젠성에서 일할 때 현지 공군부대 책임자로 인연을 맺은 쉬치량(许其亮) 부주석이 연임되는 한편 시중쉰과 혁명 전우인 부친을 둔 장유샤(张又侠) 군사위 위원이 부주석으로 승진했다. 장유샤는 처음으로 정치국원이 됐다.
셋째, 지난 10월 27일 첫 정치국 회의에서 국무원 총리를 포함한 모든 정치국원이 매년 당 총서기에게 서면보고를 하도록 의무화한 ‘당 중앙 집중 통일 영도 강화와 옹호에 관한 약간의 규정’이다. 이 회의에서 정치국원 전원은 “19차 당대회 정신의 학습, 선전, 실현”을 요구하면서 시진핑 총서기가 모든 당이 옹호하고, 인민이 우러르며, ‘영수(领袖)’ 칭호에 전혀 부끄럽지 않은 지도자라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했다. 지금까지는 국무원, 전인대, 정협, 법원, 검찰 등 5대 기관의 당위원회가 정치국 상무위원에 업무보고를 하면 됐다. 하지만 앞으로 정치국 24명은 모두 총서기 개인에게 자신의 직무와 관련된 사항을 보고해야만 한다. 앞선 지도자 덩샤오핑이 중대 사안을 표결할 때 총서기를 비롯해 상무위원에게 등가의 1인 1표만 각각 부여하는 ‘민주집중제’가 더 이상 용인이 안 된다는 것이다. ‘핵심(核心)’ ‘영수’ ‘총설계사’ ‘조타수’ 등 시 총서기를 부르는 내부 목소리가 커지면서 우상화 기운으로 느껴질 정도다. ‘영수’ ‘위대한 조타수’ 등은 마오쩌동에 대한 호칭이었다. ‘총설계자’는 덩샤오핑의 별명이었다. 당·정·군의 최고 권력자로서 국방, 외교, 경제, 치안, 테러, 인터넷 등 무려 10개의 영도소조를 손수 이끌고 있는 시 총서기의 권력이 얼마나 공고해졌는지를 보여주는 바로미티다.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은 중국 전국 교과서에도 실릴 예정이다. 초등학교 5∼학년 교과과정에 포함될 예정이다. 시진핑 사상 연구소도 각 대학(대학원)에서 봇물처럼 설립되고 있다.
“전면적인 종엄치당(从严治党)은 영원히 지속될 것이며, 잠시 한숨을 돌리거나 쉬었다 가려는 생각은 있을 수 없다. 당의 건강한 신체를 갉아먹는 모든 바이러스를 계속해서 척결해 깨끗하고 올바른 정치생태계를 만들어 나갈 것이다.” 시 총서기가 지난 10월 25일 19차 당대회 제1차 중앙위원회 전체회의(1중전회) 폐막 후 열린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밝힌 내용이다. 시 총서기가 중국공산당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당 조직의 기강 해이와 부패는 강국으로 나아가는 데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죄목인 것이다. 따라서 사정 대상은 확대되고 부패 조사는 더욱 정교화될 것이다. 그중 하나가 당 사정기관인 중앙기율검사위원회와 국무원의 감찰조직을 통합한 국가감찰위원회 설립안이다. 내년 3월 전인대에서 통과될 것으로 보이는 국가감찰위는 국가급 최고 사정기관으로 공산당원뿐만 아니라 국무원 등 정부기관에 소속된 모든 공무원을 사정할 수 있다.
지금까지를 요약하면 시 총서기의 집권 2기는 ‘개인 시진핑’이 아닌 ‘시진핑 사상’으로 출발했다. 의식주가 해결되는 완전한 샤오캉 사회 건설로 21세기 중반 부강한 인민민주 문명과 조화롭고 아름다운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 중화민족의 부흥을 꿈꾸고 있다. 시 총서기의 말대로 인민들이 생각하는 아름다운 생활에 대한 요구는 갈수록 증가한다. 반면 이 같은 요구와 현실 사이에는 언제나 불균형, 불충분한 발전의 모순이 존재한다. 이에 대한 해법은 전체 인민의 공동의 부를 끊임없이 촉진하는 것이다. 사회의 불평등 구조와 양극화를 심화시킨 선부론(先富论·일부 국민과 지역이 먼저 잘살게 한다)과의 결별과 불평등 해소와 복지 확충 등의 공부론(共富论)의 등장이다.
시 총서기가 제18차 당대회 보고 이래 내건 경제건설, 정치건설, 문화건설, 사회건설, 생태문명건설의 5위1체(五位一体)는 완전한 소강사회 건설(全面建成小康社会), 완전한 개혁 심화(全面改革深化), 완전한 의법치국(全面依法治国), 엄격한 당 관리(全面从严治党)라는 4개 전면으로 구체화될 것이다. 노선자신(道路自信), 이론자신(理论自信), 제도자신(制度自信), 문화자신(文化自信) 등 4대 자신감으로 충만한 시 총서기의 설계도와 실행계획이 어떻게 진행될지 지켜볼 일이다. 문제는 중국 기독교가 매우 만만치 않은 새로운 도전이자 기회의 순간을 맞이했다는 것이다. 중국 특색 사회주의 강국을 건설하는 데 중국공산당은 그 정점에 서게 될 것이다. 당이 모든 중심적 역할을, 그것도 모든 영역에서 독점적으로 하려고 할 때 중국교회가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할지 결정해야 할 것이다.
시진핑 사상의 기본 방침 14가지에서 앞으로 찾아내야 할 길을 희미하게나마 볼 수 있을 것이다. 14가지 기본방침은 다음과 같다.
첫째, 중국의 모든 업무는 공산당이 주도해야 한다. 공산당·정부·군대·민간·학교 등 어디든 모든 것은 공산당이 주도해야 한다.
둘째, 인민이 중심이 돼야 한다. 인민은 역사의 창조자이자 당과 국가의 명운을 결정하는 근본적인 힘이다.
셋째, 완전한 개혁 심화는 계속 유지돼야 한다. 사회주의만이 중국을 구할 수 있고, 개혁·개방만이 중국의 발전은 물론 사회주의와 마르크스주의의 발전을 이룰 수 있다.
넷째, 새로운 발전이념을 유지해야 한다. 발전은 중국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기초이자 열쇠이다. 발전은 과학적이어야 한다. 창조·협조·녹색·개방·공유의 발전이념을 확고히 관철해야 한다.
다섯째, 인민이 주인이라는 관점을 유지해야 한다. 공산당 주도, 인민 주인, 의법치국의 세 가지가 유기적으로 통일되는 게 사회주의 정치발전의 필연적인 요구다.
여섯째, 전반적으로 의법치국을 유지해야 한다. 법에 의한 통치는 중국 특색 사회주의의 본질적인 요구이자 확실한 보장이다.
일곱째, 사회주의 핵심가치 체계를 유지해야 한다. 문화적 자신감은 한 국가나 민족의 발전에 있어 기본 요소이고, 발전을 훨씬 심오하게 하며, 또 이를 지속시키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여덟째, 발전에 있어서 민생의 보장과 개선을 유지해야 한다. 민생복지의 증진은 발전의 근본적인 목적이다.
아홉째, 사람과 자연의 조화로운 공생을 유지해야 한다. 생태문명 건설은 중화민족이 영원히 발전할 천년대계이다.
열째, 총체적인 국가안보관을 유지해야 한다. 발전과 안보의 총괄, 내우외환에 대한 위기의식 증강, 상시 위기대응 준비는 중국공산당에 의한 국가통치의 중요 원칙이다. 열한 번째, 공산당은 인민군대의 절대적인 지휘를 유지해야 한다. 인민군대는 공산당의 한마디 지시에도 복종하고, 싸워서 이길 수 있어야 하며, 품행도 단정해야 한다. 공산당 창당(1921년)과 중국 건국(1949년)에 대한 ‘두 가지 100년’ 목표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의 실현을 위한 전략적인 버팀목이 돼야 한다.
열두 번째, ‘일국양제(一國兩制)’ 유지와 조국통일을 추진해야 한다. 홍콩과 마카오의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번영을 유지하고 (대만과의) 완전한 조국통일을 실현하는 것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에 있어 필연적인 요구다. 열세 번째, 인류운명공동체 건설 추진을 유지해야 한다. 중국 인민의 꿈과 각국 인민의 꿈은 의기투합할 수 있다. 중국의 꿈은 평화적인 국제환경과 안정적인 국제질서를 실현하는 것이다. 열네 번째, 엄중한 공산당 관리를 유지해야 한다. 용감한 자아혁명과 엄중한 공산당 관리는 중국의 가장 선명한 품격이다.
“시대는 사상의 어머니이고 실천은 이론의 근원이다. 시대의 소리를 착실하게 경청하고 진리를 지키면서 과감하게 잘못을 수정하는 것만이 21세기 중국의 마르크스주의가 더욱 강해지고 설득력 있는 진리로 발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하는 시 총서기의 마음을 움직일만한 중국 기독교의 내공이 아직까지 느껴지지 않는다. 중국교회 지도자들의 시야가 자칫 좁아져 있을 때 하나님의 세계경영 의지를 잘못 읽을 수 있다. 신앙의 눈으로 볼 때 하나님은 현재 중국을 움직이고 있다. 섬세하게 그 움직임을 포착하지 않는다면 암흑처럼 느껴질 수 있는 시기다. 중국교회는 지금까지 가보지 않은 새로운 길을 걸어가야 할지 모른다. 신시대, 신사상, 신목표를 갖고 있는 중국공산당이 바로 앞에 우뚝 서있기 때문이다. 초심을 잃지 않은 교회, 기독인이 강한 상대라 할 수 있는 중국공산당이 가장 힘겨워할 ‘신성한’ 약자가 아닐까 한다. 현명한 강자라면 유약해 보이지만 강자를 주눅 들게 할 혜안이 있을 것이다.
역사는 기독교의 공인화가 오히려 성도의 ‘거룩한 야성’을 무력화하고 교회와 성직자의 타락을 가져왔다는 걸 알려주고 있다. 내년 2월 1일 새로운 종교사무조례 시행을 앞두고 있는 중국 기독교는 과거와는 사뭇 다른 현실에 맞닥뜨리게 됐다. 예고된 대로 그대로 시행된다면 ‘정책이 있는 곳에 대책도 있다’는 여지가 작동할 시공간이 많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예배당은 곳곳에서 무너졌지만 주님의 에클레시아 공동체와 눈부신 생명력은 그 어떤 세력도 중단시킬 수 없었다는 점이다.
‘독실한’ 사회주의자이자 실용주의자인 시 총서기를 비롯해 중국 지도부가 그리고 있는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의 길에서 성도들이 어느 정도 어떻게 기여하게 될지, 맛을 잃지 않는 소금과 역할을 잊지 않은 빛과 같은 성도들이 얼마나 존재하게 될지 궁금하다. 과거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난제를 잘 풀어낼 수 있는 중국교회가 되기를 기도한다. 곁가지에 눈을 덜 돌리고 본질에 더 충실하다 보면 중국공산당조차 인정할 수 있는 성도들이 곳곳에서 드러나게 될 것이다. 500년 전 종교개혁의 정신이 하나님의 때에 독일통일의 밑거름이 됐듯이 중국교회의 오늘날 재정비가 내일의 선교중국을 이루는 에너지원이 됐다고 고백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쑨빈 | 중국인사역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