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1.jpg) “현대 중국의 역사에서 마르크스와 공자는 줄곧 양립할 수 없는 적대관계였다. 그런데 1990년대에 들어와서 이 양자가 갑자기 화해를 모색하기 시작한다. 엄밀히 말하면 화해라고 할 수도 없다. 그동안 마르크스는 국가 권력을 등에 업고 일방적으로, 또 사정없이 공자를 때렸다. 어쨌든 ‘화해’를 강조하는 것은 그만큼 갈등이 크다는 반증이다. 구체적으로 도시와 농촌 등 지역 간 경제, 사회 발전의 불균형은 물론이고 환경문제, 취업, 사회보장, 수입 배분, 교육, 의료, 부동산, 치안 등 많은 분야에서 갈등의 골이 점차 깊어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리고 이러한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이 과거와 같은 ‘투쟁’의 방식이 아니라 ‘화해’의 방식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니까 21세기 중국의 국가 목표인 ‘사회주의 화해사회 건설’은 마르크스와 공자의 협력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논리이다. 이것이 바로 중국 특유의 사회주의가 지닌 본질적 속성이다.” -권기영- 개혁개방 이후 대두되는 21세기 중국의 과제 팍스 로마나, 팍스 아메리카나와 더불어 새로운 강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이 국제질서를 주도할 것이라는 팍스 시니카라는 개념까지 등장할 정도로 오늘날 중국의 국가적 위세는 매우 압도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이 개혁개방을 통해 자본주의의 물결을 흡수하면서 곧바로 경제 번영만을 누려온 것은 아닙니다. 또한 그동안 고수해오던 사회주의 이념과 국가주도의 정책 사업들만으로는 이제 더 이상 민간과 기업의 흐름을 다 조종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중국 정부를 향한 국제사회의 이목 또한 신경 쓰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중국이 없다면 중국의 사회주의 또한 무용지물이기 때문에 사회주의 이념을 지키는 것만큼이나 중국을 현대의 실정에 맞게 잘 이끌어가는 것이 중국 정부의 가장 중요한 과제일 것입니다. 이를 위해 21세기의 중국은 ‘사회주의 문화강국 건설’을 국가 비전으로 삼고 ‘문화산업’을 정치와 경제의 중심과제로 놓았습니다. 여기에 후진타오 정부 때부터 핵심 국정 목표로 하였던 ‘화해사회 건설’이라는 표어가 ‘문화’와 ‘화해’라는 개념을 통해 중국이 개혁개방 이후의 불평등한 자본주의의 폐해를 어떻게 이겨내고, 더 이상 밀어붙일 수만은 없는 사회주의 이념을 어떻게 중국식으로 개편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활로를 엿볼 수 있을 것입니다. 서구적인 것을 넘어서려는 중국식 사회주의의 모색 20세기까지 자본주의를 통해 세계를 호령하던 서구열강들의 힘은 세계화를 곧 서구화로 인식하기에 충분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무분별한 서구 기준의 획일성과 적자생존의 자본주의의 그림자가 경제 번영과 서구적인 것에 대한 반동으로 그 이전의 민족성을 현대 서구사회가 아닌 자국 민족의 역사 속에서 찾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어났습니다. 중국에서도 역시 서구적인 것으로 비판받고 정죄받기에 급급했던 전통문화가 민족성을 회복하는데 새로운 가치로 급부상하였고 이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현대 중국의 새로운 문화적 힘이 될 것이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곧 문화가 전통과 현대의 긴장 상태에 있는 하나의 이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통과 현대를 이어주는 하나의 상품이 될 때 정부, 민간, 기업 모두가 만족할 만한 가장 중국적인 형태의 문화산업이 되고, 이를 통해 ‘문화 중국’이 모든 갈등을 이겨내고 조화롭게 세계의 중심에 올라서는 ‘대국굴기’의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포부가 담겨 있습니다. 이를 위해 중국식 사회주의란 서구적인 것을 완전히 배척하거나 서구적인 것을 따르기에 급급한 것이 아닌, 중국의 전통문화를 긍정하면서 그 역사를 새롭게 계승하여 현대적인 것으로 승화시키고 그러한 전통의 이상을 지지하는 정치이념과 부국강병을 통한 강대국으로서 경제위상이 함께 하는 ‘팍스 시니카’의 면모에 다가서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그동안 중국의 현대사가 사회주의를 위한 중국의 희생이었다면 앞으로는 중국을 위한 사회주의의 쇄신이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문제의식과 결단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새롭게 역동하는 공자의 부활과 현대 신유학의 여정 중국의 전통문화에 대한 논의는 사실 개혁개방 이전부터 지속되어 왔습니다. 그것이 서구화를 어떻게 수용할 것이냐의 문제와 맞물려 ‘문화열’과 ‘국학열’로 오늘날까지 전통을 중시하는 학파들, 특히 현대 신유학자들에 의해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중국이 오랜 역사 속에서 왜 하필 공자와 유학을 문화산업의 전면에 내세웠는가를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에는 또한 공자와 유학이 지닌 정교일치의 이상국가, 또한 중국의 중세를 이끌었던 주자학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재해석에 이르기까지 학문적으로 깊은 고민과 논의들이 담겨있습니다. 단순히 중국이 부유해졌기 때문에 다시 정신적인 것을 갈망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근대의 격랑 속에 이념투정에 투철했던 경직성을 벗고 중국의 민족정체성을 더욱 확고히 하려는 전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중국이 서구에 뒤쳐졌던 자존심을 회복하는 이때에 그들의 정체성을 어떻게 스스로 규정하느냐가 향후 중국과 동아시아, 또한 세계에 걸쳐 정치와 경제, 문화를 다루는 문제에 큰 도전과 방향을 제시해줄 수 있을 것입니다. 중국은 정말 중국의 과거 역사와 화해하고, 동아시아 이웃국가들과 화목하고, 세계와 조화를 이루는 성숙한 문화의식을 선도해나갈 수 있을까요. 아니면 그저 중국식의 문화화를 강요하는 또 하나의 새로운 제국주의적인 방식에 그치게 될까요. 중국식 사회주의와 현대 신유학의 관계를 면밀히 살피고 전망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현대 신유학자들은 유학이 지닌 중국전통의 가치를 지키면서 또한 현대의 실용적이고 과학적인 사회의 모습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호소하였습니다. 곧 중국인임과 동시에 세계인임을 자각할 때에 중국이라는 개념에 고립되지 않고 세계의 격랑에 휩쓸리지 않는 보편적인 인간다움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 보았습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텔레비전을 틀면 무거운 뉴스들이 가득합니다. 우리나라의 정치현실도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것을 보면, 이러한 정치와 경제, 문화의 문제가 중국뿐만 아니라 중국을 연구하는 우리에게도 꼭 필요한 것임을 깊이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치가 그저 권력의 파워게임이고, 경제가 그저 더 많이 먹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을 때의 문화산업이란 가장 비인간적이고 저급한 소비를 위한 도구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꿈꾸는 사회와 미래가 언제나 인간다움의 실현에 있듯이 21세기 현대 중국이 공자를 통해 새롭게 주목하는 문화와 문화산업이란 정치적인 힘과 경제적인 번영을 넘어선 인간다움에 관한 진지한 성찰과 수기치인의 성숙한 인간사회에 다가서는 실마리일 것이라 기대해봅니다.
사진 | 바이두 김주한 | 길가에교회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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