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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8.2 통권 0호     필자 : 프린트   이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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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대졸 구두닦이의 ‘인생 대역전극’- 화이트칼라서 구두닦이로 변신, 8년 만에 80여개 구두점 소유
중국 쓰촨성의 성도인 청두. 시내 고급아파트들이 모여 있는 곳에 자리 잡은 ‘뤄지구두점’은 최근 중국에서 널리 알려진 곳이 됐다.  이 ‘구두닦이 가게’는 청두 시의 다른 가게들보다 무려 10~100배나 많은 요금을 받지만,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처럼 뤄지구두점이 주목을 받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사장의 특이한 이력 때문이다. 대졸 학력의 화이트칼라 직장인이었던 사장은 길거리의 구두닦이 노점상으로 변신해 전국 80여 개의 구두점을 거느릴 만큼 ‘인생 대역전’을 이뤄낸 인물. 덕분에 그는 대졸 학력 소지자로서 구두닦이 창업 성공신화를 일궈낸 인물로 평가받으면서 최근 취직난을 겪고 있는 중국 대졸 구직자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주인공은 올해 나이 서른세 살의 뤄푸환. 쓰촨스판대학 교육학부에서 마케팅을 전공한 뤄푸환은 여느 대학생들과 마찬가지로 대기업 입사를 희망했었다.
1995년 졸업한 그는 부모가 몸담고 있는 철 가공 관련 대형국영회사에 취직해 안정된 직장을 얻었다. 그러나 1년 뒤 갑자기 사직서를 냈다. ‘일과가 단조로운데다가 게을러지고 재미도 없다’는 게 이유였다. 물론 그의 부모들은 반대했다.
1997년 그는 청두에 있는 한 컨설팅회사에 취직, 다시 화이트칼라(사무직 근로자)의 삶을 시작했다. 그는 직장에 매우 만족했고, 부모도 좋아했다. 봉급은 입사 초기 1000위안을 받았고 많을 때는 3000위안을 받기도 했다.
그러던 중 그는 우연한 기회를 맞이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그는 어느 날 거리에서 구두닦이 할머니를 보게 됐다. 찌는 듯 더운 날씨 속에 구두를 닦는 손님이 없었다. 그는 안타까운 마음에 할머니에게 가서 구두를 닦았다.
그 할머니는 구두 한 켤레를 닦아주고 1위안을 받았다. 그렇게 해서 그 할머니는 하루에 70~80위안을 번다는 것이었다. 계산해 보니 한 달에 2000~3000위안을 벌었다. 자기보다 월수입이 많은 셈이었다.
그러자 불쌍한 사람은 할머니가 아니라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내가 구두 닦는 일을 하면 이 할머니보다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구두장이’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 그는 직장을 당장 그만두고 창업 준비에 심혈을 쏟았다. 먼저 중·고급 구두점을 타깃으로 삼고, 청두 시내의 고급 호텔과 찻집 내에 구두점을 세운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한 달 동안 청두 시내를 훑고 다니면서 구두닦이 시장 조사를 했다. 그리고 조사결과와 자신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중문과 영문으로 된 합작 계획서를 작성했다. 사업 기획안도 마련했다. 그는 이것을 갖고 청두 시의 고급 호텔과 찻집들을 찾아갔다.
그는 “손님들이 차를 마시면서 구두도 손질할 수 있고, 또 내가 구두를 잘 닦으면 나를 찾는 단골이 여기 와서 차를 마실 수도 있으니 ‘윈-윈(win-win)’이 될 수 있다”는 식으로 찻집과 호텔 측을 설득했다.
그러나 호텔과 찻집들은 “필요 없다”며 한 마디로 거절했다. 어느 곳도 그의 제안을 받아 주지 않았다. 시작 단계부터 벽에 부딪힌 그는 3개월 동안 찻집과 호텔들을 찾아다녔지만, 반응은 냉담했다.
그러나 뤄푸환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가 택한 마지막 카드는 길거리에 노점을 차리기로 한 것. 그는 ‘별 다섯 개 급’의 최고급 구두 노점을 차리기로 작정했다.
이를 위해 옷차림에 신경을 썼다. 또 일반 구두닦이들과 차별화하기 위해 구두약도 좋은 제품을 쓰고 값비싼 손님용 슬리퍼도 장만했다.
가격표도 만들어 걸었다. 요금은 3위안부터 최고 50위안까지로 정했다. 1위안을 받는 다른 구두닦이들에 견줘 엄청 비싼 가격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만큼 서비스와 기술에 대해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1997년 마지막 날 청두 시내 길거리에 구두닦이 노점을 열었다. 구두노점이래 봐야 벽돌 두 장 위에다가 신문을 덮은 자기 자리와 손님용 의자 하나가 전부였다. 하지만 개점 첫날 그는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부끄러워서 구두 닦으라는 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첫 손님은 젊은 부부였다. “어차피 다음날이면 또 더러워질 텐데 구두 닦을 필요가 없다”는 남자의 말에 “다음날 또 더러워질 테니까 오늘 저녁에 세수를 안 해야겠다”고 응수한 여자의 말은 뤄푸환에게 평생 잊지 못할 힘이 되어주었다.
난생 처음 구두닦이를 한 첫날 하루 수입은 80위안. 돈을 움켜쥔 그는 자신감이 붙었다. 그는 다음 날부터 큰 소리로 손님을 끌기 시작했다. 체면 같은 것은 생각하지 않았다. 그의 차별화한 서비스와 기술은 점차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요금이 다른 일반 구두닦이들에 견줘 훨씬 비싼데도 불구하고, 손님들이 너도나도 그에게 구두를 맡겼다.
이렇게 그가 길거리 구두닦이 노점에서 5년을 보내는 동안 그의 ‘새로운 직장’도 안정돼 갔다. 덕분에 집도 장만할 수 있었다. 특히 노점을 자주 찾던 휴대폰 판매점의 여사원과 결혼도 했다.
게다가 지난 2003년에는 쓰촨성 청두시 퉁신루에 고급 구두점인 뤄지구두점을 열기에 이르렀다. 다른 구두점들이 1년도 안 돼 문을 닫은 반면, 그의 뤄지구두점은 성장가도를 달렸다. 구두점은 중국 전역에 걸쳐 무려 80여 개로 늘어났다.
뤄푸환은 길거리 구두닦이 노점상에서 일약 전국적인 구두점 사장으로 대성공한 셈이었다. 뤄푸환은 최근 중국 국영 CCTV의 대담프로그램에 출연 “나 자신의 일을 하고 싶었다”며 “기회는 준비한 사람에게 주어진다”고 성공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특히 7월 졸업과 동시에 사회에 진출하는 대졸 취업준비생들에게 “한 가지 일을 잘하자면 성격, 취미, 열정, 마음가짐, 일에 대한 자세가 중요하다”면서 “무슨 직업을 택하든지 꼭 깊이 생각하고 계획을 잘 세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새로운 업종을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는 뤄푸환은 요즘 한 가지 소망을 품고 있다. “뤄지구두점을 100년의 역사를 가진 ‘올드 점’으로 성장시키는 바람”이 그것이다. <  미디미 다음 2005/7/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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