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의 관문도시(11)
복음의 관통로,
중국의 관문도시들
창춘(長春)
창춘시는 지린(吉林)성의 성도(省都)로서 지린성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이다. 또 전체 도시의 37.2%가 녹지이며 문화, 생활공간이 풍부한 곳이다. 95년엔 35ha의 대지에 창춘 영화성을 지어 영화촬영의 기지로 자리잡았다. 창춘은‘동북지방의 선교센터’역할을 감당하는 복음사역 면에서도 중요한 거점도시이다.
인구 및 행정구역
창춘시 인구는 680만여 명(97년 통계)인데, 이중 시내(市區)의 인구가 280만여 명, 현(縣) 인구는 400만여 명이다. 시의 총면적은 18,881㎢인데, 시내의 넓이만 3,577㎢이다.
행정구역은 5개 시구(市區)와 2개의 현급시(縣級市), 3개 현(縣), 150개의 향(鄕)과 진(鎭)으로 구성되어 있다. 창춘 전체인구의 1/3은 이 5개의 시구와 2개의 현급시에 거주하고 있다.
시구: 난관구(南關區), 콴청구(寬城區),
차오양구(朝陽區), 얼따오구(二道區),
뤼위엔구(綠圓區)
현급시: 솽양구(雙陽區)의 지우타이시(九臺市),
위슈시(楡樹市)
현: 더후이현(德惠縣), 농안현(農安縣),
솽양현(雙陽縣)
기후
계절풍의 영향으로 겨울이 길고, 봄에는 바람이 많으며, 여름엔 따뜻하지만 짧고, 가을은 맑지만 기온 차가 크다. 연평균 기온은 4.8℃이며, 최고 기온은 39.5℃, 최저기온은 -39.8℃이다. 연평균 강우량은 567㎜이다.
교통
철도로는 베이징(北京)에서 약 15시간, 하얼빈(哈爾賓)에서 3시간 30분, 선양(沈陽)에서는 약 4시간이 소요된다. 항공편으로는 베이징(北京)에서 1시간 30분, 상하이(上海)로부터는 2시간 30분, 광저우(廣州)에서는 4시간이 소요된다. 철도는 베이징, 선양, 창춘, 하얼빈, 모스크바 경유 노선과 창춘-홍콩 노선이 있다. 그 외에 베이징, 톈진(天津) 등 전국 주요도시와 연결되어 있다.
역사
창춘은 금(金), 요(療), 원(元), 청(靑), 만주국이 세워졌던 곳이고, 이들이 전쟁을 치른 역사의 무대였다. 그러나 창춘은 1800년에 청조가 ‘창춘청’이라는 지방행정기구를 설립한 후부터 발전하여 1865년 처음 성을 쌓았는데, 1883년에는 인구 9만에 불과하였다. 1896년 러시아가 침략하여 철도 건설권을 장악하였고, 1906년 러일전쟁이 끝난 후에는 일제가 권한을 장악하였다. 1908년 일제는 만주철도 부속지를 확대하고 창춘역을 지었다. 당시 시의 크기는 21㎢였고 인구는 15만이었다. 1931년 9·18 만주사변 후 창춘은 일제의 식민지가 되었다. 1932년 3월 일제는 만주국을 세우고 창춘을 ‘신경(新京)’으로 개명하였다.
1944년 시의 면적은 80㎢, 인구 82만이었는데, 1946년 5월부터 국민당이 장악하여 시의 인구는 17만 명으로 감소했다. 공산화 이후 1954년부터 지린성 성도로 지정되어 이듬해에 전국 10대 도시로 지정되었고, 79년부터 중국의 15대 경제중점 도시가 되었다. 중국산 자동차 제조로 유명한 창춘 제일자동차제조공장(第一汽車製造廠)은 만주국 당시 관동군의 세균제조 공장이었다.
경제
창춘에는 석탄, 석회암, 진주, 동, 은, 철 등 광물 외에 석유와 천연가스가 일정량 매장되어 있으며, 공업과 농업이 비교적 균형있게 발달되었다. 91년까지 3,065개의 공업기업이 있으며 공업 총생산액은 178.9억 위안(元)에 달하였다. 이는 지린성 전체 공업생산액의 1/3을 차지하는 액수이다. 특히 교통운수설비 제조공장은 중국 전체에서도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으며(전국 13%), 창춘 제일자동차제조공장은 중국 자동차 생산의 1/5, 창춘열차공장(長春客車廠)은 철도 생산의 1/2, 창춘트럭공장(長春拖拉機廠)은 중국 3대 트럭공장의 하나로 전국의 1/10을 생산하고 있다. 그 외에 현지의 자원과 조건을 이용한 곡물가공, 하이테크, 석유화학공업이 발전하였다.
농업은 평탄한 지형과 비옥한 토지의 자연조건 하에 옥수수, 콩, 쌀, 수수가 많이 생산되고 있으며, 국가의 주요상품 곡물기지 및 옥수수 수출기지로 지정되어 있다. 최근 들어 축산업의 생산이 증대되고 있다.
1988년부터 창춘 신기술산업개발구(長春高新技術産業開發區)가 설치되었다. 이곳은 통신, 금융, 상업 등 기초시설 등이 잘 갖추어졌으며, 교통이 편리하여 시내의 역이나 호텔, 공항 등과 직통으로 연결되어 있다. 또 이 개발구 내에 18개의 대학, 39개의 국가급 연구기구, 12개의 설계센터, 8개의 계산 및 실험센터 등이 있다. 창춘시는 90년도부터 외국투자자에 대한 우대정책을 실시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외개방을 추진하고 있다.
기독교 상황
창춘시는 최근 큰 사회문제로 대두된 파룬궁(法輪功) 교주 리홍즈(李洪志)의 고향이기도 하지만, 훨씬 이전부터 기독교 신도들이 자신들의 신앙을 고수하며 살아온 곳이다. 창춘에는 공식적으로 4개의 이슬람 사원, 2개의 카톨릭 성당, 그리고 2개의 한족 삼자교회가 있다. 이 두 교회는 신도 수가 만 명 정도 되는 상당히 큰 규모의 교회여서, 한 주간에 세례를 받는 사람이 500∼600명 가량 될 정도이다. 이들 한족 교회들은 외부의 지원 없이 자체적으로 헌금을 통해 교회를 건축하고 운영하고 있다.
공식으로 운영되는 조선족 삼자교회는 두 개가 있는데, 200여 명 정도의 신도가 모여 예배를 드리고 있으며, 그 외에 다수의 가정교회가 장로 등 평신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약 4명의 장로가 회의를 거쳐 지도자를 양육시킨 후, 인근 지역으로 파송하여 다른 가정교회를 개척하는 형태로 조직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100명 이상 모이는 가정교회도 많기 때문에, 이들 가정교회 지도자를 양육하고 지원하는 외국인 사역자들도 많은 편이다.
뿐만 아니라 창춘시에는 탈북 동포들도 많아 이들을 대상으로 한 사역이 진행되어 왔다. 최근 이 사역을 진행하던 사역자들이 공안에 체포되어 오랜 기간 감금되는 등 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창춘은 지리적으로도 동북삼성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지만, 영적인 면에서도 중국선교의 중심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중요한 지역이다. 최근 한국인 사역자 체포 등 큰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 지역에 하나님을 예배하는 모임이 끊임없이 일어나며, 중국인 스스로가 하나님의 일을 감당해 낼 수 있도록 많은 기도를 심어야 한다.
기도제목
1. 창춘 지역의 모든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 안
에 든든히 세워져 다른 지역 선교도 감당할
수 있도록.
2. 최근 핍박을 당하고 있는 선교사들과 현지
동역자들을 위로하시며, 심령을 더욱 강하게
하시도록.
3. 지식인과 대학생, 고위층에게 복음을 전할
자들을 많이 세우시도록.
옌지(延吉)
옌지시는 지린성 동부에 위치한 옌볜 조선족자치주(延邊朝鮮族自治州)의 주도(州都)로서, 옌볜 지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통의 중심지이다. 옌볜은 지린성 동쪽에 위치하여 북한과 국경을 이루고 있는 지역으로, 지린성 조선족의 90%가 이 자치주에 살고 있다. 백두산을 가기 위해서 반드시 들리는 곳으로, 한중수교 이후 지금까지 수많은 한국인들이 이곳을 거쳐갔다.
인구 및 행정구역
옌지시 총인구는 38만 명으로, 전체 자치주 인구의 17.4%가 이곳에 살고 있다. 이 중 도시에 거주하는 인구는 90.6%에 달한다. 옌지시 인구의 59%가 조선족이다.
총면적은 1,340㎢인데 시구(市區)의 면적은 23.8㎢이다. 이중 산지가 78%이고 경작지는 9%밖에 안 된다. 옌지시에는 9개의 거리와 4개의 향, 2개의 진(鎭), 그리고 200개의 주민위원회와 66개의 촌민위원회가 있다. 투먼(圖們), 뚠화(敦化), 룽징(龍井), 훈춘(琿春) 등 4개 시와 허룽(和龍), 안투(安圖), 왕칭(汪淸) 등 3개 현(縣)으로 둘러싸여 있다. 북한 및 러시아와 인접한 지역에 있어서 일찍이 중국, 북한, 러시아 간의 삼자무역이 활발히 전개된 곳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두만강 유역 개발과 함께 국제무역의 거점도시로서 입지가 강화되고 있다.
기후
온대 기후로 여름엔 고온다우하고, 가을엔 시원하며 겨울은 춥고 길다. 연평균 5.7℃로 최저 기온은 -32.7℃이고, 연 강수량은 550㎜이다.
교통편
훈춘에서 톈진(天津), 베이징(北京), 창춘(長春), 선양(沈陽)간 열차가 옌지를 경유하여 하루 12회 운영되고 있으며, 투먼, 훈춘 간의 철도, 러시아의 마하린까지의 철도가 운영되고 있다. 도로는 훈춘의 장링즈(長嶺子)를 거쳐 자르노비항까지 있고, 청진항으로 가는 도로가 룽징, 북한의 회령을 거쳐 이어진다. 항공편은 베이징, 선양, 따롄(大連), 창춘행이 취항하고 있다.
역사
예전에는 옌지를‘난깡(南崗)’,‘옌지깡(煙集崗)’이라고 불렀다. 1875년 이전까지만 해도 산짐승들이 나올 정도로 깊은 삼림지대였는데, 1881년 청나라가 이곳에‘초간국(招墾局)’이라는 관청을 설치하면서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다. 옌지가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1934년 동북을 강점한 일본이 옌지를‘간도(間道)’로 고치고 이곳을 자원약탈과 동북침략의 근거지로 삼으면서부터이다. 1945년 8월 일본이 패전한 이후, 46년에서 48년까지 중국 공산당 지린성위원회가이곳에 위치해 있다가, 1952년 9월 옌볜 조선족자치주가 설립된 후부터 자치주의 직할시가 되었다.
경제 현황
옌지에는 철, 동, 석탄, 금, 몰리브텐, 목재 등의 풍부한 천연자원이 있고, 석유는 1억 톤이 넘게 매장되어 있다. 이를 바탕으로 한 기계, 시멘트 공업이 비교적 발달하였다. 이밖에도 건축자재, 건축재료, 야금, 석유화학, 동력자원 등의 산업이 발달하였다. 옌지시는 옌볜 지역 공업생산액의 26%를 차지하는 신흥 공업도시이다.
총생산액 중 4.7%만이 1차 산업이고, 2차 산업이 59.9%, 3차 산업이 35.3%를 차지한다. 수입에서도 농업은 5.5%임에 반해, 공업이 65.2%, 건축업이 7.9%, 운수·통신업이 3.7%, 상업, 요식업이 17.7%를 차지하여 농업에 대한 의존도가 낮음을 볼 수 있다. 농업 총생산액은 지린성 전체의 0.4%밖에 안되며, 그 비중은 농업이 66.2%를 차지하고 축산업이 30%를 차지한다. 제2차 산업은 점점 쇠퇴하는데 반해, 3차 서비스업은 98년 17.5억 위안으로 78년에 비해 그 규모가 14배가 증가하였다.
옌지시는 동북의 교역 중심지이고 조선족 특산품의 집산지로 유명하다. 특히 한국과의 교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데, 특히 91년 9월 9일 개교한 옌볜과학기술대학(延邊科學技術大學)은 중국과 한국 간의 합작교육을 통해 문화 및 경제, 기술교류를 증진하고 있다.
옌지시는 국제 교류를 위해 인근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톡 항을 이용하고 있으며, 또 3시간 거리에 있는 북한의 청진항을 옌지시 전용항으로 임대하여 화물 수송의 효율성을 극대화하였다. 옌지시 인민정부에서는‘옌지 소수민족 개혁 개방 특별시험구’를 설치하여 동광 공업기지개발구, 모아산 관광구, 신풍고 신기술개발구, 의란 축산업개발구를 지정하였다.
기독교 상황
옌지에 처음 복음이 전파된 것은 1903년 영국의 한 선교사에 의해서였다. 그 이후 이 일대에 뿌리내린 기독교는 점차 발전하여, 30년대 초 허룽(和龍)현에만 17개의 교회가 세워졌고, 신도가 1,800여 명에 이르렀다. 훈춘의 신도 수는 5,000여 명에 이르기도 했다.
천주교도 1906년 독일인 신부에 의해 전파되어, 40년대 초엔 신자가 14,800명에 이르렀다. 65년 통계에 의하면 당시 천주교인이 2,700여 명, 기독교인이 2,100명, 불교승이 3명이었다고 한다. 현재 27명의 종교계 인사들이 성, 자치주, 시 인민대표 또는 정치협상회(政協)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대표적인 삼자교회인 옌지교회(延吉敎會)는 조선족 교회임에도 불구하고 12,000명의 성도를 자랑하는, 옌볜 전 지역을 포괄할 정도로 영향력이 큰 교회이다. 옌지교회는 룽징교회, 왕칭교회 등 옌볜 지역 다른 교회들을 관리한다.
옌지는 백두산을 가기 위한 경유지로 한국과 많은 관계를 가진 곳이며, 조선족이 이 지역 문화, 사회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많은 한국인 사업가들이 드나들면서 돈을 물쓰듯 하고, 조선족 현지처를 두는 등 한국인에 대한 나쁜 인상을 남겨놓은 부정적인 경우도 많았다. 최근에는 북한 처녀들이 조선족이나 한족들과 결혼하여 거주권이 확보되면 도망가는 경우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주님의 사역자들이 영향받지 않고, 거룩하심으로 보호받도록 기도하자. 이 지역에서는 조선족을 상대로 한 유치원이나 양로원, 장애인 사역 등이 이루어지고 있다.
기도제목
1. 옌지교회가 성령의 임재하심 가운데 녹아져
자신을 주장하지 않고 주변의 교회를 잘 섬기
는 교회로 서도록.
2. 이 곳의 사역자들이 사단의 속임에 빠지지
않고 매일 거룩하고 성결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3. 이 곳의 조선족 동포와 탈북 동포들이 하나
님의 복음을 전해듣고 구원을 얻도록.
<정리/ 중국어문선교회 연구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