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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7.1 통권 167호     필자 : 김주한 프린트   이메일 
[쉬어 가는 페이지]
어떤 세계관이 정말로 가치 있는가?(주자학 역사의 전개7)
-리기론, 리학과 기학을 종합한 주자의 우주론-


“동양사상에서는 무극과 태극, 리(理)와 기(气), 우(宇)와 주(宙)를 형이상의 개념으로 본다. 그러므로 모두 보편개념이다. 그리고 그것은 둘이면서 하나이며 동(动)이면서 정(静)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명목이 아니라 형이상적 실재라고 말한다. 이를 보편과 실재로 표현한다면 이것들은 모두 보편이며 동시에 실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동양적 사고로는 실재가 아닌 명목을 따로 인정하기가 도무지 쉽지 않다. 그것을 구분할 필요도 없다. 그러므로 인식론적인 진정한 불가지론이란 없다. 그보다는 현상과 본체를 구분하여 현상은 일시적인 모습이고 본체야말로 진정한 실체이며 영원한 본모습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현상에 구애되지 않도록 본모습을 알아야 하며 이를 위해 부단한 수양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동양에는 인식론이 없고, 수양론이 있을 뿐이다.” -기세춘-


약육강식의 세상에서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을 통해 진화론을 주장한 이래로 진화a의 개념을 더욱 활발하게 응용한 영역은 자연과학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사회과학이었습니다. 19세기 스펜서에 의해 확립된 사회진화론은 생물학 진화론과 같이 이 사회 또한 적자생존의 투쟁을 통해 더욱 복잡하고 높은 수준의 사회로 진입해 간다는 이론입니다. 여기에는 도태되지 않고 진보로만 나아간다는 낙관론의 인간 이해가 깔려있고 제국주의의 팽창과 더불어 사회발전 단계설, 우생학의 주장들을 통해 역사에 있어서 수많은 사회폭력과 억압에 일조하였습니다.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의 관계를 단순히 나 자신의 ‘생존’의 문제에 대입한다면 그것은 곧 계급, 계층 사이의 투쟁, 나라와 민족 사이의 경쟁이 곧 적자생존의 법칙 속에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며, 정치 갈등과 더불어 경제 갈등이 증폭되는 오늘날은 더욱더 남을 먹어야 내가 살게 되는 야만의 시대가 된 것 같습니다.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먹이사슬 관계는 모두 자연과 세계를 바라보는 ‘각자도생’의 관점에 근거합니다. 자연의 먹이사슬은 먹히는 쪽이 먹혀 다 사라지지 않고, 먹는 쪽이 필요 이상으로 먹어 치우지 않는 순환과 상생의 법칙이지만 인간사회의 먹이사슬은 욕심과 폭력으로 인해 먹는 쪽까지 위협을 당하는 비인간적이고 자연 파괴적인, 결국은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맙니다. 사람이 가진 지식과 기술을 통해 자연과 세계를 ‘정복’하고자 했을 때 얻게 된 것은 인간 실존의 불안과 공허함뿐이었습니다. 각자도생의 세계관은 싸워서 이기지 않고서는 그 불안을 해결할 수 없고 이긴다고 해도 또한 언제 다시 먹힐지 알 수 없는 끝없는 먹이사슬에서 자연공생과는 거리가 먼 살생인 것입니다. 


리선기후(理先气後), 하나 됨을 추구하는 본성의 이치

주돈이의 <태극도설>을 통해 송대의 유학자들은 ‘태극’의 본체개념에 모든 사물과 활동의 근원이 ‘하나’임을 근거로 삼았습니다. 이 우주가 하나의 근원을 같지 못한다면 그것이 곧 각자도생의 세상이며 거기에는 인의예지와 같은 보편적인 윤리 가치가 자리할 논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유학자들은 서로의 다양성은 배려와 협상을 통해 그 개성을 인정할 수 있지만 진정한 윤리 덕목과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은 서로의 이질감이 아닌 동질감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세상에는 여전히 갈등과 다툼이 있습니다. 서로 같은 것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은 것은 욕심과 욕망만을 향해 달려가는 사건과 사고들이 넘쳐나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이 욕망의 각축전일 뿐이라면 정말로 세상에는 희망이라는 것이 남아있는 것일까요. 오히려 동서고금의 종교와 철학 사상들은 한 목소리로 나와 남을 같게 여기고 남을 나처럼 사랑하라는 윤리 실천의 황금률을 주장하며 신, 자연, 우주와 같은 형이상학적인 개념들의 이해를 윤리 당위성의 근거로 정리하였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의 연결된 끈을 찾는 노력이 이 세상을 진실로 하나 되게 하는 방법의 출발점이라는 것입니다.

주자 또한 눈에 보이는 형태를 중시하는 기학과 보이는 것 이전의 본체에 관심하는 리학을 종합하면서 세상만물의 동질감과 이질감 중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도록 리와 기는 서로 떨어지지 않고 또 서로 섞일 수 없는 것임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태극’의 근본 개념과 리의 본체개념에 더욱 집중하면서 윤리적 본성이 서로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형이상학적 개념 이해에 그의 사상적 관심을 펼쳐나갔다고 볼 수 있습니다. 


리일분수(理一分殊), 같음과 다름의 변증법

진래(陈来)는 리일분수를 통해 주자가 ‘우주 본체와 만물의 성이 같음’, ‘본원과 파생의 관계’, ‘보편 법칙과 특수 법칙의 관계’, ‘리와 사물의 관계’를 논한다고 정리하면서 리일분수에서 중요한 것은 제각기 다른 사물들의 차이인 ‘분수’가 아닌, 어떻게 그러한 분수 속에 하나의 이치가 각 사물의 본성으로 자리할 수 있는지의 ‘일리(一理)와 만리(万里)의 관계’라고 하였습니다.

자연의 먹이사슬이 제각각 먹고 먹히는 다른 양상을 보여줌에도 그것이 하나의 자연이 되게끔 순환하는 구조를 통해 참으로 자연만물의 본성이 하나로 연결되어있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처럼 우리가 이 사회 속에서도 눈에 보이는 각자도생의 욕심과 욕망보다 더 거대한 자연의 하나됨과 우주의 깊이를 체현할 수만 있다면 세상은 더욱 선하게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주자는 리일분수 개념을 정리하며 ‘태극은 한 그루의 나무가 자라 나뉘어서 가지와 줄기가 나오고 또 나뉘어서 꽃을 피우고 앞을 내며 낳고 낳음이 끝이 없는 것과 같다. 열매를 맺는 데 이르러 그 속에 또 낳고 낳음이 끝없는 리가 있어 생명이 장차 나오니, 이것이 무한한 태극이며 다시 쉼이 없는 것이다. (语类.권94)’라고 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인간관계의 윤리 질서를 의미하는 인륜이 권위 상하관계가 아닌 하나 됨의 자연 관계가 되어야 함을 깊이 느낄 수 있습니다. 다른 것은 나쁜 것이 아니며, 같은 것에 근거합니다. 우리가 똑같은 인간이며 똑같은 자연이고, 똑같은 우주 안에 살며 똑같은 우주를 품고 있다고 진정으로 확신할 때 비로소 이 자연과 우주가 서로 다른 만물을 지탱해주듯 그렇게 서로 다른 이들의 감정들과 생각들을 포용하고 진정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하나 되는 관계들을 만들어 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
 



♧ 김주한 | 길가에교회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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