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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8.1 통권 180호     필자 : 김선영 프린트   이메일 
[선교사의 삶과 사역]
선교지에서 더 깊이 만나주신 하나님

우리가 어떻게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었을까
나는 열아홉 살에 전도사가 되어 교회 사역을 시작했다. 나를 구원해 주신 주님의 은혜에 너무너무 감사해서 새벽부터 밤이 늦도록 미친 듯이 사역에만 전념했다. 하지만 10년 넘게 사역을 하다 보니 점점 율법주의적 사역자가 되어 가고 있었다. 서른이 넘어 두 번째 교회로 사역지를 옮기게 되었고 이 교회에서 사역을 하던 중에 선교사로 부르심을 받았다.
 

선교사로 헌신하고 곧바로 선교사훈련원에서 훈련을 시작했다. 선교사훈련은 매주 월요일에 수업을 시작해서 금요일이면 훈련원을 나와 주말에는 각자의 사역지에서 사역을 해야 했다. 나는 선교사훈련원에서 신장 이식 수술을 받은 지 막 1년이 지난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만나서 보니 나는 10년이 넘게 무보수 사역자로, 남편은 10년이 넘게 신장 투석을 해온 신장 투석 환자였다. 우리는 각자 서로 다른 삶의 환경과 훈련 방식 속에서 지내왔지만, 그 세월 동안 주님을 알아가며, 훈련을 받으며, 다듬어지는 삶 속에서 하나님이 우리 각자에게 주신 말씀과 비전이 일치함을 발견했다. 우리는 아주 짧지만 확신에 찬 한 달을 보내고 주님 안에서 부부가 되었다.
 

결혼식을 올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갑상선암이 발견되어 수술을 했다. 그리고 한 달 만에 아들 에녹이를, 그리고 1년 뒤에 딸 예은이를 선물로 받았다. 나의 갑상선암과 10년 이상 신장 투석을 받고 있는 남편, 이 장벽을 뛰어넘어 태어나 준 두 아이들은 정말 하나님이 우리 가정에 주신 최고의 선물이요, 걸작품이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다.

신장 투석을 받으며 7년 만에 학부를 마친 남편은 선교지에서 대학원 과정을 공부하고 싶어했다. 남편은 중국어로 공부할 수 있는 선교지를 위해 기도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렸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난 뒤 남편한테 신장을 기증한 형제의 소개로 대만선교사님 한 분을 만났다. 그 선교사님은 급한 일이 생겨서 한국에 귀국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남편은 대만선교사님의 인도로 선교사님이 다니던 신학교에 들어가게 되었고, 신학교 총장님의 초청을 받고 선교사 비자로 우리 가족 모두 대만에 갈 수 있게 되었다. 기도의 응답이었다.
 

우리의 사역지로 대만을 허락하신 주님
교단의 후원도, 파송교회도 없이 가지고 있던 모든 물질도 다 주님께 바치고, 딱 한달 치 생활비만 들고, 하나님 한 분만 가슴에 품고, 의사소통도 어려웠던 언어실력을 가지고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땅, 주님이 주신 땅을 향해 출발했다. 거기는 우리가 실제 훈련을 받게 되는 광야다. 주님은 우리 가정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왕으로, 주인으로 모시고 살 때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확신케 하셨다. 광야를 지나는 이스라엘 백성들한테 만나와 메추라기를 공급하여 주신 것처럼, 또한 낮에는 구름기둥과 밤에는 불기둥으로 지켜주셨던 것처럼, 우리도 22년을 한결같이 사랑해 주셨다. 그리고 하나님을 철저히 경험하는 삶을 살게 하셨다.
 

1996년 11월 우리가 도착하고 보니 대만은 온통 우상으로 덮여 있는 습한 날씨만큼이나 영적으로 어두운 나라였다. 평생 면역억제제를 먹고 살아야 하는 남편과 어린 두 자녀와 함께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집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기도와 예배뿐이었다. 남편은 그 어렵다는 대만 사범대학교 언어중심에서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하였기에 남은 돈으로 생활비를 해결할 수 있었다. 그 후로 남편은 도생신학원(道生神学院)을 다니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남편을 따라 기숙사에 머무르게 되었다. 나는 아이들을 양육하는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남편과 함께 4년 동안 여러 현지인교회에서 사역실습을 하며 대만교회를 경험했다. 아이들이 아플 때는 언어적 장애와 물질의 부족으로 힘든 순간들도 많았지만, 주님은 여전히 공급해 주셨고 우리와 함께계시며 우리 식구들을 보호해 주시는 분임을 철저히 경험함으로 주님을 더 깊이 신뢰하게 하셨다.
 

큰 산 앞에서 다시 하나님께 무릎을 꿇다
우리 부부는 모든 면에서 저렴한 공립 유치원에 아이들을 보내기로 했다. 하지만 공립 유치원에 들어가려면 제비뽑기에서 당첨이 되어야 하는데, 하나님은 첫째를 먼저 보내 주셨다. 그뿐만이 아니라 대만장애인기금회의 보조로 교육비도 해결해 주셨다. 한 살 터울의 둘째는 오빠로 인해 더 쉽게 공립 유치원에 진학했고 교육비를 더 저렴하게 내고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첫째가 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었을 때, 우리 부부는 자녀들을 어떤 학교에 보내야 할 지 기도를 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학교를 우리에게 보여 주셨지만 거기는 우리가 꿈 꿀 수 있는 그런 곳이 아니었다. 이 학교는 선교사가 설립한 외국인학교였는데 교육비, 언어, 등 모든 면에서 단 1%의 가능성도 보이지 않았다. 오를 수 없는 큰 산 앞에서 다시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하나님이 주신 확신의 말씀과 남편의 지지에 힘입어 사람의 생각으로는 불가능했지만 용기를 내어 한발을 내딛을 수 있었다. 한발을 내딛으면 주님은 꼭 그 한 발만큼의 환경과 돕는 손길, 그리고 물질을 주셨다. 그렇게 하나님이 주신 선물인 자녀들은 우리 부부가 어떻게 주님과 친밀하게 교제를 하고, 어떻게 모든 필요를 채워주시는 지를 보고 직접 경험하며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며 자랐다. 그렇게 하루, 한 달, 일 년을 주님께 맡긴 시간이 어느덧 13년이 되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갖가지의 방법으로 공급하여 주셨다. 그렇게 아이들은 무사히 고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  
 

이식받은 신장의 수명이 다되어 맞은 생명의 위기
남편이 사역을 하는 19년 동안 이식받은 신장도 서서히 수명을 다해 갔다. 그런 탓에 남편은 길거리에서 혼절하여 119구급차를 타고 응급실을 오가며 육신의 죽음뿐만 아니라 영적인 전쟁도 처절하게 치렀다. 당시 아이들은 대학 진학을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하던 시기였다. 이제껏 우리 가정의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신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고 섬기는 것, 이것이 우리 가족의 존재 목적이었기에, 중국어와 영어를 할 수 있는 아이들이 한국을 근거지로 사역을 하려면 한국에 있는 대학을 선택해야 했다.

하지만 현실은 한 살도 안되어 대만에 와서 지금까지 자란 아이들이 한국어로 수업을 받고 과제를 하며, 한국 문화에 적응하며 살 수 있을까 하는 것이 큰 숙제로 다가왔다. 우리 아들이 다니는 고등학교 졸업생들 중 유일하게 우리 큰 아이만 한국의 대학을 진학하는 것을 택했기 때문, 학교측이나 우리 모두 너무 힘들고 어려운 과정을 거치며 입학을 준비했다. 이 과정에서 지금껏 우리 가정을 인도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발견하고, 그분을 섬기는 우리 가정의 사명이 흔들리지 않음을 보게 하셨고, 주님은 대만에서 두 가지 축복의 길을 열어 주셨다.
 

첫째는, 남편의 두 번째 신장 이식을 허락하셔서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를 크게 경험하게 하신 것이다. 첫 번째(이호택 형제님, 1991년 기증) 이식과, 두 번째 이식(강연순 사모님, 2015년 기증) 모두 주님께서 기증자들한테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요한일서 3:16의 동일한 말씀으로 감동을 받게 하셨는데, 이 두 분의 순종으로 남편은 또 한 번의 기적을 경험하게 되었다.
 

둘째는, 큰 아들의 한국 대학 입학으로 가족 모두가 큰 위로를 받은 것이다. 아빠를 병간호하며 아무 지원도 없이 혼자서 준비해 쓴 원서로 합격할 수 있었던 것은 아들한테도 다시 한 번 주님의 사랑을 깊이 느끼는 기회가 되었다. 또 둘째 딸도 한국 대학의 간호학과에 입학했다. 딸은 앞으로 전문인선교사로서 주의 복음을 전하는 도구로 쓰임받을 수 있도록 허락하신 주의 인도하심에 더할 나위 없이 기뻐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지금도 우리 곁에서 함께 일하시는 주님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 우리는 너무 무모하고, 물질이나, 건강, 학식 그 어느 것 하나 가진 것 없는 참으로 나약한 선교사였다. 그러나 지난 시간 가운데 주님은 현지인들과 나눈 삶과 신앙의 교제를 통해 너무나 많은 것들을 배우게 하시고, 우리에게 공급해 주셨다. 장애인센터 사역자로, 대만교회의 부교역자로 여러 교회를 섬기면서 우리는 더 겸손히 주님의 마음을 알아갈 수 있었다.
 

지금은 6년 전에 개척한 작은 교회를 섬기고 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라고 말씀하신 주님의 약속을 지금도 매일 체험하며, 매일매일을 신실하고 성결한 충성된 종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기도와 찬양을 올려드린다.
 

지금 대만은 영적으로 육신적으로 몹시 혼탁한 나라가 되어 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 가족한테는 더욱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이들을 품을 수 있게 해주신 축복의 땅이다. 그러기에 백 마디의 말보다 우리가 죽어져 썩어지는 밀알이 되어야 할 이유와 동기를 준 나라이다. 다시 주님께서 말씀하셔서 우리의 사역지를 옮겨 주시기 전까지, 우리가 사랑하며 섬겨야 할 대만에서, 오늘도 연약한 무릎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해 섬김과 기도로 나아간다.

 





김선영 | 대만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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