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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 통권 99호     필자 : 유관지 프린트   이메일 
[특집] - 특집/ 200주년의 중국기독교와 선교중국
"선배님! 사명의 동반자가 됩시다!"


중국교회가 올해로 선교 200년을 맞이하였다. 언더우드․아펜젤러 선교사의 입국을 기준으로 한다면 한국교회는 올해가 선교 122년이 되니 중국교회가 훨씬 선배가 되는 셈이다. 개신교 선교사의 입국뿐 만이 아니고  교회 역사의 전사(前史)라고 할 수 있는 경교나 천주교의 전래도 중국이 훨씬 앞서 있다. 공인된 것은 아니지만 장쑤(江蘇)성 쉬저우(徐州)의 한화상석(漢畵像石) 예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동한(東漢) 시절의 화상석 가운데 성경적인 내용이 있는 것을 근거로  중국기독교역사의 출발점은 주후 86년(東漢 元和3년)이라는 주장도 제기 되어 있다. 중국선교 200년을 맞이하여 우리는 선배교회에 대한 축하와 함께 경의를 표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하고 싶은 말이 '선배님, 사명의 동반자가 됩시다!'이다.


한국교회와 중국교회
두 나라의 교회의 역사를 보면 공통점들이 여럿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먼저 선교사들의 역할이 컸다는 점이다. 특히 초기에는 더욱 그러하였다. 두 나라 교회의 역사에서 선교사들의 역할을 과소평가하거나 한걸음 더 나가서 비난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다. 중국교회의 경우에는 선교사들을 서구제국주의세력의 앞잡이로 매도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렇게 말하는 분들은 선교사 한 사람, 또는 한 두 사람이 입국한 것을 가지고 그 나라 기독교역사의 출발점으로 잡을 수 없다고 말한다. 일리는 있는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두 나라 교회의 역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선교사들의 수고가 교회의 기초가 되고 뼈대가 되었음을 어렵지 않게 인정하면서 고개를 숙이게 된다. 최초의 선교사 로버트 모리슨, 의료선교사 파커, 몽골선교에 생명을 바친 제임스 길모어, 윌리엄 번스, 형제가 중국에서 목숨을 잃은 월터 로우리와 루벤 로우리, 중국선교의 아버지 허드슨 테일러, 의화단 사건 때 목숨을 잃은 189명의 선교사…. 이들을 언급하지 않고서는 중국교회를 말할 수 없다. 최초의 선교사인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말콤 펜윅, 홀, 매켄지, 데이비스…. 이런 분들을 제외한 채, 한국교회를 이야기할 수 없듯이 말이다. 평양을 흔히 동방의 예루살렘이라고 말하지만 사무엘 머펫이 없었다면 그런 이름이 어떻게 가능했을 것인가?󰡐양화진 없이 한국교회 없다.󰡑라고 해야 할 만큼 선교사들의 수고와 희생은 참으로 컸다.

그 다음, 나라의 형편이 매우 어려웠을 때 기독교가 전해졌다는 점이다. 중국에 기독교가 전해지던 19세기 중국은 서구 열강의 식민지 개척 경쟁의 대상이었다. 당시 중국의 관문이었던 광둥(廣東)성에는 영국․프랑스․포르투갈․네덜란드 등이 진출해 있었다. 그리고 중국의 침체는 거의 밑바닥에 이르러 있었다. 고립으로 인해 근대세계의 흐름을 외면하고 유교의 과거 집착, 지배계급의 안일, 천자(天子: 황제)의 허구, 인구의 80%에 이르는 소작인 문제를 외면하고 과거제에 의지한 교육제도의 후진성, 명상과 은둔에 잠겨 있었던 결과였다. 아편 전쟁에서의 패배는 중국에 큰 굴욕을 안겨주었고 막대한 배상금과 전비(戰費) 부담으로 중국 경제를 수렁에 빠지게 하였다. 
 

한국의 경우도 선교사들이 들어올 당시 일본․청․러시아․서구 열강이 이전투구를 벌리고 있는 양상은 중국보다 결코 못하지 않았다. 국내의 정정(政情)도 대단히 혼미스러워서 1982년에는 구식군대가 임오군란(壬午軍亂)을 일으켰고, 그 이듬해에는 갑신정변(甲申政變)이 발생하였다. 1894년에는 동학농민군이 봉기했고 이어 청일전쟁이 발발했다. 그리고 1895년에는 을미사변(乙未事變)이 발생했다. 

한국의 경우는 이와 같이 나라의 형편이 어려웠을 때 기독교가 들어왔다는 것은 선교에 도움을 주었다. 그런 가운데서 교회는 믿고 의지할 곳이 되었기 때문이다. 올해의 키워드인 1907년의 대부흥운동은 근본적으로는 성령과 회개를 양축으로 진행된 영적대각성운동이면서 콜레라의 만연, 경제적 빈궁, 을사늑약으로 인한 국권상실 등이 사람들을 교회로 몰고 가는 가운데 일어난 모습도 가지고 있다. 중국의 경우 그같이 어려운 형편 속에서 선교사들이 힘써 행한 구제와 박애사업의 혜택을 입은 사람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과 달리 선교사들이 중국에 고통을 주는 서구열강에서 왔다는 사실 때문에  선교에 방해가 되기도 하였다. 

또 사회주의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공통점이다. 두 나라 모두 유교에 바탕을 둔 인습 때문에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더 강하고 전면적인 박해는 사회주의에서 왔다. 그 시기와 시기별 양상도 비슷하여 중국에서는 1920년대부터 비기운동(非基運動)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주의가 기독교를 압박했고, 한국에서도 이 무렵부터 국내에서는 사회주의가 교회에 분위기적으로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고 중국 동북지역이나 노령(露領)에서는 사회주의자들이 교회를 습격하고 교역자나 성도들을 살상하는 일이 여러 군데에서 벌어졌다. 1940년대 중반, 또는 후반에 두 나라의 대부분, 또는 반이 사회주의 통치를 받게 된 다음부터는 전면적인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이 때문에 중국교회와 한국교회는 ‘고난당한 교회’ ‘고난당하는 교회’의 기록을 갖게 되었다.

한국교회의 기본선교정책인 네비우스 방법은 1920년을 전후하여 중국에서 일어난 기독교의 중국화 운동, 경제적 자립, 관리(행정)의 중국화, 제도(조직)의 중국화, 신학의 중국화 운동과 공통점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네비우스 방법과 지금 중국의 기본적인 종교정책인 삼자정책이 사용하는 용어가 자립 등 비슷하다고 하여 그것을 공통점으로 들지도 모르겠으나 그것은 옳지 않다. 그 둘은 용어는 비슷해도 의도나 성격은 다르다. 중국교회와 한국교회는 이와 같이 역사적인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친근미를 느끼게 된다.

선교의 사명
한국교회는 중국교회보다 역사가 짧지만 이제 선교하는 교회로서의 분명한 모습을 갖게 되었다. 이미 선교사 파송 2, 3위의 선교강국이 되었고 2006 세계선교대회(NCOWE Ⅳ)에서는 한걸음 더 나가서, 앞으로 25년 안에 10만 선교사와 100만 자비량 사역자를  파송하기로 결의하였다. 10만 선교사는 필요한 세계선교사 46만 명 중 5분의 1에 해당하는 숫자이다. 공교롭게도 중국인구가 세계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과 같다. 

한국교회보다 훨씬 더 긴 선교의 역사를 갖고 있는 중국교회 역시 같은 모습을 갖게 되도록 우리는 기도해야 할 것이다. 중국교회는 아직 많은 제약을 가지고 있어서 이런 것은 일견 불가능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중국교회는 무서운 역량을 갖춰가고 있고 무엇보다도 성령이라는 강한 후원자를 가지고 있다. 중국교회는 우선적으로 중국 내 소수민족을 선교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 그 가운데서도 회족 계통의 소수민족들은 이슬람선교의 일환으로 그 중요성이 매우 크다. 중국교회는 그 다음 전 세계 화교들을 선교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 

두 나라의 교회가 이렇게 공동의 목표를 갖기 위해서는󰡐사명사관󰡑을 공유해야 한다.  한국교회사 연구는 선교사관, 민족교회사관, 민중교회사관이 단계적으로 발전해 왔다. 이제는 ‘하나님은 한국교회에 세계선교의 사명을 주셨다.’는 관점에서 한국교회의 역사를 보자는 것이다. 사명사관은 바로 이것을 말한다. 

중국교회에서는 아직 사관이라는 말을 찾기 힘든 형편이다. 중문(中文)으로 된 교회역사서들에 이 단어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작년에 중국을 여행하면서 공인교회 지도자들을 여럿 만나 '내년이 중국기독교 200년이 되는 해'라는 점을 말하면 '그런가?' '처음 듣는 이야기이다.' '어디서인가 들은 것 같다.' 대개 이런 반응이었다. 그런 그들에게서 사관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인지도 모른다. 지금 중국교회의 역사와 관련해서 말을 하나 만든다면 침략사관(侵掠史觀)일 것이다. 기독교의 중국선교의 역사는 자본․제국주의의 중국침략사라는 관점에서 보는 것이다. 

사관은 그 나라나 단체에서 안경, 또는 나침반과 같은 역할을 한다.  중국교회 역사 연구에서 공정하고 긍정적인 사관이 형성되어야 할 것이다. 중국교회 역시 사명사관을 갖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다. 우리는 중국에 선교를 하면서 동시에 중국교회의 선교적 사명을 깨우치는데 힘써야 할 것이다. 최근에 받은 중국 선교사 한분의 편지는 이런 면에서 많은 기쁨을 주었다. 

지난달에는 ○시를 다녀왔습니다. 몇 해 전부터 생활비를 후원하고 있는 ○족 지도자가 이 도시의 삼자교회에서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삼자교회이지만 비교적 자유롭게 중국인을 대상으로 사역할 수 있는 도시입니다. 교회지도자들이 성경공부반을 열어달라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성에 속한 두개의 도시를 돌아보았습니다. 다음 달에는 베트남과 라오스를 거쳐서 태국까지 육로를 통해서 다녀오려고 합니다. 저희 가정의 궁극적인 선교목적은 소수민족 헌신자들을 일으켜서 인도차이나와 동남아시아 지역에  선교사로 파송하는 것입니다. 그 비전의 첫 걸음으로 생각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中國人 韓國人 益友
중국과 한국은 서로 복음의 통로 역할을 했다. 예전에는  중국이 교회가 한국으로 들어오는 통로 역할을 했다.  경교의 신라유입설은 아직도 낭만적인 추측에 머물고 있지만 이것이 사실이라면 아주 오래 전부터 그랬다는 이야기가 된다. 천주교도 청을 통로로 해서 들어왔고 개신교 전래에 있어서도  중국의 기여는 적지 않았다. 그래서'기독교북방전래설'이라는 말이 생겼다. 
1912년 장로교의 산둥(山東)성 선교부터는 한국이 통로가 되었고 최근에는 더욱 그렇게 되어 많은 한국선교사들이 중국에 들어가서 여러 모습으로 선교사역에 임하고 있다. 중국선교에 대해 많은 말을 하지만 한국이 예전의 중국만큼 복음의 통로 역할을 잘 하고 있는지, 다시 말해 선교의 빚을 잘 갚고 있는지 종종 자문하게 된다. 

이제 중국교회와 한국교회는 힘을 합해 세계를 행한 복음의 통로가 되어야 한다. 오래 전에  네덜란드의 시골에 갔는데 중국 음식점이 있었다. 뭐라고 반가움을 표하고 싶었는데 중국집 주인은 네덜란드 말과 중국말만 알았고 나는 그 두 말을 다  몰랐다. 억지로 만들어낸 한 마디가󰡐중꿔렌, 한꿔렌 이요(中國人 韓國人 益友)󰡑였다.󰡐중국 사람과 한국 사람은 서로 도움을 주는 친구입니다.󰡑하는 뜻으로 그렇게 한 것인데 이 중국집 주인 알아듣고 맛있는 빵을 큼직한 봉지에 넣어 주었다. 중국교회 200년을 계기로 중국교회와 한국교회가 사명사관을 공유한 익우(益友)가 되고 사명의 동반자가 되어 세계선교를 향해 출발하게 되기를 소망하면서 같은 말을 반복하고 싶다. '선배님、200년을 축하합니다. 우리 사명의 동반자가 됩시다!' 


유관지/ 본지 발행인, 목양교회 담임목사,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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