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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8.20 통권 83호     필자 : 방동섭 프린트   이메일 
[선교일언]
선교하는 교회를 세우는 것이 선교다

신약 성경이 우리에게 명확하게 보여주는 사실은 신약의 교회는 처음부터 “선교적인 공동체”(church as mission)였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하면 교회는 언제나 세상으로 “보내심을 받은 공동체”라는 것이다. 초대교회는 선교를 위해 태어났으며, 선교를 통해 존재하였고, 선교를 위해 전진하였다. 이것이 성경이 보여주는 교회의 개념 가운데 가장 중요한 개념이라고 본다. 블로우(Johannes Blauw)는 “세상으로 보내심을 받은 교회 외에 다른 교회는 없다”고 하였다. 즉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세상으로 들어가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면서 꾸준히 하나님의 나라를 들어내는 공동체만이 참된 교회라는 말이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20:21)라고 하셨을 때 이 말씀에는 교회의 성격을 보여 주는 매우 중요한 개념이 담겨 있다. 이것은 주님의 공동체인 교회 그 자체가 “선교사”라는 것이다. 그 동안 교회는 단지 “선교사”라는 몇 사람의 대표 선수를 선발하여 그들을 선교지에 파송하는 방식으로 선교하였다. 그러나 신약의 교회는 누군가를 선택해서 그에게 선교를 모두 맡기고, 그것으로 선교를 대신하는 공동체가 아니었다. 신약의 교회는 공동체 그 자체가 보냄을 받는 선교사인 것이다. 교회는 지상에서 언제나 “선교사”로 존재한다.
 

따라서 교회가 “선교하는 교회”라고 할 때 그것은 무슨 말인가? 그것은 그 교회가 선교사를 몇 사람 파송했거나 혹은 선교사를 후원하는 일을 하고 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도행전에서 “선교하는 교회”라는 의미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이 세상에서 각자의 삶의 영역에서 선교를 실천하며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초대교회가 서 있던 시기는 영웅 몇 사람이 나서서 선교하던 시기가 아니었다. 그 시대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존재 목적이 선교였으며 선교 없는 공동체를 생각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교회론의 가장 큰 문제는 “선교 없는 교회론”을 지나치게 강조했다는 데 있다. 이 말은 지금까지 교회가 선교사를 보내지 않았거나 선교사를 후원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말은 교회가 선교사를 보내면서도 선교를 “교회의 본질”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러나 “주님의 교회는 선교적 백성으로서의 본질을 생활화할 때 하나님의 나라 안에서 세상에 대한 자신의 완전한 자기 표현을 찾게 된다.” 우리는 사도행전에서 선교를 생활화하던 거룩한 공동체를 만난다. 예루살렘 한 모퉁이에 불어닥친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성령의 역사는 예루살렘 공동체를 태동시키고, 온 유대와 사마리아를 감돌아 소아시아, 마게도니야, 로마 그리고 전세계에 복음의 물결을 급속하게 휘몰아치도록 역사하셨던 것이다. 
 

뉴비긴(L. Newbegin)은 “선교의 중심은 성령”이라고 하였다. 오순절에 신약 교회를 탄생시킨 성령께서는 교회가 실제 선교를 진정한 의미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능력을 부어 주셨다. 따라서 엄밀하게 말하면 초대 교회의 선교는 오순절 사건, 교회 공동체 가운데 임하신 성령 강림으로부터 흘러 나왔다고 할 수 있으며, 지금도 교회의 선교는 성령의 역사로만 가능하다. 예수님도 선교는 처음부터 성령의 사역인 것을 가르쳐 주신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이라는 말씀은(행 1:8), 선교는 처음부터 성령께서 시작하신 것이고, 성령께서 진행하시며, 마침내 성령께서 이루신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교는 교회 공동체의 많은 인적자원이나 풍성한 재정에 의존하지 않고, 성령께 절대적으로 의존해야 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선교의 개념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할 것은 선교가 단순히 교회 확장이나 주변의 세상을 정복하기 위해 교회 자체의 힘이나 자원을 사용하는 행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교회는 어떻게 보면 약하다. 늘 세상으로부터 핍박을 받는다. 그러나 이 약한 교회를 성령이 사용하신다. 따라서 우리가 선교하는 것은 우리의 가진 힘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것인가를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이 얼마나 위대하시며, 얼마나 능력 있게 일하시는가를 증거하는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하심”이 무엇인지 모르는 공동체는 자선이나 사회사업은 할 수 있어도 선교는 불가능하다. 선교는 언제나 성령께서 교회 공동체 안에서 인격적 지배하심으로부터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성령이 지배하는 공간에는 선교가 진행된다. 선교는 교회가 성령의 포로가 되어 온전히 순종할 때 가능하다. 오늘날 우리는 기독교 선교의 타락한 모습을 여기저기서 보게 된다. 그것은 오늘날의 교회가 선교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현대 교회 공동체의 선교하는 방식이 물량적이고, 지나치게 제도적이라는 것이다. 선교는 사람이 모인다고, 일하는 사람이 많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다. 선교는 언제나 성령의 자유로운 역사가 이루어지는 곳에서 실천된다.
 

교회의 선교는 단지 몇 명의 선교사를 어딘가에 보내는 사역이 아니다. 교회의 선교는 우선 교회가 선교적인 본질을 회복하는 것이다. 즉 지역 교회가 자신의 정체성을 선교적인 공동체로 확고하게 자리 매김하고 지역의 선교사로서 자기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 교회 선교의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다. 그리고 교회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누군가를 선택하여 특정한 선교지에 선교사로 보내었다면 그가 할 일은 자신이 머무는 그 지역에 처음부터 선교하는 공동체를 세우는 것이다.
 

교회의 선교는 교회가 어느 정도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미래의 사역이 아니다. 교회의 선교는 교회가 지상에서 출발하는 순간부터 실천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본질적 사역이다. 이제 한국 교회가 보낸 일만 명의 선교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내가 가지고 있는 어떤 경제력을 보여 주고 그 힘을 의존할 수밖에 없는 원주민 교회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두 명이 모였든 세 명이 모였든 선교사의 경제력과 상관없이 원주민이 중심이 되어 지역과 세계를 품고 선교하는 교회를 세우는 일이다. 아무리 작은 교회라도 그 교회의 주인은 우리 주님이시다. 또한 아무리 작은 공동체라도 그 교회는 온 세상이 들을 수 있는 복음의 능력을 가진 교회이다.
 

이제 과정으로서 선교는 끝나야 하고 마침표를 찍는 선교가 진행되어야 한다. 원주민의 작은 교회를 “처음부터 선교하는 공동체로 세우는 것” 이것이 바로 선교의 마침표이다. 선교사는 자신의 능력을 보여 주기 위해 파송된 사람이 아니라 작은 원주민 교회라도 성령이 함께 하실 때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를 증거하기 위해 파송된 사람일 뿐이다.      


 

방동섭/ 천안대 기독신대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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