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거리 선교사’ 조지 헌터 조지 헌터(George Hunter) 선교사의 이웃이었던 한 몽골인은 그에 대해, “우리보다 이 나라의 사정을 더 잘 알고 있고, 나의 어머니가 아편중독에 걸렸을 때 어머니의 생명을 구해 주었다.”고 말했다. 그는 몽고인들의 진정한 이웃이었고 항상 준비된 사람이었다. 길에서 처음 만난 사람과도 스스럼없이 개인적인 일들을 나누며 성경을 건네주곤 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않고 술과 담배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자신들이 흉내낼 수 없는 평온함을 지닌 헌터의 신비스러운 삶을 엿보기 위해 몽골 소년을 그의 몸종으로 보냈다. 그러나 님그르라는 이름의 이 소년은 헌터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세주요 주인으로 받아들였다.
큰 키에 다부진 체격의 조지 헌터는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전형적인 학자 타입의 사람이었다. 그는 평생 철저하게 금욕적이고 검소한 삶을 살았다. 매일 거의 똑같은 음식만 먹는 단조롭고 고된 나날이었지만 결코 근심하거나 고통스러워하지 않았다. 온전히 하나님께 헌신한 그는 세상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가족과도 떨어진 채, 온갖 어려움 속으로 기꺼이 뛰어든 선교사였다.
헌터는 ‘장거리 선교사’로도 유명하다. 당시 중국은 교통이 발달되지 않았기 때문에 여행을 할 경우 수레를 이용해야 했고, 더욱이 몽골인들이 사는 지역으로 들어가려면 적어도 60일 정도 낙타를 타고 여행을 해야 했다. 헌터가 한 번 전도여행길에 오르면 돌아올 때까지 몇 달 동안 그의 소식을 알 길이 없었다. 1년에 한 번 정도 있는 성서공회로부터의 성경 보급을 기다려 겨우 사람들과 영어로 이야기할 수 있었고, 항공우편이 없었기 때문에 가장 가까운 곳에서 사역하는 동료 선교사와 편지 한 통을 주고 받는데도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역의 원동력인 성경 헌터의 선교 베이스는 신장(新疆)의 우루무치(烏魯木齊)에 있었다. 당시 러시아의 기독교 대탄압으로 인해 많은 선교사들이 핍박을 피해 러시아를 탈출하였는데, 끝까지 남아서 사역하던 선교사들이 성경을 보급하고 지하교회를 이끌어갈 때 헌터에게 성경 보급을 요청하기도 했다. 또 중국으로 건너온 러시아인들이 주일마다 30~40명씩 헌터의 집에서 예배를 드리곤 했다. 비록 중국어로 드려지는 예배였지만 러시아인들은 귀에 익숙한 찬송가 곡조를 따라 불렀다. 헌터는 정식으로 러시아어를 배운적이 없었지만, 카자흐스탄어나 투르크어 등 몇 개 언어를 구사할 수 있었고, 이들 언어로 찬송가와 창세기 등 성경의 일부분을 번역하기도 했다. 이것이 나중에 출판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성경 교재로 제공되었다.
그 당시 에밀 피셔바허 박사(Dr. Emil Fisher: 중국내지선교회 소속)가 새로 두 개의 선교기지를 열었다. 그 중 하나인 쿠청에서는 레이몬드 죠이스(Raymond Joyce)와 오토 쇄너(Otto Schoerner)가 사역하였고, 다른 하나인 마나스에서는 빌 드루(Will Drew)와 폭스 폼(G. F. Fox-Holmes)이 사역하였다.
마나스에서 사역하게 된 헌터는 사역 첫 날 평소대로 30분 정도 눈을 붙인 후 거리에 나가 말씀을 전하면서 사람들에게 전도지를 나눠주고 있었다. 그 때 한 술취한 군인이 전도지를 달라고 요구해 왔는데, 헌터는 그 군인이 술이 깨기 전에는 아무 것도 주지 않고 상대도 하려 들지 않았다. 그러자 그는 헌터에게 달려들어 넘어뜨리더니 갈비뼈를 걷어찼다. 이때 옆에 있던 동역자 폭스 홈은 매우 난감했다. 이 상황에서 자신이 끼어들어 술취한 군인을 때려눕힌다면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곱지 않을 것이고, 앞으로의 사역에도 지장이 올까 염려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주님께 이 어렵고 난감한 상황을 해결해 주시기를 간절히 구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술취한 그 군인이 신발 끈을 고쳐 매고 그냥 가버리는 것이 아닌가. 부축해 일으키자 헌터는 모여있던 사람들에게 술 마시는 것의 나쁜 점을 지적하며, 오직 주님만이 사람들에게 새 마음을 주실 수 있다고 설교하였다. 폭스 홈은 헌터의 넓은 도량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한 권의 성경이 마음을 바꿔놓다 헌터는 마나스에서 45년 간 사역했지만 단 한 명의 모슬렘도 세례 받는 것을 보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용기를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문서사역 때문이었다. 당시 톈샨(天山)산맥의 계곡에는 다양한 민족들이 살고 있었다. 춥고 건조한 환경과 부딪히며 어렵게 살아가는 이들은, 자신들이 노력하여 쌓은 재산을 지키기 위해 크고 사나운 개를 풀어놓거나, 심지어 사제 총을 만들어 보초를 세워서 외부의 침입자를 공격하기도 하였다. 조상신을 섬기는 것이 생활화된 이들은 계절마다 부적을 갈아붙이고, 조상신이 찾아와 차려놓은 음식을 먹을 때 어둡지 않도록 항상 촛불을 켜놓았다. 전통 종교와 풍습을 그대로 따르며 사는 이들은 공산주의나 다른 문명의 영향과도 거의 상관없이 살고 있었다.
헌터와 남기르가 수레를 타고 이들 중 한 마을을 방문한 때는 달조차 뜨지 않은 깊은 밤이었다. 나무 사이로 새어나오는 불빛을 발견하고 다가갔을 때 개가 사납게 짖어대자, 헌 터와 님 기르는 집주인을 불러 개를 묶어두게 하였다. 주인은 두 사람이 총으로 무장하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집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헌터의 중국 예절은 구식학교에서나 배우는 그런 것이어서 농부의 눈에 중국 문화를 잘 이해하고 있는 신사로 비춰졌다. 그리고 공자와 맹자를 인용하였기 때문에 학자 같았을 뿐만 아니라, 환자들을 보고 그 증상을 잘 이해하는 것으로 보아 의사로도 생각되었다. 이때 헌터는 간쑤(甘肅)성 방언의 액센트가 있는 중국어을 구사하고 있었다.
긴 시간 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서로 간의 경계와 불신은 언제 사라졌는지 모르게 사라졌다. 가족들 모두 편안한 마음이 되었을 때 헌터는 오래된 중국 책을 꺼내 그들이 잘 들을 수 있도록 구절들을 명확하고 조용하게 읽어 주었다. 그리고는 안경을 벗고 절을 한 후 모든 가족들의 평안을 위해, 또 환자를 위해 기도하고 이들이 참된 하나님을 알고 구원받을 수 있도록 기도하였다. 기도 중에 예수님이 사람들을 죄로부터 구하러 오셨기에, 이제는 더 이상 선행에 의지할 필요 없이 십자가에서 희생의 제물이 되신 분을 통해 구원받을 수 있음을 알렸다. 이튿날 아침, 그는 다시금 이 가족들을 하나님께 맡기고 지난 밤 그가 읽었던 오래된 책을 건네주었으며, 감사의 표시로 약간의 돈을 남기고 떠났다.
그로부터 10여 년 후, 헌터는 다시 이 지역을 여행하게 되었다. 하루 종일 모래사막을 지나왔기 때문에 수레바퀴가 고장나 계획보다 늦게 도착했는데, 날이 어두워진데다 길도 험해 더 이상 갈 수 없게 되었다. 그러다 앞쪽으로 보이는 나무 사이로 불빛을 발견하고 그곳으로 다가갔다. 그는 다시금 개들이 사납게 짖어대는 외진 농가 앞에서 집주인을 불러내었다. 곧 헌터의 사람됨이 비쳐지고, 얼마 안되어 따끈한 국수 한 그릇을 대접받았다. 헌터가 바깥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야기를 하는 동안 그 집 식구들은 모두 그에게 완전히 매료되었다. 밤이 깊어 잠자리에 들 시간이 되자, 가족 중의 한 노인이 중국 책 한 권을 꺼내 읽기 시작했고 모든 식구들이 조용히 경청하였다. 그 책은 다름 아닌 바로 성경이었다. 뒤이어 자기 자녀에게 좋은 것으로 채우시는 하나님께 감사 드리는 감사기도가 이어졌고, 식구들과 찾아온 손님을 위해서도 기도하였다. 헌터는 전에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이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믿고 있는지 참으로 놀라웠다.
이튿날 아침 헌터는 일찍 일어나 조용히 동네를 둘러보았다. 그곳에는 부적도, 조상신을 섬기는 제단도 없었고, 깔끔하게 정돈된 집과 행복하고 건강하게 보이는 어린이들이 보였다. 당시 이들은 평생에 딱 3번 즉 출생, 결혼, 장례 때만 몸을 씻는 것으로 소문이 나 있었는데, 실제로 이들의 모습은 딴판이었다. 그가 만난 마을 사람들은 한결같이 밝았다. 다시 지난 밤 묵었던 집에 가서 가정예배를 주도했던 그 노인에게 농사일과 가족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가득 차 있음을 칭찬하며 그 이유를 물어 보았다. 노인은 다음과 같이 말해주었다.
“저도 얘기로만 들었는데, 10여 년 전 어느 날 밤 이웃 마을에 당신같이 나이가 지긋한 분이 찾아와 그 곳 사람들에게 참되고 유일하신 하나님에 대해 알려주었답니다. 그가 떠나면서 책 한 권을 남겨 주었는데, 그것이 바로 제가 지난 밤 읽었던 책이지요. 얼마 후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그 바로 아래 동생인 제 삼촌이 모든 가족들을 책임지며 형님이 해오던 방식을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집안에 있던 모든 우상들을 없애 버리고, 하나님께 자신의 죄를 고백한 후 가족들 중 나이든 사람들은 근처의 강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다른 일가친척들도 이것을 따르게 되었고, 이러한 규칙에 따라 사는 사람들과만 결혼을 해 왔습니다. 1주일에 하루는 농사일을 멈추고 그 책을 읽고, 아이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떡과 포도주를 나누었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읽을 뿐만 아니라 말씀대로 실천하며 살았습니다.”
이들은 평생 한 번도 외국 선교사를 보거나 소문을 들어 본 적이 없었기 대문에, 처음 성경을 전해 준 사람이 중국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단 한 번의 방문과 한 권의 성경이 어떻게 이런 열매를 맺게 할 수 있었을까? 뜻하지 않은 만남으로 인해 조지 헌터는 자신의 사역에 대해 늘 깽 있을 수 있었고, 죽는 순간까지 이 일을 계속 유지해 나갈 수 있었다.
감옥 속에서 일어난 기적 공산화가 되자 모든 젊은 사역자들과 헤이워드(Hayward) 부부도 떠나고, 어두운 그림자가 헌터의 주위에 가까이 드리우고 있었다. 소수의 신실한 신자들만 예배에 참석하였고, 선교부에는 헌터와 님기르, 요리사인 천(陳)씨만 남게 되었다. 천씨는 한때 길 안내인으로 신장이나 혹은 신장을 지나 유럽으로 가는 사람들을 돕는 일을 직업으로 삼았던 사람이다. 그는 고향에서 아주 총명한 사람으로 통했지만, 헌터와 함께 고비사막을 여행하기 시작한 1932년 경부터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으로 여겨졌다. 그는 요리사이긴 했지만 반죽하여 뽑은 국수와 모든 재료를 한꺼번에 큰솥에 넣고 요리하는 것 외에 다른 음식은 할 줄 몰랐다. 단어 표현에도 한계가 있었지만 단순하고 진지했으며 과장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그런 중국 사람이었다.
어느날 오후 “문 열어!” 하는 외침과 함께 마치 문을 부술 것같이 거칠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인지 알아보려고 천씨가 문을 열자 경찰들이 들이닥쳐 헌트를 질질 끌고 가는 것이었다. 천씨는 “헌터는 영국인이고,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렸지만 그들은 그대로 헌터를 트럭에 싣고 가버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추운 겨울밤, 천씨도 갑자기 끌려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트럭에 실렸다. 그리고는 춥고 어두운 감옥에 갇혔다. 그때 그는 누빈 속옷과 따뜻한 모피 외투를 입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춥고 외로웠다. 그는 감옥에 갇혔지만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 구해주셨던 베드로와 요한, 바울과 바나바를 기억해 내고는 주님께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다. 큰 소리로 기도하고 있는데 자기가 있던 감옥에 또 다른 한 사람이 들어왔다. 하지만 상관하지 않고 다시 기도를 시작했다. 그런데 그 때 “천아, 네 모피 외투를 벗어 네 곁에 있는 이 사람에게 입혀 주지 않으면 너의 기도를 들어줄 수 없단다.” 하는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천씨는 마음 속으로 심한 갈등을 겪다가 결국 외투를 벗어 옆에 있는 사람을 감싸주었다. 어두워서 그 사람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추위로 인해 몹시 떨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나서 천씨는 다시 기도를 계속하였다.
이로부터 10년이 지난 뒤 천씨는 이런 간증을 하였다. “나누어 줄 수 없는 곳에는 참된 기도가 없습니다.” 그러더니 그는 아주 밝은 표정을 지닌 한 남자를 소개하였다. 그 남자는 “제가 오늘 이 자리에 선 것은 제가 어떻게 예수님을 저의 구세주로 받아들이게 되었는지를 말씀 드리기 위해서 입니다. 사실 저는 기독교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고는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감옥에 갇혀 있던 어느 날 밤, 정말 추워 죽을 것만 같았는데 누군가 ‘예수님’ 하고 부르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러더니 이 사람이 자기의 따뜻한 모피 외투로 저를 감싸주는 것이 아닙니까! 만일 그 외투가 아니었다면, 저는 오늘 이 자리에 설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아니었다면, 용서받지 못한 죄인으로 지옥을 향해 가고 있었을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은 저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닥쳐온 환란 중에도 조지 헌터는 빛 한줄기 들어오지 않는 독방에 감금 되었다. 낮인지 밤인지 구별할 수 없었고, “헌터, 너는 점점 미쳐가고 있다.”라는 괴음성이 녹음된 테이프가 끊임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녹음된 테이프가 강렬한 태양이 비치는 뜰로 끌려나가 간첩 행위를 자백하도록 강요당했다. 그는 눈이 상할 대로 상해 시력을 거의 잃게 되었다. 하지만 헌터는 이런 고통으로 인해 뜻을 굽히거나 쉽게 깨어져 버릴 사람이 아니었다. 74세란 고령에도 불구하고 그는 강철같이 강했고 그를 고문하는 사람도 헌터의 마음을 깨뜨릴 수 없었다. 그 당시 경찰은 헌터가 제국주의자의 앞잡이이며, 그의 집 지하실에 상당히 많은 양의 불온책자가 숨겨져 있다고 철썩같이 믿고 있었다. 성경과 신약, 쪽복음과 전도지 등 14개 언어로 된 서적들을 모두 경찰서로 압수했다. 트럭으로 3대 분량이 넘는 많은 책자들을 방 하나에 가득 채워 넣고 잠궈버렸다. 중국내지선교회의 건물은 벽돌 하나 남지 않고 부서졌고, 예배실도 파괴되었다. 그러나 헌터가 간첩행위를 했다는 어떤 증거도 발견되지 않았다.
헌터는 감옥에서 석방된 후 그가 사랑하던 간쑤성으로 돌아갔고 신실한 천씨가 그의 말년에 함께 하였다. 감옥 생활은 그에게 여러 가지 후유증을 남겼다. 밤중에 악몽에 시달리다 깨어나곤 했고, 종종 사람들과 격리된 채 며칠을 보내기도 하였다.
그는 죽는 날까지 단 한 명의 모슬렘 개종자도 세례 받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중국과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여행을 하면서 성경배포 사역을 감당한 선교사로서 그의 사역은 그를 핍박하던 사람들에게 계속 영향을 끼쳤다.
출처/http://ktm.aist.ac.kr/Regional_Study/Uygur/uygur_people5.html 바로잡습니다. 2000 11/12월호 선교사행전 「자립적인 중국 교회를 추구한 존 네비우스」중, p.65 네비우스 선교사 부부가 한국에 방문한 년도를 1860년에서 1890년으로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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