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기행
허드슨 테일러의 꿈, 창사(長沙)로 가다
상하이(上海)로 향하는 중국 동방항공. 음료수와 점심식사를 제공받고 입국서류를 작성하는 등 정해진 순서대로 따르다 보니 벌써 창 밖으로 도시가 보인다. 장강(長江)이라 여겨지는 강 가운데에 커다란 배들이 떠 있고, 멀리 드문드문 높은 건물들이 보여서 바로 이곳이 상하이구나 생각하였다. 이렇게 가까웠던가? 145년 전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가 6개월이란 오랜 여행 끝에 도착했던 상하이에, 겨우 두 시간도 걸리지 않아서 도착하다니!
공항에서 다시 목적지인 창사(長沙)로 가는 국내선 비행기를 갈아타야 하는데 누구에게 도움을 청해야 할지 걱정이 되었다. 다행히 비행기 연결편을 안내하는 곳이 있었다. 안내원들과 영어로 소통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준수한 청년이 우리 모두를 일렬로 세운 후 국내선까지 안내해 주었다. 비행기 표는 주지 않은 채…. 하여간 따라오라니까 우리 모두 그를 따라갔다. 문을 여럿 지나니 정말 국내선 대합실이 나온다. 깨끗하기는 하지만 얼마나 사람이 많은지 마치 한국의 고속버스 터미널 같았다. 수많은 비행기들이 이착륙하고 있었는데, 가끔씩 영어 안내 방송이 나오지만 비행기가 지연되는 경우도 있어서 여간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옆에 앉은 노부부가 창사로 가는 표를 들고 있길래 이들을 따라 연착된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비행기는 중국인들로 만원이었다. 음료수 한 잔을 마시고 나니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창사에 도착했다. 45년 이상을 중국에서 일하고 다시 열한 번째 중국 방문에 나선 허드슨 테일러가 상하이에서 출발, 이틀 동안 기선을 타고 도착한 지 4일 만에 세상을 떠난 이곳 창사에 우리는 싱겁게도 두 시간도 못 되어 도착하였다. 정말 빨리 올 수 있는 곳이구나. 이렇게 가깝다니.
교육도시 창사
창사 시는 공항에서 자동차를 타고 약 한 시간 떨어진 곳이다. 서울의 강남구 넓이에 상강(湘江)이 남북으로 흐르고, 이 강의 좌우에 도심이 발달한 교육도시이다. 상강은 동정호(同庭湖)로 흘러들고, 바다와 같이 끝이 보이지 않는 이 호수는 여러 개의 지류들과 합쳐 장강으로 흘러든다. 작년 홍수 때 하루 저녁만 비가 더 왔어도 강이 범람할 뻔했단다. 여름에는 매우 습하고 덥지만, 겨울에는 장강 이남에 난방을 금지한 정부 시책 때문에 추위를 이겨내기가 수월치 않다고 한다. 창사시 인구는 200만 명이고, 이 도시가 속해있는 후난(湖南)성의 인구는 무려 6천만 명이다. 우리 나라 남북한을 합친 인구에 버금간다. 새로이 지어지고 있는 고층건물들과 오래된 가옥들이 섞여 묘한 느낌이 드는 도시이다.
창사는 예로부터 교육도시이다. 중국의 4대 학당 중의 하나인 악록서원(岳麓書院)이 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 계속해서 유지되고 있다. 송(宋)대부터 시작되어 최근까지 계속되어 온 중국 사상의 근원지이다. 현재에도 이 도시에는 중국 정부가 지원하는 중점대학에 포함되는 후난대학교와 후난공과대학이 있다. 또한 후난사범대학과 경상대학이 있어, 외국인도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있다. 도서관, 학생회관, 기숙사 등 한국의 대학교와 별로 다를 것이 없다. 창 밖에 아무렇게나 걸려 있는 속옷들을 제외하고는…. 3,500명의 의과대학생이 있다는 후난의대는 미국의 예일대학과 자매결연을 맺었다고 한다. 건물이 크고 수많은 환자들이 북적대는 이곳은 장강 이남에서 가장 좋은 의과대학이다.
대학 주변의 시장에는 특이하게 개구리와 뱀이 많이 눈에 띄었다. 한참을 구경하는데 한국말이 들린다. 이곳에 LG 텔레비전 공장이 생기면서 파견된 직원들의 부인들이었다. 인터넷 상에는 후난성에 진출한 한국 기업이 없다고 나와 있었는데 이곳 창사에는 LG뿐 아니라, 금호 타이어의 간판도 눈에 띄었다. 나를 중국인이라고 생각했는지 무엇인가 질문하는 중국 아저씨의 모습에서, 우리와 너무도 가깝고 흡사한 문화에 살고 있는 그들을 느낄 수 있었다. “아저씨 저는 광둥(廣東)에서 온 중국인이 아니고 한국에서 왔어요. 비행기 타고 4시간 걸려서….” 그 아저씨는 여전히 나를 말이 통하지 않는 다른 지역에서 온 중국인으로 알고 있었다.
미국 열풍은 불고
전국적으로 영어 열풍이 대단하다고 들었는데, 이곳 역시 그 열풍이 대단하여 영어로 이야기하는 카페가 있다 하여 찾아가 보았다. 우리는 외국인이라 돈도 받지 않는다고 한다. 한 테이블에서 7, 8명의 젊은이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한국에서 중국에 대한 책들을 읽으며 상상해 본 중국 청년들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왜 창사에 왔느냐고 처음 묻는다. 장자제(張家界: 무릉도원)와 여러 곳을 관광하기 위해 왔다고 대답하자 자기들의 관심거리를 이야기한다. 중국 여자 축구가 미국에 패한 이야기, 한국의 남북한 대치 문제, 미국 대통령 클린턴에 대한 의견, 한국과 중국의 경제 문제 등등 무엇 하나 모르는 것이 없다. 이곳이 죽의 장막이었다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여러 사건들에 대해 그들은 관심이 있었고, 또한 알고 있었다. 이런 지적 호기심이 어디서 오는 것일까? 특히 한 청년은 정부에서 일하면서 미국의 세계은행(World Bank) 사업에 참여하고 있고 미국에도 여러 번 다녀왔단다. 똑똑한 청년이었다. 중국의 위안화(元貨) 평가절하 문제에 대해서도 나름대로의 확실한 의견이 있다. 경제적으로는 조금 어려울지 모르지만, 대국인으로서의 자신감을 가진 청년들이었다. 약간 비판적인 청년도 있었지만….
최근 이 도시에도 미국 상점들이 상륙하기 시작했다. KFC와 맥도널드 햄버거 가게들이다. 코카콜라와 펩시콜라는 아무 곳에서나 살 수 있다. 맥도널드 햄버거 가게는 평화당 백화점 안에 있는데, 이 백화점이 개점하는 날 30만 명의 사람들이 모였단다.이른 아침 강변에서 춤과 체조, 가벼운 운동 등으로 자유롭게 움직이던 수많은 노인들의 모습과 어우러져 이곳 사람들의 숫자에 중압감을 느낀다. 인해전술, 그것은 무서운 전술임에 틀림이 없다. 한 성(省) 안에 우리 나라의 남북한 인구가 합쳐진 수의 사람들이 사는데, 그들이 기도한다면 과연 어떤 역사가 이루어질까?
창사로 가면 마오쩌둥이 보인다?
그러나, 이곳은 엄연한 공산주의 국가였다. 마오쩌둥(毛澤東) 주석의 커다란 동상이 학교 중심에 자리잡고 있고, 곳곳에 제복을 입은 공안원들이 뭘 찾는지 열심히 둘러보고 있다. 우리 나라에는 학교 안에 경찰이 들어오지 않는데, 이곳에는 왜 이리 공안원의 숫자가 많은지. 몇 년 전 중국의 기강을 바로잡기 위해 실시되었던 옌따(嚴打)와, 문화혁명 당시 홍위병들의 모습이 상상되어 이 민족의 아픈 역사를 실감하게 된다. 실제로 창사 시에서 남쪽에 위치한 샹탄(湘潭) 시는 마오 주석이 태어난 곳이다. 혁명의 주체세력이 후난 출신들이라, 부주석을 지낸 류샤오치(劉少寄)의 생가와 더불어 곳곳이 관광지로 변모한 흔적이 보인다.
이곳에서는 마오 주석이 신(神)으로 숭상되고 있다. 그 이유는 마오 주석의 동상 제막식이 겨울에 열렸는데 봄에 피는 두견화가 만발하였고, 제막식 때 해와 달이 동시에 보였기 때문이란다. 마오의 사진은 상당히 비싼 가격으로 귀중하게 취급되고 있는데, 작은 동상을 사는 경우에만 같이 판매된다고 한다. 이것이 가장 기념이 될 것 같아서 구입하였는데, 붉은 천으로 정성스럽게 싸 주는 점원의 모습이 마치 아주 귀한 것을 하사하는 임금님처럼 위엄있어 보였다.
점심식사를 하였는데도 마오의 생가에는 데려다 주지 않았다. 그 대신 1960년 경 마오가 그 측근들도 모르게 일 주일을 쉬어 갔다는 별장으로 안내했다. 당시 소련의 건축법을 받아들여 지진에도 견고하게 지어졌다는 나직한 건물 내에는 마오 주석의 사진과 집무실, 회의실 등이 보존되어 있다. 서구식 화장실과 욕실뿐 아니라, 두꺼운 철판으로 칸막이가 된 방공호도 있다. 전쟁이 일어나면 이곳에서 군을 지휘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마오의 부인이었던 장칭(江淸)을 위한 방도 만들어졌지만 그녀는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단다. 여러 관문을 통과한 우리는 드디어 마오쩌둥의 생가에 도착하였다. 하늘에서 보면 산의 모양이 용과 같은데, 그 머리 부분에 마오의 생가가, 그 꼬리 부분에 류샤오치의 생가가 있단다. 소지주의 아들로 태어난 마오는 키가 크고 준수하여, 어릴 적부터 유명하였다. 그의 생가는 마치 우리네 시골의 고가(古家)와 같은데 그 안에도 역시 공안원이 감시하고 있었다. 우리를 수상히 여겼는지 안내원에게 누구냐고 묻고, 그 곳을 떠날 때까지 우리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다. ‘우린 관광 왔어요. 그렇게 무섭게 쳐다볼 필요는 없는 것 같은데….’ 마오의 생가에는 신전을 모시는 정문 벽 제단에 아무 것도 없다. 공산주의는 수많은 중국인들이 가정에서 모시던 우상들을 없애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류의 생가에는 마음에 평안을 가져온다는 신이 모셔져 있었다.
창사에서 기차로 약 2시간을 타고 가면 북쪽 위에양(岳陽)이라는 도시에 연하여 동정호가 있다. 수많은 시인들이 동정호반에 있는 악양루에 올라 시를 쓰고 읊었다는데, 동정호는 정말로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컸다. 작은 배로 약 30분 정도를 달리니 동정호에 떠 있는 작은섬 췬산(君山)이 나온다. 예로부터 차로 유명한 이 곳에서, 우리 모두는 물 속에 넣으면 찻잎이 찻잔 바닥에서 일어서는 특이한 차를 샀다. 차의 맛도 좋은 것 같다. 아무리 호수가 크다고 해도 바람이 없고 더웠다. 이모작 농사가 되는 아열대 지방이 틀림없는 것 같다.
허드슨테일러의 마지막 기도가 살아 있는 곳
창사 시에는 남쪽과 북쪽에 두 개의 삼자교회가 있다. 남쪽 교회는 허드슨 테일러의 영결식이 열렸던 교회인데, 주일에는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신도 수가 많다고 한다. 운좋게도 자리를 잡고 예배에 참석할 수 있었다. 성가대가 나와서 찬양을 하는데, 먼저 한 남자 성도가 시편으로 생각되는 성경 구절을 읊조리고 성가대가 ‘빈들에 마른 풀같이’를 찬양했다. 조금 있다가 어린이들이 나와서 시를 암송하고 찬양을 하였는데, 어린이를 가르치는 두 명의 선생님은 매우 능숙했다. ‘찬미가’라고 씌여 있는 찬송가는 숫자 악보로 표시되어 있는데 모두들 잘 부른다. 계속해서 설교를 필기하시는 할머니, 젊은이들. 교회당은 더웠지만 깊은 신앙의 역사를 가진 듯한 분들이 많이 보였다. 하나님은 정말로 일하고 계셨다. 그 깊은 움직임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내게는 흥분이었다.
북쪽 교회에서는 청년 집회에 참석하였다. ‘예수 사랑해요’를 부르는데 우리는 한국말로, 그들은 그들의 말로 부르는 가운데 흥분과 감동이 밀려들었다.‘주님이십니다. 이같은 일을 이루시는 분은 우리의 마음속과 이들의 마음속에서 동일하게 역사하시는 주님이십니다.’이 교회는 양로원과 고아원을 운영하고 있으며, 성탄절이 되면 수많은 사람들이 밤을 새워 예배를 드린단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
도시 전체가 내려다 보이는 악록산에는 스키장의 리프트 같은 시설이 있어서 쉽게 오를 수 있었다. 뿌연 매연 사이로 도시 전체가 보였다. 간구하지 않을 수 없는 많은 기도제목들이 머리를 스쳐갔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찬양 가사들을 음미하면서 소리내어 불러보았다. ‘그렇군요. 이렇게 역사하셨고, 지금도 쉬지 않으시는군요.’
도심에 있는 천심공원 안에 높은 정자가 있는데, 허드슨 테일러가 죽기 직전에 기도했던 곳이다. 50년 중국 사역의 마지막 순간에 기도했던 그의 열정이 느껴졌다. 이곳에서 우리도 동일한 소망과 비전을 품고 기도하며 찬양하였다. 오늘 그를 대신하여 이 곳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진 것이 너무도 감사했다. 역사하시는 주님의 뒤에 서서 그분의 일에 감동하고 찬미하는 일은 더위와 설사와 고열을 이겨내기에 충분한 주님이 주신 은혜였다. <출처/ 99년 여름 중국 단기선교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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