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우리가 신장위구르(新疆維吾爾)자치구를 방문한 목적은 복음을 전하거나 신도들을 양육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이 지역의 선교 현황을 알기 위해서였다. 왜 하필 신장인가? 중국 내 소수민족 가운데 이슬람교를 믿는 10개 민족 중에서 6개의 민족이 이 지역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먼저 위구르족, 키르키즈족, 타지크족을 방문하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다면 내년에는 카자흐족, 우즈벡족과 타타르족을 방문하기를 원하고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허물어진 민족 감정 우리는 먼저 북(北)신장의 A시에 가서 누가 형제를 만나보기로 했다. 형제 집에 막 도착했을 때 그는 길가의 작은 방을 가리키며, “여기에 ○○에서 온 한 부부가 살고 있는데, 그들은 비즈니스를 하면서 동시에 학생으로서 복음사역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누가 형제의 집에서 맛있는 과일을 먹으면서 몇 가지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현재 A시의 위구르족 기독교인의 수는 적어도 2, 3백 명쯤 된다. 몇 년 전 신장에서 미국인, 한족, 위구르족, 카자흐족, 키르키즈족 등 5개 민족 기독교인들이 연합하여 특별 집회를 연 적이 있는데, 참석한 이들 모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모임 중에 한 소수민족 형제가 “이 곳에 와 있는 한족 형제는 정말 좋은 사람입니다. 우리 민족들도 그들을 좋아하기를 바랍니다”라고 기도했다. 오랜 역사 속에서 한족과 신장 지역 소수민족 간에는 많은 충돌이 있었고, 지금도 서로에게 미움을 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증오와 반목이 하나님 안에서 녹아지면, 두 민족이 서로 용서함으로 화목할 수 있다.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될 수 있다. 현재 몇몇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이러한 하나됨을 이루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A시를 떠나기 전 두가지의 기쁜 소식을 들었다. 올해 초 하사커(카자흐)족 주민 20명이 세례를 받았고, 최근에 한 젊은 한족 형제가 위구르족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위구르어를 공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믿음의 후예를 만나다 남(南)신장의 B시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먼저 한 나이 드신 가정교회 지도자의 집에 전화를 걸어 그를 만났다. 지금으로부터 50여년 전 중국 화중(華中)지역에 살고 있던 몇몇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서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들은 실크로드를 통해 신장에 와서, 장차 중동의 메카를 지나 최종 목적지인 예루살렘에 가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공산화라는 철옹성을 만나 그들의 발걸음은 이곳 남신장에서 50년 이상 멈춰있다. 우리가 만난 지도자는 바로 그들의 후예였다. 여전히 하나님께서 서쪽으로 복음의 문을 열어주기를 기다리며, 선조들의 발자취를 이어 예루살렘을 향해 가고 있었다. 위구르족의 환대 8백여 만 명에 달하는 위구르족은 신장위구르자치구 각 지에 흩어져 살고 있다. 남신장의 각 도시와 농촌을 다니면서 위구르 가정을 방문할 기회가 몇 번 있었다. 문화의 장벽, 그리고 중국인(한족)과 위구르인간의 반목으로 인해 무턱대고 위구르족 구역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우리는 비교적 안전하게, 위구르인 택시 기사가 운전하는 택시를 타고 그들의 지역에 들어가는 방법을 택했다. 그들의 집에 도착해서 작은 선물을 주었다. 그들은 중국인이 돼지고기를 먹는 것을 부정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음식 선물은 피해야 한다. 신장에 가기 전에는 이들에게 배척당할까봐 매우 두려웠지만 실제 상황은 정반대였다. 손님접대를 좋아하는 그들은 매번 차나 과자, 과일 등으로 우리를 극진히 대접했다. 남신장의 그리스도인들 남신장의 C시에서 한 위구르족 그리스도인을 만났다. 그는 다른 지역에서 대학에 다니다가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고 한다. 그가 개종하게 된 동기는, 이슬람을 믿는 자신의 민족들이 대부분 예배를 드릴 때만 의식을 갖출 뿐 사생활은 그리 좋지 안은 데 비해, 기독교인은 진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보고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훈련을 받고 지금은 고향에서 공개적으로 기독교 사회복지 사역을 하고 있다. 화북(華北)지역과 광둥(廣東)에서 온 한족 그리스도인들이 그와 동역하고 있다. 그들은 가난한 위구르족 가정을 도와주는 사역을 한다. “생명을 전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사역하는 이들은, 보통 때는 적극적으로 전도를 하지 않지만 누군가 기독교 신앙에 관심을 갖고 물으면 그들의 물음에 대답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한다. 이것은 위구르 사회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이다. 결코 다른 사람들이 알 정도로 떠들석하게 전해서는 안 된다. 그에 의하면 이 지역에 위구르인 부부가 인도하는 가정교회가 있지만, 불필요한 어려움을 피하기 위해 서로 연락하지 않는다고 했다.
남신장의 D시에서 한 미국인을 만났다. 그녀는 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치는데, 인근에 과수원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그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길거리에서 만난 현지인이, 서양인이 운영하는 과수원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택시를 타고 과수원에 가서 들여다보니 사람 키보다 훨씬 큰 과실수들이 즐비했다. 우리는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잠시 들여다보고 조용히 그 자리를 떠났다. 이 과수원을 운영하는 이들에게 복음의 사명이 있는지 없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신장 지역의 3개 도시에 각각 다른 나라로부터 와서 그리스도인 사업가로서 과수원, 공장, 특산품 가공공장 들을 열어 복음의 열매를 맺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에게는 복음의 사명도 있고, 문화적 사명도 있다. 그들의 사업이 안정적으로 경영된다면 그 지역 경제에고 많은 공헌을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 내려주시기를 간절히 원한다. 키르키즈족과 타지크족에게 복음을 남신장의 H시에서 키르키즈족을 방문하였을 때 중요한 몇가지를 발견했다. 키르키즈족은 거의 한어(漢語)를 쓰지 않는다. 그러나 위구르족 문화는 신장에서도 비교적 강하기 때문에 이들은 위구르어를 알아들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키르키즈인들의 생김새는 위구르족이나 타지크족과 달라서 눈도 그다지 크지 않다. 어떤 사람은 중앙아시아인 같고 어떤 사람은 중국인 같기도 하다. 또 적은 수이긴 하지만 유럽인처럼 파란 눈에 갈색머리를 한 사람도 있다. 이렇게 혼혈인이 많은 것은 왕소군(한나라 원제 때 흉노족 왕과 결혼한 후궁)이 40명의 여인들을 신장에 데려와 결혼한 장소가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본 칭전쓰(淸眞寺)는 매우 적막한 편이었다. 이 지역 주민들의 신앙도 그리 열심이 있어 보이진 않았다. 평상시에는 매일 5번 예배를 드리고, 절기 때 비교적 많은 사람이 와서 예배를 드린다고 한다. 정부의 엄격한 통제로 이 지역 주민들은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다. 이슬람 성직자도 박봉으로 생활해야 하기 때문에 평일에는 시장에서 장사를 한다. 일반적으로 키르기즈족 주민들은 친절하고 성격도 단순하다.
쓰촨(四川), 샨시(陝西)등에서 이 지역으로 이주해온 사람들은 가게를 열거나 목공, 농사 등을 한다. 그들의 수입은 고향보다 많다. 복음을 위해 이주해온 사람들을 ‘복음이민’이라고 부룰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장사를 하거나 관광업에 투자하고 농사를 짓는 등 합법적인 방식으로 거주하면서 점점 키르키즈인에게 복음은 전해질 것이다.
남신장의 I성에서 타지크족을 탐방했다. 눈이 덮인 산봉우리가 얼어붙어 작은 물결이 연이은 듯하고, 산기슭 아래에는 눈 녹은 물로 촉촉이 젖어 있다. 이렇게 웅장하고 아름다운 환경에서 성장해서인지 남녀노소모두 청순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가난한 유목생활로 빨리 늙는 것이 한가지 흠이라 하겠다.
유목생활 탓에 이 일대의 이슬람교는 그다지 발달하지 못했다. 이곳 주민들도 매우 친정하고 손님접대를 좋아한다. 현에는 매우 좋은 중국어 중등학교와 소학교가 있어 많은 아이들과 젊은이들이 중국어를 구사할 줄 안다. 그러나 우리는 이곳에서의 어떤 복음 사역도 듣지 못했다. 단지 한 미국인이 와서 영어를 가르치고 또 다른 미국인이 민족연구를 한다고만 들었다. 현에서 대형 잡화점을 하는 허난(河南) 출신이 있고, 택시를 몰거나 관광업, 공무원으로 일하는 몇몇 한족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는 길에서 타지크 유목민이 양과 소를 몰고 남쪽으로 이동하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5천m의 파미르 고원에서 2~3백km 아래 산으로 내려가 겨울을 지낸다. 이렇게 물과 풀을 따라 사는 유목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복음을 전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 이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그 날을 기다리며 출발하기 전 우리는 자료를 통해 신장에서 얼마나 이슬람교가 성해하는지 보았다. 그러나 여행하면서 본 바로는 각 성과 각 읍의 이슬람 사원들은 많이 황폐되어있었다. 과거 신장은 정교합일 정책을 취하여 대부분의 이슬람교 지도자들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지만, 1949년 공산화 이후 이들은 거의 빈털터리가 되고 전통 이슬람 교도들도 큰 타격을 받았다. 게다가 위구르족의 독립운동을 막기 위해 중국은 신장지역의 이슬람교 관리를 강화하였다. 이럴수록 독립운동을 꾀하는 세력들은 더더욱 이슬람교에 의지하였다. 또한 개혁개방 이후 세속화의 유혹도 많아지고 있다. 이러한 이류로 신장의 이슬람교 세력은 예전 같지 않다. 이것은 복음을 전하는 데 좋은 기회가 되고 있다. 그들 가운데는 이미 예수를 영접한 사람도 있다. 시간이 갈수록 더 많은 신장의 소수민족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은혜에 은혜를 더하셔서 중국의 많은 모슬렘들이 예수님께 돌아오고, 장차 이들이 중심이 되어 실크로드를 지나 메카로 향하고 예루살렘까지 가길 기도한다.
출처 | ‘新疆回敎探秘’ 展望中華, 2001. 1/2 www.ces.org,tw 번역 | 김은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