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이번 Project는 중국 최서단에 위치한 시쐉빤나(西?版?)로 잡았고 목적은 4개 소수민족 ( 布郞族(뿌랑족)/ 拉祜族(라후족)/ ?族(다이족))의 미디어 자료 제작과 언어자료 수집, 정확한 위치파악을 통한 Mission Geography 제작 가능성 확인을 목표로 하였다. Mission Geography는 미전도 소수민족과 미전도 지역의 상황을 현장답사를 통하여 제작 함으로 말씀사역자가 독립적으로 접근 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하고, 장·단기팀의 중복된 사역을 보다 넓은 지역으로 수혈하기 위한 실제적인 가이드역할을 감당하며 막연한 대상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잃어버린 영혼의 모습을 미디어를 통하여 바라보며 기도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기도로 준비하고 있는Project이다. 보고서 형식을 갖추기 위해 우리가 조사하지 않은 자료나 정부의 발표는 참고하지 않았고 현장노트 형식으로 정리 하였다. 차별화1. 민족별,종족별 Research를 기준으로 하되 복음이 선포되지 못한 마을을 정확히 파악한다. 이제까지의 Research 자료는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자료만으로는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기 어렵고 소수민족 전체 개괄정리에 집중한 나머지 언어, 문화에 대한 사실적인 자료 제시가 부족해 다른 팀의 접근이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또한 문헌적 해석과 정부의 통계와 학술적인 면에 많이 의존을 함으로써 소수민족과 미전도 지역을 실질적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관념적인 이해로 유도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 Research는 발로 걸어 다니며 보고 느낀 것을 전달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또한 지금도 정리하고 있는 언어 영역의 데이터를 활용 중국과 국경을 대하고 있는 인도차이나 5개국의 종족식별에 사용하고자 한다.
차별화2. 활용할 수 있는 자료를 수집하자! : 그 동안 많은 종족자료들이 발표되고 수집되었다. 그 헌신과 열정은 하나님나라의 상급을 확신할 만한 것이다. 우리는 약간의 차별화를 준비하고 있다. 적어도 말씀 사역자나 단기팀이 그 지역에 들어가기 전 소리와 발음기호로 표기된 그들의 언어를 조금씩이라도 익히고 들어갈 수 있는 수준으로 언어자료를 수집한다는 것이며 문화와 마을의 형편들을 좀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는 자료들을 수집하고자 했다. 특히 언어의 경우 어떤 어떤 어족 무슨 무슨 계, 이런 식의 조사보다는 아래 나와 있는 데로 300개 정도의 단어와 문장을 녹음 및 촬영함으로 소수민족들과 첫 만남을 좀 더 부드럽게 하고자 하는 것이다.
차별화3. 섣부른 선교전략제시는 금물, 자료를 공개함으로 함께 전략을 세우자 : Research를 준비할 때마다 느끼는 것은 자료를 참 잘 감춰(?)둔다는 느낌이다. 중앙정부의 통계자료 외에 살아있는 정보들이 분명 많을 터인데 국가 기밀처럼 꼭꼭 숨어버려서 찾기가 어려울뿐더러 혹시 얻게 되어도 현장에 다가가기엔 거리가 좀 있는 자료들이 많았다. 비밀스러운 사역이야기가 아니면 공개하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 본다. 전략을 이야기 할 때 하나님께서 그 종족과 지역을 위하여 사용하고자 하는 분을 위해 좀 양보 하는 것이 어떨까? 외부에서 방문하신 분들이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보다는 현장의 상황을 상세히 조사해 함께 전략을 세워나가는 것이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언어 자료조사 운남성 시쐉빤나(西?版?)지역에 거주하는 소수민족들은 이 지역을 국경으로 태국,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 지역에서 유래되거나 전파되어 그 문화가 동일, 또는 많은 유사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상황을 확인하는 것은 비록 국적은 다를지라도 각각 다른 국가에 떨어져서 살고 있는 동일 언어종족의 지역을 확인함으로 사역자간 복음전파를 위한 연합을 기대할 수 있다. 자신이 섬기는 종족이 다른 나라에 있는지, 언어는 통하는지, 그쪽에는 복음이 전파되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와 이미 제작되어있는 자료 등을 주고 받는 것이다. 특히 중국과 같이 국경을 인접하고 있는 경우 국가의 국경을 기준으로 사역지를 나누는 것 보다 언어를 기준으로 종족별로 선교사를 배치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기대도 해보게 된다.
- 언어는 민족과 민족을 분류하는데 중요한 기준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산재해 있는 동일한민족을 찾아내는 Tool로써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 기초 언어자료 조사는 가족관계, 자연계, 신체명칭, 숫자, 종교 등을 위주로 조사하였고 한어를 사용하였기 때문에 그림카드를 함께 사용하였다.
위치표시 소수민족이 사는 지역을 표시한 지도에는 작은 점이 찍혀 있지만 실제로 현장에 도착하면 지도상 점 하나로 표시된 곳이 이렇게 넓을 수 있을까 하고 놀라게 된다. 지명을 나열할 지라도 교통과 도로상황, 인근 대도시 안내 등도 찾아보기 힘든 경우가 많다. 또한 일정한 주 경로를 정하고 도보로 이동하길 권한다. 차량으로 이동 할 경우 도로에 인접한 많은 마을들을 그저 스쳐 지나가기 때문이다. 목적지를 정하고 찍고 돌아오는 것이 Research는 아니지 않겠는가? 이런 상황이 생겨난 이유로는 인력과 재정의 부족, 안전상의 문제 등 일일이 나열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정부에서 만든 지도 역시 믿을 만 한 것이 못 된다. 소수부족이 사는 작은(그래도 100호가 넘는다)마을은 지도상에 표시조차 하지 않는다. 이번에 주요 조사지인 뿌랑산(布朗山)의 경우 현지에서 구입한 2개의 지도가 동일한 길을 각각 다르게 그려놓아 애를 먹기도 했는데 인쇄 년도가 1년 차이인데도 다르게 그려져 있었다. 생각해 보면 아직도 지도제작을 위한 지방도로를 확인하며 보강해 나가고 있다는 추측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 넓은 지역을 어떻게 다 방문 할 것인가? 그것은 현지 한족들에게 넘겨야 하는 사역의 분량이라고 말 할 수 도 있겠다. 그러나 "듣지도 못하는 이를 어찌 믿으리오" 라고 한 말씀처럼 듣지도 못하고 죽어가는 많은 민족과 지역들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다가갈 구체적인 안내가 필요하고(다른 부분도 지원이 되어야겠지만) 그들을 빛 가운데로 인도해야 한다. 어렵다고, 인식이 부족하다고, 그래서 그들을 잊어야 하겠는가? 사42:7의 말씀처럼 "소경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옥에서 이끌어내며 흑암에 처한 자를 간에서 나오게" 하는 것이 복음에 빚진 자들의 임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모든 중국을 다 정탐하자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분명한 필요와 분명히 존재하는 그들을 위해 포기 하지 말자고 이야기 하는 것이다.
우리가 만난 뿌랑족 (布朗族) 뿌랑족(布朗族)을 만나기 위해 우리가 선택한 지역은 시쐉빤나(西?版?)뿌랑산(布朗山)과 인근 마을었다. 뿌랑산(布朗山)을 중심으로 한 교통로에는 다이족(?族),이족(夷族), 라후족(拉祜族), 뿌랑족(布朗族)이 각각의 촌락을 형성하고 살고 있었다. 우리는 베이스캠프를 징홍(景洪)에서 버스로 1시간 정도 소요되는 멍하이(孟海)로 정했다. 멍하(孟海)이는 지도에서 보듯이 주변의 소수부족 마을들로 접근할 수 있는 좋은 위치이며 시골마을을 다니면서 민박을 해야 하기 때문에 휴식과 비상식량공급, 장비 점검 및 세탁문제 등을 베이스 캠프에서 해결해야 하는데 멍하(孟海)이는 이러한 필요를 위한 저렴한 숙소가 충분히 있었다.(침대 2인1실 1박 50위안 ? 방마다 샤워시설 있음) 현장에서 3-4일정도 숙박을 한다면 베이스캠프의 필요가 없을 수 있지만 1주일 이상을 현장에서 활동하려고 한다면 베이스캠프가 있는 편이 훨씬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특별히 이번 지역은 산간지역으로 물 사정이 그리 넉넉한 편이 못되었고 샤워를 할 수 있는 시설이 없으니 자매들이 더 힘들 수 있다(현지인은 원피스처럼 생긴 옷을 입고 그냥 샤워를 하던데 …. 우리는?)
농양촌(??村) 멍하이(孟海)에서 중국국경 쪽 도로를 40분쯤 따라가면 비포장 도로가 나오는 곳에 농양촌(??村)이 있다. 200여 가구가 모여 사는 이곳은 주로 사탕수수와 차를 재배하는 일을 하며 살고 있다. 주변의 라후족(拉祜族)에 비해 경제적으로 매우 안정된 모습이며 교육시설, 의료시설은 없다. 큰 도로에서 20분 이상 떨어져 있어서 외지인의 발걸음이 뜸한 곳이다.
종교모습 조상을 제사하는 습관이 있는데 이 마을의 경우 부모의 제사를 돌아가신 첫해에만 치르고 그 이후에는 더 이상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고 한다. 지난해 부모를 모두 여윈 청년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자 자신들 마을의 풍습이라고 하며 다른 마을도 그렇다고만 한다. 좀 더 멀리 있는 뿌랑족(布朗族)에게 확인이 필요하다. 마을 중앙에 사원이 있고 아침마다 그곳에 밥을 가져다 주는 할머니를 볼 수 있었다. 이 절은 자신들이 직접세운 것이 아니고 다이족(?族)불교신자들이 세운 곳인데 13세부터 20세까지 자신이 원하면 이곳에서 생활 할 수 있다. 이곳의 생활은 매일 불상에 제사하는 것 외에 다이어와 한어(??)를 배우고 정기적으로 다이족(?族)이 방문하여 승려들의 생활을 공부하고 있었다. 우리가 민박을 한 집의 주인과 그의 친구는 자신이 가장 행복했던 때 중 한때가 바로 이 절에서 생활 할 때였으며 다시 기회가 주어지면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그와의 대화를 통해서 불교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서가 아니라 어린 시절 편안하고 안락했던 때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다. 절에서 생활 할 때에는 승복을 입고서 노동에 종사하지 않기 때문이다.
생활모습 젊은이들이 많이 남아있었는데 도시로 나가지 않는 이유는 자신의 마을에서의 삶에 충분히 만족한다고 하였으나 중국어 수준이 의사소통이 겨우 이루어지는 정도며 샘에 어두운 그들이 도시로 나가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된다. 년 수입이 3000(한화390,000원)위안 정도 된다고 하며 벽돌을 사용하여 집을 짓는다. 집을 지을 때 벽돌만을 구입하여 마을사람이 모두 일꾼으로 도와주고 다른 집을 지을 때 역시 도와주는 품앗이가 이루어지고 농사를 지을 때도 동일하다.
시장에서 만난 다이족 아주머니를 따라 멍훈(?混)으로... 징홍(景洪)에서 버스로 1시간 20분 거리 우리의 베이스캠프 멍하이(孟海)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있는 멍훈(?混)은 다이족의 집성마을이다. 대부분 외지인에 대해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고 시장에서 만난 아주머니를 통해 멍훈의 다이족 마을을 방문 할 수 있었다. 멍훈(?混)은 교통이 좋아서 이곳에서 버스를 갈아타기도 하고 멍하이(孟海)와 가까운 탓에 외국인을 쉽게 대할 수 있다. 우리에 대한 이러한 호의는 아마도 오지여행을 좋아하는 외국인들이 이 마을을 자주 방문하기 때문인 듯 하다.
종교모습 다이족 마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불탑이 마을 중앙의 산 위에 자리잡고 있었고 젊은 승려는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있었다. 절에 역사를 물어보자 어떤 사람은 700년 어떤 사람은 100년 이라고 각각 다르게 주장하고 10대 후반 청소년의 경우 불교에 대해 잘 알고 있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것은 불교에 대한 깊은 이해보다는 마을 전체적인 분위기에 젖어 불교신자 생활을 하고 있다고 보여졌다. 2가정에서 언어자료를 조사했는데 외국인과 직접대화는 처음이라고 말했고 종교를 묻는 질문에 어른들은 불교 라고 대답하고 청소년들은 웃으면서 얼버무린다. 부모들도 아이들이 종교가 없는 것에 무관심해 보인다.
생활풍습 쌀농사를 짓고 직접 멍하이까지(버스로 20분 거리)가서 판매하고 있어서 시쐉빤나의 주 종족다운 경제적인 안정을 볼 수 있었다. 남자들은 한족과 구분되지 않는 현대화된 복장을 입고 생활하지만 다이족 여성들은 개량된 다이족풍의 옷을 당연스럽게 여기며 입고 있었다. 알려진 대로 찹쌀을 좋아하고 외국손님인 우리가 잘 먹으니 매우 좋아한다. 주변의 부족들은 찹쌀을 잘 먹지 않는다고 한다. 한국처럼 다이족은 숯불에 여러 가지 고기나 야채를 구워 먹는 것을 좋아하는데 시장에서 돼지꼬리 구이가 인기 메뉴였다. 이곳의 학생들은 한족어로 모든 수업을 하며 다이어는 가정에서만 사용한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다이어를 읽을 수 없었고 우리가 수집한 자료는 1997년경 마지막으로 인쇄한 다이어 교과서다. 그러나 다이어로 만든 잡지와 위인전, 종족소개 등이 서점에서 판매되고 있었다.
다이족의 문자는 미얀마 문자를 차용했기 때문에 모양이 매우 비슷하다. 발음에 관한 확인을 위해 중국에 유학 온 미얀마 형제를 접촉 중이다. 태국의 북부에 존재했던 란나 왕국의 문자와도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 되어서 태국 북부의 사역자와도 연계하여 확인하고자 한다.
뿌랑산의 拉祜族(라후족) 뿌랑산에 살고 있는 이 종족은 주변의 종족들은 라후족이라고 발음하고 자신들은 라쿠족이라고 발음한다. 그 뜻을 보면 "신이 주는 복을 당기다"이고 후자는"신이 주는 복이 말라버리다"는 의미가 되는데 인터뷰 중 이상한 점은 "당신은 라후족(lahu)입니까?" 라고 물어보면 "네 나는 라쿠(laku)족 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자료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현장을 촬영한 비디오Tape를 몇 번 재생해가며 보았지만 의미를 알기가 어려웠다. 다만 중국 인터넷에서 라쿠족을 찾으며 한가지 발견한 것은 1980년대 이전의 운남성 정부 문서에는 지금의 라후족 표기가 쿠(枯)로 기록되어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그러나 그 이후의 문건에서는‘쿠’가 사라지고 ‘후’로 통일되어 표기되고 있다. ‘枯’자와 ‘祜’자 를 놓고 보면 매우 흡사하다. 볼시(示)부수가 잘못 기록되거나 인쇄과정에서 오류도 생각해 볼 수 있고, 언어 녹음 중 ‘H’발음이 잘 되지 않고 ‘k’ 발음이 매우 강한 것으로 보아 발음상의 문제인 경우 등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다. 일부 자료에 두 종족이 분명히 다른 종족으로 알려져 있어 확인이 필요하다. 만약 동일한 종족이라면 하나의 종족은 멸종(?)되어야 하는 것이다. 녹음된 언어자료를 가지고 다른 지역의 라후족에게 들려주는 것이 확인 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생활모습 이 지역의 라후족은 다른 종족에 비해 한어가 통하지 않아서 눈으로 관찰하는 것 외에 인터뷰에 의한 자료를 얻는 것이 매우 힘들었다. 정부에서 주관하는 행사나 축제에 동원되는 경우도 없어서 거의 고유의 명절마저도 잊고 살아가는 듯 한 모습이었다. 조상에 대한 제사나 우상에 대한 흔적은 찾아 볼 수 없었고 여성도 전통복장을 갖추었다고 말하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4곳의 라후족 마을에서 인터뷰를 시도했으나 언어자료를 얻는데 만족해야 했다. 그들의 살림은 매우 어려워 보였고 주변의 소수민족에게도 멸시를 당하는 상황이었다. 뿌랑산에서 함께 사는 종족이 아이니, 뿌랑, 라후가 주류를 이루는데 아이니와 뿌랑족은 결혼하는 예가 있지만 라후족과 결혼하는 것을 매우 반대하고 수치로 여길 정도로 차별하고 있었다. 올해 처음 라후족을 위해 정부에서 간이 소학교를 세웠는데 뿌랑산 라후족을 통틀어 한어로 의사소통을 원만하게 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라후어를 할 줄 아는 한족이 행정 때문에 라후족 촌장으로 임명된 경우도 있어서 한 마을에 라후족 촌장과 한족촌장 2명인경우도 있었다.
시쐉빤나(西?版?)의 주 현, 징홍(景洪)의 교회 윈난성(云南省) 성도인 쿤밍(昆明)에서 버스로 12시간, 비행기로 1시간 남짓 거리에 시쐉빤나(西?版?)의 현 정부가 있는 징홍(景洪)에 도착한다. 동남아의 느낌이 물씬 나는 거리엔 개량된 다이족 의상을 입은 다이족 여성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징홍의 전통시장 중에는 미얀마 등지에서 옥을 팔기 위해 중국에 와 있는 옥 상인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그 시장 맞은편 재래 시장 안쪽에 중국정부에서 인가해준 교회가 운영되고 있다. 성도수가 300명 정도이고 학생 예배와 유아 예배도 함께 드리고 있으며 다이족이 가장 많은 숫자를 차지하고 한족과 기타 소수민족이 함께 예배를 드린다고 하며 간혹 외국인이 방문하여 함께 예배를 드리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개발의 현장 뿌랑산 뿌랑산에 오르기 위해서는 멍하이에서 하루 1대밖(오후 2:00)에 운행되지 않는 버스(차비 1인 20위안정도)를 이용해야 한다. 비포장도로를 4시간 정도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먼지와 지독한 담배 냄세 정도는 미리 각오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비포장 도로지만 현재 반대편 산길을 따라 도로공사가 한창이다. 이곳은 일반차량이 다닐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2일에 걸쳐 걸어서 내려왔다. 중간에 공사설계사의 짚차를 얻어 타지 못했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 했을 것이다. 이 공사로 주변의 소수민족들이 경제적인 도움을 얻고 있었다. 이 지역에 도로가 좀더 편해지는 것과 함께 복음의 전파도 빨라지기를 기대한다.
마치며… Research에 관심이 있는 동역자와 단기팀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이 있다. 먼저 "한번 다녀간 곳을 또 가자"는 것이다. 이방인을 맞이한 오지의 소수민족은 오랫동안 자신을 방문한 이방인을 기억한다. 때를 얻지 못하여 직접적인 복음을 전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6개월이나 1년 후 다시 그들을 찾는 다면 그 만남의 약속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마음을 여는 귀한 기회가 될 것이다. 또 한 가지는 "찍은 사진은 1달 내에 꼭 보내주자"는 것이다. 오지를 다녀본 분들은 그들이 가족사진이나 아이의 사진을 마음껏 찍어서 가지지 못하는 형편인 것을 알 것이다. 우루루 몰려가서 경쟁하듯 찍어놓고 이런 저런 이유로 장롱 속에 묻혀버린다면 이방인에 대한 믿음도 그렇게 묻혀버릴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탐이 필요한 지역을 향하는 발걸음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전의 경로들은 이번의 경로보다 더 앞을 알 수 없고 정보도 부족했다. 그러나 우리의 행동이 현지인들을 자존심 부분에서 자극하지만 않는다면 그들은 우리의 친구가 되어 줄 것이다. 도심의 각박한 삶에서 느끼지 못하는 여유를 느낄 것이며 그들의 영혼이 얼마나 우리를 기다려 왔는지 느낄 것이다.
올해부터 사역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목표와 도전은 있지만 새롭게 시작하는 사역이라 부족함이 많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어진 부름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계속 자료를 수집하며 제공 할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닫힌 문을 "여는 사역"이라고 말할 것이다. 우리를 이 사역에 부르신 주님을 찬양한다.
Michael | 본지 사진기자, 중국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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