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페이지설정   사이트맵    사역에 동참하시려면  
    HOME  |  선교회소개  |  교육.훈련  |  중국을주께로  |  중국기도  |  중국어교실  |  자료나눔  |  커뮤니티  |  도서·음반
   
중국을 주께로는
전체보기
이번호보기
지난호보기
주제별보기
  특집/기획
  선교전략
  중국교회
  중국사회와 문화
  지역 및 종족연구
  중국뉴스
  중국어관련
  선교일반
  선교나침반
  중국 기독교
  기획
정기구독안내
해외정기구독안내
HOME > 중국을주께로 > 이번호보기
2014.11.30 통권 148호     필자 : 프린트   이메일 
[기획]
순수한 기독교란 교파 구분의 제거를 의미하는가?

오랫동안 나는 기독교의 진리 및 효율적인 연합을 위한 가장 아름다운 방법은 울타리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그것들을 뛰어넘어 환영의 문을 활짝 여는 것이라고 굳게 믿어왔다. 나는 여전히 이런 방식에 능숙하지 않지만 더욱 발전해 나가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다. 중요한 점은 진리는 약화되고  분명한 경계가 무너지거나, 혹은 모든 것이 구분하기 어려운 하나의 조직으로 혼합될 것이다. 기도, 섬김, 선교를 더 주시하고 진리 자체를 주시하지 않는 이러한 방식은 진리를 높이는 기독교의 연합을 이루어낼 방법이 없고, 견고한 신앙공동체를 만들어낼 수 없으며, 세월이 주는 시련들을 이겨내기는 더욱 어려울 것이다.  개개인이 관계를 맺고 있는 신앙공동체 안에서 신실하게 생활하고, 또한 공동체의 경계선을 뛰어넘어 서로를 힘껏 사랑하는 것이야 말로 위에서 언급한 목표를 가장 잘 실현할 수 있는 길일 것이다.


루이스는 동의하는가?

루이스(C. S. Lewis)는 이 관점에 동의하는가? 그는 《순수한 기독교》를 쓰지 않았는가? 그것은 우리에게 교파 불일치에 대해 내려놓고, “순수한 기독교”라는 유형의 연합 안에 살아야 함을 암시하고 있지 않는가? 만약에 당신이 루이스가 말하는 순수한 기독교의 의미를 안다면 매우 놀랍겠지만 그의 주장은 매우 뚜렷하다. 아래의 텍스트는(해서체) 《순수한 기독교》에서 발췌하였고, 분단하여 필자의 평론을 덧붙였다.


교리를 대체할 수 없다.

나는 독자들이 내가 이곳에서 언급한 “순수한” 기독교에 대해 현행 각 교회의 신앙개조를 대체하여 그것을 사용해야 함을 주장한다고 여기지 않기를 바란다. 마치 한 사람이 그것을 받아들이자마자 공리회, 그리스 정교회 등을 곧바로 받아드릴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루이스가 쓴 《순수한 기독교》는 기독교의 각 교파를 비판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사실상, 그는 심지어 그 누구도 “완전하게” 순수한 기독교 위에 설 수 없다고 이야기 한다. 이것은 흡사 어느 누구도 이렇게 말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내가 입은 셔츠가 민소매 셔츠가 아닐 뿐만 아니라 반팔 셔츠도 아니고 또 긴 셔츠가 아니라 하더라도, 그것은 다만 셔츠일 뿐이다.

집 안의 현관 홀
(순수한 기독교)란 이곳에 있는 문을 통하여 다른 방으로 가는 하나의 현관 홀과 같다. 내가 만약 사람들을 이 현관 홀로 들어오게 할 수 있다면 스스로 예기한 목적에 편하게 다다를 수 있을 것이다. 화로, 의자, 음식은 현관 홀에 없고 방 안에 있다. 루이스는 영국 공의회(church of England)를 열정적으로 사랑했다. 그것은 그가 속한 교파였다. 하지만 그는 결코 자신의 소명이 공의회(Anglicanism)의 창도자가 되는 것이라 여기지 않았다. 그의 소명은 사람들을 기독교라는 집 안의 현관 홀로 데리고 오는 것이며, 그는 현관 홀이 반드시 그가 거주하는 곳이 아니어도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매우 많은 사람들이 이 점에서 루이스를 오해했다. 그의 기독교 대연합에 대한 주장은 사람들을 데리고 각 교파의 방 안에서 나와 그들과 합일된 현관 홀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이하 토론하게 될 내용과 같이, 그의 기독교 대연합 사상의 정수는 다른 방들 사이의 사랑을 의미하지, 방들을 정리하고 현관 홀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화로, 의자 및 음식은 각 교파의 방 안에 있다. 다시 말하자면, 당신이 만약 현관 홀에 산다면 따뜻함과 편안한 휴식 및 음식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순수한 기독교는 존재할 수 없다. 만약 그것이 존재한다고 말한다면, 이것은 바로 순수한 음식을 먹어야만 하고, 오히려 어떠한 구체적인 채소, 과일 혹은 육류를 먹지 말아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

현관 홀 안에 머물러 있지 마라
현관 홀은 사는 곳이 아니라, 단지 기다리는 곳이다. 이곳으로부터 당신은 다른 곳의 문을 두드려보러 갈 수 있다. 이렇게 말하자면, 나는 가장 부족한 방도(어느 방이든 상관없이) 현관 홀보다 더 강하다. 그는 순순한 기독교의 불충분성은 매우 분명하다고 말한다. 그는 설령 가장 안 좋은 교파 안에서 열심히 생활하더라도 현관 홀에 사는 것보다 좋다고 말한다.


방에 들어가라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현관 홀에서 상당히 긴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 필요함을 발견할 수 있다. 당신은 계시 받는 것을 간절히 바라며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 당연히 설령 현관 홀에 살더라도 당신은 집 전체의 사람들이 공동으로 준수하는 규칙을 준수하기 위한 노력을 마땅히 시작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점은, 당신은 어느 것이 진리의 문인지 반드시 추궁해야 하고, 어느 문의 색상과 장식이 당신을 가장 아름답게 하는지 보지 않아야 한다. 명백히 말해서, “나는 이런 종류의 경배의식을 좋아하는가?”라고 질문하는 것은 영원히 옳지 않다. 당신은 마땅히 이렇게 질문해야 한다. “이 교리들은 정확한 것인가?” 이곳에 거룩함이 있는가? 양심이 움직여 나를 이곳으로 이끈 것인가?
이것이 바로 내가 루이스를 좋아하는 이유이다. 여기에서 그는 모든 방이 똑같다 같이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을 하지 않았고, 또 모든 방이 서로 같은 진리를 가지고 있지, 단지 각도만 다르다고 말하지 않았다. 또한 사람들에게 진리의 선포를 먼저 해야 한다 말하지도 않았다. 주요한 점은 개인의 체험에 있고, 성도들은 각 교파의 진리 논쟁에 대하여 공정한 판단을 충분히 할 수 없다. 전부 부족하다.
반대로, 그는 여기에서 반드시 결정적인 한 걸음을 걸어야 한다고 솔직하게 진술하고 있다. 순수한 기독교의 현관 홀로부터 특정 교리의 방을 향해 걸어야 한다. 일단 당신이 현관 홀에 있다면 당신이 완성하길 원하는 가장 중요한 임무는 바로 어느 방이 가장 가까운 진리인지 발견하러 가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우리들이 “끊임없이 기도하며 빛을 얻기를 간구하고”, “어느 문이 진리의 문인지 추궁하길” 권면한다. 우리들은 이렇게 경배하는 것을 좋아하는지 아닌지 모색하는 것이 아니라 “이 교리들이 정확한가?”에 대하여 질문해야 한다.

세계는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
자신의 방에 다다른 이후, 당신은 반드시 당신과 다른 문을 선택하거나 여전히 현관 홀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우정 있게 대접해야 한다. 그들이 만약 잘못했다면 당신의 기도는 더욱 필요하다. 그들이 만약 당신의 원수라면, 당신은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계명을 준행해야 한다. 이것은 집 전체가 공동으로 준수하는 규칙이다.
이것이 바로 루이스의 보편적인 세계교회의 연합이다. 당신은 아마도 성경 진리에 따라 최선을 다해 교파의 방을 선택할 수 있고, 그런 다음 다른 선택을 한 사람들을 사랑해 나가야 한다. 설령 그들이 최종적으로 당신의 원수가 되었다 하여도. 세계는 기독교라는 큰 집 안으로부터 얻는 것이 필요하다. 모든 방의 벽을 두드리는 것이 아니라 범사에 성경의 교훈 따라 서로 사랑해야 한다. 우리들은 복음 진리의 때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 (弗 4:15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다)




 

출처 | 《敎會》2014년 5월 3호(통권 47호)
번역 | 김재중.자원봉사자 

       인쇄하기   이메일보내기   
   
110-812 서울시 종로구 창경궁로29길 25, (명륜3가 명륜빌딩 202호)   Tel : 02)745-0780~2, 070-8236-1270   Fax : 02)745-0786    E-mail : sinim@chol.com
Copyright 중국어문선교회 All Rights Reserved.     Product by gmgl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