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밀밀’을 꿈꾸다 ‘신데렐라’가 되어버린 영화 리우웨이창(劉偉强) 감독의 2000년도 작품인 〈소살리토〉는 마치 96년 천커신(陳可辛) 감독의 영화 〈첨밀밀(甛密密)〉의 속편처럼 보여진다. 리밍(黎明)과 장만위(張曼玉)라는 동일 배우가 주연을 맡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내용 역시 〈첨밀밀〉처럼 극적인 남녀의 만남과 사랑을 다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에서는 〈첨밀밀〉의 흥행 성공 이후, 리밍이 주연을 맡은 비슷한 로맨스 영화 〈新 變愛世紀〉를 〈첨밀밀2〉라는 제목으로 속편인양 개봉한 적이 있었다. 〈소살리토〉 역시 한국 개봉 당시에는 〈첨밀밀3 - 소살리토〉라는 제목으로 소개하는 바람에 〈첨밀밀〉을 좋아하던 젊은이들의 마음을 설레게 만들었었다.
그러나 영화 〈소살리토〉의 분위기는 〈첨밀밀〉을 따르고 있지만 내용상으로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홍콩 영화의 발빠른 유사상품 만들기에 다시 한 번 혀를 내두르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홍콩 영화계는 규모는 작지만 헐리우드의 장기인 장르 시스템, 즉 특정 영화가 흥행에 성공할 경우 비슷한 종류의 영화를 무차별적으로 빠른 시간 안에 쏟아내는데 대단히 능숙하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런 유사 영화들의 주요 타겟이 홍콩이나 중국 본토인들이라기 보다는, 이웃해 있는 한국이나 일본의 팬들을 노렸다는 데 있다. 한국의 영화 수입상 역시 이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어차피 흥행이 목적인 바에야 인기 있었던 작품의 이름을 빌려서 관심을 끄는 전략이 이미 충무로의 영화 수입업자들 사이에서는 기본 전략으로 여겨진지 오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 〈소살리토〉가 〈첨밀밀〉과 다르다고 해서 그 가치를 폄하기킬 이유는 없다. 〈첨밀밀〉이 지닌 도시적 분위기와 걸맞은 음악, 그리고 매우 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아류작으로 평가할 수 있지만, 이국에서 벌어지는 30대의 사랑 이야기이며 샌프란시스코의 가장 아름다운 장소를 배경으로 극적 효과를 준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주의를 기울여볼 만한 일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시내에서 북쪽으로 금문교를 건너면 그림엽서에나 나올 법한 집들과 화랑, 부띠끄가 어우러진 로맨틱한 도시 소살리토(Sausalito)가 나온다. 이 영화의 배경이자 주인공들이 꿈꾸는 동네이다. 지중해 해안가를 온 듯한 느낌을 주는 붉은 색 기와에 하얀색 담벼락으로 치장된 멋진 집들이 자태를 뽐내고 있고, 푸른 바다와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곳 소살리토. 언제부턴가 이곳이 미국의 부유한 예술가들에게 인생 자체를 예술로 만들어줄 것만 같은 낙원으로 여겨지기 시작하면서, 한 두 사람 이주하기 시작한 것이 이 곳을 관광명소로 만들어 놓았다. 관광객들에게는 단지 추억의 장소일 수 있지만, 행복의 정점에 도달한 예술가들에게는 영원히 움직이고 싶지 않은 파라다이스인 소살리토. 〈첨밀밀〉의 주인공들은 〈소살리토〉란 이름으로 다시 한 번 사랑의 시련과 행복을 보여준다. 왜 우리는 신데렐라를 좋아하는가? 의붓자식인 신데렐라의 사랑과 행복에 관한 이야기는 전 세계 주요 문화권 어디서나 찾을 수 있을 만큼 보편적인 이야기로 알려져 있다. 한국에는 〈콩쥐팥쥐〉가 있고 중국에는 〈유영잡조(酉陽雜俎)〉에 비슷한 예가 있으며, 유럽의 각 나라마다 있는 신데렐라와 유사한 이야기들을 모으면 무려 500개가 넘는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신데렐라와 유사한 이야기의 기록은 9세기 당나라 때 단성식(段成式)에 의해서 쓰여졌다고 전해지는 〈유영잡조〉가 단연 으뜸이다. 고대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각양각색의 신비스럽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모아 놓은 이 책에서 신데렐라와 유사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 것을 보면, 신데렐라 동화에는 시대를 넘어서서 인간들이 지닌 보편적인 욕망이 자리하고 있다 할 수 있다.
심리학자인 칼 융은 이것을 집단 무의식의 발현으로 보았다. 집단 무의식이란 문화를 공유하는 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공통적으로 지니는 무의식을 말한다. 개인의 무의식은 꿈이나 환산을 통해 나타날 수 있지만, 집단 무의식은 보통 신화나 동화, 구전설화 등을 통해 나타나곤 한다. 세대를 초월하여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는 깊은 내면세계에 자리잡은 욕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문화 연구가나 작가들의 주요 관심사항으로 여겨져 왔었다. 즉 이것은 사람들이 지닌 근본 성향이나 꿈꾸고 싶어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다는 뜻이 된다. 이 때문에 각 분야의 작가와 예술가들은 동화나 신화를 토대로 대중성 있는 작품들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곤 했다. 왜냐하면 집단 무의식에 기초한 작품들이란 결국 잠재된 사람들의 마음에 부딪혀 쉽게 관심과 공감을 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대중영화도 예외일 수 없다.
영화 〈소살리토〉는 전형적인 신데렐라의 내용을 원용하면서도 각양의 모습으로 현대적인 각색이 묻어나는 멜로드라마라 할 수 있다. 여주인공 엘렌(장만위 분)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단 둘이서 센프란시스코에 사는 서른 다섯 살의 택시 기사이다. 그녀는 틈나는 대로 벽화를 그리며 전문 미술가를 꿈꾸지만 어려운 현실은 그 길을 가로막고 있다. 엘렌이 처한 어려움은 신데렐라가 처한 상황의 현대적 변용이라 할 수 있다. 먼저 그녀에게는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 남편 없이 혼자 애를 키워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그것은 경제적, 자녀 교육이라는 점에서의 어려움인 동시에 여성으로서 깊이 사랑할 대상의 부재(不在)에서 오는 고통이기도 하다.
영화 초반부에 여성용 자위 기구가 등장하고 남자 주인공 로버트(리밍 분)와 첫눈에 반해서 깊은 사랑에 빠져들만큼 남자에 대한 그리움은 고조된 상태였다. 이것은 엘렌이 안정된 사회인이며 가정주부라는 신분 뿐만 아니라, 미술가이며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 내지는 결여를 나타내고 있다. 미국에서도 택시 운전은 대개 남성들의 직업임에도 불구하고, 엘렌이 남성들의 복장을 하고 택시 운전을 하는 설정은 제 갈 길을 찾지 못한 그녀의 삶을 의미한다. 게다가 그녀는 자신이 중국인이라는 민족 정체성도 잃어버리고 있었다. 중국 관광객들이 찾는 유명한 중국 음식점마저도 다른 미국인의 도움을 받아서 알 수 있을 만큼 말이다.
그러나 이 모든 부족함들이 남자 주인공 로버트를 만나면서 끝내는 해결되고 마는 것을 볼 수 있다. 로버트는 미국의 유수 인터넷 정보회사들이 눈독을 들일만큼 재능있는 컴퓨터 프로그래머이다. 엘렌과 달리 그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최고의 신분임을 보여준다. 그는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어떤 여자와도 상대할 수 있으며 돈도 얼마든지 벌 수 있다고 믿는 인물이다. 한마디로 현대판 ‘백마 탄 왕자님’인 셈이다. 그는 자신에게 접근한 다른 구애(求愛)들을 뿌리치고 끝내는 엘렌과의 사랑에 성공하게 된다. 로버트를 통해서 엘렌은 그녀가 꿈꾸고 있던 모든 것들을 얻을 수 있었다. 사랑이나 경제적 능력뿐 만 아니라 그녀가 꾸어온 꿈의 중심부에 있었던 소살리토로 입성하게 되는 것이다. 소살리토는 왕자님과 함께 살게 될 꿈의 궁전인 셈이다.
이 영화는 또한 동화가 지닌 극적 요소를 차용하고 있다. 단순히 밑바닥 인생이 최상류층으로 진출하는 모습이 아니라, 극(極)에서 극(極)으로의 이동과 변화를 보여준다. 남자 주인공 로버트는 한때 자신의 프로그램에 대해 아무도 투자를 하지 않는 바람에 깊은 좌절에 빠지기도 하지만, 한 투자가의 전화로 상황을 완전히 역전시킨다. 그런데 그 전화 주인공이 다름 아닌 컴퓨터의 황제 빌 게이츠. 이뿐 아니다. 자신의 잘못 때문에 멀어진 연인의 마음을 돌이키기 위해 남자들이 흔히 쓰는 수법은 꽃을 주며 용서를 비는 것인데, 이 영화에서는 로버트의 마음을 알아달라고 수백 명의 모르는 사람들이 난데없이 엘렌에게 꽃을 주기 위해 달려들기도 한다. 영화가 허구의 세계를 보여준다고 하지만 조금 심했다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흔히 말하는 과장은 동화를 더욱 더 동화처럼 만드는데 기여한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동화가 아니라 동화적인 멜로 드라마에서 개연성을 갖지 못한 과장은 한낱 웃음거리로 전락하고 만다.
영화 〈소살리토〉가 〈첨밀밀〉과 똑 같은 남녀 배우가 츨연하고 유사한 구조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첨밀밀〉 만큼 관심을 끌지 못했던 이유는 바로 극적 요소들이 관객을 납득시킬 만큼의 개연성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동화 속 주인공들의 사랑에는 이유를 달 필요가 없다. 왕자님과 신데렐라가 사랑하게 된 데에는 이유가 없지만, 현실을 바탕으로 한 영화의 경우에는 최소한의 그럴듯한 이유를 달아주는 일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관객은 주인공의 모습에 자신을 동일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원제처럼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一見 鍾情)’는 데에는 이유를 달 필요가 없어 보이지만, 결혼에 이를 만큼 깊은 사랑과 이해가 수반되기 위해서는 서로가 겪는 갈등 외에 서로의 시각을 맞출 수 있는 모종의 사건이 필요한 법이다.
영화 〈소살리토〉를 보면 다소 과장되지만 극적인 신데렐라 이야기를 만든 중국인들의 심리가 화면 곳곳에 배어있는 것 같아서 흥미롭다. 그들은 전세계인들과 마찬가지로 행복한 사랑을 꿈꾸고 있지만, 그것은 결코 가난한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은 아니라는 것이다. 소살리토로 상징되는 부와 성공을 거머쥔 자의 사랑과 행복이어야 한다는 외침이 그들의 무의식 저편에서 들리는 듯 하다. 그러고 보니 가난한 사람의 사랑과 행복을 다룬 중국 영화를 본 적은 거의 없는 것 같다.
강진구 | 영화평론가 ∙ 크리스천문화커뮤니케이션연구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