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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8.2 통권 0호     필자 : 프린트   이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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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140cm 다리 장애 中 여성 백만장자 돼

신체적 약점에 대한 사회의 뿌리 깊은 차별을 이겨내고 백만장자 사업가로 자수성가한 젊은 여성이 중국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주인공은 중국 남부 충칭시에 사는 올해 31세의 왕웨이(가명). 최근 충칭지역 일간지인 충칭스바오(15일) 보도에 따르면 왕웨이는 140cm의 작은 키에 오른쪽 다리마저 불편하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위해 100여 군데 공장 문을 두드렸으나 거절당했던 그는 미용기술을 배우고 패션을 독학하면서 꾸준하게 노력한 끝에 당당히 백만장자 여성사업가로 성공했다.


키 140cm에 다리 장애까지 있는 한 여성이 수백만 위안이 넘는 자산을 가진 사업가로 성공한 사실을 보도하는 충칭스바오.
▲ 키 140cm에 다리 장애, 100여 개 공장서 문전박대= 집에서 여섯 자매 중 다섯 번째로 태어난 왕웨이는 어릴 때 많이 아팠다. 이때 주사를 많이 맞았기 때문인지 오른쪽 다리가 불편하게 되면서 절름발이가 됐다.
이 때문에 왕웨이는 학교 다닐 때 체육시간이 가장 싫었다. 학교 친구들이 비웃을 때면 그는 쥐구멍이라도 찾아 들어가고 싶었다. 자신을 ‘미운 오리새끼’라고 생각한 그는 사람들과 만나는 것이 싫어졌다. 성격도 차츰 괴팍하게 변해갔다.
1992년 7월 그가 중학교를 졸업하자 부모는 900위안(약 12만 원)을 빌려 그를 한 중의학 전문학교에 보냈다. 그러나 두 달 뒤 그는 학업을 포기하고 돈을 벌기로 작정했다.
그는 학교에서 돌려받은 학비 600위안(약 8만 원) 가운데 300위안(약 4만 원)을 집에 부치고 남은 300위안을 가지고 부모 몰래 광저우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그러나 광저우에서의 생활은 기대와는 딴판이었다. 취직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려웠다. 키가 작고 피부도 새까만데다 아무런 기술도 없는 그를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그는 세 달 동안 무려 100여 군데의 공장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네 달이 지나서야 조화를 만드는 공장에 가까스로 취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작업환경이 열악하고 임금도 낮았다. 그래서 그는 3개월 뒤 고향으로 다시 돌아왔다.
▲ 새벽 2시까지 미용 연습, 험난한 창업의 길= 고향에 돌아온 왕웨이는 넷째 언니가 일하는 이발소에 나가 미용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이듬해인 1993년 9월 충칭시의 한 이발소에 취직을 하게 됐다.
면접 당시 그는 이발소 여주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 2시간 동안이나 여주인의 머리를 감기고 안마해 주었다. 일단 취직이 된 다음에는 이발소에서 오래 일하고 싶어서 궂은일을 도맡아 했다.
그는 이발소에서 머리를 감겨주는 도우미로 일하는 동안 성실한 자세와 좋은 서비스로 인정을 받게 됐다. 그러면서 이때부터 그의 마음속에 자신감이 싹트기 시작했다.
1995년 그는 미용기술을 배우기 위해 미용원으로 옮겼다. 갓 미용원에 취직했을 때 그는 비타민이나 에센스, 초음파 같은 말들이 무슨 뜻인지도 전혀 몰랐다. 동료들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이 때문에 그는 낮에 잡일을 하면서 어깨너머로 미용기술을 배웠다. 그리고 저녁때면 주방에서 일하는 아줌마를 상대로 낮에 배운 미용기술을 실습했다. 보통 새벽 2시까지 연습하기가 일쑤였다.
덕분에 미용원에 취직하고 한 달이 지난 뒤부터 그는 손님을 상대로 미용 서비스를 해줄 수 있게 됐다. 일하면서 고객과 재미있는 대화도 나눴다. 그 결과 3개월이 지나면서 미용실 직원 가운데 그녀를 찾아오는 손님이 가장 많아졌다. 미용 관련 지식과 경험을 쌓은 스물세 살의 그는 1997년 드디어 충칭시에 미용실을 개업하게 됐다. 그의 친절하고 열정적인 서비스가 소문이 나면서 사업은 잘 됐다.
네 시간씩 기다려 미용을 받고 가는 손님도 있을 정도였다. 미용실은 나날이 번창해 개업 2년 뒤 한해 매출이 25만 위안(약 3200만 원)에 달하게 됐다.
미용실이 자리를 잡게 되자 그는 미용과 패션 분야에 대한 새로운 전문지식을 배우기 시작했다. 미용학원을 다니면서 재충전을 하는 동시에 충칭대학에서 경영학석사(MBA) 연수과정을 밟았다. 그만큼 시야도 훨씬 넓어졌다.
그 뒤로 그는 충칭시에서 네 곳의 미용실을 개업하고, 화장품 유통회사도 세웠다. 종업원도 60여 명으로 불어났다. 이로써 그는 수백만 위안이 넘는 자산을 가진 사업가로 크게 성공했다.
 하지만 그는 2년 전까지만 해도 종업원들과 비슷하게 20위안(약 2600원)짜리 옷을 사 입을 정도로 검소하게 지냈다. 그의 비서인 위단은 “왕웨이는 자신이 과거 품팔이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종업원에게 아주 친절하게 대해 준다”고 말했다.
▲ 집에서는 둘도 없는 효녀, 공동 창업할 인생 반려자 찾아= 백만장자가 된 그는 집에서도 둘도 없는 효녀로 소문이 나 있다. 집이 가난해 오랫동안 온갖 고생을 해온 부모에게 필요한 모든 생활비용을 혼자서 기꺼이 부담하고 있다. 특히 요즘 그에게도 하나의 새로운 바람이 생겼다. 사업 의욕이 강해서 그와 함께 창업할 수 있는 남자친구를 만나는 것. 사실 지난해 그는 7년 동안 사귀어 온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백만장자가 된 그는 “내 재산을 탐내기보다 나와 취미가 같고 나를 진정으로 사랑해 줄 남자를 찾고 있다”며 “특히 인생의 반려자가 내 사업을 지지해 주고 함께 창업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신체적 약점을 극복하고 어려움을 헤쳐 온 그는 운명을 믿지 않는단다. 자신감을 갖고 열심히 실천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그러면서 그는 창업을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충고를 빼놓지 않았다.
“운명과 한판 겨룰 자신감을 가져 봐요. 문제 해결은 성장의 시작이죠. 이성적으로 행동하면서 정서와 심리를 다스리고, 모든 일에서 상호 ‘윈-윈’의 태도로 임해야 해요. 과정을 중요하게 여겨야지, 돈을 벌려는 생각만으로 사업을 해서는 안 되죠. 하나하나의 과정에 최선을 다하다 보면 돈은 저절로 따라오게 됩니다.”<미디어다음 2005/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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