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중국 서북 칭하이(靑海)성에 살고 있는 후이(回)족 형제의 간증이다. 그는 소수민족으로 구성된 가정교회의 성도로서 열심히 주님을 섬기고 있다. 인구 800만의 후이족은 중국에 있는 이슬람 민족 가운데 가장 큰 소수민족이다. 통계에 의하면 그들 중 기독교인은 1%도 되지 않는다. 【편집자 주】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엡 2:8~9)” 우리 가정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 나는 가난하지만 화목한 가정에서 자랐는데, 9남매 중 아들로서는 막내였다. 아버지는 이유 없이 늘 술에 만취하여 심하게 주정을 하신곤 했기 때문에, 당시 나에게 아버지는 공포의 대상이었고 낯설게만 느껴졌다. 5살 되던 해 어머니는 막내 여동생을 낳으셨다. 여동생이 생후 한 달 남짓 되었을 때 가엾은 어머니는 쇠약해진 몸으로 일하시다 돌아가셨다. 그때부터 우리 가정의 행복은 더 이상 계속되지 않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아버지는 술을 끊으셨고 얼마 후 농촌에서 우리를 보살펴줄 새어머니를 데려오셨다. 새어머니는 두 누나를 데리고 왔는데, 나중에 이 두누나는 큰 형수와 둘째 형수가 되었다. 이때부터 우리 열세 식구는 가난 속의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언젠가부터 큰누나가 매형과 삼남매를 두고 행방이 묘연해졌다. 누나가 어느날 갑자기 돌아왔을 때는 누군가와 함께였다. 그 존재는 가족들의 두려움과 불만을 샀고, 모두가 누나를 욕하고 정신병자로 취급하였다. 그러나 누나는 모욕과 상처를 받으면서도 계속 그를 데리고 가족과 친척들 사이를 쉴 새 없이 오갔다. 그는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였다. 당시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는 원래 이슬람교의 일파인 라오지아오(老敎)의 신도였기 때문에 배교자인 누나로 인해 불이익을 당할까봐 누나를 의도적으로 피하고 수치스러워했다. 그렇지 않아도 화목하지 못하던 집안이 큰누나 때문에 들썩거렸고 미움과 다툼이 끊이지 않았다. 큰누나의 존재와 복음은 나에게 희미했다. 방황의 시간들 17살 되던 해, 중학교 2학년이 되었으나 공부에는 별 취미가 없었다. 매일 친구 몇 명과 함께 책가방을 메고 놀러 다녔고, 결국 장기결석으로 퇴학을 당하였다. 아버지는 속수무책인 나를 방직공장에 취직시켰다. 그곳에서 2년 반 동안 일했는데, 받는 월급이 쓰고 놀기에 너무 적었으므로 일보다는 돈 벌 생각만 했다. 그러다 공장의 기계 부속품에 눈독을 들이게 되었다. 처음에는 부속품만 훔쳐 팔다가 나중에는 작업실에서 동료들의 돈까지 훔쳤다. 재물에 대한 탐심은 점점 커져 하루 종일 어떻게 돈을 구할 수 있을까 궁리하는 것이 전부였다.
어느 날 우연히 한 직장동료와 뜻이 맞아 외지로 향하게 되었다. 우리는 남쪽으로 가는 열차를 타고 수천 km 떨어진 광저우(廣州)로 갔다. 우리의 환상이 실현되길 꿈꾸면서∙∙∙. 광저우에 도착했을 때 수중에 있던 돈은 거의 바닥난 상태였다. 일자리를 찾지 못하자 추위와 배고픔 속에 길거리에서 잘 수밖에 없었다. 망상은 깨지고, 집 나온 것이 후회되었다. 이대로 굶어 죽거나 부랑자가 될 것이 뻔하다는 생각이 들자, 강렬한 삶의 욕구가 생기면서 집에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돌아갈 차비를 마련할 방법이 없었다. 도둑질이나 강도질밖에는∙∙∙. 두려움 때문에 실행으로 옮기지는 못했고, 급기야는 교회에 도움을 청할려고 했지만 아무리 찾아 다녀도 교회당을 찾을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얼굴에 철판을 깔고 서쪽으로 가는 열차에 기어올라 친구의 친척이 살고 있다는 허난(河南)의 한 농촌에 도착했다. 그 당시 며칠 동안 굶어서인지 나는 위에 심한 통증을 느꼈다. 그곳에서 며칠간 머물다가 친척이 마련해 준 여비로 귀향 길에 올랐다. 집에 도착하기 바로 직전 갑자기 심장박동이 빨라지며 온몸이 떨려왔다. 내 이름을 부르며 “돌아오너라! 돌아오너라!” 하시는 아버지의 애달픈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눈물이 쉴새 없이 흘러내렸다. 집에 돌아온 후 2시간 동안이나 계속되었던 아버지의 꾸중소리가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그러나 그 후에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집에서 빈둥대거나, 열차를 타고 몇 시간 떨어진 마을에 있는 빈집으로 가서 술과 담배로 시간을 보내곤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집 앞을 지나치다 아버지와 마주쳐 다시 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아버지는 꾸중은 커녕 밥은 먹었느냐, 좀 쉬어라 하시며 아주 따뜻하게 대해 주셨다. 그 날밤 나는 따뜻한 잠자리에 누워 뜨거운 눈물로 베개를 적셨다. 내가 가출한 며칠 동안 아버지는 매일 밤 외투를 걸치고 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셨던 것이다.
그 날 이후 나의 행동에는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얼마 후 친구들이 또다시 놀러 가자고 찾아왔지만 나는 거절하였다. 내가 왜 거절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로 인하여 큰 화를 피할 수 있었다. 그 친구들은 술에 취해서 법원에 근무하는 두 사람을 죽이고 다른 사람에게 중상을 입혔다. 하나님께서 나를 보호하셨음을 감사 드린다. 당시 나는 하나님께서 내 곁에서 도우셨음을 알지 못하고 다만 내가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지금 그 친구들은 무기징역으로 수감되어 있다.
아버지는 내가 또다시 문제를 일으킬까봐 염려하시며 장사를 배우도록 권하셨다. 친척에게 돈을 빌려 식품도매점을 차려 주시며 결혼비용이라도 마련하길 바라셨다. 그때 나는 한창 나이인 스물 두 살이었다. 잠도 일하는 가게에서 잤고, 집에는 거의 들어가지 않았다. 매일 돈을 물쓰듯하면 돈과 여자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했고, 좀더 자극적인 것을 찾아 헤맸다. 어느 날 큰 누나가 두 자매를 데리고 내 가게로 찾아왔다.
그들은 가게 창고에서 내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를 했는데 마치 무슨 주문을 외우는 것 같았다. 나는 너무 우스웠고, 나중에는 온몸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한 자매가 나에게 “당신 이마에 광채가 나고 눈은 하나님을 향하고 있군요. 예수님 잘 믿으세요.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시길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그들이 돌아간 후에도 한참 동안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 후 큰누나는 가끔씩 가게에 들러 나에게 복음을 전했다. 나는 “하나님이 어디 있어? 예수가 누구야?”하며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또 큰 누나를 빨리 나가게 하기 위해 무성의하게 기도를 따라 하기도 했지만, 기도가 길어지면 참지 못했다. 길에서 큰 누나를 마주치기라도 하면 핑계를 대고 빠져나가기 일쑤였다. 주님께로 돌아 온 초신자 시절 1996년, 스물 다섯 살이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내게 역사하시기 시작하셨다. 장사는 실패하였고, 가족과 신부측 부모님의 독촉으로 결혼 날짜를 정하게 되었다. 나와 아내는 분가해서 살기로 하고 작은 집 한 채를 빌려 신혼집을 꾸몄다. 결혼식 3일전 날 밤 집을 꾸미느라 바빴던 나는 혼자 그 집에서 자게 되었다. 이튿날 친구들이 집수리를 도우러 왔을 때 갑자기 칼로 도려내는 듯한 위의 통증을 느꼈는데, 간신히 침대 위로 기어올라 조금 쉬었더니 가라앉는 듯 했다. 당시 통증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것이 화근이었다. 결혼 당일, 갑자기 안색이 파래지더니 허리와 옆구리에 견디기 힘든 통증을 느꼈고, 구토와 식은땀이 났다. 사람들이 병원에 가자고 했지만 의사를 불신하던 나는 한사코 고집을 부리며 가지 않았다. 결혼 후에도 매일 주기적으로 통증이 왔다. 약도 많이 먹었지만 효과가 없었고 얼마 살지 못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삶에 대한 의욕을 상실하였고 모든 일에 믿음을 잃어갔다.
이때 행방이 묘연하던 큰누나가 홀연히 다시 나타났다. 누나는 내가 죄인임을 고백하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치료해 주시길 간구했지만 효과는 없었다. 얼마 후 우리는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전에도 사람이 죽거나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주 건강하던 사람도 이 집에 오면 병이 들어 나갔기 때문에 아무도 이사 오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웃들은 한결같이 불길한 집이라며 우리도 얼마 버티지 못할 거라고 장담했다. 나와 아내도 두려움에 떨었지만 방세가 쌌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의 이사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 다만 하늘의 뜻에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시 23:4)”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는 시편 중에서 이 구절을 가장 좋아한다.
하나님의 특별하신 보살핌으로, 큰누나가 거의 매일 나를 찾아와 기도해 주었다. 내가 몸이 아파 일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전혀 수입이 없었던 우리 가정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4년 동안 하나님은 우리를 친히 보살피시고 일용할 양식을 공급해 주셨다. 오히려 나의 질병이 우리 집안 복음화의 도화선이 되었다. 형제 자매 10여 명이 우리 집에서 기도모임을 갖기 시작하였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돌렸다. 완고하던 아버지와 친구 두 명, 조카들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함께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미하게 되었다. 70세 할아버지로부터 두 세살 아기들까지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였다.
당시 성령의 감동으로 말미암아 조카딸은 예수님이 백마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듯한 눈부신 한줄기 빛을 이상(異象)으로 보았다. 또 스데반 형제(외사촌)는 황금궁전과 황금보좌를 보았고, 마르다 자매(넷째 누나)는 예수님께서 손을 잡고 이끄시는 꿈을 꾸었다. 에스더 자매(셋째 누나)는 예수님과 우리 온 가족이 함께 있는 이상을 보았고, 아버지는 진리를 가르치시는 예수님과 하나님의 영화로우심을 이상으로 보았다. 믿지 않던 아내도 우리와 함께 기도하기 시작했는데, 큰누나가 그녀의 머리에 안수하자 그녀도 이상을 보았다. 그러나 그녀가 본 것은 좀 달랐다. 이슬람 지도자 한 사람이 그녀에게 우리를 따르지 말라고 권했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나에게 “사교(邪敎)를 버리고 이슬람으로 돌아가자”고 졸랐다.
어쨌든 많은 사람이 방언을 하고 이상을 보고 꿈을 꾸었다. 이렇게 능력이 충만한 교회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신기하게 여겼다. 마호메트나 석가모니가 아니라 2천년 전 이스라엘의 갈릴리 해변에 거니시던 그 예수 그리스도가 지금도 살아 계시고 우리 가운데 역사하신다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 예전에는 소문으로만 들었던 예수님을 오늘 만나게 되었으니 얼마나 복된 일인가? 나중에 성령의 가르침으로 이것이 성결한 교회요, 선교하는 교회요, 능력과 권세로 가득한 교회임을 알게 되었다. 성육신하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우리를 구속하신 예수그리스도와 하나님의 계획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이처럼 복음의 불길이 우리 집안에서 일어났고 나의 병도 치유되었다. 아내는 끝내 돌이키지 않았지만 우리의 집회는 예전처럼 계속되었다. 당연히 많은 사람들의 비난과 질책이 쏟아졌다. 이런 영적전쟁 가운데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 때, 나는 우리 형제 자매들이 본 이상이 어떤 때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발단은 나의 아내였으나 많은 형제 자매가 계속 연약해지고 실족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것이 진리에 대한 무지로 생긴 일임을 알게 하셨고, 크게 어긋나지 않도록 보호하셨다. 당분간 이상을 보는 것을 멈추기로 하고, 우리가 진리의 길에서 실족치 않도록 주님께서 붙잡아 주시길 기도했다. 나 역시 이상을 보려고 노력했으나, 하나님은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이 있나니 보아도 알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니라”는 말씀으로 나를 깨우치셨다. 할렐루야!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1998년 8월 아내가 출산을 하게 되었는데, 당시 아기가 탯줄을 감고 있었고 양수가 고름으로 변해 수술이 불가피했다. 수술은 산모와 아기에게 모두 위험한 것이었다. 간호사가 잘 생각해서 결정하라고 했고, 나는 하나님께 산모와 아기 모두 건강할 수 있도록 기도했다. 그리고 아기가 태나면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서원하였다. 아기가 태중에 있을 때 이미 그 생명과 영혼을 예수님께 의탁한 터였다. 예수님께서 내 아이의 생명의 주인이 되시길 기도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생명이니 하나님이 거두어 가실 권한도 있으심을 인정하고, 설사 아기를 잃는다 해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겠다고 기도했다. 기도 후 하나님은 나에게 담대한 믿음을 주셨다.
몇 분 후 간호사가 말했다. “참 신기한 일이네요. 태아의 위치가 정상으로 돌아와 자연분만을 할 수 있겠어요!” 잠시 후 딸아이가 태어났다. 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역사였다. 아이는 건강했고 이목구비가 뚜렷하여 다른 신생아들보다 훨씬 예뻤다. 모든 감사와 영광과 찬양을 하나님께 돌렸다. 나의 소망을 들으시고 나의 기도를 응답하심으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가 다시 한번 내게 임하였다. 지금 두살이 된 딸아이는 벌써 혼자 기도할 줄 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시지 아니 하시겠느뇨(롬 8:31).”
내게 베푸신 하나님의 큰 사랑에 감사 드린다. 우리를 분토 속에서 건지시고 독생자를 보내사 영생을 주시고 하늘나라를 기업으로 받게 하셨으니, 참으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상상과 생각을 초월하는 것이다.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고 하나님 앞에 너무나 초라하고 부족한 우리를 이처럼 보살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린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저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딤후 1:9~10)”
마멍푸 / 서북지역 가정교회 성도 번역 / 김현주 ∙ 자원봉사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