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사항
국명 : 중화인민국공화국 홍콩특별행정구 (통칭: HONG KONG, CHINA 혹은 中國香港) 위치 : 중국, 광둥성(廣東省) 동남해안, 주강(珠江) 입구 동쪽 면적 : 1,076.27㎢ 기후 : 아열대 몬순형기후 수도 : 홍콩은 도시국가로 특정 수도가 없음 인구 : 689.5만(2005년 말) 민족 : 한(漢)족(95% 이상) 언어 : 중국어(공용어: 광동어(廣東語), 상용어: 푸통화(普通話), 영어(통용어) 종교 : 도교, 불교가 다수이며 기독교, 이슬람교, 힌두교 등이 있음 (갈등요인은 거의 없음) 건국일 : 1997년 7월 1일 (홍콩특별행정구 성립일) 정부형태 : 행정수반 책임제 (중국과는 1국 2체제의 자치정부) 정부성향 : 중국과 '1국 2체제' 정책운용 외교. 군사를 제외한 부분은 독자정책 결정
기후 홍콩은 북회귀선 바로 남쪽에 있으며 남중국해에 접해 있기 때문에 아열대 몬순기후로 때때로 심한 기후변화를 겪기도 한다. 여름은 평균기온 28℃이고 남서풍이 불며 비가 많고 매우 덥다. 겨울은 평균기온 16℃로 지내기 좋으며, 북동풍의 영향으로 건기가 된다. 연강수량은 2,218㎜이며 대부분이 6월 무렵의 장마와 8월의 태풍 시기에 집중해 있다.
봄: 3월-5월 중순으로, 기온은 18℃-27℃, 습도는 약 82%. 여름: 5월 하순-9월 중순으로, 기온은 26℃-33℃, 습도는 약 86%. 가을: 9월 하순-12월 초순으로, 기온은 18℃-28℃, 습도는 약 72%. 겨울: 12월 하순-2월, 기온은 14℃-20℃, 습도는 약 72%.
면적 홍콩의 89%를 차지하는 신제(新界)에는 전인구 중 20%만이 살고 있으며 대부분이 무인도(無人島)이다. 대부분이 홍콩섬 북쪽연안이나 주룽(九龍)에 집중해 있으며, 집중지역의 인구밀도는 1㎢당 2만5천 명을 넘는다. 이 때문에 홍콩정부는 인구를 분산시키기 위하여 뉴타운건설을 계획하여 신제를 개발하고 있다. 이미 첸완(?灣) 일대에 99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단지를 건설했으며, 그 밖에 샤틴(沙田)·툰먼(屯門)·타이포(大浦)·윤롱(元朗) 등에 합계 2백만 명을 수용할 예정이다. 또한 이 계획에 대응하여 교통의 정비도 추진되어 홍콩섬과 주룽 사이에 해저터널이 개통되었으며 지하철과 고속도로의 건설도 추진되고 있다.
유래와 역사 홍콩은 1841년 영국령으로 귀속되던 당시만 해도 평범한 어촌지역에 불과했다. 그 시기에는 단순한 불모의 암석지대로 표시될 뿐이었지만, 영국의 통치구역이 홍콩섬에서 주룽반도를 거쳐 신제까지 확대되면서 홍콩은 무역지로 대두되었고 오늘날 중국본토의 중요한 관문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홍콩의 한자 지명은 향항(香港)으로 글자대로 풀이하면 향기로운 항구라는 뜻이다. 이 이름은 향을 수출하던 역사적 사실에서 기인하고 있다. 19세기 초 영국무역상들은 청나라의 비단과 은, 차, 향신료 등을 사들이고 아편을 파는, 이른바 아편무역을 통해 막대한 이익을 얻고 있었다. 이에 청나라 황실에서는 국민의 아편중독을 우려하여 아편반입을 금지하려 하였고 결국 1840년부터 1842년까지 아편전쟁을 치르게 된다.
이 전쟁에서 청나라는 퀸 빅토리아 함대를 앞세운 영국군에 패하게 되고 1842년에 난징(南京)조약을 맺으면서 홍콩섬을 영국에 양도하게 된다. 1898년에는 신제를 영국으로 99년간 양도하게 되었으며, 헨리 포팅어(Henry Pottinger)가 초대 총독으로 부임하였다. 이 후 99년간의 영국식민기간이 만료되면서 1997년 6월 30일 홍콩은 다시 중국의 영토로 귀속되었다. 현재 홍콩은 중국의 특별행정자치구로서 1국가 2체제의 자치권을 행사하며 5천여 년을 넘는 장대한 중국의 역사와 100여 년 동안 이식된 영국의 문화가 조화를 이룬 독특한 국제도시로 자리 잡고 있다.
문화와 유산 홍콩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초현대적인 도시가 예부터의 전통과 조화를 이루는 홍콩만의 독특한 모습에 감탄하게 된다. 600년 전통의 중국문화가 150년간의 식민 지배를 거치며 조화된 홍콩특유의 분위기는 관광객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음식에서부터 예술의 경지에 오른 의학에 이르기까지 홍콩은 놀라움이 무궁무진한 곳이다.
세심하게 준비된 투어는 홍콩 내 건축물과 사적지 등을 꼼꼼히 돌아보며 중국인의 삶의 방식에 대한 이해를 갖게 해준다. 홍콩에서는 바다의 여신, 틴하우( )를 기리는 화려한 축제나 떠들썩한 용선(龍船)축제 등 년 중 언제 어느 때 방문하더라도 매력적인 전통축제를 경험할 수 있다.
언어와 민족 약 7백만 명의 인구가 살고 잇는 홍콩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밀집된 지역의 하나로 인구의 약 95% 정도가 중국계이고 언어 역시 중국어와 영어가 공식 언어이다. 북경어(만다린) 사용자가 늘고 있는 추세이긴 하지만 아직은 지방어인 광둥어가 널리 사용되고 있다. 관광 및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어를 사용하지만 재래시장이나 현지인을 상대로 하는 작은 음식점 등에서는 영어가 원활히 통하는 수준까지는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이 친절한 편이라 대화에 큰 어려움은 없다.
지형적 특색 반도와 다수의 섬들로 이루어진 홍콩은 굴곡이 많은 해안선이 있으며, 각지에 천연의 양항(良港)을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대지(臺地)가 해안에까지 미치고 있기 때문에 저지(低地)는 적고 신제 북부에 소규모의 충적평야가 있을 뿐이다. 지반(地盤)은 대부분이 화강암, 화산암으로 되어 있어, 토지이용에 크게 제약이 되고 있다. 전체면적의 60%가 초지 또는 수풀이며 임야 12%, 시가지 16%이고 신제 북부에서 볼 수 있는 경지는 8% 정도이다.
고층빌딩이 주룽일대와 홍콩섬에 빽빽이 들어서 있으며 홍콩섬의 경우는 빅토리아피크(554m)의 산허리까지 밀집해 있다. 신제 북부에는 큰 하천이 없어 물 부족이 심각하며, 많은 저수지가 있으나 중국 본토로부터 물을 사들여온다. 홍콩섬과 주룽의 해안매립에 의해 홍콩의 면적은 1945년 이래 16㎢ 증가하여 상업지구, 항만, 주택용지로 이용되고 있다.
정치·사회 반환 뒤 정치체제는 중국정부가 직할하며, 선거위원이 선출해 중앙정부가 임명하는 임기 5년의 행정장관이 통치한다. 1990년 2월 17일 9장 160조로 구성된 기본법 최종안이 채택되었으며 중국 반환 후 1997년 7월‘홍콩특별행정구 기본법??을 제정, 입법평의회(60석)의 직선 의석수는 1997년 20석, 1999년 24석, 2003년 30석으로 결정되었다.
주민의 98%는 화교(華僑)이다. 그 중 대다수가 광둥계(廣東系)이며 공용어로는 영어·표준중국어와 함께 광둥어가 널리 쓰이고 있다. 그밖에 푸젠성(福建省)·상하이(上海)·타이완(臺灣) 등의 출신자도 많다. 난민 유입의 역사를 반영하듯 주민구성이 복잡하며, 정치적으로도 친중국계, 타이완계, 중립계로 나누어져 있다. 그러나 인구의 59%는 홍콩 태생으로 바뀌었으며, 또한 20세 이하가 37%를 차지하여 홍콩인으로 불리는 세대가 많아지고 있다.
경제 1950년대까지는 중계무역에 의존하였으나, 1960년대 이후는 공업과 관광이 눈부시게 성장하였다. 이런 가운데 중국은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시기에 홍콩이 중국인의 굴욕의 상징이라 하여 반환요구 성명을 자주 발표하였으며, 홍콩에서도 좌파계 중국인에 의하여 대규모 반영투쟁이 벌어졌다. 그러나 중국은 경제활동이나 정치외교상 홍콩의 중요성을 이용하기 위해 그 지위를 암묵리에 보장하였다. 중국에게 홍콩은 화교들의 고향송금이나 중계무역 창구로서 많은 외화를 벌어들이고, 근대화정책에 필요한 서양기술을 흡수하는 거점으로서 매우 큰 역할을 하였다.
신제 조차기한을 앞두고 1982년 9월부터 홍콩의 장래를 둘러싼 중·영교섭이 시작되었으나, 중국은 이러한 실정을 들어 반환 후에도 현상유지 방침을 제시하였다. 1984년 12월 조인된 중·영공동선언은‘①영국은 1997년 7월 홍콩을 중국에 반환한다. ②홍콩을 특별행정구로 하고 홍콩인에 의해 행정부가 구성되어 외교·국방 외에는 자치권을 갖는다. '중국홍콩'이라는 명칭으로 다른 나라와 문화·경제협정을 체결할 수 있다. ③홍콩의 사회·경제제도는 반환 뒤 50년 동안 불변으로 한다. ④반환 뒤 중국은 홍콩에 군대를 파견하지만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반환 결정은 홍콩 경제계에 충격을 주었으며 화교의 해외이주도 증가하여 1980~1995년 60만 명 이상이 해외로 빠져나갔다.
교육 초등학교(6년)와 초등중학교(3년)가 의무교육이며, 학교는 공립과 사립이 거의 같은 수이고 수업에 영어와 중국어를 병용하는 학교가 3/4, 나머지는 중국어 학교이다. 대학은 1961년 창립된 영국계의 홍콩대학과 1963년 창립된 중원대학(中文大學)이 있으며, 이 밖에 공업기술전문학교도 많다. 문맹률이 낮고 교육수준이 높은 것이 경제발전의 기초가 되고 있다.
무역 현재 급성장한 가공무역에 의한 현지상품이 주류를 이루지만, 전통적인 중계무역에 의한 재수출품도 수출 전체의 1/3을 차지한다. 주요 무역상대국(2001)으로는 수출은 중국, 미국, 영국, 독일 순(順)이고 수입은 중국, 일본, 타이완, 미국, 싱가포르, 한국 순이다. 대(對)중국무역의 신장이 최근 두드러진 것은 종래부터의 식료품 수입과 함께 근대화를 지향하는 중국이 홍콩을 경유한 중계 무역을 확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무역과 관련하여 금융, 해운업도 발달해 있다.
금융기관수는 런던·뉴욕에 이어 세계 제3위이며, 동남아시아의 금융센터의 지위를 확보하고 있다. 해운업은 무역입국의 생명선으로서 아시아 최대의 빅토리아항과 첸완에 세계 제3위의 처리 능력을 가진 컨테이너기지가 있다.
관광 ‘동양의 진주'라고 불리는 홍콩은 동아시아 관광의 중심지로 2000년 관광수입은 78억 8,600만 달러에 이르렀다. 카이탁(啓德) 공항에는 세계의 유수한 항공회사가 취항하여 정기편을 운항하고 있는데 한 해 동안 여객기 이용자 가운데 약 1/3이 관광객이다. 그중 동남아시아에서 온 관광객이 가장 많고 일본, 미국, 유럽 등에서도 많은 관광객이 방문한다. 최근에는 중국으로부터의 여객도 증가하였다.
홍콩섬의 빅토리아는 행정관청, 은행, 상사(商社), 호텔 등이 집중해 있는 행정, 상업의 중추이며, 홍콩상하이은행 본점과 중국은행이 있다. 동쪽에 있는 완짜이(灣仔)와 노스포인트지구(地區)는 상업지구이며 빅토리아피크에는 케이블카가 다니고, 중간에 아름다운 식물원이 있다. 산꼭대기에 있는 전망대에서는 주룽 일대를 전망할 수 있다. 이 섬 남안의 애버딘은 수상생활자인 단민(蛋民)이 밀집해 있는 어업기지인데, 수상(水上)레스토랑의 생선요리가 유명하다. 홍콩섬과 주룽 사이에 있는 협수로(狹水路)는 세계 3대 미항(美港) 중 하나인 빅토리아항이다.
주룽은 상업의 중심지로서 호텔도 많다. 신제에는 북서부의 캄틴(錦田)에 500년 역사를 가진 환호취락(環濠聚落)이 있으며 중국과의 국경 가까이에 있는 록마차우(落馬州) 전망대에서는 중국 본토를 바라볼 수 있다.
한국과의 관계 1949년 11월 홍콩주재 한국총영사관이 설치되었고 상사관계(商事關係)에 의한 한국인 체류자도 많다. 2003년 말 기준 교민수는 4,953명, 체류자수는 2,648명이다. 삼각무역의 중계지로서 한국 수출확대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통상은 2003년 말 기준 대한수입액 143억 달러(전자전기제품·섬유류), 대한수출액 27억 달러(전자전기제품·섬유류)이다.
종교상황 홍콩은 불교와 도교, 개신교와 천주교, 이슬람교와 힌두교 등 동서양을 망라한 종교들이 공존하고 있다. 홍콩의 가정과 음식점의 한쪽에는 각종 묘(廟)와 신대(神臺) 등이 있고, 청명 등 절기에는 거리에서 쌀과 부적을 태우는 기복신앙(祈福信仰)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기독교 인구는 천주교를 포함하여 5-6%정도이며 홍콩에는 1200개 정도의 현지교회가 있다. 1200개 교회 중 담임목회자가 부재중인 교회가 400개나 된다. 신학교는 11개이며 신학생수는 매우 적은 편이다. 홍콩 안에는 크고 작은 선교기관이 150여 개가 있으며 이중 상당수는 중국 대륙을 향한 외국선교기관이 활동하고 있다.
정리 |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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