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오후 9시(현지시간) 중국 베이징의 칭화대학부속고등학교. 밤늦은 시간이지만, 교실마다 환하게 불이 켜져 있다. 교문 앞에는 이 학교에 다니는 3학년 학생들을 마중 나온 학부모들의 승용차가 줄지어 서 있다. 고3 학생들의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는 시간은 오후 10시. 고3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는 한 교실의 칠판에는 하얀 분필로 ‘215’라는 숫자가 씌어져 있다. 이는 내년 6월 초 대학입시까지 남아 있는 일수다. 교실에서 공부하던 고3 학생 장모 군은 “입시가 불과 7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며 “시험 날짜가 하루하루 다가올수록 교실 내 긴장감도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대학입시는 결혼·장례 못지않은 집안 ‘거사’” 학생들 “대학은 필수”…“시험이 있는 6월은 ‘검은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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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의 명문대학으로 손꼽히는 베이징대학의 교문. [사진=온기홍 기자] |
중국 고등학생들 사이에 대학은 꼭 가야만 하는 ‘인생의 필수코스’라는 생각이 굳어지고 있다. 학벌을 따지는 사회 분위기도 학생들의 이런 생각을 더욱 부추긴다. 이에 따라 대입 경쟁도 갈수록 치열해지는 양상이다. 특히 중국에서는 대학입시가 ‘천군만마가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일’에 비유될 정도다. 이 정도로 대학 입학은 높은 경쟁률을 뚫어야 하는 어려운 일이다. 중국 고등학생들은 입시가 있는 6월을 ‘검은(黑色) 6월’이라고 부른다.
지난 9월 외동딸을 베이징 시내 한 대학에 입학시킨 왕위는 “실제로 대학입시를 잘 치르지 못하면 인생의 앞날이 캄캄해진다”면서 “그런 뜻에서 대학입시가 있는 6월은 ‘검은 6월’이라 불릴 만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학부모 왕위의 말에서 엿볼 수 있듯 중국의 대학입시는 말 그대로 ‘큰일’이다. 특히 정부의 산아제한 정책 탓에 이른바 ‘소황제’라 일컫는 외아들·외딸을 많이 두고 있는 중국 가정에서는 대학입시가 결혼·장례 못지않은 중요한 ‘거사(巨事)’로 여겨진다. 중국인민대학 신문방송대학원에 다니는 방송기자 장샤오덩은 “현재 중국 부모들은 대부분 자녀를 하나만 두고 있다”면서 “이런 이유 때문에 자녀의 대학 입학 여부에 부모들이 엄청나게 많은 관심을 쏟아 붓고 있다”고 설명했다. 4일 밤 칭화대부속고 교문 앞에서 자녀를 기다리던 중년의 학부모 리모 씨 역시 “대학에 입학하면 평온하게 살아갈 수 있지만, 대학에 입학하지 못하면 온갖 고생을 다 해야 한다”며 대학입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중국 고3 학생들이 느끼는 스트레스와 긴장감 역시 상당하다. 헤이룽장성에서 고등학교를 다닌 한국인 유학생 백종원(칭화대 2학년) 씨는 “중국 고3 중에는 스트레스를 못 이겨 학교를 중도에 그만두고 군대에 가버리는 학생들까지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또 베이징대학부속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베이징 시내 한 대학에 진학한 뤄밍은 “대학입시에서 제대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거나 이런저런 이유로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지 못한 학생들은 대개 한 해 더 공부를 한다”고 전했다. 실제로 중국 학생들은 대학입시에 ‘실패’했을 경우 출신 고등학교에서 3학년 과정을 다시 밟으면서 ‘재수’를 하는 게 일반적이다. 올해도 베이징에는 이런 ‘재수생’들이 2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수생’의 숫자는 해마다 꾸준히 늘고 있다. 경쟁 치열한 만큼 어려운 대입 시험문제들 “‘안(安)’자에 대해 논하라”…중국어·영어 과목 모두 작문 출제 이처럼 경쟁이 치열한 만큼 중국의 대입 시험문제는 매우 어렵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장쑤성의 한 고등학교를 나온 대학생 쓰전후아(베이징린예대학)는 “중국의 대입 시험은 주관식 문제가 많고, 작문의 비중도 높다”며 “고득점을 얻기 무척 어렵다”고 말했다. 매년 6월 7~8일 이틀간 실시되는 중국 대학입시는 크게 네 과목으로 나눠 치러진다. 첫째 날 오전 9시부터 11시30분까지는 어문(중국어) 시험이 있고, 오후 3시부터 5시까지는 수학 시험이 있다. 이어 둘째 날 오전에는 문과종합(정치·역사·지리) 또는 이과종합(물리·화학·생물) 시험이, 오후에는 외국어(영어·일어 등) 시험이 있다. 총점 750점 가운데 어문·수학·외국어가 각각 150점이고, 문과종합·이과종합은 300점이다. 어문 시험은 주관식이 많고, 시험의 난이도 역시 매우 어려워 150점 만점에 130점을 받으면 최고 수준이라는 게 중국 학생들의 평가다. 특히 이 시험의 작문 주제는 해마다 각계의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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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월 베이징 대학입시에서 출제된 어문 작문 주제는 “‘안(安)’자에 대해 논하라”였다. [자료=시나닷컴] |
지난 6월 실시된 베이징 대학입시의 작문 주제는 “‘안(安)’자에 대해 논하라”(분량 800자, 한국어 기준 1000자)였다. 150점 만점인 어문 시험에서 이 문제의 배점이 무려 60점. 평소 사고력과 논리력을 키우지 않으면 어문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없다. 수학 시험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이 시험에는 주어진 명제를 증명하는 서술형 주관식 문제가 많이 나온다. 올해 베이징 대학입시의 수학 시험은 객관식 8문항, 주관식 12개 문항(단답형 6문항)이었다. 함수·기하·확률·수열의 문제들이 서술형 주관식으로 출제됐다. 대다수 학생들이 영어를 선택하는 외국어 시험도 작문의 비중이 높아 무척 어렵다. 올해 베이징 대학입시의 영어 작문 문제는 4컷의 그림과 함께 간단한 설명을 읽고는 “중국에 와서 중국어를 배우는 제프(Jeff)에게 편지를 쓰라”(단어 60자 이상)는 것이었다.
성(省)·직할시별로 자체 대학입시 치러 내신·면접 없어 이틀 시험으로 최종 합격 결정하는 셈
공식 인구가 13억 명을 돌파한 중국에서는 대학입시가 각 성(省)과 직할시별로 치러진다. ‘자주출제’라 해서 랴오닝·장쑤·저장성을 비롯해 베이징·상하이시 등 14개 성(省)과 직할시에서는 시험문제를 자체 출제한다. 나머지 성들은 중앙에서 출제하는 시험문제를 쓴다. 이 때문에 각 지역마다 문제 내용과 난이도가 달라 대학입시의 공정성이 떨어진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더군다나 중국 대학입시는 고등학교 내신과 면접 점수를 반영하지 않기 때문에 그야말로 단 이틀간 치른 시험 점수만으로 최종 합격 여부를 판가름하는 셈이다. 이 같은 방식으로 시험을 치른 중국 고3 학생들은 보통 네 단계로 나눠 진학할 대학을 고른다. 먼저 1순위로 명문대를 포함한 전국 100여 개의 ‘중점대학’을 고르고, 2순위로 ‘일반대학’을 골라 지원하는 것이다. 그 다음 단계로 학생들은 단과대학, 전문학교 순으로 지원할 수 있다. 대학은 각 단계별로 3개 대학까지 지원할 수 있다. 지역마다 다르지만, 학과는 한 대학에 1~6개까지 지원할 수 있다. 칭화대 공대에 재학 중인 리청쥔은 “지원서를 작성할 때도 대입 시험을 볼 때만큼 오랜 ‘머리싸움’을 해야 한다”며 “입학 지원서를 쓸 때 1주일 넘게 공부도 못한 채 무척 많은 고민을 했다”고 말했다.
한국 고3과 다른 점?…“학교 수업만으로 입시 준비” “한국 고3과 중국 고3, 어느 쪽이 더 힘들다 말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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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베이징에 있는 중국 중관춘중고. [사진=온기홍 기자] |
이처럼 중국의 대학입시는 시작부터 끝까지 치열하다. 또 대입 시험의 난이도 역시 한국의 대학입시 못지않게 어려운 편에 속한다. 하지만 한국의 사정과 비교할 때 한 가지 다른 점은 있다.
지린성 창춘에 있는 동북사범대학부속중고를 졸업한 안지훈(칭화대 컴퓨터공학) 씨는 “중국 학생들은 고등학교에서 입시에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을 배운다”며 “학생들은 대부분 학교에서 배우는 것만으로 입시 준비를 다했다고 여긴다”고 말했다.
실제로 많은 중국 고3 학생들은 학교 수업이 파한 뒤에 학교에 남아 야간자습을 하거나 집으로 간 뒤 혼자 공부를 하며 대학입시를 준비하고 있다. 개인 과외수업을 받거나 학원에 다니는 학생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지난 3일 오후 5시 30분께 베이징 중관춘의 베이징대부속고 앞에서 만난 고3 학생 리모 군은 “학교에서 야간자습을 강제하지 않으며, 자습을 하지 않는 절반가량의 학생들은 오후 5시쯤 집으로 가 공부한다”고 말했다. 인근 중관춘중고에 다니는 고3 학생 쑨샤 역시 마찬가지 대답을 했다. 그는 “고3 학생들이 대개 오후 6시 전에 집으로 간다”면서 “오늘(3일)은 모처럼 친구들과 함께 공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 베이징대부속고 3학년 장모 군은 “집에 있더라도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며 “부모가 공부하도록 분위기를 잡는데다가 나도 학교에서와 마찬가지로 문제 풀이나 숙제에 열중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중국 학생들이 느끼는 ‘고3 생활의 고통’은 어느 정도일까. 인민대부속고 3학년인 펑루와 톈총은 “매일 학교에서 한 과목씩 모의고사를 치르고, 매달 학교나 구·시 주관의 모의고사를 한 차례 본다”며 “고3 생활이 피곤하고 고통스럽다”고 말했다. 한국과 중국의 대학입시를 두루 본 칭화대 재학생 안 씨는 “한국의 고3 학생들과 중국의 고3 학생들의 생활을 비교해 어느 쪽이 더 힘들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며 “아무튼 중국의 고3 학생들은 한국 학생들 못지않게 고생을 많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디어다음은 세계 각국의 대학입시 제도와 고등학생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세계의 대학입시’를 연재합니다. 이 기획을 통해 호주, 중국, 독일 등 많은 나라 고등학생들의 삶을 깊이 있게 관찰함으로써 우리나라 고등교육의 현실을 냉정하게 짚어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자 합니다. 누리꾼 여러분들께서 이와 관련해 활발하게 의견을 개진해주시면 우리 고등교육의 나아갈 방향을 더 잘 알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2005/11/11미디어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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