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중국 위해(威海)의 길거리에서 입으로 서예를 하는 장애인을 만난 적이 있다. 사고로 두 팔을 잃고 8년을 수련한 후 입으로 글을 쓴다는 안내문을 보고 “예수님은 나의 주인이시라”라는 글을 써달라고 하니 그는 “저도 크리스천입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라며 반가워했다. 내친김에 “영정치원(宁静致远: 평온함을 지켜서 멀리까지 이른다.)” 글귀도 부탁하니 “저 역시 참 좋아하는 말입니다.”라며 멋진 필치로 작품을 만들어주었다. 더운 날씨에 떨어지는 땀을 어린 딸이 닦아주던 모습이 참으로 애틋해 보였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헤어졌는데 어려움 속에서도 신앙생활을 하며 열심히 살아갔던 그가 문득문득 생각이 난다.
영정치원은 제갈량(诸葛亮의 글에서 유래한다. 제갈량은 유비(刘备)가 자신을 등용하기 위해서 ‘3번이나 초가집을 방문(삼고초려)’했던 정을 잊지 못해 17년 동안 유비를 진심으로 보좌했을 뿐 아니라 유비 사후에도 아들 유선(刘禅)에게 충성을 다하였다. 제갈량은 촉한(蜀汉) 건흥(建兴) 5년(227)에 위(魏)를 공격하러 출병하며 혹시라도 유선이 조정에서 잘못된 판단이나 처신을 할 것을 우려하면서 자신의 진심을 담은 글을 올렸으니 이것이 바로 충신의 사표인 <출사표(出师表)>였다. (유선을) 모시는 신하들이 안에서 게으르지 않고, 충성스런 군사들이 밖에서 몸을 돌보지 않는 것은 선제(유비)의 특별한 대우를 생각해서 폐하에게 보답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신은 본래 평민으로 남양(南阳)에서 직접 농사지으며 난세에 그저 목숨이나 보존할 뿐 제후들에게 이름이 알려지기를 원치 않았는데, 선제께서 신을 비천하게 여기지 않으시고 외람되게도 손수 몸을 굽혀 초가집으로 세 번이나 신을 찾아주시고 당시의 일을 물으셨습니다. 이에 감격하여 마침내 선제께 온 힘을 다하겠다고 하였습니다. (…) (然이나 侍卫之臣이 不懈於内하고 忠志之士가 忘身於外者는 蓋追先帝之殊遇하여 欲报之於陛下也니 (…) 臣本布衣로 躬耕於南阳하여 苟全性命於乱世하고 不求闻达於诸侯러니 先帝不以臣卑鄙하시고 猥自枉屈하사 三顾臣於草庐之中하시고 谘臣以當世之事하시니이다. 由是感激하여 遂许先帝以驱驰러니 (…). 정성스러운 삼고초려로 제갈량을 영입한 뒤 “나에게 제갈량이 있는 것은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과 같다.”라는 ‘수어지교(水鱼之交)’의 이론을 펼치며 관우, 장비 등 주변의 시기를 잠재웠던 유비의 전폭적인 신뢰는 제갈량을 충신으로 만든 가장 큰 요인이 된다. 제갈량은 바로 그 사랑을 못 잊어서 지금의 황제 유선에게 충성을 다 한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지금 당신의 행동이 반드시 옳거나 좋아서 당신에게 잘하는 것이 아니다. 당신의 부친을 생각해서 당신에게 신의를 지키는 것이다.”라는 뜻이다. 제갈량은 자신이 받은 바 은혜에 대한 감격을 평생 소유했던 것 같다. 그 감동이 있었기에 소욕을 버리고 국가에 헌신할 수 있었으며 죽은 뒤 뽕나무 500그루와 밭 몇 평 정도의 재산만 남겨놓을 정도로 검소한 삶을 살 수 있었다. 그는 <계자편(戒子篇)>을 통해 아들에게도 허정한 마음을 지닐 것을 당부한 바 있다. “군자의 몸가짐은 고요함으로 몸을 닦고 검소함으로 덕을 기르나니 마음이 맑고 깨끗하지 않으면 뜻을 밝게 할 수 없고 마음이 편안하고 고요하지 않으면 멀리까지 이를 수 없느니라. (君子之行, 静以修身, 俭以养德, 非淡泊无以明志 菲宁静无以致远.)” 유비와 제갈량의 신의를 생각할 때마다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도 '저 맘이야' 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라는 함석헌 선생의 <그 사람을 가졌는가> 시가 생각난다. 누구나 살면서 인생의 기복이 있고 칼자루를 잡았다 놓쳤다 하는 삶을 반복하게 된다. 때로 타인에게 실망하거나 상처를 받았을지라도 나를 믿어주고 사랑을 베풀어주었던 어떤 이를 떠올리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해야지 하는 생각을 해보면 어떨까? 남을 알아주는 것은 가장 큰 명약일진대 내 마음이 아팠을 때 그 누군가가 나에게 그 명약을 값없이 처방해주었던 적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그 감사함을 소유한 이는 은혜를 귀하게 여기고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만남에 정성을 다하게 된다. 뛰어난 위인은 무언가 남다른 강건한 뜻이 있어서 업적을 남겼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대단한 무언가를 지니지 못한 범부라면 매 순간 받은 바 은혜에 대한 감사함이라도 잊지 않고 살아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언젠가 나를 향해 따듯함을 주었던 보이지 않는 가슴, 이것이 오늘도 우리를 아름답고 푸근하게 해주는 마중물이다! 유비와 제갈량이 죽어서도 1,800년 동안 같이 살고 있는 중국 성도(成都)의 무후사(武侯祠). 그곳의 빨간 두 줄기 벽과 그 너머로 대나무의 청정함을 싣고 아름답게 돌아가던 푸른 돌담길이 새삼 그리워진다.
배다니엘 | 남서울대 중국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