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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 형제(42세)는 1983년부터 교회에 나가기 시작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현재 가정교회 지도자로 주의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이 글은 그와의 인터뷰를 정리한 것이다.
과거 열렬한 마르크스주의자였던
형제가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되었는가? 마르크스주의의 신봉자였던
내가 교회에 나간 것은 이데올로기로 교회에 도전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서양문화와 종교에 대한 약간의
호기심과 흥미도 있었다. 스스로 진리를 추구하는 정의의 사도라 여겼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교회는 나와 공통점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1983년부터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1년쯤 지나자 적의는 점점 사라지고 예수님과 교회가 친구처럼 다가왔다. 그리고 ‘6∙4 톈안먼(天安門) 사건’을
겪으면서 공산주의에 대한 신념과 이상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1990년도부터 신학과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대한 인식 부족을 느끼고 제자훈련에 참가했는데, 이때부터 신앙의 변화가 일어났다. 나는 큰 저항없이 정통 신앙을 받아들였다. 이것이 진리임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4년 간의 훈련을 통해 체계적인 신앙과 신학의 기초가 세워졌는데, 진리와 정의를 추구하는 기존의 사고 습관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된다. 하나님만이
나의 주인이시고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유일한 구주임을 깨달은 나는 흔쾌히 무릎을 꿇고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누구든지 하나님 나라(교회)에 속해 있어야 정상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공산주의와
유물론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였는가?
나는 어렸을 때부터 진화론과
무신론 교육을 받았고, 한때 중국공산주의청년단(公廳團) 지부의 서기를 맡기도 하였다. 나 같은 골수 공산당원이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처음에
성경을 읽으면서 변증법적 유물주의 사고방식으로 이해하려고 애를 썼다. 실사구시와 변증법적 유물주의의
관점에서, 하나님은 확실히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기독교를
처음 대할 때 나는 영생, 천국 등을 영원한 가치와 같은 것으로 생각했다. 지옥은 악에 대한 공의로운 심판이며, 기독교 정신의 실체는 ‘레이펑(雷鋒) 정신’¹ 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름대로 유물론과 기독교 두
가지 측면의 대화의 장을 열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성경을 깊이 연구하면 할수록 성경이 세상과 조화를
이룬다는 관점은 잘못된 것임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공산주의가 추구하는 것이 영원한 진리가 아니며, 단지 물질에 대한 인간의 추구를 과장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신과 같은 지식인이 기독교 신앙을 갖는 것을 방해하는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우선 오랫동안 가져왔던 공산주의에 대한 굳은 신념이다. 이것이
깨어져야 진정한 믿음을 가질 수 있다. 왜냐하면 공산주의는 인간의 죄에 대한 자각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두 번째 원인은 불신자들, 특히 지식인들이 교회로 들어가는 것을
막는 무형의 ‘울타리’들이다. 오늘날의 교회에도 여전히 많은 ‘울타리’들이 쳐 있어, 진리를 추구할 목적으로 교회에 나오는 지식인들을 가로막고
있다. 예를 들면 교회 안에서 알아듣지 못할 ‘천국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불신자들이 교회 안에서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한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결코 천국언어를 사용하지 않으시고 사람의 언어를 배워 사용하셨는데, 우리는 오히려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할 ‘천국언어’로 말하고 기도하는 것을
영광으로 여기고 수준이 높다고 생각한다. 또한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당연한데도, 오늘날의 교회는 병 치료나 평안, 기쁨을 얻기 위해서 온 사람이
아니면 별로 환영하지 않는 듯하다. 그리고 성경과 신앙, 신학에
대한 질문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런 것이 교회에서 지식인들의 처신을 더욱 어렵게 한다.
또한 나의 경우는 성부
하나님의 성품을 받아들이는 것이 힘들었다. 어린 시절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자라지 못한 불행한 경험 때문에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형성이 매우
힘들었고, 나 스스로를 하나님의 종이라 말할 뿐, 하나님의
아들이라고는 감히 말하지 못했다.
믿고 난 이후에 경험한
어려움은 무엇이었는가?
주님을 영접한 후에 내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인본주의와 신본주의의 갈등이었다. 사람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을 바꾸는
과정은 정말 힘들었다. 남을 위해 자신을 버리는 것, 인민을
위해 봉사하는 것 모두 사람을 위하고 자신을 위한 것이며, 하나님 역시 대중을 위해 봉사하는 존재로
보았다. 나는 하나님께 이 나라를 잘 다스려 달라고 요구했다. 사도시대에는
병을 치료하고, 귀신도 쫓아내셨던 하나님이 왜 오늘날은 그러한 이적과 기사를 나타내시지 않는 것인지, 이런 방식을 통해 하나님의 존재를 하나님의 존재를 많은 사람들에게 증명할 수 있을텐데 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는지, 왜 그래야 하는지를 늘 하나님께 따져 물었던
것 같다. 내 자신은 내 자신은 하나님께 이용당하고 싶지 않으면서 하나님은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대단한 영적 전쟁이었다. 그러나 이유를 따져 물을
필요도 없이 순종만이 해답이었다. 1991년부터 4년 동안의
공부와 훈련은 내게 큰 유익이었다.
한때 영적 생명이 바싹
메말라 있던 적이 있었다. 어떤 때는 절망의 경지까지 이르러 아예 믿음을 버리려고까지 했다. 1995년 이후로 급변하는 외부 환경으로 인해 도무지 앞길을 예측할 수 없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는 것을 믿었지만, 연약해질 때면 절망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러나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낳는다(롬
5:3~4)’는 말씀을 붙들었기에 위기상황까지는 가지 않았다. 이것은 앞서 언급한 교회의
‘울타리’와도 관계가 있다.
현실적으로 당장 이해할 수 없는 문제들이 너무 많았지만, 교회 안에서 도움을 받을 대화
상대를 찾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책들을 찾아보았지만, 나의
고민에 해답을 줄 수 있는 깊이 있는 책이 너무 적었다. 사색, 기다림, 성경묵상, 기도를 하다보면 결국 지나 갈 것들이었지만 당시로서는
도움이 절박했다.
당신은 그 동안 외국
선교사들을 많이 접촉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들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내가 처음 만났던 외국
선교사는 매우 성숙한 신학 사상을 가진 분으로, 오늘날 내가 섬기는 교회가 견고히 세워지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나는 외국 선교사의 사역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천국에서 우리들이 살고 있는 ‘외국’으로 오신 최초의 선교사셨고, 바울도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한 선교사였다. 선교하지 않는 기독교는
기독교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삼자의 소위 삼정정책(定點, 定片, 定人)은 근본적으로 기독교의 교의에 부합하지
않는다.
나는 외국 선교사의 사역을
‘외국 상표’로 표현하고자 한다. 오늘날 중국에는 여러 종류의, 다양한 등급의 상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별 문제가 없는 ‘외국 상표’라면
우리는 그들을 본보기로 삼고 좋은 점을 배워야 할 것이다. 질이 떨어지는 ‘가짜 외국 상표’를 막기 위해 무조건 모든 상표의 출입을 막을 수는
없다. 그리고 선교사들은 대부분 훌륭한 신학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들이
알고 있는 진리를 배운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그들의 돈에 더 마음을 두고 있다. 외국 선교사들을 반대하는 사람들 중에는, 선교사들에게서 충분히 돈을 긁어내지 못했기 때문인 사람들도 있다. 외국
선교사들 역시 진리를 전하기보다는, 중국의 성도들로 하여금 돈을 더 의지하게 함으로 교회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 때문에 많은 교회들이 외지에서 온 사역자들을 더욱 경계하게 된 것 같다. 교회는 선교사들의 돈을 사사로이 받지 말아야 하며, 돈으로 교회를
건립할 수 있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일단 누군가의 돈을 받으면 그 사람의 말을 듣지 않을 수 없고
매이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어떤 이들은 돈만 받고 말은 절대 듣지 않겠다고 생각하지만, 남의 덕을 본 사람은 저절로 끌려 다니게 되어 있다.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심사숙고해야 한다. 우리는 이미 교회 역사를 통해 분명한 교훈을 배운 바 있다. 1949년 이후 중국에는 모든 외국 선교사가 추방되고 외국 교회의 자금이 끊기면서 중국 교회는 너무나 빨리
무너져 버렸다. 열의에 가득 찼던 많은 지도자들이 자취를 감추었다. 우리는
중국 교회가 다시는 똑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신중히 교회를 건립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중국 교회는
반드시 자발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재정적인 면에서 교회가 자립하지 않는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다. 성도들이 교회에서 헌금을 하지 않는다면 교회에 대한 책임감이 생길 수 없다.
또 교회가 자립 운영되려면 외국인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는 것을 명백히 해야한다. 오늘날
중국 교회의 많은 전도인들이 외국인 사역자를 위해 일하면서 커피를 마시는 등 외국인의 소비방식을 배우고 있다. 이
전도인들의 생활 수준은 중국의 평균 소비수준보다 높은 편이다. 우리 스스로 헌금하면서 사역을 한다면
소비를 절제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외국인들 앞에 당당할 수 있고, 더
이상 외국 선교사에게 끌려다니지 않을 것이다.
중국교회 신학에 대한
당신의 의견은 어떤 것인가?
중국교회는 견실한 신학기초를
마련하고, 자기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져야 할 것이다. 핵심을
찌를 수 있는 사고 능력만이 우리로 하여금 합당한 맥락을 찾게 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믿은
이후로 여러 가지 어려움들이 있었지만, 결국 극복해냈다. 다른
사람들은 나처럼 그렇게 우왕좌왕하지 않도록 돕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선 이치에 맞는 논리와 언어부터
정립하고 싶다. 예를 들자면 중국인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말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오늘날 중국 교회는 개혁주의
신학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기본적인 방향이 변하면 안 되지만 그렇다고 너무 사소한 일로 다툴 필요는
없다고 본다. 대부분의 문제들은 자기만 옳다고 주장할 때 발생한다. 또한
개혁주의 신학에서 토론하는 많은 문제들이 현 중국의 보편적인 문화수준과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 예를
들어 칼빈이 살던 시대에는 그의 신학으로 많은 문제를 해결하는 성과가 있었겠지만, 지금 우리는 그때와
다른 시대를 살고 있다. 신앙은 성경에 기초해야지 신학적 논리나 교파에 따라 좌지우지 되어서는 안된다. 우리들 스스로가 진리를 대표한다는 것을 깊이 각인하고, 진정으로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주1) 레이펑(雷鋒. 1940-1962): 중화인민공화국 인민 영웅의 한 사람. 해방군 선양(沈陽) 부대 공병 운수대의 분대장으로 1962년 8월 공무로 순직하여 ‘마오쩌둥 주석의 훌륭한 전사(毛 主席的好戰士)’라는 영예를 받음. 그의 평소의 행동 및 순직한 정신은
대중의 모범이 될 만하다 하여 전국적으로 ‘레이펑 학습 운동’이
전개 되었음
출처 | ‘一个馬克思主義者的轉變’, www.21sz.org
번역 | 이원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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