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언1.JPG) 남한행만이 희망인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중국에 거주하는 북한 여성들은 신분의 불안정함으로 인해 항상 불안에 떨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많은 북한 여성들이 남한행을 원하고 있다. 중국에서 지내면서 남한의 발전된 경제와 사회를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하면서 남한행에 대한 열망이 더욱 커진다. 또 중국에 있으면 언제라도 강제 북송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결국 가장 안전한 길은 남한으로 가는 것이라는 현실적인 고려도 있다. 그렇지만 이 여성들을 남한으로 데리고 오는 것에는 많은 장애가 있다. 먼저 탈북 여성들의 난민 지위를 인정하지 않는 중국 정부 입장에서 이들의 남한행은 불법행위이고 단속의 대상이다. 그러다 보니 남한으로 탈출하기 위한 여정 가운데 단속에 걸려 잡히게 되었을 경우 중국에서 처벌과 함께 강제 북송을 피할 수 없다. 이렇게 한 사람이 잡히게 될 경우 중국 공안과 북한의 보위성에서 받은 심문 과정에서 자신이 살던 지역이나 자기와 교류했던 다른 북한 출신 여성들의 신원이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 여성과 연관되었거나 인근 지역에 거주했던 여성들도 덩달아 큰 두려움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게다가 한 여성의 탈출은 다른 북한 여성과 혼인한 남성과 그 가족들에게 경각심을 일으켜 가정 내 감시와 통제가 강해지는 것이 보통이기에 다른 잘 지내고 있던 북한 출신 여성들의 생활에 큰 제약을 가하는 일이 되기도 한다. 특히 여성들이 일방으로 중국에서 남한으로 ‘탈출’할 경우 그 여성이 속해 있던 중국의 가정은 큰 곤란을 겪게 되고 어머니로부터 버려진 처지가 된 자녀의 정서는 큰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다. 그나마 남한행을 선택한 여성이 그래도 중국의 가족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계속해서 교류하는 경우는 사정이 나쁘지 않다. 이런 경우에는 중국인 가족 측에서도 상황을 이해하고 그 여성도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중국에 자주 왕래하며 더 나아가 중국인남편과 자식을 남한으로 데리고 오기도 한다. 이런 경우에는 오히려 비밀리에 남한행을 결심하는 것이 아닌 가족의 협의가 있은 뒤에 남한으로 자연스럽게 넘어오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남한으로 성공적으로 이주한다 하더라도 태어날 때부터 중국인이었던 남편과 자식에게 남한은 그저 외국일 뿐이기에 제대로 된 적응도 쉽지 않다. 게다가 남편과 자녀는 북한과 직접 연관이 없어 ‘탈북민’에게 해당되는 각종 지원도 받을 수 없다. 이러한 사정으로 인해 많은 북한 여성들이 남한으로 가고 싶다는 마음을 자제하고 중국에 남아 가정을 지키고 있다. 그러나 일부 중개인들이 잘 적응하고 살고 있는 북한 여성들에게도 접근하여 남한으로 가도록 꾀어서 결국 남한으로 가게 만들고, 이 여성들이 한국 정부로부터 받는 지원금의 상당 부분을 갈취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신변의 노출 등으로 인한 위협이 있고 중국 안에서 생활이 곤란한 여성들에게는 남한행이 효과가 있는 수단일 수 있겠으나 남한행만을 이 문제의 해결책으로 여기기에는 고려해야 할 점들이 많다. 현장사역의 필요성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다시금 주목하는 것은 바로 현장에서 이들을 만나고 신앙으로 양육하는 사역의 필요성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중국 내 북한 여성들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비인간적인 폭력과 차별을 경험하는 경우가 많고, 이로 인한 마음의 상처와 아픔도 크다. 인간적으로는 불행하다고도 할 수 있는 이 여성들에게 우리가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은 무엇일까?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 앞에서 나면서부터 걷지 못했던 거지에게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라고 담대하게 선포했던 장면을 기억한다. 은과 금보다도 더 귀한 그 이름, 그들의 아픔을 싸매어주고 날 때부터 진정한 평안과 안식이 없었던 이들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라는 믿음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이 있다면 이제는 우리가 복음을 들고 그 여성들에게도 다가가야 할 것이다. 말씀으로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치유하며, 이 땅에서 비록 역경 가운데 있었지만 예수 안에서는 풍성한 은혜와 축복이 있음을 그들이 깨닫도록 하는 복음사역이 절실하다. 또 이 여성들이 잘못된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말씀으로 지도하고 격려하고, 이들의 열악한 경제 상황을 극복하고 또 북에 남아있는 가족들을 섬길 수 있도록 사회•경제적인 도움을 제공하는 일도 필요하다. 이러한 신앙양육은 이들이 나중에 남한으로 건너오게 되더라도 세상 유혹과 풍조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말씀 안에서 굳게 설 수 있는 발판이 된다. 이렇게 양육받은 북한 여성들이 지금 현재도 이미 중국과 북한을 잇고 더 나아가 남한까지 잇는 훌륭한 축복의 통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자신이 속한 중국의 가정과 자신이 돕고 있는 북한의 가족들에게 이 여성들이 미치는 영향력은 실로 막대하다. 비록 겉으로 보기에는 세상에서 자랑할 것이 없는 사람들이지만 이 여성들이 말씀 안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로 성장하였을 때, 자기가 속한 중국 가족과 그 마을을 변화시키고 또 북한의 자기 혈육들에게도 복음의 통로 역할을 하는 것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술만 마시면 자신을 때리던 중국인남편이 기도 가운데 변화되는 체험을 하고 이를 기뻐하며 주님 앞에 고백하는 모습을 본다. 또 중국과 북한의 가족 모두를 걱정하며 기도하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 애쓰는 이야기를 들으며 실로 고린도전서 1장 27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심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안타까운 사실은 중국 내 북한 여성들의 수에 비해 이들을 만나고 양육하는 사역자들의 숫자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중국 내 북한 여성사역은 그 사역을 안전한 가운데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 상당한 수준의 개인의 언어적, 사역적 역량과 안전에 대한 감각, 그리고 체력을 요구한다. 게다가 한국교회 안에서 중국 내 북한 여성들에 대한 관심은 턱없이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다. 한국교회가 이들을 기억하고 이 여성들을 섬기기 위한 사역자 양성과 파송에 적극 나서야 한다. 비록 많은 지정학적 특성으로 인해 북한선교의 모습도 다양해졌지만 결국은 한 영혼, 한 영혼을 섬기고 복음으로 양육하는 것이 가장 근본 사역의 방향이요 목표일 것이다. 지금은 비록 북한 내에 영혼들을 직접 만나고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제약이 있지만, 다른 한편에는 지금도 하나님의 사람들이 섬기고 돌볼 수 있는 많은 북한의 영혼들이 있다. 이제는 더 많은 이들이 그 땅의 여성들의 처지와 필요를 알고, 자신을 준비하고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 일을 위해서 함께 기도하자. 주님이 내 백성을 위로할 자들을 찾고 계시며 추수할 일꾼들을 부르고 계신다. (끝) (*) 이 글은 <선교타임즈> (2017년 8월호)에 실린 내용을 저자의 허락을 받고 게재한 것입니다.
한국오픈도어선교회 북한선교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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