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 가을 새벽, 산동대(山东大)를 산책하다 교정 한쪽에서 수많은 학생들이 저마다 책을 외우며 공부하고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얼마나 공부에 열중하던지 옆에서 촬영을 해도 모를 정도였고 그들의 책은 빽빽한 필기와 밑줄로 오색찬란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중국인은 전통적으로 책을 외우는 공부 방법을 선호하였는데 현대에 와서도 이 습관은 ‘신독(晨读, 새벽 공부)’의 형태로 실행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새벽에는 어른들이 공원에서 춤과 무술을 즐기는 모습 한편에 새벽을 밝히며 공부에 열중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있었던 것이다. 문득 비싼 커피숍에 앉아 노트북을 펼쳐놓고 우아하게(?) 공부하는 우리나라 학생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중국의 대형 서점을 가보면 한결같이 1층 한가운데에 문사철(文史哲) 분야의 도서를 배치해놓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제남(济南) 신화서점을 둘러볼 때 별도로 꾸며진 멋진 방 안에 중국 전통 문사철 도서를 한 가득 전시해 놓은 것을 보고 감탄을 연발한 적이 있다. 문사철 도서의 중시는 최근 중국에서 불고 있는 유학열(유가에 대한 재평가), 국학열(국학에 대한 열정적인 관심), 독경열(경전과 고전읽기 붐)을 반영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역사의 숱한 굴곡 속에서 탄생되고 정리된 중국 고전들은 옛날부터 중국인들의 자부심의 원천이었고 중국을 문화강국으로 만들어온 저력이 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살아감에 있어 ‘지혜’를 중히 여긴다. 이 ‘지혜’가 생성되는 과정을 대략적으로 언급해보면, 초기의 ‘단편적 자료(Data)’에 의미가 부가되어 ‘정보(Information)’가 되고, 여기에 경험을 더하여 ‘지식(Knowledge)’이 형성되며, 다시 사고와 전이를 거쳐 ‘지혜(Wisdom)’로 재탄생되는 흐름으로 요약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핸드폰(Data)’이라는 기계가 지닌 다양한 기능을 ‘정보(Information)’라고 한다면, 이 기계를 능숙하게 사용할 줄 아는 것을 ‘지식(Knowledge)’이라고 하고, 이 기계가 지닌 각종 이점과 해악을 살펴서 슬기롭게 활용하는 것을 ‘지혜(Wisdom)’라고 할 수 있다. 만약 핸드폰 활용기술은 뛰어나되 중독에 빠져 판단력을 잃어버리는 경우라면 이는 지식만 있고 지혜가 없는 경우라 볼 수 있겠다. 그런데 초기의 ‘데이터’가 원숙한 ‘지혜’로 발전하는 이 일련의 과정 중에 꼭 필요한 것이 바로 “배우고(学) 익히는(习)” 훈련 과정과 이 지식을 “다양하게 전이하여 활용하고 생각하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배우고 익히는(学习)” 과정을 얼마나 성실하게 수행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가치와 능력도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공자가 논어의 첫 장에서 “배우고 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 (学而时习之, 不亦悦好?)”라고 한 것을 비롯하여 배움을 중시한 가르침은 끊임없이 언급되어 왔다. 당대(唐代) 한유(韩愈)는 어려서 조실부모하고 외롭게 자랐지만 공부에 매진하여 당대 최고의 학자로 인정받은 인물이다. 그런 그가 열일곱 살 소년 이반(李蟠)이 자신에게 배움을 청한 것에 감동하여 쓴 글이 《사설(师说)》인데 그 내용 중에 다음과 같은 언급이 나온다. 스승이란 진리를 전하고, 학업을 전수해주며, 의혹을 풀어주는 사람이다. (…) 사람은 자기 자식을 사랑하기에 스승을 청하여 자식은 가르치면서도 정작 자기 자신을 위하여는 스승 찾기를 부끄러워하니 정말 모를 일이다. (师者, 所以传道授业解惑也. (…) 爱其子, 择师而教之, 於其身也, 则耻师焉, 惑矣.) 무릇 스승 된 이는 진리의 모범이 되고 지식을 전달하면서도 끊임없이 의문을 제공하고 그로 인한 의혹을 풀어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과, 자식을 위하여 스승을 찾으면서도 정작 자신은 배우려 하지 않는 모순을 지적하는 내용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구절을 통해 나로 하여금 앞으로 달려가게 만들고 나를 발전시키는 것은 내가 알고 있는 현재의 지식이 아니라 새로운 지식을 얻고자 하는 신선한 의욕과 시도라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역경(易经)》에 “선인들의 지혜와 업적을 배워 덕을 쌓는다. (识前言往行, 而畜其德.)”라는 말이 나온다. 우리가 살면서 그토록 추구하는 ‘삶의 지혜’를 집적해 놓은 것이 바로 고전과 역사이고 이 속에는 실천적 가르침이 풍성히 담겨 있다. 인생을 살다 보면 특별히 공부하지 않아도 자신의 체험에 기인한 깨달음을 얻을 때가 많다. 그러나 앞선 위인들의 언행을 살펴보다 보면 나의 생각과 체험을 뛰어넘는 훌륭한 사례가 매우 많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내 지식이 잰걸음이라면 선인의 체험은 지혜를 향한 고속승강기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배우고 학습한 것에 대한 보상은 생각보다 크고 감격적인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물건을 샀을 때 행복감은 강도도 약하고 오래가지 않지만 경험을 통한 행복감은 상대적으로 크고 오래간다고 한다. 예를 들어 기분 좋게 산 비싼 가방일지라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행복감은 감소되지만 배움이나 의미 있는 노력은 생각할 때마다 우리를 뿌듯하게 한다는 것이다. 어떤 물건이 우리의 인생을 바꾸기 보다는 우리가 한 공부가 우리의 인생을 바꿀 확률이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배우고 익히는 것’은 신상에 환호하고 먹방에 눈 돌리는 젊은이들이 특히 생각해보아야 할 대목이고, 자신의 입지를 다져가는 청장년들이 삶의 노력과 함께 투자해야 할 덕목이며, 인생의 원숙기를 사는 노년들 역시 매일 자신을 새롭게 하기 위한 비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내 주변에서 배움을 실천하는 사람들과 교제하고 삶을 논의하면서 깨달음을 더하는 노력을 하는 이는 누구일까? 그러한 사람과 진실한 친구로 지내는 것은 크나큰 축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배다니엘 | 남서울대 중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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